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화
저벅저벅 걸어오는 강태백의 등 뒤로 시퍼런 화염이 후광처럼 흩날렸다.
등 뒤에 떠오른 백팔 개의 구슬, 『번뇌』가 푸른 불꽃에 휘감긴 채, 맹렬하게 회전하며 강태백의 마력을 증폭시켰다.
『매개체의 회전을 이용한 마력증폭이라니, 진부하면서도 원시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필멸자 치곤 제법이야.』
위협적인 살기를 흩뿌리며 다가오는 강태백의 모습에 제법 흥미를 느낀 모양인지, 미슈크라의 얼굴에 깃든 미소가 더욱 짙어지며, 퇴폐적인 기운을 머금었다.
동시에 그녀의 몸에 깃든 검붉은 기운이 심상치 않은 살기를 품고 격렬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보기엔 그럴 듯 해 보이지만. 과연, 깜찍하게 떠든 것만큼 나를 즐겁게 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히죽 눈웃음을 지은 마슈크라의 연분홍빛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검붉게 물들었다.
그녀가 우아하게 손을 휘젓자. 그녀의 등 뒤에서 넘실거리던 검붉은 기운 속에서 수없이 많은 칼날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럼. 놀이를 시작해 볼까?!』
고혹적인 미소를 흩뿌린 마슈크라는 양 손을 교차하듯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검붉은 기운에 휘감긴 칼날들이 맹렬하게 소용돌이치며, 강태백을 향해 폭사되었다.
-카가가가각!
흉측하게 번들거리는 검붉은 칼날은 궤도상의 모든 것들을 거침없이 썽둥 잘라내며 날아갔다.
단단한 암석이 네모 반듯하게 썰리며 후두둑 떨어졌다. 억센 나무둥치가 우지직 소리를 내며 반으로 끊어졌다. 바람이 갈라지며 소름끼치는 비명을 토해냈다.
그렇게 날아든 검붉은 칼날이 막 강태백의 몸을 절단하려는 그 순간!
-치지지직!
강태백의 등 뒤에서 회전하던 구슬들이 방패의 형태가 되어, 검붉은 칼날을 막아냈다.
아니, 단순히 막아낸 정도가 아니라. 시퍼런 화염이 이글거리는 불꽃의 방패는 순식간에 검붉은 칼날은 흔적도 없이 증발시켜버렸다.
“잘난 듯 떠들어댄 것 치곤 시원찮은 공격이로고. 뭐, 말많은 것들이란 다 그런 법이지….”
마슈크라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낸 강태백은 여유로운 목소리로, 비웃듯 자신의 입매를 사납게 비틀었다.
그가 지닌 무기 『번뇌』의 권능으로 전성기의 무력을 회복한 강태백은 먼젓번, 이중환과 상대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화르르륵!
방패 형태로 변형된 구슬에서 시퍼런 불꽃이 더욱 맹렬하게 타올랐다.
강태백의 눈에서 이글거리는 푸르스름한 안광이 한층 더 강렬해졌다.
그의 몸에 둘러진 외골격이 어마어마한 마력을 토해내며, 격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놀이라고? 그래! 어디 한번 즐겁게 놀아보자고!”
-투콰아앙!
짓씹듯 고함을 토해낸 강태백은 즉시, 땅을 박차며 마슈크라를 향해 몸을 날렸다.
시퍼런 마력이 이글거리는 그의 몸이 마치 쏘아진 탄환처럼, 엄청난 속도로 마슈크라를 향해 쇄도해갔다.
『고작 인사치레를 막아낸 것 정도로 우쭐해 하긴.』
마슈크라는 여전히 고혹적인 목소리로 여유를 뽐내며 강태백 쪽으로 손을 휘둘렀다.
그녀의 손짓에 따라, 검붉은 기운이 광폭하게 넘실거리며 강태백을 향해 폭사되었다.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은 하늘을 찢어발기리니! 화광충천!”
검붉은 기운이 강태백의 몸을 막 덮치려는 순간!
강태백의 입에서 천둥같은 사자후가 터져나왔다.
-화르륵!
곧이어 강태백의 몸에서 시퍼런 불기둥이 폭발하듯 터져나와, 그를 향해 짓쳐든 검붉은 기운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하늘을 찢어버릴 기세로 맹렬하게 일어난 불기둥은 삽시간에 주변을 시퍼렇게 물들며, 그를 거슬리게 만드는 모든 것을 불살라 버렸다.
『…크읏!』
주변을 잠식해나가는 화염의 향연에 마슈크라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재빨리 양손을 휘저어, 자신에게 짓쳐든 불길을 제압했지만.
그 잠깐 사이, 마슈크라는 강태백의 움직임을 놓치는 실수를 범해버렸다.
『…!』
한순간의 실수에 대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마슈크라의 품 안에 파고든 강태백은 화염이 이글거리는 주먹으로 마슈크라의 머리통을 힘껏 후려갈겼다.
-빠가아악!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마슈크라의 머리가 크게 젖혀지며 시커먼 핏물이 허공을 수놓았다.
머리를 어찔하게 만드는 공격에 마슈크라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지만, 애석하게도 강태백의 공격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뻐억! 뻐억! 뻐어억!
강태백의 주먹이 마슈크라의 몸을 쉴새없이 난타했다.
시퍼런 화염이 이글거리는 주먹이 마슈크라의 몸에 닿을 때마다, 살이 타들어가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강태백의 눈에서 광기가 더욱 진해졌다.
-투콰앙!
계속 얻어맞던 마슈크라의 몸이 미끄러지듯 뒤로 쭉 빠졌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녀는 타들어간 상처를 재생시키며, 자신에게 쇄도해오는 강태백을 향해 다시 한번 크게 손짓했다.
-쿠르르릉!
마슈크라의 등 뒤에서 솟구친 검붉은 기운이 강태백을 가로막았다.
검게 번들거리는 불길한 기운은 이번엔 거대한 손의 형태로 변이되어, 강태백의 공격을 막아 내었다.
『아파라. 제법 매콤한 주먹이야.』
고운 얼굴을 살짝 찡그린 마슈크라는 강태백을 향해, 애교부리듯 새빨간 혀를 살짝 내밀었다.
그리곤 마치 한 마리 파리를 쫓듯, 강태백에게 검붉은 기운으로 이뤄진 손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검붉은 손이 허공을 움켜 쥘 때마다. 폭발이 일어났다. 폭음이 터졌다.
암울한 기운이 격렬하게 들끓으며, 시커먼 불꽃이 튀어오르는 불길한 폭발을 일으켰다.
강태백은 백팔 개의 구슬을 방패처럼 회전시켜, 시커먼 불꽃을 막아냈다.
“…크윽! 사악한 짓거리를!”
구슬을 회전시켜, 시커먼 불꽃을 막아내던 강태백은 갑작스레 침음성을 흘리며 뒤쪽으로 크게 물러났다.
경악하듯 순간적으로 눈을 크게 뜬 그는 시커멓게 물들어버린 구슬들을 다른 구슬들로부터 즉시 떨어뜨렸다.
『어머나. 무식한 줄 알았더니, 감도 좋은가봐?』
강태백의 결단을 지켜본 마슈크라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요망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마족답게 재생력이 보통이 아닌지, 시커멓게 불타버렸던 그녀의 몸은 어느새 멀끔하게 재생된 상태였다.
“잠식이라니…. 사악한 수를 쓰는구나!”
으득 이를 깨문 강태백은 마슈크라를 향해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연타가 터졌다. 북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슈크라의 얼굴이 또다시 젖혀졌다.
『무식하게 놀지 말고. 재밌게 놀자구.』
다시 돌아온 마슈크라의 얼굴엔 여전히 요사스러운 미소가 가득했다.
조금 전과는 달리, 아무런 타격이 없어보이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강태백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업화륜!”
강태백의 입에서 짓씹는 듯한 외침이 흘러나오자.
방패의 형태로 회전하던 구슬에서 불길이 더욱 강렬해졌다.
시퍼런 불길을 토해내는 구슬을 휘두르며, 강태백은 몸을 단단히 지탱하고서 상체를 낮추었다.
-콰아앙!
“…!”
단숨에 머리를 쪼갤 생각으로 휘두른 것인데도 마슈크라의 머리는 전혀 부숴지지 않았다.
너무나도 멀쩡한 마슈크라의 모습에 강태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어라? 설마 이게 전부는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