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9화
“황윤형?”
눈앞에 나타난 망측한 외설물 덩어리의 정체는 다름아닌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의 공격대장 황윤형이었다.
어찌나 힘이 좋은지, 그는 자신의 갑옷을 엉망으로 찢어발겨 세일러복과 상당히 유사한 형태로 개조해 몸에 걸치고 있었다.
거기에 손에 들린 것은…. 거대 막대 사탕? 아니, 마법봉인가?
도대체 이 양반은 어디서 저런 덩치에 걸맞지 않게 깜찍한 소품을 손에 넣은 거지?
“윤형아, 그건 대체 무슨!”
강태백은 입을 떡하니 벌린 채, 깜찍한(?) 자세를 취한 황윤형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관념과는 다른 의미의 공포로 잠시 버쩍 얼어붙었던 그는 두통이 치밀어오르는지,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대며 다른 손으론 사탕이 들어있던 자신의 바지 주머니를 신경질적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전부터 고약한 취미가 있다고는 들었다만…. 아니지. 이 또한 제 아비의 경우처럼 게이트의 마력에 잠식당한 것이겠지.”
어느 정도 쪼개진 정신을 회복한 강태백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로 황윤형의 상태를 살폈다.
황태용이 괴이하게 망가진 모습을 먼젓번에 목격해서인지, 그는 자신의 조카가 무슨 상태인지 금방 눈치챈 듯한 모양새였다.
“황윤형? 그게 누구냐! 내 이름은 러블리 블루! 플로랄 왕국의 공주이자 물의 힘을 지닌 전사다!”
…뭔 왕국의 뭘 지닌 뭐라고?
하지만 정신이 왜곡되어 맛이 가버린 황윤형은 숙부의 얼굴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더욱 더 기괴한 자세를 취한 그는 거대 막대사탕 모양의 마법봉(?)을 위협적으로 들이밀며, 자신의 머릿속에서 엉망으로 왜곡된 자신의 신분을 짜랑짜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크윽….”
쓸데없이 깜찍한 형태의 무기가 자신에게 향하자,
조카의 추태를 실시간으로 감상 중인 강태백의 표정이 한층 더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어서, 저놈이 제정신을 찾도록 도와주게. 아무리 내 조카 놈이라지만, 도저히 보기 힘든 추악한 모습이로군.”
“물의 전사, 러블리 블루의 아름다운 외모를 모욕하다니! 역시 너희는 대마왕의 종복이로구나!”
아름다운 외모는 개뿔이! 정신이 왜곡되면서 미적 관념도 같이 왜곡됐냐!
다 큰 사내가 동심 속 마법 소녀의 모습을 연기하는 추악한 몰골은 ‘아름다운’ 모습과는 10억광년 정도 떨어져 있었다.
터질 듯한 근육질 몸을 코르셋처럼 조이고 있는 세일러복 형태의 갑옷은 우리에게 심각한 시각적, 정신적 테러를 선사해주고 있었고.
짧은 치마 아래에서 위엄있게 펄럭이는 호피 무늬 사각팬티와 시원하게 드러난 근육질 다리에 부숭부숭 돋아난 털들의 향연은 내 스스로 양 눈을 파내고 싶은 충동을 계속해서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예…. 저도 그리 보기 유쾌한 모습은 아니네요.”
한숨을 토해낸 나는 양손에 내력을 집중했다.
염룡등천의 묘리로 인해, 양손에 주입된 시커먼 내력은 이내 시뻘건 화염이 되어 화르륵 타올랐다.
…그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이 인간은 빨리 제압해야겠어.
“토옷!”
운룡보의 은밀한 움직임으로 황윤형에게 접근한 내가 막 그의 관자놀이를 가격하려던 순간!
놀랍게도 내 접근을 감지한 황윤형은 텀블링하듯 뒤로 화려하게 몸을 날리며, 내 공격을 피해냈다.
“귀여운 소녀의 등 뒤에 몰래 접근하다니!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이 변태!”
…누가 봐도 변태는 그쪽이 아닐까?
머리는 심각하게 맛이 가 있는 모양이지만, 황윤형의 몸은 특성 트리에 각인된 움직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날렵한 몸놀림으로 내 공격을 피해낸 황윤형은 부담스럽게 소녀틱한 목소리로 정신공격을 감행하며, 반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러블리 아쿠아 스플래쉬!”
-촤아아악!
짜랑짜랑한 목소리와 함께, 황윤형의 손에 들린 마법봉이 번쩍 빛나더니.
마법봉에 박힌 푸르스름한 보석에서 엄청난 수압의 물줄기가 빙그르르 회오리치며, 순식간에 내게 쇄도해왔다.
“치이잇!”
빙글빙글 회전하며 날아든 물줄기엔 범상치 않은 마력이 실려 있었다.
화안금정이 감지한 의외의 공격에 침음성을 토한 나는 즉시, 운룡보를 이용해 아슬아슬하게 황윤형의 공격을 피해냈다.
아니, 피해냈다고 생각했다.
“걸렸구나! 이 흉악한 변태놈!”
엄청난 수압을 자랑하며 내가 서 있던 곳을 꿰뚫은 물줄기를 피해냈다고 막 생각한 순간.
섬찟한 느낌과 함께, 화안금정에 불현 듯 새로운 공격이 하나 감지되었다.
곧이어 육중한 발차기가 아래에서부터 내 복부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피하기는 늦은 상황!
빠르게 매서운 공격에 침음성을 내뱉은 나는 즉시 외골격을 발동시켰다.
내력이 맹렬하게 움직이며, 황금빛이 찬란하게 번쩍이는 외골격이 내 몸 위에 내려앉았다.
-쩌적!
“큭!”
황윤형의 발차기엔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실려 있었다.
푸르른 빛에 휘감긴 그의 정강이가 황금빛 외골격과 충돌하자.
폭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충격이 느껴지며, 단단한 외골격이 순간적으로 쩍 갈라졌다.
동시에 충격을 이기지 못한 내 몸이 마치 폭죽처럼 하늘로 솟구쳤다.
“놓치지 않는다! 토옷!”
괴이한 기합을 내지른 황윤형은 육중한 몸을 날려, 공중에 떠오른 나를 추격해왔다.
그의 몸 위엔 어느새 눈부신 푸른빛을 발하는 외골격이 빈틈없이 내려앉아 있었다.
말투처럼 외골격도 맛이 가버렸는지, 푸르른 외골격은 정해진 형태가 없이 계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으나, 그의 몸에선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과 투기가 느껴졌다.
과연 오닉스 길드가 자랑하는 ‘황태자’다운 실력이로군.
…이거 재밌겠는데?
황윤형의 몸에서 엄청난 양의 마력이 뿜어져 나온 순간.
호승심을 느낀 심장이 격렬하게 뛰며, 용암처럼 뜨거운 혈액을 온몸으로 퍼뜨렸다.
펄펄 끓는 혈액을 따라 시커먼 내력이 미친 듯이 날뛰며 무서운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두 눈에 박힌 화안금정이 달아오를 듯 뜨거워지며, 황금빛 안광이 아지랑이처럼 새어 나왔다.
-부와아악!
내력이 주입된 손이 어마어마한 악력을 발휘해 질긴 가죽 갑옷을 단숨에 찢어냈다.
그렇게 갑옷의 양 소매 부위를 뜯어낸 나는 흩날리는 갑옷 파편에 외골격을 덧씌웠다.
-꽈드득!
외골격이 덧씌워진 갑옷 파편은 순간적으로나마 훌륭한 발판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간이 발판을 걷어찬 나는 방향을 뒤틀어, 나를 노리며 솟구치는 황윤형 쪽으로 한 발의 쏘아진 화살처럼 몸을 날렸다.
“아닛?!”
순식간에 간격 내에 파고든 나는 주저하지 않고 당황한 황윤형에게 힘껏 주먹을 날렸다.
-콰아아앙!
폭음이 터졌다. 굉음이 터졌다!
푸른 외골격과 황금빛 외골격이 강렬하게 충돌하며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허공에서 폭발하듯 터져나간 충격파에, 바닥을 수놓은 풀들이 모조리 납작하게 몸을 뉘었다.
운석처럼 떨어진 황윤형의 거대한 육신이 단단한 돌바닥과 충돌하며, 거대한 반구형 크레이터를 남겼다.
“변태치곤 제법이야! 하지만 위대한 물의 전사에게 이 정도는 긁힌 상처에 불과해!”
크레이터에서 몸을 일으킨 황윤형은 외골격 위에 쌓인 돌조각들을 툭툭 털어내며,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몸을 감싼 푸른빛 외골격 위에 선명한 주먹 자국이 새로 새겨진 것을 발견한 황윤형은 사나운 표정으로 씩 웃었다.
-콰앙! 콰앙! 콰아앙!
하지만 황윤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자비하게 이어지는 난타였다.
지상에 내려앉음과 동시에 자세를 바로잡은 나는, 그대로 허리를 틀어 황윤형에게 주먹세례를 날렸다.
시커먼 내력이 넘실거리는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폭음이 터졌다.
공기가 비명을 내지르며 갈갈이 찢겨나갔다. 대지가 울부짖으며 쿠르릉 떨렸다.
외골격과 외골격이 맞부딪히며, 새빨간 불똥이 후두둑 허공을 시뻘겋게 수놓았다.
“물의 전사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사랑과 정의는 굴하지 않는다!”
숨 막힐 듯 계속되는 주먹의 폭풍에 자신의 외골격이 퍽퍽 깎여나가자.
속절없이 얻어맞던 황윤형의 눈에 순간적으로 광기가 깃들었다.
그의 입에서 광기 어린 외침이 튀어나옴과 동시에, 시퍼런 물줄기가 황윤형의 외골격에서 뿜어져 나와 주변을 흠뻑 적시기 시작했다.
“울어라! 수룡! 흐느껴라! 풍룡!”
-쿠르르르릉!
광기 어린 외침을 토해내는 황윤형의 두 눈에서 푸른빛 안광이 격렬하게 들끓었다.
동시에 정해진 형태가 없이 흐느적거리던 그의 외골격이 정확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동양풍 갑주에 두 마리 용이 얽혀있는 독특한 외형의 외골격이 황윤형의 몸 위에 내려앉았다.
“저, 저것은! 조심하게 용호!”
말없이 나와 조카의 격돌을 구경하던 강태백의 입에서 갑자기 경악 어린 경고가 튀어나왔다.
강태백도 알고 있을 만큼 제법 대단한 기술인지, 경고를 보내오는 강태백의 목소리는 다급하기 짝이 없었다.
-쿠오오오오!-콰우우우우!
주변을 적셨던 물줄기가 용의 형태를 갖추더니, 포효를 내뱉으며 격렬하게 소용돌이쳤다.
동시에 휘몰아치는 바람이 귀기 어린 포효를 토해내며, 울부짖는 용의 형태를 갖췄다.
나를 바라보며 사납게 미소짓는 황윤형의 눈에 이글거리는 시퍼런 안광이 더욱 강렬해졌다.
“물어뜯어라! 할퀴어라! 쌍룡광림!”
황윤형의 입에서 귀기어린 포효가 터져 나오자.
울부짖고 흐느끼던 두 마리 용이 내 숨통을 노리며 날아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찢어발길 듯한 난폭한 마력이 내게 쇄도해왔다.
“…쌍룡광림이라. 재밌네. 나도 마침 새로운 재주를 하나 익힌 참이거든.”
강렬한 일격을 마주하자, 위기감을 느낀 심장이 쿵쿵 세차게 뛰었다.
내 목숨을 탐하는 두 마리 용을 마주하며, 씨익 웃어준 나는 조용히 어둠달을 빼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 기술을 실험해볼 대상이 필요했는데.
마침 잘되었지 뭐야.
-두근! 두근!
어둠달에 박힌 검은 심장이 세차게 뛰는 내 심장 소리에 맞춰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격렬하게 고동치는 검은 심장에서 광폭한 내력이 폭발하듯 터져 나와. 내 전신을 휘감은 외골격을 시커멓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파천 복룡창 제 오식 광룡광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