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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182화 (182/309)

제182화

『인질이라기보단, 내게 매료된 노예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미슈크라는 고혹적인 교태가 서려있는 끈적한 눈빛으로 황윤형을 바라보았다.

생긋 웃음 지은 그녀의 미소 속엔 잔뜩 날이 서 있는 섬뜩한 살기가 어룽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단숨에 자르고 토막낼 것 같은 거대한 위압감이 미슈크라의 작은 몸에서 연기처럼 흘러나와, 주변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닥쳐라! 노예든 인질이든 중요치 않다! 어서 그들을 풀어줘! 이 사악한 마녀야!”

『풀어주라고…? 흐응. 그래. 그럴게. 아끼는 장난감들이었는데. 아깝네.』

황윤형을 바라보며 생긋웃던 미슈크라는 아쉽다는 듯 장난스레 얼굴을 찌푸리더니,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퍼서서석!

가녀린 두 손가락이 허공에서 맞부딪힌 순간.

미슈크라의 주변을 둘러 싼 채로 경배하듯 머리를 조아리던 공격대원들의 몸에서 끔찍한 파육음이 들렸다.

-주르륵!

움찔거리는 공격대원들의 눈, 코, 입에서 검붉은 피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비현실적으로 피를 뿜어낸 그들의 육신은 이내, 허무하게 무너져내렸다.

…출혈의 양으로 볼떄. 여지없이 즉사였다.

『어때? 네 말대로 풀어줬지? 내 암시를 자력으로 푼 것에 대한 상이야.』

단숨에 공격대원들의 목숨을 빼앗은 미슈크라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그녀의 등 뒤에서 검붉은 마력이 망토처럼 펄럭였다.

세상을 온통 죽음으로 물들일 듯한, 지독하게 어둡고 암울한 기운이었다.

-또각. 또각.

마슈크라는 마치 시상식 레드카펫 위의 여배우처럼, 바닥을 물들인 검붉은 핏물을 우아하게 밟으며 이쪽으로 사뿐사뿐 고혹적인 몸놀림으로 걸어왔다.

“이, 이게 무슨….”

동료들의 목숨이 허무하게 사라진 것을 목도한 황윤형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말조차 제대로 있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슈크라를 바라보는 나 역시, 다른 의미로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망할.”

미슈크라의 육신은 여지껏 보아왔던 마족들 중 가장 작고 가녀리게 생겼지만.

그 육신 아래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마력은 지금껏 상대한 마족들의 마력을 전부 합친 것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그녀의 몸에서 꿈틀거리는 마력을 목도한 순간, 미슈크라의 정체를 짐작한 나는 욕설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군주라니.

미슈크라는 마족들의 정점에서 불길하게 타오르는 일곱 개의 불길 중 하나. 『군주』였다.

회귀 전, 지상에 강림한 『군주』들이 보여줬던 위험성을 떠올리자. 순간적으로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기분이 들었다.

“괜찮은가? 자네의 반응으로 보아하니.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상대를 만난 것 같군.”

내가 순간적으로 엄습해온 공포에 잔뜩 얼어붙어있자.

황윤형을 지원하러 가려던 강태백은 발걸음을 돌려, 내게 다가왔다.

잠시 내 표정을 살핀 강태백은 내 어깨에 손을 얹어, 격려하듯 온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지금껏 만나 상대들 중 가장 강합니다.”

“그래, 자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내 경고에 심각한 표정으로 미슈크라를 쏘아본 강태백은 갑자기 입고있던 와이셔츠를 주섬주섬 벗더니, 내게 묘한 부탁을 해왔다.

“오랜만에 꺼내는지라, 예열이 필요할 것 같군. 어떻게든 시간을 좀 끌어주지 않겠나?”

“예열이라니. 그게 무슨….”

-콰앙!

강태백의 묘하디 묘한 부탁에 의문을 표할 사이도 없었다.

잠시 눈을 뗀 사이, 황윤형과 미슈크라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이, 이 악독한 마녀놈!”

기수식을 취한 황윤형은 주먹을 틀어쥐며, 왼발을 앞으로 쭉 뻗었다.

억센 힘줄이 돋은 그의 오른발이 바닥을 딛자, 단단한 돌바닥이 우지직 갈라졌다.

동시에 두 마리의 용을 휘감은 푸른빛 외골격이 황윤형의 몸에서 포효하듯 돋아났다.

“이, 이번엔 그리 쉽게 당하진 않을거다! 이 마녀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퍼진 순간. 황윤형의 모습이 사라졌다.

평범한 헌터라면 눈으로 쫒는 것이 불가능할만큼 재빠른 몸놀림이었지만….

“크, 크윽!”

황윤형이 헌터 중에서도 손에 꼽힐만큼 강자라면, 미슈크라는 마족 중에서도 정점에 선 군주급 마족이었다.

푸른빛 마력이 이글거리는 주먹은 미슈크라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막혀 간단히 무력화 되어버렸다.

『그래? 이번엔 좀 재밌게 놀 수 있으려나?』

미슈크라는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베시시 웃었다.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행동은 절대 천진난만한 것이 아니었다.

-우두둑!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가느다란 손가락이 황윤형의 주먹으로 파고들어갔다.

잘 익은 감자 속에 파고드는 쇠젓가락처럼, 그녀의 손가락은 너무도 쉽게 외골격을 꿰뚫었다.

가느다른 손가락이 순식간에 주먹 뼈를 쪼개고 근육을 으깨며 살점 속에 푹 파고들었다.

“끄으으윽!”

고통스럽게 신임을 삼키는 황윤형의 얼굴에 시커먼 핏줄이 돋았다.

미슈크라의 압도적인 살기에 몸이 얼어붙은 모양인지, 그는 주먹을 내지른 포즈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으음. 마법소녀는 식상하고…. 이번엔 뭘로 만들어줄까? 아하! 뀌익뀌익 시끄럽게 구니까. 그에 어울리게 돼지로….』

음험하게 웃는 미슈크라의 눈에서 요사스러운 빛이 새어나오자.

추이를 지켜보던 나는 즉시, 황윤형을 돕기 위해 둘 사이에 난입했다.

어둠달의 창날에 내력을 주입하며, 나는 재빠르게 미슈크라의 빈틈을 노렸다.

-피슛!

시커먼 기운에 휘감긴 창날이 구불구불 휘어지며, 화살처럼 미슈크라의 사각을 파고 들었다.

완벽하게 펼쳐진 독룡아가 시커먼 이빨을 미슈크라의 목덜미에 포악하게 들이밀었다.

-카가가각!

『어머나. 자기 차례도 아닌데, 벌써 끼어들다니…. 보기보다 성질이 급한 친구로구나?』

여유롭게 웃은 미슈크라는 손가락 하나로 어둠달의 창날을 가볍게 막아내었다.

여전히 황윤형을 응시한채, 고개조차 내쪽으로 돌리지 않고 지나가듯 말했지만.

그녀의 목소리에선 감히 항거조차 하지 못할 나른한 위압감과 숨이 턱턱 막힐듯한 살기가 강렬하게 느껴졌다.

“치잇!”

침음성을 내지른 나는 즉시 어둠달의 창날을 도로 회수하려 했지만.

미슈크라의 손가락에 가로막힌 창날은 못 박힌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쿠르르륵!

까드득 이를 깨문 나는 어둠달의 검은 심장에 내력을 주입했다.

내 의지에 감응한 어둠달이 격렬하게 맥동하며, 미슈크라의 손가락에서 마력을 게걸스레 흡수하기 시작했다.

『흐응? 필멸자 주제에 제법 재밌는 장난감을 들고 있네?』

검은 심장이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하자.

황윤형을 계속해서 음험하게 응시하던 미슈크라는 비로소 고개를 돌려, 내쪽을 바라보았다.

보석을 빚어만든 듯, 매혹적인 생김새의 연분홍빛 눈동자가 내쪽으로 향한 순간.

미슈크라의 두 눈에 순간적으로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어머나…. 누군가 했더니. 네가 그 영감쟁이들이 떠들던 ‘그릇’이로구나? 과연. 내 취향은 아니지만. 꽤 귀엽게 생기긴 했네.』

-쿠웅.

내게 흥미를 보인 미슈크라는 황윤형에게 관심을 접고, 완전히 내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가 몸을 돌림과 동시에 뻣뻣하게 굳었던 황윤형의 거구가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한걸음씩 한걸음씩 내쪽으로 사뿐사뿐 걸어오는 미슈크라의 등 뒤로 하늘하늘한 옷자락이 마치 나비의 날갯짓처럼 우아하게 펄럭였다.

-끼긱! 끼기긱!

…빌어먹을. 뭔 수를 쓴 건지 단단히도 붙잡혔군.

여전히 어둠달은 접착제로 붙여지기라도 한 듯, 미슈크라의 손가락 끝에 쩍 달라붙어있었다.

내가 어둠달을 빼내기 위해 애쓰는 사이, 입가에 호기심어린 미소를 띈 미슈크라는 연분홍빛 눈동자를 매혹적으로 반짝이며,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몸매가 좀 빈약한게 흠이긴 한데…. 머리만 잘라다가 보관하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오우거의 몸을 이식해서 애완동물로 삼아볼까.』

품평하듯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다가온 미슈크라의 눈이 요염하게 번뜩였다.

그녀의 몸에서 엄청난 마력이 흘러나와 내 주변을 휘감기 시작했다.

간질간질거리는 마력과 생긋 웃는 그녀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오려는 그 순간!

“글쎼? 이 몸의 사료값을 그쪽이 감당할 수 있을걸? 내 주식은 마족의 뼈와 살점이다!”

-번쩍!

사납게 이를 드러낸 나는 고함과 함께 미슈크라의 코앞에서 암룡출동을 발동시켰다.

시커멓게 물든 외골격이 와지직 부서지며, 날카로운 파편과 내력의 폭풍이 미슈크라의 몸을 강타했다.

좋아. 이 틈에 어둠달을 빼내면….

-까드득!

…뭐?

손아귀에 힘을 주어, 어둠달을 빼내려고 했지만. 여전히 어둠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깜찍하긴. 보기보다 놀래키는데 소질이 있구나?』

놀랍게도 미슈크라는 코앞에서 암룡출동을 얻어맞고도 상처하나 없었다.

먼젓번의 다른 마족들처럼 강인한 외피로 견대낸다든지, 재생력으로 순식간에 재생한다든지 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강력한 폭풍이 그녀만을 비껴나가기라도 한 듯, 미슈크라는 아예 솜털 하나, 옷자락 하나까지 멀쩡한 상태였다.

빌어먹을! 역시, 아직은 군주급에겐 닿지 못한다는 건가?!

『정했다. 머리만 잘라, 만드라고라랑 융합시켜서 애완동물로 만들면 귀여울 것 같네.』

생긋 웃는 마슈크라의 눈에 섬뜩한 살기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단숨에 내 머리를 잘라내기라도 할 듯, 천천히 내게 손을 들이미는 그녀의 입가엔 잔혹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검붉은 기운이 번들거리는 마슈크라의 손이 내 목을 잘라내려는 그 순간!

-화르르륵!

시퍼렇게 이글거리는 화염이 미슈크라를 덮쳐왔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눈살을 찌푸린 미슈크라는 손을 휘저어 옷자락을 크게 펄럭였다.

그녀가 한 번 크게 옷자락을 펄럭이자, 바람의 장벽이 생성되어 날아든 화염을 가로막았다.

『…어머?』

-치지지지직!

하지만 날아든 화염은 미슈크라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강력한 마력을 품고 있었다.

시퍼런 화염은 바람의 장벽을 단숨에 꿰뚫고 미슈크라의 옷자락을 화르륵 불태웠다.

자신의 옷자락이 시커멓게 타버린 것을 본 그녀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머리만 잘라서 애완동물을 만들겠다니. 안되지 안돼. 애석하게도 그와는 아직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았거든.”

『아끼는 옷이었는데….』

“그거 미안하군. 하지만 이쪽의 입장도 좀 생각해주게. 모처럼 아끼는 귀염둥이들을 꺼냈는데. 그 정도 관람료는 받아야지 나도 체면이 서지 않겠나.”

멀리서 여유롭게 웃으며 다가오는 강태백의 등 뒤엔 백팔 개의 불타는 구슬이 마치 벽화 속 성인들의 후광처럼 둥근 원을 그리며, 둥둥 떠 있었다.

이중환과의 전투에서도 꺼내지 않았던 강태백의 애병 『번뇌』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예열시간이 필요하다는게 저거 때문이었군.

설마하니 와이셔츠에 저걸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오랜만에 꺼내서, 괜시리 새삼스러운 기분이네만…. 네년을 태워죽이는데는 충분하겠지!”

저벅저벅 걸어오는 강태백의 몸 위에 푸르른 불꽃이 내려앉으며 외골격을 형성했다.

정중하던 말투가 거칠게 변하며, 그의 두 눈에서 시퍼런 귀화가 화르륵 타올랐다.

그에 호응하기라도 하듯, 등 뒤에 달린 구슬들이 맹렬히 회전하며 공명하기 시작했다.

-콰지직! 콰지직!

강태백의 진정한 힘이 드러나자. 엄청난 마력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의 발걸음을 따라 대지가 쩌저적 갈라졌다.

눈 위에 찍힌 것처럼 선명하게 찍힌 강태백의 발자국에선 시퍼런 화염이 솟구쳤다.

역시. 한때 헌터계의 정점이라 불렸던 강태백다운 위압감이었다.

『벌레같은 필멸자들 사이에서도 너 같은 아이가 있을 줄이야. 인상적인데?』

심상치 않은 기운을 흩뿌리며 다가오는 강태백의 모습에 입꼬리를 올린 미슈크라는 내게서 몸을 돌리며, 벌레라도 쫓듯 어둠달을 붙잡고 있던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쿠당탕!

“크윽!”

어둠달에 가해지던 압력이 사라지자, 순식간에 힘의 공백이 생겨났다.

어둠달의 창날을 빼내기 위해 용을 쓰고 있었기에, 나 역시 황윤형이 그랬듯 거칠게 옆으로 넘어졌다.

『파란 불꽃이라. 예쁘네. 너도 애완동물로 삼아줄게.』

요요하게 눈을 찌푸린 마슈크라의 몸에서 질식할 듯한 살기와 함께, 검붉은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대항하기라도 하듯, 말없이 계속 이쪽으로 걸어오는 강태백의 몸에선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강렬한 열기가 태양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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