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3화
“…보상 상자를 조사하다 이리되어 버렸단 말인가?”
내게서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강태백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회귀 전, 별 해괴한 사건 사고를 접해본 나조차 황윤형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한 만큼.
강태백 역시, 게이트 클리어 ‘보상’으로 어린아이로 변해버린 황윤형의 모습에 적잖게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이쪽 업계에서 일한 세월이 적지 않네만, 이런 일은 또 처음 겪어보는군. …하기야. 자네와 엮인 뒤론 계속해서 괴상한 일들의 연속이 벌어지고 있지만 말일세.”
한숨을 내쉰 강태백은 머리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자신의 품속에 안긴 황윤형을 바라보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황윤형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그저 해맑게 방글방글 웃으며 강태백의 품속에서 재롱을 피워대고 있었다.
…도대체 상자 속에서 무슨 보상을 주워 먹었길래. 저런 몰골이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네.
저래서야 외모뿐만 아니라, 정신연령까지 완전히 어려진 것 같은데 말이지.
“아무튼, 윤형이에게 일어난 일을 형님에게 어찌 알려야 할지 모르겠군. 아니, 지금은 졸지에 어린아이를 지휘관으로 두게 생긴 공격대원들에게 어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할 차례인가?”
“아무래도. 먼젓번에 계약 관련해서 그리 유쾌하지 않게 끝난 만큼. 오닉스 길드 측에서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흐응…. 과연, 그 교활한 늙은이라면 이걸 빌미로 계약을 무효로 돌리려고 들 수도 있겠지.”
“으응? 삼촌, 삼초온 이고 봐바아. 신기해애.”
나와 강태백이 황윤형의 처우를 두고 머리를 싸매는 사이.
강태백의 품속에서 꼼지락거리며 허공을 휘적거리던 황윤형이 해맑은 목소리로 주의를 끌었다.
어린아이답게 천진난만한 웃음을 띤 그의 손엔 유형화된 시커먼 어둠이 음산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흘러간 시간의 그림자』
등급 : 신화
설명 : 덧없이 흘려보낸 시간을 역행하는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시, 신화급? 어, 어찌 이런 물건이 이런 곳에….”
“…시간을 역행시킨다니.”
황윤형의 손에 쥐어진 아이템의 설명을 확인한 순간, 나와 강태백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경악의 감정을 담아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그만큼 시스템 메시지 창에 떠오른 아이템 정보는 터무니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황윤형이 갑자기 어려진 이유가 이런 것이었나?
“이것의 효과로 인해, 윤형이가 어려진 것이라면…. 이것을 떼어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소리겠군.”
침을 꿀꺽 삼킨 강태백은 황윤형의 손에서 꿈틀거리는 어둠을 꽈악 움켜쥐었다.
어둠이 황윤형의 작달막한 손에서 굳은살이 박인 강태백의 손으로 옮겨간 순간, 두 사람의 육신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수, 숙부님? 이, 이건 도대체…. 으어어억!”
어린아이의 외형을 띄고 있던 황윤형의 육신이 쑥쑥 자라나, 금세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작은 어린아이가 근육질 거구가 되어, 강태백의 품속에 안겨있는 해괴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 괴상망측한 장면의 주인공인 황윤형은 대단히 당황한 목소리로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내지르며 튕기듯 강태백의 몸에서 황급히 떨어졌다.
-꾸드득
어둠을 손에 쥔 강태백의 몸이 시간을 거스르기 시작하자.
전형적인 중년 남성의 그것처럼 주름진 피부가 팽팽하게 펴지며, 싱그러운 젊음을 머금었다.
단정히 정리해둔 희끗희끗하게 물든 암회색 머리가 새까맣게 물들며 길게 자라났다.
“젊음이…. 돌아왔군.”
황윤형을 내려놓은 강태백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젊음이 돌아온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자연과 시간의 섭리를 거스른, 갑작스러운 회춘 탓인지. 그의 얼굴엔 묘한 미소가 맺혀있었다.
“젊음이 돌아와 좋긴 하지만 말일세…. 이건 몹시 위험한 물건이로군.”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젊어진 육신을 이리저리 살펴본 강태백의 표정이 점점 딱딱해졌다.
한숨을 내쉰 그는 자신의 손에 꿈틀거리는 어둠을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둠을 바닥에 내려놓은 그 순간부터, 강태백의 육신엔 다시 노화가 찾아왔다.
“위험한 물건이라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시간을 역행시킨다는 것이, 비단 ‘육신’만의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아니란 말일세. 저것을 손에 쥔 순간. 자네와의 기억, 아니 최근의 기억 자체가 점점 희미해지더군.”
“…이것에 닿은 이의 정신까지. ‘과거’로 돌려버리는 모양이로군요.”
강태백의 설명과 황윤형이 보여줬던 모습으로 미뤄보건대.
보상 상자에서 출현한 『흘러간 시간의 그림자』는 굉장히 무서운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단순히 그것에 닿은 이의 육신만을 ‘어리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을 포함한 모든 것의 시간 자체를 과거로 역행시키는 엄청난 권능이 담겨있었다.
“그래, 윤형이가 그렇게 한심한 모습을 보였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는 말일세.”
“하, 한심한 모습이라니. 제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럴만한 일이 있었지. 나야, 아주 오래전 추억을 되살려서 좋긴 했다만.”
강태백의 투명한 시선이 황윤형에게 향하자, 그와 시선이 마주한 황윤형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조카의 당황한 모습에 피식 웃은 강태백은 고개를 휘휘 내젓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어찌 되었건, 대단히 곤란한 물건을 보상이랍시고 받아버렸어. 범상치 않은 효과를 지닌 물건이네만…. 이것을 어찌 다뤄야 할지 모르겠군. 당장 옮기는 것도 문제일세.”
강태백은 흘끗 시선을 돌려,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어둠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어둠은 그것과 맞닿은 아스팔트 바닥의 시간을 과거로 역행시키고 있었다.
도심을 뒤덮은 시커먼 아스팔트가 조금씩 조금씩 사라지며, 황톳빛 땅이 드러났다.
…자신에게 닿은 것의 시간을 한없이 뒤로 돌리는 물건인가 보군.
보상으로 등장한 『흘러간 시간의 그림자』의 위험성을 깨달은 나는 낮게 침음성을 삼켰다.
그리곤 허리를 굽혀 황톳빛 대지 위에 암울하게 드리운 어둠을 가만히 집어 들었다.
지금의 나로선 이것을 처리할만한 방법이 단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꾸드드득!
어둠이 내 오른손에 드리우자, 그것을 집어든 내 시간이 과거를 향해 역행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있었던 기억들이 조금씩 조금씩 날아갔다. 몸에 착 달라붙었던 가죽 갑옷이 헐거워졌다.
“자, 자네! 아직 젊은 자네가 그것을 집어 들면….”
시커먼 어둠이 내 오른손에서 꿈틀거리며, 나의 시간을 과거로 돌리기 시작하자,
그 장면을 지켜본 강태백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으응?”
그리고 강태백의 입에서 터져나온 비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의문문으로 바뀌었다.
내 손에 들려있던 어둠이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잠시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내 손을 지켜보던 강태백은 뭔가 눈치챘다는 듯, 눈을 크게 치켜떴다.
“…자네 설마. 인벤토리를 소유하고 있는 건가!”
“운이 좋았죠.”
그랬다.
강태백이 짐작한 대로, 나는 얼마 전에 입수한 인벤토리, 『왕실 연금술사 샬모넬의 휴대용 아공간』에 『흘러간 시간의 그림자』를 수납했다.
무작정 자신에게 닿은 모든 것의 시간을 역행하는 효과를 지닌 탓에, 『흘러간 시간의 그림자』를 처분할만한 방법은 이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허허…. 운이 좋다니. 국내에서 인벤토리를 소유한 헌터는 두 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일세. 뭐, 그동안 자네가 해온 짓으로 봐선.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
내 오른손을 바라본 강태백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 놀라지 않겠다는 듯, 살짝 해탈한 듯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우선 그건 자네가 맡아주고 있게. 그보다…. 보상이랍시고 등장한 물건이 그렇게 요상한 물건이니. 다음 ‘보상’은 어떨지 걱정이 앞서는군.”
“다, 다음 보상 말입니까? 저, 저는 일이 바빠서 이만…. 제 몫은 숙부님께서 잘 챙겨 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조금 전에 강하게 데여서 그런지.
강태백이 다른 보상을 언급한 순간, 황윤형의 낯빛이 백옥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식은땀을 흘려대며, 변명 아닌 변명을 토해낸 황윤형은 도망치듯 다른 곳으로 사라져버렸다.
“쯧쯧. 아무리 험한 꼴을 봤다고 해도. 명색이 공격대장이란 놈이 저리 겁이 많아서야…. 그럼, 다음 보상을 같이 확인해봐도 되겠나? 갑자기 흥미가 동해서 말일세.”
황급히 사라진 황윤형을 보고 짧게 혀를 찬 강태백은 시선을 돌려, 바닥에 놓여있는 보상 상자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겪었던 보상, 『흘러간 시간의 그림자』에 흥미를 느낀 모양인지.
바닥에 놓여있는 보상 상자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호기심과 흥미가 가득했다.
“안될 거 있겠습니까? 같이 확인해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