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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191화 (191/309)

제191화

나를 바라보는 강태백의 눈빛은 속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입에서 희뿌옇게 퍼져 나온 담배 연기처럼, 그의 목소리에선 뭐라 판별하기 어려운 모호한 감정이 느껴졌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보셨던 대로 전 지금껏 길드장님과 황윤형 씨와 함께 놈과 맞서 싸웠고. 그 와중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 그것을 토대로 놈을 쓰러뜨린 것 뿐 입니다.”

하지만 강태백에게 곧이곧대로 내 밑천을 미주알고주알 다 까발릴 수는 없었다.

헌터들이 보유한 특성 중엔 ‘깨달음’을 계기로 숨겨진 능력이 개방되는 예도 있었기에, 나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강태백에게 절반만의 진실을 털어놓았다.

뭐, 엄밀히 말하면 라크슈마와의 전투 중에 특성이 새롭게 진화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깨달음을 통한 각성이라…. 하긴. 놈이 자네를 보고 주구장창 ‘그릇’이니 뭐니 떠들어댔으니. 자네가 어디선가 습득한 특성에 뭔가 사연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황윤형에게서 담배를 한 대 더 받아든 강태백은 한숨을 쉬듯 고개를 푹 떨구며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아래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떨군 그의 모습은 어째선지 10년은 더 늙어버린 모습이었다.

마치 한숨을 쉬는 것처럼, 복잡한 감정이 느껴지는 목소리에선 기이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헌데 ‘그릇’이란 도대체 무언가? 자네의 무력은 규격 외인 것 같…. 아닐세. 내가 굳이 여기서 자네의 속사정을 더 캐내어 봐야. 지금 그게 무엇이 중요하겠나.”

내게 막 ‘그릇’에 대한 질문을 던지려던 강태백은 갑자기 피식 웃더니, 말끝을 흐렸다.

곧이어 고개를 든 그는 진중한 표정으로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곤 나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중요한 건. 규격 외의 무력을 지닌 자네의 목적이겠지. 다른 건 더 묻지 않을 테니. 부디 솔직히 말해주게. 자네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순간, 나를 똑바로 노려보는 강태백의 몸에서 시퍼런 외골격이 돋아났다.

눈에선 시퍼렇게 타오르는 한쌍의 귀화가 도깨비불처럼 귀기를 내뿜었다.

바닥에 떨궈졌던 그의 무기 『번뇌』가 시퍼런 화염을 품고 둥실 떠올랐다.

내가 대답한 내용에 따라, 즉시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그의 전신에서 활활 타올랐다.

“…숙부님.”

강태백의 변해버린 모습에 이를 까득 깨문 황윤형은 우그러진 무기를 내게 겨누었다.

그의 몸에서 두 마리 용을 품은 푸르스름한 외골격이 희미하게 돋아났다.

상당히 마력을 많이 소모한 탓인지, 그의 몸 위에 구현된 외골격은 당장이라도 꺼질 듯 희미했지만.

강태백을 따라, 똑바로 나를 노려보는 황윤형의 눈빛엔 강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부디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쇼. 설용호 산군님. 저는 당신과 적대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이 양반들이 도대체 날 뭘로 보는 거야.

강한 힘과 권능을 좀 선보였기로서니, 뭔 괴물 보듯이 적대하려는 건. 좀 실례 아냐?

내 입에서 ‘핫하 내 진정한 목적은 너희 인간 놈들을 노예로 부리는 것이었다!’ 쯤 되는 발언이 튀어나오는 것을 걱정한 모양인지, 아니면 기대한 모양인지.

굳건한 의지를 품은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강태백과 황윤형의 표정은 비장하기만 했다.

그들의 반응에 쓰게 웃은 나는 양 손바닥을 들어, 적대할 의사가 없음을 내비쳤다.

“워워. 진정한 목적이라니….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뭐. 이 바닥에 뛰어든 햇병아리 헌터들이 다 그렇듯, 치기 어린 시절엔 ‘세계 평화’라고 답했을지도 모르겠군요.”

“….”

“왜 그러십니까. 제가 비록 헌터로 각성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착실히 성장해 왔다구요.”

내 대답과 마주한 강태백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한쪽만 역팔자로 휘었다.

괴이한 소리를 다 들었다는 표정이 그와 황윤형의 얼굴에 스르륵 떠올랐다.

“뭐. 농담은 이쯤하고…. 길드장님의 입장은 저도 이해합니다. 실은 저 역시 갑자기 이렇게 강력한 힘을 얻게 되어 얼떨떨한 참이니까요. 갑자기 이렇게 잘생긴 데다. 강력하기까지 한 놈이 튀어나왔는데.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 그것대로 이상한 법이죠.”

“아니. 나는 자네의 외모에 관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만. 제 영혼에 각인된 특성 트리와 저를 후원해주시는 성좌님들께 맹세코. 길드장님께서 걱정하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내 입에서 헌터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맹세가 언급되자.

살짝 얼이 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강태백과 황윤형의 표정이 동시에 딱딱하게 굳었다.

“자네…. 지금 특성 트리와 성좌님들께 대한 맹세를 선언한 것인가?”

“그럼요. 거리낄 게 없으니까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괜히 이상한 생각 하면서 불안해하실 것 아닙니까.”

“하, 하지만 산군님. 성좌님들께 대한 맹세는….”

“당연히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맹세를 어길 경우엔 특성 트리를 잃고 평범한 사람이 됨과 동시에 성좌님들의 진노를 받겠죠.”

황윤형과 강태백이 당황 섞인 반응을 보일 만큼, 내가 언급했던 맹세는 굉장히 강력한 것이었다.

헌터의 정체성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을 걸었으니만큼, 회귀 전 온갖 불신과 부정이 판치던 시절에서도 특성 트리와 성좌를 건 맹세는 다들 신뢰할 수 있다고 믿을 정도였다.

애초에 어지간히 정신 나간 놈이거나,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놈이 아니고서야 그런 맹세를 일반적으로 잘 언급하지 않기도 했고 말이지.

“안심이 좀 되셨으면…. 전리품 분배에 대해 이야기 해 볼까요?”

강태백과 황윤형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나는 히죽 웃으며, 눈앞에 떨궈진 상자를 바라보았다.

*****

결론적으로 말해서, 강태백과 황윤형은 전리품을 선택할 권리를 오롯이 내게 맡겼다.

먼젓번에 자조적으로 말했던 것과는 달리, 잇속에 밝은 그들답게 합당한 몫의 분배를 내놓으라 첨언하긴 했으나, 어찌 되었건 일차적으로 보상을 고를 권리는 내게 돌아왔다.

“…맘대로 하라니. 다 같이 고르는 재미가 있어야 제맛인데 말이지.”

툴툴거리는 혼잣말을 내뱉은 나는 저 멀리 사라진 강태백과 황윤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게이트가 붕괴되며 왜곡된 현실이 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하자, 그들은 뒷일을 수습해야 한다며 서둘러 자리를 뜬 상태였다.

“아무래 그래도 그렇지. 양심이 있지. 이번에도 좋은 보상이 들어있겠지?”

오랜만에 찾아온 선택의 기회에 거대한 기대감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왔다.

잠시 상념을 털어낸 나는 여섯 개의 상자를 바라보며, 들뜬 표정으로 손바닥을 슥슥 비볐다.

“선택의 기회를 오롯이 내게 맡겼으니! 뭘 골라도 뒷말은 나오기 없기!”

마치 강태백이 들으라는 듯, 말투는 경박했지만.

이번엔 여섯 개의 선택지가 제시된 만큼,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히 상자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나 혼자서 토벌한 것이 아닌, ‘공격대’가 토벌한 것으로 간주된 모양인지.

눈앞에 나타난 여섯 개의 상자는 손잡이에 새겨진 문양만 다를뿐, 전부 동일한 생김새를 자랑하고 있었다.

-철컥

한참을 고민하던 내가 손을 가져간 것은 바로!

여섯 개의 상자들 중 손잡이에 포효하는 호랑이의 문양이 새겨진 상자와 승천하는 용이 새겨진 상자였다.

상자의 손잡이 부위엔 십이지를 형상화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기에, 나는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잡아끄는 호랑이와 용의 문양의 새겨진 상자를 선택했다.

…아무래도 소나 쥐보단 호랑이나 용이 멋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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