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6화
“오닉스 길드의 산하 연구소에서 『강화 외골격』이 완성되었다는 정보를 들어서였네.”
…뭐?
순간, 박하사탕을 아작아작 씹어대는 강태백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갑자기 찾아온 충격으로 인해, 머릿속이 허옇게 물들어갔다. 정신이 어찔해졌다.
쩍 벌어진 입에서 막 입에 넣었던 사탕이 나도 모르는 새, 입 밖으로 툭 떨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강화 외골격』이라니?”
갑자기 찾아온 충격으로 으슬으슬 떨려오는 몸과 정신을 부여잡은 뒤.
나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강태백에게 그가 언급한 것에 관해 물었다.
아니겠지? 설마. 아닐 거야. 세상엔 이름만 비슷한 것이 얼마든지 존재할….
“그래. 자네에겐 처음 듣는 놈이겠지. 『강화 외골격』이라는 건 말이야. 쉽게 말해서 인공적으로 합성한 외골격이라 할 수 있는 물건일세.”
…빌어먹을.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다니까.
강태백이 언급한 『강화 외골격』은 회귀 전 헌터 업계의 혁신이라 불렸던 물건이었다.
비록 외골격을 형성한 헌터들은 사용할 수 없다는 것과 위력 또한 진짜배기 외골격에 비해선 한없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싼맛에 외골격을 양산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기에, 지나칠 정도로 널리 이용되었었다.
…치명적인 부작용을 발견하기 전까진 말이지.
“인공적으로 외골격을 합성하다니. 확실히 그런 게 있다면 놈들을 상대하는데 큰 도움이 되긴 하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외골격이란 특성 트리에 깃든 영혼의 기억을 마력으로 구현한 것이다.
『강화 외골격』은 그러한 외골격의 성질에서 착안해, 강제적으로 몬스터의 영혼을 뒤틀어, 외골격의 형태로 합성한 물건이었다.
그렇게 위험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물건이기에, 당연히 『강화 외골격』은 태생적으로 치명적인 부작용을 갖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사용할 경우. 사용자를 이성이 없는 몬스터로 변이시킨다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말이지.
회귀 전, 수도 없이 봤던 비극을 떠올린 난 단호한 표정으로 강태백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수상쩍은 물건을 어떻게 신뢰하실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린가?“
”길드장님도 아시다시피, 외골격이라는 것은 특성 트리에 깃든 영혼의 기억입니다. 그것을 인공적으로 합성했다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건 아니라는 소리겠죠. 이를테면 몬스터의 영혼을 사용한다든지.“
의아한 표정의 강태백에게 나는 『강화 외골격』의 위험성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강태백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그의 한쪽 눈썹이 미묘한 각도로 올라갔다.
”그러니까. 외골격을 인공적으로 합성하기 위해선 몬스터의 영혼같이 위험한 소재를….“
”…상상력도 뛰어나군. 몬스터의 영혼이라니. 쇳덩이로 빚어낸 기계장치에 무슨 영혼타령이란 말인가.“
강태백은 별 이상한 놈 다 본다는 듯한 표정으로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기계장치라구요?“
”그래, 『강화 외골격』이란 외골격의 특성을 기계장치의 형태로 재현해낸 물건일세. 오닉스 길드 기술력의 정수라고 볼 수 있는 물건이지.“
미묘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비튼 강태백은 계속해서 『강화 외골격』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금속성 몬스터들의 뼈와 비늘을 합금 형태로 가공해, 경이적인 내구도의 외피를 만들고.
내부엔 부드러운 소재의 완충제와 원시적인 형태의 마력핵을 촘촘히 박아넣어.
일반적인 외골격처럼 사용자를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함과 동시에, 필요에 따라 사용자의 완력과 마력을 증폭시켜주는 물건이 바로, 오닉스 길드가 만들어 낸 『강화 외골격』이란 놈이었다.
…뭐야. 진짜. 내가 생각했던 것과 이름만 닮은 놈이었네.
“『강화 외골격』이란 소리만 듣고, 그런 식으로 지레짐작하다니. 자네도 보기보다 엉뚱한 면이 있군.”
강태백의 핀잔 섞인 목소리에 얼굴이 화악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 그렇군요. 화, 확실히 그런 물건이라면 협력을 구하는게 맞긴 하지요.”
슬쩍 치밀어오른 부끄러움에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목 뒤를 슥슥 주물렀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강태백의 양 눈썹이 더욱 더 미묘한 각도로 휘어졌다.
“그렇지. 그게 있으면 우리 길드의 전력도 상당히 올라가겠지. 생각해보게 자네나 나나 그걸 착용한다면 전투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착용한다니요? 그거, 외골격을 형성한 헌터도 착용할 수 있는 물건입니까?”
“무슨 또 해괴한 소리를 하려는 겐가. 애초에 외골격을 지닌 헌터들을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물건일세.”
…맙소사.
강태백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도저히 그의 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외골격을 형성한 상위 헌터가 『강화 외골격』을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은.
회귀 전에 쌓아둔 외골격에 대한 지식이 깡그리 부정하는 것과 똑같은 말이었으니까.
기존의 외골격과 중복하여 사용할 수 있는 갑옷형 외골격이 존재하다니.
회귀 전엔 아예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물건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 시절 그런 기물이 존재했다면.
외골격을 형성한 상위 헌터들이 격전 속에서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 나가지도 않았겠지.
어째서 회귀 전엔 오닉스 길드의 역작이 알려지지 않았던 걸까….
“자네. 괜찮은 건가?”
급작스럽게 찾아온 충격과 의문으로 인해, 머릿속이 복잡해져 있으려니.
묘한 눈빛으로 나를 관찰하던 강태백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 안부를 물어왔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워낙 대단한 물건이라.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네요.”
“그렇지? 그게 있다면야. 소수의 인원으로도 간악한 마족 놈들을 쉬이 상대할 수 있을걸세.”
“…헌데. 그렇게 대단한 물건을 오닉스 길드 측에서 순순히 내놓겠습니까?”
오닉스 길드가 만들어 낸 『강화 외골격』은 그것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파란을 불러 일으킬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오닉스 길드 측에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쇠락해가는 태백 길드에게 『강화 외골격』을 순순히 내놓을 리가 만무했다.
“당연히 순순히 내놓을 리가 없겠지. 그래서 지금까지 협상이 질질 늘어진 게 아니겠나.”
노회한 강태백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악동 같은 미소가 떠 올랐다.
“하지만. 자네 덕에 방법이 하나 생겼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 강태백은 음험한 표정으로 히죽 웃었다.
*****
“궁상은 다 떠셨소?”
구석에서 벌거벗은 채, 바들바들 떨던 황태용의 몸이 안정을 되찾자.
황태용에게 가까이 다가간 강태백은 쪼그려 앉아, 그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크, 크흠. 궁상이라니. 네놈이 영입한 그 젊은 놈의 실력이 실로 범상치 않아서 잠시 감탄했던 것 뿐이다.”
불길하게 히죽 웃는 강태백과 눈이 마주친 황태용은 태연한 척, 가슴을 당당하게 폈다.
제법 안정을 되찾은 모양인지, 그의 목소리에선 떨림이 많이 가셔있었다.
“그렇소? 우리 설용호 산군의 실력이 나이에 비해 정말 대단하긴 하지.”
“그래. 내 ‘시험’을 통과하다니. 요즘 젊은이치곤 제법이야.”
시험이라고? 시험 운운하신 것 치곤 상당히 추한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 같은데….
뻔뻔스레 허세가 넘치는 발언을 토해낸 황태용은 몸을 일으켜, 내쪽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그간 무슨 심경변화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동안 놀라운 솜씨로 자기 합리화를 끝낸 모양인지.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엔 마치 손자를 기특하게 바라보는 할아버지와도 같은 푸근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설용호 산군이라고 했던가? 자네를 ‘시험’한답시고 다짜고짜 덤벼들어 미안하네. 오랜만에 창창한 젊은이를 봐서 그런지. 늙은이가 간만에 호기심이 들끓어 올랐지 뭔가.”
이야….
역시, 한 단체의 수장쯤 되면, 얼굴에 철판을 두르는 것이 기본 소양인가?
미소를 지으며 내 쪽으로 다가온 황태용은 손을 내밀어 내게 악수를 권해왔다.
회귀 전 마족들에게 조종당하던 강태백이 자주 보여줬었던 능글맞은 눈빛이 그의 눈에서 불쾌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허참. 죽이네 살리네 소리를 빽빽 질러대던 양반이 이제와서 태도를 바꾸긴. 부끄럽지도 않소?”
황태용이 내민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하고 있으려니.
얼굴에 비웃음이 그득한 강태백이 나화 황태용 사이에 끼어들어, 내밀어진 손을 탁 쳐냈다.
“부끄럽긴. 시험은 실전같이 하는 게 내 좌우명 아니더냐.”
강태백의 이죽거림에도 불구하고, 황태용은 가식적인 미소를 얼굴에서 지우지 않았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강태백의 어깨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선 왠지 모를 탐욕의 빛이 추악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헛소리는 집어치우시고. 하던 이야기나 계속 하십시다. 협상하던 도중 아니오.”
황태용의 어깨를 붙든 강태백은 다짜고짜 대화의 화두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강태백의 입에서 흘러나온 ‘협상’이란 단어에 황태용의 얼굴에 미묘한 비웃음이 떠올랐다.
“협상이라…. 숫제 협박에 가까운 비럭질을 네놈은 여전히 그런 식으로 포장한단 말이지….”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강태백을 위아래로 훑어본 황태용은 입꼬리를 고약하게 뒤틀었다.
그리곤 그는 거만하게 팔짱을 낀 채, 이야기를 게속했다.
“그래. 다시 이야기나 해보지. 나와 너의 추악한 과거사를 덮어두는 조건으로 사파이어, 루비, 다이아몬드 공격대의 지원과 여섯 벌의 『강화 외골격』을 지원해달라 했더냐?”
…협상이 아니라 협박에 가깝긴 했네.
강태백이 황태용에게 제시한 카드는 역시나, 자신과 황태용의 과거사에 관련된 것이었다.
황태용의 입장에선 그것이 생각했던 것 이상의 약점인 모양인지, ‘과거사’를 언급한 순간 황태용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불쾌한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서로 불쾌한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이라면. 나도 제법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이긴 하다만. 고작 그 정도로 되겠느냐? 옆에 있는 그 설용호라는 아이를 내놓는다면 또 모르겠다만.”
황태용은 히죽 웃으며, 주름진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비웃음 가득한 그의 얼굴엔 탐욕이란 감정이 추악하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렇지. 그 정도로는 안 되겠지. 나도 생각이 바뀌었소. 기존의 조건에 더해. 『강화 외골격』의 연구 데이터와 권리를 내놓으시오.”
“…뭐?”
자신을 비웃는 황태용에게 강태백은 똑같이 비릿한 웃음을 지어줬다.
그리고 그는 마치 협박하는 듯 험악한 목소리로 자신의 새로운 조건을 제시했다.
“…갑자기 머리가 돌아버린 모양이로군. 내가 그따위 거래에 응할 거라 생각한 게야?”
황태용의 얼굴에 깃들었던 웃음기가 와전히 사라졌다.
탐욕스럽게 웃던 그의 얼굴이 점점 차갑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그야. 응하겠지. 아니, 응할 수 밖에 없을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