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181화 (181/309)

제181화

“…그렇게 된 겁니다.”

기나긴 설명을 끝마친 황윤형의 얼굴엔 무력했던 자신에 대한 분노가 어둡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그 ‘마녀’인가 뭔가 하는 여자에게 네가 이끄는 공격대원들이 모조리 당해버렸다는 말이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황윤형의 이야기를 듣던 강태백은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황윤형의 설명에도 상황이 당장은 이해가 가지 않은 모양인지, 그는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톡톡 두드렸다.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의 말을 유사하게 지껄이며,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를 와해할 수 있는 존재라면 마족이 분명하겠다만…. 패배한 너를 정신만을 헝크러뜨린 채, 자유롭게 풀어준 이유는 뭔지 짐작이 잘 가질 않는구나.”

확실히, 강태백의 말대로 이상하긴 했다.

여지껏 만나왔던, 또 내가 회귀 전 접했던 마족들의 성정을 생각해보자면.

놈들의 성격상 자신에게 덤벼들었던 패배자를 이렇게 자유로이 풀어줄 리가 없었다.

정신을 좀 비틀어 놓긴 했으나, 마족들 기준으론 그것은 굉장히 ‘관대한’ 처사에 속했다.

실험 소체로 쓴다든지, 폭탄으로 만든다든지, 오염시켜 수하로 부린다든지.

기본적으로 인간이란 존재를 혐오하는 족속들이라, 어떻게든 자신들의 가학적인 욕구를 해소하려 들었을 건데….

황윤형은 단지, 정신만 뒤틀어서 풀어줬단 말이지.

무슨 꿍꿍이가 숨어있기라도 한 걸까?

“…저희들이 가엾다며, 정신을 ‘자유롭게’ 해방 해준다고 했습니다. 그 뒤로 놈과 시선을 마주하니 이렇게….”

순간, 살짝 맛이간 황윤형이 보여줬던, 끔찍한 모습을 떠올린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정신에 심각한 데미지를 입을 것 같았다.

으음. 그래 과하게 ‘자유롭긴’ 했지.

“…!”

머리를 필사적으로 휘휘 내저으며,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끔찍한 기억을 털어내려던 찰나.

이맛살을 찌푸리며, 기억을 뒤져가던 황윤형의 몸이 순간적으로 뻣뻣하게 굳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붉게 물들었던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창백하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그, 그래! 그렇지. 그거였어!”

뭔가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멍하니 혼잣말을 중얼거린 황윤형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찌나 다급했는지, 마력이 주입된 다리가 바닥을 딛을 때마다 돌바닥이 쩌적 갈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쭉쭉 멀어져갔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따라가보세.”

강태백에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즉시 황윤형의 뒤를 쫓아 몸을 날렸다.

다리에 내력을 밀어넣으며, 운룡보를 운용하자. 나는 얼마지나지 않아 황윤형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노, 놈이! 그 마녀가 그렇게 지껄였습니다! 제게서 가장 소중한 것이 부하들이니. 그것을 빼앗겠다고 말입니다!”

황윤형이 말한 ‘마녀’라는 마족의 만행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독했다.

부하를 아끼는 황윤형에게 절망을 주기 위해, 그의 눈앞에서 공격대원들의 신변을 구속함과 동시에, 기억을 뒤틀어 황윤형에게서 부하들과 관련된 기억을 통째로 지워버리다니….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독하게도 가학적인 취미를 지니고 있는 놈인가 보군.

“무슨 일인지 들었나?”

내 질문을 받은 황윤형의 몸이 잠시 움찔한 사이, 강태백이 우리를 따라잡았다.

푸르른 불꽃을 온몸에 휘감은 강태백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황윤형이 허둥거리는 이유에 대해 물어왔다.

“수, 숙부님! 공격대원들이! 제 부하들이!”

“진정하고, 잠시 호흡을 다스리세요. 부하 공격대원들이 인질로 잡혀있는 모양입니다.”

격양된 황윤형의 입에서 제대로 된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자.

나는 그 대신 강태백에게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일러줬다.

“지독한 놈이로군. 그들이 어디 잡혀있는지는 알고 있느냐?”

“이, 이쪽입니다! 분명히 저기 보이는 바위 근방에서 그 마녀와 격돌했었습니다.”

황윤형은 부지런히 발을 놀리면서도 손가락을 쭉 뻗어, 저 멀리 떨어진 바위를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니, 과연 끝없이 펼쳐진 녹음 사이에 툭 튀어나온 거대한 바위가 시야에 들어왔다.

******

황윤형이 가리킨 바위는 멀리서 가늠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멀찍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마력을 계속해서 쥐어짜며, 한참을 달린 끝에 우리는 집채만한 바위산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웅! 두웅! 두웅!

“…북소리? 몬스터인가!”

바위산 근처에 다가가자, 갑자기 멀찍한 곳에서 격렬한 북소리가 들려왔다.

정상적인 북소리는 아니었다. 마치 북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누군가가 북을 부숴버리기라도 할 심산으로 마구 두들겨대는 것과도 같은 소리였다.

-두웅! 두두두둥! 두두두둥!

바위산에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광기에 찬 북소리는 더욱 더 강렬해졌다.

경계하듯 몸을 수그린 채, 조심스레 북소리를 따라가자.

얼마 지나지않아 우리는 괴이한 광경과 마주할 수 있었다.

“주인님! 주인님께 영광을!”

“오오! 주인님 제발. 제발! 제게 주인님의 은총을!”

광기에 젖은 눈빛, 광란에 찬 몸놀림.

피거품을 문 입에서 흘러나오는 광신도의 울부짖음!

바위산 바로 앞, 끝없이 이어진 수풀이 잠시 끊긴 곳엔 너른 광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너른 광장 한복판엔 거대한 모닥불이 피어져 있었고, 헐벗은 사내들이 홀린 듯 모닥불 주위를 빙빙 맴돌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 이것은 대체.”

눈앞에 펼쳐진 해괴한 광경에 황윤형은 순간 할 말을 잃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화롯불을 둘러싼 채, 경배하듯 춤을 추는 이들의 눈엔 순수한 광기만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웃통을 벗어 상체를 드러낸 그들의 근육질 상반신엔 스스로 낸 상처들이 가득했다.

그들이 맨발로 가시덩굴을 밟아대는 통에 새하얀 돌바닥은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 말도 안돼. 영호? 영호! 정신차려! 나다!”

귀기에 찬 광신도들의 행각을 멍하니 바라보던 황윤형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나왔다.

워낙 처참한 모습이라 처음엔 미처 못알아본 듯 했지만. 아무래도 이들은 황윤형의 부하, 팬텀 공격대원들인 모양이었다.

“오오오! 주인님! 제발! 제바아알!”

황윤형은 간절한 얼굴로 공격대원의 어깨를 단단히 붙잡고 세차게 흔들었지만.

그의 손에 붙잡힌 공격대원의 입에선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말이 공허하게 흘러나올 뿐이었다.

“우선…. 자네가 좀 도와줘야겠군. 고칠 수 있겠는가?”

강태백에게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인 나는 양손에 내력을 주입했다.

그리곤 염룡등천의 묘리에 따라, 이글이글 타오르는 내력을 주변으로 흩뿌리기 시작했다.

“…!”

“주인님! 오오! 사랑스러운 주인님!”

이글거리는 화염이 울부짖는 공격대원들의 머리를 불태웠음에도 불구.

그들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를 흥얼거리며 광기에 찬 몸놀림을 이어가고 있었다.

…머릿속의 사기를 태웠는데도 여전히 맛이간 상태라고?

-두우우웅!

“오신다! 주인님께서 오신다아!”

이를 까드득 깨문 뒤, 다시 양 손에 화염을 머금고 공격대원들의 머리를 후려치려던 찰나.

광기에 찬 북소리가 중후하게 한번 울리더니, 머지않아 뚝 끊겼다.

그것을 신호삼아 공격대원들은 상처가득한 몸으로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흐응. 흐으응』

공격대원들이 바닥에 넙죽 몸을 엎드린 것을 신호로 어디선가 콧노래가 들려왔다.

곧이어 바위산에서 작달막한 소녀 한 명이 춤추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이 마녀!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

소녀의 존재를 눈치챈 황윤형의 눈에 강렬한 적의가 들끓었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이를 부러뜨릴 듯, 사납게 뿌드득 이를 간 그는 포효하듯 소녀에게 소리를 내질렀다.

『어라? 어떻게 내 암시를 풀어낸거지? 흐응. 필멸자치곤 제법인데.』

생긋 웃는 소녀의 모습은 이질적으로 아름다웠다.

흑단처럼 새까만 머리는 허리까지 시원하게 쭉 뻗어, 요염하게 흔들거리고 있었고.

큼지막한 연분홍빛 눈동자는 보석보다 더욱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거기에…. 새로운 장난감들까지 덤으로 데려오다니. 제법이잖아? 안녕. 새로운 장난감들아 내 이름은 마슈크라야. 잘 부탁해.』

생글생글 웃은 소녀, 마슈크라는 공격대원들이 마련해준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장난스레 고개를 꾸벅 숙였다.

“헛소리 말고! 이들에게 건 개짓이나 풀엇! 비겁하게 이들의 정신을 왜곡해 인질을 잡다니!”

그 모습에 더욱 더 열이 받은 모양인지, 황윤형의 눈에서 뿜어지는 귀기가 더욱 강렬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