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196화 (196/309)

제196화

밤을 비추는 달빛마저 짙은 먹구름에 삼켜진 칠흑 같은 밤.

우리는 놈들이 점거한 태백 길드 본사 건물에 아주 조용하게, 아주 은밀하게 스며들었다.

-파팟!

다들 신축 건물의 내부구조는 손금보듯 훤하게 알고 있는 상태였기에. 은밀히 본사 건물의 벽을 타고 오르는 우리들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단 몇 번의 도약만으로 3층의 비상용 출입구에 도착한 나는 조용히 어둠달을 빼 들었다.

-서걱!

시커먼 내력이 꿈틀거리는 창날이 비상용 출입구의 문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단숨에 좁다란 틈을 비집고 들어간 창날은 문의 잠금장치를 단숨에 깔끔하게 잘라내었다.

그렇게 잠금장치가 잘려나간 철문은 너무도 쉽게 우리의 출입을 허용해 주었다.

-꽈드드득!

“싸, 싸부님! 끼었어요! 이, 이거 부숴도 될까요?”

…쉽게 출입을 허용해줬다는 말은 취소.

일반인을 아득히 초월하는 덩치를 지닌 김혜옥은 그렇지 않아도 작게 설계된 비상용 출입구에 완전히 끼어버린 상태가 되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아연히 바라본 강태백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만 한다면 부숴도 되네. 이곳의 보안장치는 고장난지 오래거든.”

“저, 정말요? 그럼! ‘조용히’ 부술게요!”

-뽀작!

김혜옥의 근육에 심상치 않은 힘줄이 돋아남과 동시에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도대체 어떤 재주를 쓴 것인지, 그녀가 그대로 몸을 일으키자.

김혜옥의 몸에 착 달라붙은 비상용 출입구가 벽에서 그대로 ‘뽑혀’ 나왔다.

“역시, 경보는 울리지 않는군. 아직까지 고쳐놓지 않았다니. 역시 구두쇠 늙은이들다워, 3층 보안장치가 고장 났다는 보고가 몇 번이나 올라왔는데 말일세….”

강태백이 호언한 대로였다.

김혜옥이 문을 통째로 뽑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보안장치도 작동되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건물 내부는 그 흔한 사이렌 소리조차 들리지 않은채. 여전히 조용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김혜옥이 자신의 몸에 달라붙은 비상용 출입구의 파편을 떼어내는 모습을 본 강태백은 입가에 씁쓸한 웃음을 매단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그것 덕분에 쉽게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푼돈을 아끼려는 그 안일한 마음이 때론 득이 될 때도 있는 법이죠.”

외부의 침입으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뒤.

강태백은 엄청난 거금을 들여 신축 건물 곳곳에 값비싼 보안 설비를 설치해 뒀었다.

때문에 값비싼 보안 설비를 뚫고 이곳 신축 건물에 은밀히 침투하는 것은 원래대로라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푼돈을 아끼기 위한 ‘높으신 분’들의 안일한 대처 덕에 우리는 너무도 쉽게 건물 내부에 침투할 수 있었다.

“하긴, 덕분에 쉬이 침투했으니. 지금은 놈들의 안일함에 감사를 표해야겠지. 알다시피 보안실은 5층에 있네. 우선 그쪽부터 점거하세나.”

피식 웃은 강태백은 눈을 빛내며 어둠이 깃든 복도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복도를 응시하던 그는 연신 위쪽을 살피며,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됐군. 역시 CCTV도 아직 수리하지 않았어. 이쪽으로 따라오게.”

일에 관련해선 편집증을 연상케할 만큼 꼼꼼한 강태백답게, 놀랍게도 그는 복도 곳곳에 있는 고장난 cctv의 위치를 전부 외우고 있는 듯 했다.

“흐음. 혜옥 양의 덩치로 미뤄보건대. 이쪽 통로를 이용하는 것은 무리겠군. 저쪽으로 가보세. 혜옥 양도 그쪽 벽에 달라붙어가면 될게야.”

“넵. 길드장님!”

남들보다 더욱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김혜옥 덕에 루트가 몇 번 꼬이긴 했지만.

강태백은 그것마저 고려하며, 조금 느리지만 확실히 우리를 복도 끝에 위치한 계단을 향해 안내했다.

“…정지.”

저 멀리 계단으로 향하는 통로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

앞서 가며 길을 안내하던 강태백이 갑자기 손짓으로 우리를 멈춰세웠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향한 끝엔 김혜옥과 필적할만한 덩치를 지닌 두 마리의 괴물이 이쪽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

“빌어먹을 마족 놈들. 이제 눈치 볼 일도 없겠다. 아주, 살림을 다 차려놨군.”

어둠을 뚫고 그것의 모습을 확인한 강태백은 적의를 드러낸 채,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그가 ‘마족’이라 칭한 것처럼. 손전등조차 장비하지 않고 어둠속을 거니는 두 마리의 괴생명체는 인간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형의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크르륵.』

복도를 꽉 채울 듯,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헐벗은 근육질 몸뚱이 위엔.

각자 다른 곳을 응시하는 두 개의 머리엔 물소의 뿔처럼 굵은 뿔이 각각 한 개씩 돋아있었고.

위협적으로 불끈거리는 근육질 팔뚝엔 인간의 두개골들이 장식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놈들이 아가리를 쩍쩍 벌릴 때마다, 부패한 고기 특유의 악취가 코를 찔러왔다.

다행히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는지.

마족들은 눈앞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숨을 죽여 숨어있는 곳과는 반대쪽 방향으로 향했다.

『고기…. 그분들께서 맛좋은 고기를 원하신다.』

『어서 놈들의 육신을 찢고 살을 발라내라. 형제여.』

“…고기라고?”

마족들이 다른 곳으로 향한 것을 본 강태백은 계속해서 어둠을 향해 나아가려 했으나.

으르렁거리듯 중얼거리는 놈들의 대화 내용에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섰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의 얼굴은 혐오의 감정을 품고 잔뜩 일그러져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표정도 그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후후. 고기창고. 고기창고.』

『달콤한 절망으로 가득차 있지. 맛좋은 고기들이 울부짖고 있지.』

심상치 않은 예감에 강태백은 발걸음을 돌려, 마족들이 향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어느새 복도 끝에 위치한 문 앞에 도착한 두 마리 마족 놈들은 두개골이 덜렁거리는 팔뚝을 휘둘러, 육중한 문을 단숨에 열어젖혔다.

“…!”

-으으으. 제바아알.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출입 금지』 명패가 적힌 문이 마족들의 괴력에 의해, 뻐끔 열린 순간.

내부에서부터 코가 얼얼해질만큼 강렬한 피냄새가 흘러나왔다.

절규하는 남성들의 비명과 흐느끼는 여성들의 울부짖음이 안쪽에서부터 희미하게 들려왔다.

예상했던 대로 놈들이 언급한 ‘고기’는 다름아닌 ‘인간’이었다.

…강태백의 말처럼 아예 살림을 차려놓은 모양이로군.

아무리 길드를 장악했다지만, 우리 태백의 건물 내부에 버젓이 저런 짓을 해놓다니.

“…저런 사악한 마물이!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저쪽이라면 cctv가 없는 구역일세. 너무 오른쪽으로 가지만 않는다면 별 문제 없을게야.”

복도를 타고 풍겨오는 피냄새와 비명소리에 박정욱의 두 눈이 불을 뿜었다.

그의 몸에서부터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서늘한 냉기가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그렇게 냉기를 두른 박정욱은 강태백의 조언에 따라, 어둠 속을 미끄러지듯 내달렸다.

-콰드드득!

뼈가 뒤틀리는 섬뜩한 소리가 복도에 나지막이 울려퍼졌다.

졸지에 날벼락을 맞은 경비의 육중한 머리가 새하얗게 얼어붙더니, 이내 우지직 뒤틀렸다.

저마다 다른 곳을 응시하던 두 개의 머리가 농익은 감처럼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형제여? 갑자기 왜…. 끄윽!』

동료의 급작스러운 죽음에 놀란 다른 경비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애석하게도 놈의 운명 역시, 조금 전 죽음을 맞이한 동족과 다르지 않았다.

-쩌저적!

커다란 두 개의 머리가 동시에 새하얗게 얼어붙으며, 엉망으로 뒤틀렸다.

순식간에 머리를 잃은 두 개의 몸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포개졌다.

영혼이 뒤섞인 탓인지, 놀랍게도 박정욱은 이중환의 전투방식과 굉장히 흡사한 권능을 선보였다.

“…빌어먹을 놈들.”

순식간에 두 마리의 경비를 처리한 박정욱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경비의 시신을 밟고 선 그의 시선은 못박힌 듯 뻐끔히 열린 방 내부에 고정되어 있었다.

박정욱이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자, 설악 공격대원들 몇몇이 조심스레 그가 서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갈길이 바쁩니다. 대장. …이런.”

“무슨 일이십니까. 대장. …썅.”

얼어붙은 박정욱의 상태를 지켜보러간 공격대원들의 입에서도 욕설이 터져나왔다.

그들 역시 뻐끔히 열린 문의 내부를 바라보자, 욕설과 함께 홀린 듯 우두커니 멈춰섰다.

내부에서 옅게 들려오는 신음소리와 비릿한 피냄새, 그리고 그들의 반응으로 나는 굳이 내부를 확인하지 않았어도 어떤 참극이 펼쳐져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회귀 전. 마족들의 소굴에서 비슷한 광경을 수도 없이 목격했으니까.

“정신차리세요! 애석한 일이지만. 지금은 그런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닙니다.”

“그래! 심부름꾼 역할을 하던 놈들이 목숨을 잃은 상황이니, 다른 놈들이 올걸세. 서두르게!”

어둠 속을 달려간 나는 굳어버린 박정욱과 설악 공격대원들을 억지로 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문제의 방 내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미리 예상했던 것과 한치도 다르지 않았기에. 나는 냉정히 그들을 그곳으로부터 떼어낼 수 있었다.

“하, 하지만. 안쪽에 사람들이 있어! 위험에 빠진 사람들이 도움을 바라고 있단 말일세!”

“마, 맞습니다. 산군님! 처, 처참한 상태로….”

“이미 늦었어요! 그들은 이미 죽어버린 육신에 영혼만 붙들려 있는 상태란 말입니다.”

『도축장.』

회귀 전에 몇 번이나 겪어보았던, 마족들의 악취미 중 하나였다.

영혼을 왜곡시키고 뒤트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마족들답게, 놈들 중에서도 유난히 인육을 즐기는 놈들은 자신이 살해한 먹잇감의 혼을 고깃덩어리에 빙의시키는 것을 선호하곤 했었다.

-흐으으.

지금 저쪽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울부짖음과 흐느낌은 ‘살아있는’ 인간들의 절규가 아니었다.

이미 죽어버린 망자들의 비통한 귀곡성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저걸 그냥 내버려 두란 말인가!”

“내버려 두라는 말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자들에겐 살아있는 자들만을 구원하는 방법이! 죽은 자들에겐 그들만을 위한 구원법이 있다는 말입니다.”

박정욱에게 일갈을 내지른 나는 양손을 앞으로 쭈욱 뻗었다.

황금빛 외골격에서 내 몸을 감싸며, 망자들의 안식을 위한 스킬이 발동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