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2화
-크르릉
손잡이에 호랑이가 음각된 선택한 상자를 열어젖히자.
특수하게 처리된 경첩이 서로 맞물리며,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상당히 오래간만에 습득한 보상이기에, 나는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최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뻐끔 열린 상자 내부를 확인했다.
“…어?”
시커먼 어둠이 감도는 상자의 내부를 확인한 순간.
내 입에선 순간적으로 의문 부호와 함께, 얼빠진 탄성이 흘러나왔다.
“텅 비었다고?”
어린아이 한 명쯤은 너끈히 들어갈 만큼 큼지막한 상자의 내부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공허하면서도 서늘한 어둠이 시커먼 상자 속을 꽉꽉 메우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눈을 크게 치켜뜨고 내부를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나는 상자의 내부에서 그 무엇도 찾아낼 수 없었다.
…설마 이번에야말로 꽝인가?
텅 빈 내부를 확인한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전신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고생은 고생대로 해놓고 초라한 보상이, 아니 아예 설마했던 ‘꽝’이 등장하자.
허무한 탈력감이 기대로 가득 차 있었던 내 마음을 공허하게 메우기 시작했다.
-까득!
갑작스레 찾아온 쓰라린 상실감과 뼈아픈 자책감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하자.
이를 까득 깨문 나는 가까스로 위철용이 말해줬던 『야바위꾼의 악운』 특성의 룰에 대해 떠올렸다.
…그래. 위철용이 말하길,
그 ‘도박쟁이’ 성좌는 절대 이런 식으로 ‘재미없는’ 선택지는 넣어놓지 않는다고 그랬지.
얼핏보기엔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뭔가 숨겨져 있는 것이 분명해.
-파츠츠츠.
천천히 심호흡을 내쉬며 화안금정을 발동시켰다.
그러면서 난 화안금정의 권능이 깃들어 황금빛으로 물든 시야를 번뜩이며, 시커먼 어둠이 감도는 상자 속을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보상은 잘 선택하셨습니까. 산군님?”
황금빛으로 물든 두 눈을 무섭게 번뜩이며, 상자 속을 샅샅이 뒤지고 있으려니.
자신을 찾아온 부하 공격대원들을 지휘하던 황윤형이 어색한 웃음을 띤 채 내게 다가왔다.
상황을 먼저 수습하겠노라 선언하긴 했으나, 그 역시 뼛속까지 헌터였던 모양인지.
열린 보상 상자를 곁눈질하는 황윤형의 눈엔 호기심이 가득했다.
“엄청난 상대이기도 했고, 산군님의 그 흥미로운 특성 탓에 선택지까지 제공되었으니. 분명 범상치 않은 보상이…”
“그 보상이란 놈을 지금 찾는 중입니다.”
“…예?”
예상치 못한 답을 들어서일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보상에 관해 물어오던 황윤형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멍하게 변했다.
“그게. 보상 상자가 얼핏 보기엔 텅 비어있지 뭡니까.”
“아, 아니 보상 상자가 비어있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멍하니 풀렸던 황윤형의 눈에 불신의 빛이 깃들었다.
그래. 나도 그쪽만큼이나 보상이 이 꼴이 난 게 믿어지지 않거든?
하여튼 그 도박쟁인가 뭔가 하는 양반 고약한 취미하곤.
“상식적으로 보상 상자라는 놈이 텅 비어있진 않겠죠. 뭔가 비밀이 숨어있긴 있을 겁니다.”
“자, 잠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나는 불신 깃든 눈빛으로 무언의 항변을 보내는 황윤형의 모습에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직접 그에게 상자 속을 확인해 보라는 듯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
큼직한 상자를 가리고 있던 내가 옆으로 물러서 주자, 계속해서 상자를 곁눈질하던 그는 즉시 그것에 달려들어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정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군요.”
상자 속에 거의 몸을 들이밀다시피 하며 열정적으로 내부를 살펴보던 황윤형은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크게 상심했는지, 몸을 일으킨 그의 몸은 전보다 훨씬 왜소하게 보였다.
…아니. 잠깐만 명백히 몸 크기가 줄어들었는데?
황윤형이 몸을 완전히 일으키자, 강렬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거의 2 미터에 가까웠던 그의 거대한 근육질 체구는 어느새 거의 어린아이와 비슷한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황윤형의 근육질 몸을 간신히 가리어주던 찢어진 옷가지가 허물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다니,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갑작스러운 변화에 멍한 표정으로 황윤형을 바라보고 있자.
상자 내부의 상태에 관해 혼잣말로 종알거리던 황윤형이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점점 가늘고 얇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갑자기 변해버린 목소리에 화들짝 노란 황윤형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곤 경악에 가득 찬 비명을 내질렀다.
단단한 근육 덩어리였던 황윤형의 몸은 어느새 다섯 살 남짓한 어린아이와 비슷한 사이즈로 줄어들어 있었다.
“사, 산군님 이게 도대체 뭡니까!”
“그. 글쎄요.”
…나도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황윤형은 허옇게 질린 표정으로 어기적어기적 걸어와 나의 바지춤을 꼬옥 움켜잡았다.
그는 커다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 내게 대답을 촉구해왔지만….
애석하게도 나 역시, 황윤형의 몸에 일어난 일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이렇게 해괴한 일은 회귀 전 시절에서조차, 단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성질의 것이었으니까.
-푸스스스.
황윤형과 내가 패닉에 빠진 채, 멍하니 서로를 응시하고 있자.
황윤형이 몸을 반쯤 들이밀었던 문제의 보상 상자가 투명하게 변하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보상 상자가 사라진다는 것은 즉, 보상 수령이 완료되었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보상이 튀어나온 거지?
황윤형의 상태로 미뤄보건대, 저건 보상이 아니라 저주라고 봐도 무방한 정도인데?
“으아아앙!”
몸이 어려진 탓에 정신까지 어려진 것일까?
보상 상자가 사라지자, 내 바짓자락을 붙잡고 있던 황윤형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서럽게 울음을 토해내는 그의 모습은 진짜 그 나이대 어린아이와 비교해봐도 큰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지, 진정하세요. 그, 그래! 혹시 상자 속에서 무슨 시스템 메시지를 보기라도 하셨습니까?”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황윤형의 돌발행동에 나는 엉겁결에 그를 안아 들었다.
그리곤 황윤형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곤, 그의 기억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상자 속에서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으아아앙! 삼초오온!”
하지만 서럽게 울부짖는 황윤형의 입에서 튀어나온 소린 내 예상과 한참 어긋난 것이었다.
완전히 정신이 어려진 것인지, 빼액 악을 쓰며 울어대는 그는 자신의 삼촌을 찾아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갑자기 이게 무슨 꼴이야.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건가? 갑자기 웬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서 말일세…. 어?”
내 품속에서 마구 버둥거리며 울어 재끼는 황윤형을 달래주고 있으려니.
갑자기 찾아온 혼란 속에서 강태백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역시,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초현실적인 모습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한 모양인지.
황윤형을 안아 든 내 모습을 바라보자마자 강태백의 얼굴엔 넋을 잃은 표정이 떠올랐다.
“삼촌? 우아아앙! 삼초온!”
혼란 속에 더 큰 혼란이 더해졌다.
강태백을 발견한 순간, 내 품에 안겨있던 황윤형이 즉시 반응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괴력인지, 그는 덩치에 맞지 않은 힘을 발휘해서 자신의 몸을 단단히 붙잡은 내 손을 단숨에 풀어버렸다.
“삼초온!”
그렇게 자유를 되찾은 황윤형은 단숨에 바닥으로 뛰어내리더니, 그대로 도도도 달려가 강태백의 품속으로 폴짝 뛰어들었다.
-콰아앙!
발사된 대포알처럼 달려든 황윤형이 그대로 강태백에게 몸을 날리자.
그의 육탄 돌격에 적중당한 강태백의 가슴팍에서 굉음이 터졌다.
엉겁결에 황윤형을 안아든 강태백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크으윽! 도,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 아이는 도대체 누구고!”
강태백은 고통스러운 침음성을 삼키며, 괴성과 함께 자신의 가슴에 연신 눈물 젖은 볼을 부벼 대는 꼬맹이의 정체에 관해 물었다.
범상치 않은 일이 연속으로 터져서 그런지, 나를 바라보는 강태백이 눈빛엔 나에 대한 의심이 살짝 번뜩이고 있었다.
“…황윤형 헌터님입니다.”
“이 꼬맹이가 우리 윤형이라고?”
내 입에서 흘러나온 허탈한 대답에 강태백은 크게 눈을 홉떴다.
그리곤 그는 당황과 황당이 감정으로 뻣뻣하게 얼어버린 몸짓으로 고개를 아래쪽으로 향했다.
“화, 확실히 어렸을 때 모습이 조금 남아있긴 하네만. 도대체 윤형이에게 무슨 일이….”
“와아아앙! 삼초온.”
“그, 그래 그래. 착하지? 윤형아 삼촌 여기 있다.”
강태백의 품에 안긴 황윤형이 계속해서 괴성에 가까운 비명을 질러대자.
강태백은 황윤형의 등을 토닥거리며, 의문의 회춘을 당한 자신의 조카를 달래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혼란의 감정이 가득한 강태백의 눈빛이 내쪽을 바라보자.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게 말입니다. 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