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화
강태백과 마슈크라가 거칠게 자웅을 겨루는 사이.
나는 그들에게서 약간 떨어진 풀숲에서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고 있었다.
“크으윽!”
몸을 움직이려 들 때마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왔다.
부풀어 오른 근육에서 검붉은 힘줄이 억센 나무뿌리처럼 우두둑 돋아났다.
턱이 으스러져라. 힘껏 깨문 입가에서 내장조각이 섞인 찝찔한 핏물이 울컥 흘러나왔다.
아무리 용을 써도, 내 몸은 꽁꽁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군주는 곧 뒈져도 군주라는 건가?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원인은 바로, 조금 전 마슈크라가 내게 불어넣은 마력 때문이었다.
나를 벌레처럼 털어 낸 순간, 그녀는 자신의 검붉은 마력을 슬쩍 내 가슴팍에 밀어 넣었다.
가슴 언저리에서부터 마슈크라가 주입한 기운이 혈관을 타고 완전히 내 몸을 장악해버린 탓에, 나는 지금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상태였다.
어떻게든 마슈크라의 기운이 주입된 부분을 도려내야 답이 나올 것 같은데….
“흐으으윽! 수, 숙부님!”
이맛살을 찌푸리며, 마슈크라의 기운에 잠식당한 가슴팍을 노려보려던 찰나.
갑자기 옆에서 고통과 원한에 잠식된 신음이 들려왔다.
안간힘을 짜내어. 뻣뻣하게 굳어버린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려서 옆쪽을 바라보니.
나와 똑같은 몰골을 한 황윤형이 악에 받친 목소리로 절규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황윤형 역시, 마슈크라의 마력에 전신이 장악당한 모양이로군.
“흐으어억! 수, 숙부님! 우, 움직여라! 움직여!”
황윤형의 이글거리는 시선은 위기에 처한 강태백의 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찌나 분했는지, 눈가에 힘줄이 돋아난 그의 두 눈엔 당장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새빨간 핏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황윤형은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기 위해, 용을 써댔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몸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까득!
다급해진 황윤형은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입술을 우득 깨물었다.
한줄기 핏물이 그의 입가에서 흘러내리자, 그것을 신호로 시퍼런 외골격이 그의 몸 위에서 돋아나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직!
황윤형의 몸속을 침식한 마슈크라의 마력 탓인지, 그의 몸 위에 덧씌워진 외골격은 굉장히 불안한 형체를 띄고 있었다.
외골격을 휘감은 두 마리의 용은 간신히 형체만을 유지한 채였고, 아예 외골격 자체가 전체적으로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끄으으윽!”
하지만 황윤형은 외골격의 상태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다시 한번 고통스러운 얼굴로 거친 숨을 내쉰 그는 안간힘을 쓰며, 외골격에 돋아난 팔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조금씩 조금씩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
외골격을 저런 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황윤형이 보여준 외골격의 독특한 활용법에, 순간적으로 뒤통수를 망치로 거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엄습해왔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그렇게 찾아온 거대한 충격은 곧이어 깨달음의 형태가 되어, 내 머릿속을 환하게 비췄다.
상식이 무너졌다. 편견이 깨졌다. 굳건했던 상식과 편견이 산산이 부서지자.
그것들에게 억제되었던 사고가 크게 날갯짓하며, 새로운 영역으로 도약했다.
그래…. 위철용을 외골격에 빙의시켜 또 다른 신체 부위처럼 활용했던 것처럼.
내 의지를 불어넣어 외골격을 움직이는 것 역시,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어째서 나는 이렇게 쉬운 것을 그동안 미처 몰랐을까!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내 두 눈에서 황금빛 안광이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시야가 순간적으로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마슈크라의 마력에 억눌려있던 내력이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거칠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꾸드드득!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내력의 와류가 피부를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가자.
검붉은 힘줄이 흉측하게 돋아난 몸이 금빛 찬란한 외골격에 뒤덮였다.
-끼기기기긱!
의지를 집중하여, 내력을 움직이자.
몸을 뒤덮은 외골격이 내 의지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속이 갈리는 듯한 거친 소음과 함께, 풀 속에 처박혀 있던 내 몸이 조금씩 조금씩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흡!”
외골격의 힘으로 완전히 몸을 일으킨 뒤.
나는 손을 뒤덮은 외골격에 조작해, 마슈크라가 자신의 마력을 불어넣었던 가슴 언저리를 단숨에 찔렀다.
-꽈직!
외골격에 휩싸인 손이 근육을 찢고 살점 속으로 파고 들어가자.
머릿속을 허옇게 물들이는 듯한 고통이 찾아옴과 동시에. 그동안 내 몸을 옥죄던 이질적인 기운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후우우….”
내력을 이용해, 온몸에 퍼졌던 마슈크라의 기운을 몰아내자, 뻣뻣하게 굳었던 몸이 자유를 되찾았다.
동시에 어둠달의 검은 심장이 거칠게 맥동하며, 내 몸에서 풀려나온 검붉은 마력을 게걸스럽게 흡수하여 내 몸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서, 설용호 사, 산군?”
그렇게 마슈크라의 속박에서 풀려나, 굳었던 몸을 풀며 목을 우두둑 꺾고 있으려니.
옆에서 내게 새로운 영감을 제공해줬던 황윤형이 경악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몸이 마비된 탓에 제대로 된 말은 하지 못했지만, 그의 눈빛엔 어떻게 마슈크라의 속박을 풀어냈냐는 의문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조금 따끔할 겁니다.”
경악한 황윤형에게 다가간 나는, 단숨에 어둠달의 창날을 그의 가슴팍에 박아 넣었다.
어둠달이 황윤형의 희미한 외골격을 찢고 살점에 틀어박히자, 검은 심장이 거세게 맥동하며 마슈크라의 검붉은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움직여…? 후우. 감사합니다. 설용호 산군님. 산군님께선 참 다재다능한 재주를 지니셨군요.”
검은 심장이 황윤형의 몸에서 마슈크라의 마력을 전부 빨아들이자.
검붉은 마력에 속박되었던 그의 몸이 자유를 되찾았다.
자신의 몸이 움직이는 것을 본 황윤형은 경외에 찬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곤 그는 고개를 들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마슈크라와 강태백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백 번 감사드려도 모자랄 은혜를 입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나중에 따로 보답하겠습니다!”
상처 입은 맹수처럼 거칠게 으르렁거리는 황윤형의 목소리엔 진득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핏물이 찰랑거리는 눈으로 격전의 현장을 바라본 그는 즉시 땅을 박찼다.
-크아아앙!
두 마리의 용이 사납게 포효하는 소리와 함께, 황윤형의 몸에 선명한 외골격이 돋아났다.
외골격을 두른 그의 몸이 폭풍에 휘감기기 시작했다. 시퍼런 전하가 폭풍 속에서 번쩍였다.
그렇게 격노한 폭풍을 두른 황윤형은 단숨에 강태백과 마슈크라의 사이에 뚝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앙!
“…윤형이?”
『흐응? 유혹에 이어 속박까지 풀어냈어? 역시, 제법 재주가 괜찮은 아이들이야.』
절묘한 순간에 난입한 황윤형은 강태백의 머리를 노린 마슈크라의 공격을 대신 막아냈다.
거칠게 휘몰아치는 번개와 물의 장벽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자. 마슈크라의 연분홍빛 눈에 순간적으로 이채가 스쳤다.
“오만한 소리는 거기까지다. 이 간악한 마녀야! 쌍룡출두!”
-콰우우우!
으드득 이를 간 황윤형은 눈에서 시퍼런 전하를 쏟아내었다.
그의 외골격이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거칠게 요동치며, 엄청난 양의 마력을 토해냈다.
곧이어 주인의 격노에 감응한 두 마리 용이 흉포하게 포효하며, 마슈크라를 덮쳤다.
『필멸자들의 잔재주란. 언제봐도 보는 재미가 있다니까.』
자신의 숨통을 노리며 날아든 두 마리 용의 위용에, 마슈크라는 재밌다는 듯 쿡쿡 웃었다.
그렇게 여유로운 웃음을 흘려낸 그녀는 강태백이 그랬듯, 검붉은 기운을 방패처럼 변형시켜 황윤형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내었다.
『조금 전 귀엽게 재잘거린 필멸자의 잔재주를 따라 해봤는데. 어때? 비슷해 보여?』
“크으윽. 이, 이 사악한 마녀! 숙부님을 모욕하다니!”
강태백의 절기가 마슈크라에게 ‘잔재주’라고 폄하 당하자.
크나큰 모욕을 들었다는 듯, 황윤형의 얼굴이 더욱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의 외골격을 휘감은 마력이 더욱 강렬해졌다.
“물어뜯어라! 뇌룡! 할퀴어라! 수룡!”
격노한 황윤형의 입에서 귀기 어린 포효가 터져 나오자.
그의 외골격에 부착된 두 마리 용이 맹렬하게 울부짖으며 덩치를 불리기 시작했다.
전하를 머금은 번개의 용이 울부짖으며 포효했다. 맹렬하게 소용돌이치는 물의 용이 구슬프게 흐느꼈다.
“쌍룡광림!”
-쿠르르르릉!
울부짖고 흐느끼던 두 마리 용이 마슈크라의 숨통을 노리며, 황윤형의 외골격으로부터 폭사 되었다.
『귀여운 뱀이네. 애완용으로 삼기 딱 좋겠어.』
하지만 마슈크라의 반응은 이번에도 여유롭기만 했다.
그녀의 자신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마슈크라를 노리고 날아들었던 두 마리 용은 검붉게 번들거리는 방패를 뚫지 못한 채로 허무하게 스러져버렸다.
“크으윽!”
자신의 기술이 허무하게 막힌 것을 본 황윤형의 입가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무리를 한 탓인지, 그의 안색이 급격하게 창백해졌다.
『안색이 좋지 않네? 다시 자고 있으렴.』
생긋 웃은 마슈크라는 검붉은 기운을 송곳 형태로 변형시켜, 황윤형의 머리를 노렸다.
불길하게 요동치는 검붉은 마력이 황윤형의 머리를 수박 쪼개듯 박살내려는 그 순간!
-쩌어어엉!
나는 어둠달을 휘두르며, 황윤형의 바로 앞에 뚝 떨어져 내렸다.
어둠과 불꽃이 이글거리는 창날이 검붉은 기운을 단숨에 쪼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