제203화
온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녹색 광휘를 뿜어내며, 호기롭게 포효하는 김혜옥의 모습에 나는 어둠이 일렁거리는 어둠달을 꽈악 틀어쥐곤 그녀를 보호하듯 앞으로 나섰다.
『웨어배트』
지금 시점에선 위험도가 책정되어 있지 않지만. 회귀 전 기준으로 웨어배트는 위험도 1급에 해당하는 강력한 몬스터였다.
시커먼 털에 뒤덮인 털가죽은 어지간한 충격 따윈 우습게 흘려버릴 정도로 뛰어난 내구력을 지녔기에, 숙련된 공격대조차 놈들을 상대하는데 적잖은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놈들이었다.
…뭐, 그래 봤자. 낙오자들의 힘을 손에 넣은 내겐 그리 어렵지 않은 놈들이니까.
혜옥이에겐 좀 미안하지만,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놈들은 내가 처리하는 게 맞겠지.
“미안하지만 얘네들은 그리 쉬운 상대가 아니거든? 그러니까 여긴 내게….”
“힘은! 곧! 빛을 만든다! 그리고 나는 지금 힘찬 기분이 든다앗!”
김혜옥의 안전을 걱정해, 그녀에게 내가 놈들을 맡겠노라 선언하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내 말은 갑자기 내질러진 김혜옥의 포효에 중간에 뚝 끊겨 버렸다.
그렇게 괴이한 포효를 내지른 그녀는 내가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이쪽을 향해 쇄도해오는 웨어배트 무리 쪽으로 힘차게 도약했다.
“위험하다니까! 여긴 내가 맡겠…. 어라?”
-꾸꽈아아앙!
무모하게 웨어배트 무리 가운데로 돌진한 김혜옥을 붙잡으려던 그 순간!
내 바로 앞쪽에서 폭탄 수십 개가 동시에 터지는 듯 어마어마한 폭음이 지하실 전체에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폭음의 중심에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끼. 끼이이….》
머리가 통째로 몸속으로 함몰되어 들어간 어느 불운한 웨어배트의 비참한 모습.
웨어배트 무리를 향해 도약한 김혜옥이 우람한 목 근육을 이용해, 선두에 선 놈의 머리를 그대로 들이 받아버린 것으로 인해 발생한 광경이었다.
머리와 강제로 하나가 되어버린 웨어배트의 몸뚱이는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힘없이 옆으로 털썩 쓰러졌다.
…뭐지? 지금 그 웨어배트를 완력으로 쳐 죽인 거야?
회귀 전, 어느 육체파 헌터조차 하지 못했던 위업이 김혜옥의 근육질 몸뚱이에서 이룩되었다.
갑자기 눈 앞에 펼쳐진, 내 상식을 통째로 부정하는 광경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이나 마이트 어퍼컷!”
그렇게 내가 멍하니 김혜옥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녀는 다음 먹잇감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불쌍한 웨어배트 한 마리를 잔혹하게 처리한 김혜옥은 계속해서 괴성을 내지르며, 자신에게 날아드는 웨어배트들을 향해 아래에서 위쪽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뿌좌자작!
…저게 가능하다고?
놀랍게도 김혜옥의 위쪽에서 덮쳐오던 웨어배트의 몸뚱이는 마치 꼬치에 꿰이듯, 그녀의 거대한 주먹에 관통되었다.
웨어배트의 털가죽은 어지간한 헌터들의 공격조차 우습게 흘려낼 만큼 강인한 내구도를 자랑했지만, 김혜옥의 괴력 앞에선 약하디약한 종잇장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
《끼, 끼이이…?》
순식간에 복부를 관통당한 웨어배트는 불신이 가득한 단말마를 남긴 채. 몸을 축 늘어뜨렸다.
자신의 주먹에 몸이 꿰뚫린 웨어배트가 한 많은 생을 마감하자, 김혜옥은 마치 일회용 장갑을 벗어내듯 축 늘어진 시신을 가볍게 뽑아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끼익! 끼르르륵!》
《끼야아악!》
-부와아아악!
그렇게 김혜옥이 자신의 손에 들러붙은 부산물들을 털어내려는 틈을 타.
어느새 달려든 웨어배트 두 마리가 녹색으로 빛나는 그녀의 머리를 노리고 발톱을 휘둘렀다.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려진 놈들의 앞다리에서 시커먼 발톱이 흉측한 살기를 흩뿌렸다.
시커먼 발톱이 김혜옥의 눈을 찢어발기려던 그 순간!
“흥! 너희 같은 괴물 따위가 순수한 소녀의 어여쁜 눈동자를 노리다니! 어림도 없지!”
-쫘아아악!
김혜옥의 손이 벼락처럼 휘둘러지며, 맛깔나는 따귀 소리가 청량하게 울려 퍼졌다.
그녀의 말처럼 마치 어린 소녀가 파리를 쫓기라도 하듯, 가볍게 휘둘러진 손바닥이었지만.
지하실 전체를 웅웅 울린 청량한 파열음이 그 위력을 증명하듯, 그녀의 ‘따귀’는 범상치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끼이이이》
사방에 싯누런 옥수수를 흩뿌리며 얼굴 전체가 김혜옥의 손바닥 모양대로 찌그러진 채, 최후의 단말마라도 남긴 놈은 그나마 양호한 케이스였다.
그녀의 따귀에 적중당한 나머지 한 놈은 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채로 머리가 철 지난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게 박살 나 버렸다.
어지간한 공격대원들도 고전을 면치 못했던 웨어배트 놈들을, 단순히 따귀만으로 저 지경으로 만들어놓을 정도라니.
정말…. 혜옥이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꼭 알아봐야겠어.
“홋호!”
김혜옥은 계속해서 웨어배트들을 말 그대로 산채로 찢고 부수고 있었다.
마력이 주입된 무기도 튕겨내던 털가죽이 그녀의 손에 종잇장처럼 쫙쫙 찢어졌다.
털가죽 못지않게 단단한 뼈조차 김혜옥의 괴력에 마치 과자처럼 허무하게 박살 났다.
회귀 전, 신체를 극한으로 단련한 특성 트리 계통의 헌터들조차 꿈도 꾸지 못했던 기행을 김헤옥은 ‘치유사’ 특성 트리로 해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김혜옥의 무력은 상식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수준이었다.
“홋호! 빼갈숄더 어택!”
그렇게 내가 김혜옥의 무력에 의문을 품고 있는 사이.
튜토리얼에서 터키석 공격대원들을 단박에 박살 냈던 기술명을 외친 김혜옥은 그대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웨어배트들을 어깨로 들이받았다.
《끼익! 끼르르륵!》
김혜옥의 어깨에 정면으로 들이받힌 웨어배트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산산이 으깨졌다.
단단한 살가죽과 근육, 뼈로 이뤄진 육신이 마치 트럭에 으깨진 토마토처럼 허무하게 으스러졌다.
-덥썩! 덥썩!
곧이어 그렇게 웨어배트들을 몸으로 때려 부수며, 놈들 사이에 파고든 김혜옥은 자신을 향해 포효를 내지르는 웨어배트 두 마리의 털가죽을 거칠게 잡아챘다.
인간을, 아니 생명체를 아득히 초월해 버린 악력에 놈들이 털가죽이 마치 천으로 만든 옷처럼 강제로 우두둑 뜯어졌다.
“혼돈! 파괴! 망각!”
-뿌좌자작!
괴상한 기합소리와 함께, 털가죽을 잃은 웨어배트 두 마리의 몸이 그대로 반으로 찢어졌다.
정말이지, 도저히 인간이라곤 볼 수 없는 무식한 괴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김혜옥을 바라보며 포효하는 웨어배트들의 울음소리에 공포의 감정이 조금씩 조금씩 깃들기 시작했다.
《끼륵? 끼르륵》
“호오…. 이거 참. 예상 밖의 전개가 일어났는데요?”
온몸에서 녹색 광채를 흉흉히 빛내는 김혜옥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살기를 피어올리고 있자.
갑자기 지하실 전체를 가득 메웠던 웨어배트들이 썰물처럼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포와 경의의 감정 속에 생겨난 공간으로 양복을 멀쑥하게 차려입은 사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귀찮은 건 그쪽뿐인 줄만 알았습니다만. 의외의 인물이 의외의 활약을 보일 줄이야…. 뭐, 일이라는게 항상 생각대로 돌아가진 않는 법이니까요. 오랜만입니다. 설용호 산군님.”
모습을 드러낸 뺀질한 인상의 사내는 재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김혜옥의 몸에서 몸에서 뿜어진 녹색 광채에 놈의 얼굴이 드러난 순간.
나는 부드득 이를 갈며, 어둠달에 내력을 불어넣기 시작헀다.
“…김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