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후우우우.”
해법을 떠올린 이상, 더는 시간을 낭비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어둠달을 단단히 손에 쥔 나는 몸속의 내력을 박박 긁어모아 검은 심장에 주입했다.
-두근!
어두운 검붉은 빛을 내며 느릿하게 점멸하는 검은 심장에서 심상치 않은 진동이 느껴졌다.
곧이어 검은 심장이 내 의지가 깃든 내력에 호응해, 묵직한 고동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고래의 심장 소리처럼 느릿했던 고동 소리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검은 심장이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듯 거칠게 맥동하자.
웅웅거리는 어둠달이 당장이라도 부러질 듯 강하게 진동하며 울부짖었다.
-쿠왕!
검은 심장에서 시작된 진동이 정점에 이른 그 순간!나는 울부짖는 어둠달을 힘껏 바닥에 내리꽂았다.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이 쩌적 갈라지며, 어둠달의 늘씬한 창신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쭈와아앙!
어둠달을 내리꽂은 충격의 여파로 거미줄처럼 갈라졌던 콘크리트 바닥에서 시커먼 촉수가 폭발하듯 튀어나왔다.
내력으로 이뤄진 시커먼 와류에 휘감긴 촉수는 순식간에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퍼석! 퍼서석!
썩은 호박이 관통당하는 듯한 불쾌한 소리!
코끝을 어찔하게 자극하는 비릿한 냄새!
사방으로 뻗어 나간 촉수는 바닥에 널브러진 알들을 퍽퍽 꿰뚫었다.
반투명한 우윳빛 껍질이 시커먼 촉수에 관통되어 비릿한 냄새를 흩뿌렸다.
알에 연결된 사람들의 가녀린 몸뚱이가 부르르 떨렸다.
-쭈르르륵!
곧이어 껍질에 탐욕스러운 내력의 촉수를 단단히 박아넣은 검은 심장이 게걸스럽게 생명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창 자루만 남긴 채, 바닥에 박힌 어둠달에서 검붉은 빛이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왔다.
“크으으윽!”
촉수가 박힌 알들에서 시뻘건 불꽃이 피어오르자.
막대한 생명력이 촉수를 타고 검은 심장을 거쳐 내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혈관 하나하나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불완전한 기운이 꽉꽉 들어찼다.
당장이라도 온몸이 터져버릴 듯, 전신의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빌어먹을. 생각한 것보다. 기운이 너무. 너무 많아!
머릿속으로 황급히 파천 복룡창의 오묘한 심법을 되새겼지만.
검은 심장은 계속해서 내 계산에서 아득히 벗어난 양의 생명력을 내 몸에 꾸역꾸역 주입했다.
심법의 힘으로 가까스로 제어하던 기운들이 조금씩 조금씩 내 제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쩌적! 쩍! 쩍!
제어에서 벗어난 기운들이 가져온 결과는 참혹했다.
팽팽하게 팽창한 근육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쩍쩍 갈라졌다.
불완전한 기운이 꽉꽉 들어찬 혈관이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뻥뻥 터져나갔다.
산채로 온몸을 찢어발기는 듯한 격통이 찾아와, 머릿속을 허옇게 색칠하기 시작했다.
…아, 안돼! 이대로 가다간!
[…밑도 끝도 없이 무식한 방법을 택하다니. 멍청한 것.]
제어에서 벗어난 기운이 내 몸을 폭탄처럼 터뜨리려던 그 순간!
만물의 시간이 딱 멈추는 듯한, 익숙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기이한 기분과 함께.
걱정과 힐난이 반반 뒤섞인 위철용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웅웅 울려 퍼졌다.
‘….’
마치 고위 마족이 제 권능을 펼치는 듯한 현상에 의문이 떠올랐지만.
지금의 난 위철용에게 그것에 관해 물어볼 여유가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멈춰진 시간 속에서 나는 입조차 달싹일 수 없었다.
…뭐지. 이건?
[크윽. 그 낙오자 새끼들은 어떻게 이런 짓을 계속하는지 모르겠군. 아무튼!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자세한건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마!]
위철용의 목소리와 함께, 상반신 전체가 허공으로 붕 뜨는 듯한 기묘한 기분이 찾아왔다.
분명, 내 육신과 연결된 신체 일부이면서도 내 제어를 완전히 벗어난 듯한 이질감.
…위철용이 내 몸에 빙의했을 때 느껴졌던 감각이었다.
“으으윽!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놈 주제에 이 정도 기운을 어찌 품으려고 한 게야!”
내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급작스레 위철용이 내게 빙의하자.
꽁꽁 얼어붙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기운이 다시 폭주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내 입을 통해 욕설을 뱉어낸 위철용은 엄습해오는 고통에 까득 이를 깨물었다.
-꾸드드득!
“삿된 기운 따위가 감힛! 이 어르신을 해하기엔 어림도 없느니라!”
폭주하듯 들끓은 기운이 내 몸을 터뜨리려고 들자.
입꼬리를 호전적으로 틀어 올린 위철용은 내 몸속의 내력을 움직였다.
그의 의지에 감응한 내력이 거세게 소용돌이치며, 들끓는 기운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기껏 흡수한 기운을 남들에게 나눠준다는 것이 본존의 방식은 아니다만. 애송이 네놈의 뜻이 그리 하다면야.”
무의 정점에 오른 자에게 붙는 칭호 ‘천마’
그 칭호를 마작으로 딴 게 아닌 모양인지. 위철용은 단숨에 내 몸에서 날뛰던 기운을 잡아먹곤 통째로 내력으로 변환시켜 버렸다.
잠시 눈을 감고 몸속을 흐르는 거대한 내력을 감상하던 그는 이내 아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의지를 다시 퍼뜨리기 시작했다.
-콰곽! 콱! 콱!
위철용의 의지에 따라 내력의 촉수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내 육신에서 비롯된 시커먼 촉수가 기절한 사람들의 육신을 단숨에 꿰뚫어버렸다.
꿰뚫은 촉수를 타고, 어마어마한 양의 내력이 그들의 몸에 주입되기 시작했다.
아직 감각이 남아있는 곳에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탈력감이 찾아왔다.
“크으윽. 역시 아직은 이 정도로도 무리가 오는군.”
알로부터 흡수했던 내력이 모두 희생자들에게 주입되자.
고통스러운 듯 거친 신음을 토해낸 위철용은 빙의를 해제했다.
감각이 다시 돌아오는 듯한 느낌과 함께, 내 몸에서 위철용의 비췻빛 육신이 튀어나왔다.
[…본존은 잠시 휴식을 취하도록 하마.]
비척거리며 나를 바라본 위철용은 힘없이 웃더니.
이내 내 심상 세계 속으로 잠들 듯 사라져버렸다.
*****
“정말이지….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해결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생명력을 흡수당한 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커멓게 썩어들어갔다.
사람들의 몸에 연결되었던 관이 힘없이 끊어진 채, 허무하게 나풀거리자.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본 돌격조장이 경외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보고드립니다! 확보한 인원 전부. 목숨에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알과 연결되었던 사람들을 살펴본 김정현 역시, 돌격조장과 그리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니, 그와 비교해서 한술 더 뜨는 수준이었다.
인지를 초월한 위업, 기적을 목격한 광신자와도 같은 선망이 김정현의 눈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후우…. 반쯤은 도박에 가까운 방법이었지만. 통했다니 다행입니다.”
나는 경외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들에게 힘없는 미소로 화답해줬다.
터무니없는 짓을 벌인 덕분에 지금 내 몸 상태는 여느 때보다 말이 아닌 상태였다.급한 대로 포션을 두 병이나 연거푸 비웠지만. 아직도 머리가 어찔어찔했다.
…위철용이 아니었다면, 성공조차 하지 못했겠지.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 앞에선 짐짓 태연한 척 했지만.
입맛이 썼다. 자책감과 후회가 교대로 물밀 듯이 밀려왔다.
…빌어먹을!
해안가의 암석을 바스러뜨리는 파도처럼. 밀려든 자책감이 내 정신을 깎아먹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이 분노가 되어 머릿속을 활활 불태웠다.
최근 연거푸 이뤄낸 성취로 인해, 지나치게 자만해 버렸다.
위철용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는 다른 이들의 생명을 연료 삼아 화려하게 폭발해버렸겠지.
-까드득!
나는 아래턱이 으스러져라. 까득 이를 깨물었다.
몸 속에서 시커먼 기운이 뭉클뭉클 피어오르며, 음울한 살기를 사방으로 퍼뜨렸다.
역시. 아직은 부족해. 더욱 더 성장을 해야지만….
“그, 그래도…. 놈들의 부화를 저지했으니 다행입니다. 산군님”
내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뭉클뭉클 피어오르자.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북북 긁은 김정현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놈들이 그대로 부화했다면,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알들의 잔해를 바라본 김정현은 끔찍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게 생명력을 흡수당한 알들은 볼품없이 쪼그라든 채, 불길에 휩싸여 활활 타버린 상태였다.
그것의 내부에 있었던 마족들의 육신 또한 새까맣게 타 들어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그건 그렇네요. 우선 최악의 상황은 막아냈으니….”
그렇다. 어찌 되었건 최악은 면한 상황이니. 자책 따윈 나중에 해도 될 일이다.
김정현의 시선을 따라, 정신을 수습한 나는 희미하게 웃으며 머릿속을 파고든 상념들을 털어냈다.
“그보다. 혹시 포션 여유분 좀 있으십니까?”
“포션이요? …아하. 즉시 확인해보겠습니다.”
포션이라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김정현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대원들에게 다가가 현재 보유 중인 포션의 재고에 관해 물었다.
“여유분이 제법 있긴 있습니다만. …이거 포션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하겠군요.”
내게서 빼앗겼던 생명력을 도로 주입받았다곤 하나.
알과 연결되었던 사람들의 상태는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새끼손가락 굵기의 관이 몸속을 거칠게 휘저었기에, 그들의 허리춤엔 푹푹 파인 상처가 한가득 숨겨져 있었다.
뒤늦게 그들의 부상을 확인한 김정현은 가방 내부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여유분이 있다고 하니. 다행이군요. 여기 이분들의 치료를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유분이 있다는 말에 나는 내심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좌들이 계속해서 존재력을 후원해주고 있기에, 현재 보유중인 포인트는 제법 여유가 있었지만….
아무리 나라고 한들, 포인트 숍에서 서른 여섯 개의 포션을 한 번에 구입하는 것만큼은 제법 부담되는 일이었으니까.
“예? 아아. 이쪽 치안을 담당하는 저희로선 당연한 일이니.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될 겁니다.”
김정현이 믿음직스러운 목소리로 제 가슴을 탕탕 두드리자.
그에게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준 나는 바닥에 꽂힌 어둠달을 빼들어 어깨에 들쳐멨다.
“이곳 상황이 마무리된 것 같으니. 저는 이만, 안쪽을 더 탐색해 보겠습니다.”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이 정신도 장비도 되찾았겠다.
강림한 마족도 해치웠겠다. 알에 얽메인 사람들도 구해냈겠다.
더는 이곳에 내가 얽매여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안쪽이라면…. 나머지 공격대원들과 휘말린 본사 인원들이 있을 수도 있겠군요. 염치없지만 그들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산군님.”
다른 인원들의 안부를 내게 부탁한 김정현은 비장한 표정으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고개를 숙인 그에게 의아한 표정을 짓던 다른 인원들 역시.
뒤늦게 상황을 눈치채곤, 하나둘씩 내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부탁드립니다! 산군님!”
“동생 녀석이 본사 지하에 대피해 있습니다. 제발…. 제발 녀석을 구해주십시오. 산군님!”
게이트 안쪽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상황이 심각해진다는 것쯤은 헌터로서 칼밥 먹고 살아가는 이들에겐 상식이었다.
그렇기에 내게 고개를 숙이는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의 눈빛엔 간절한 열망이 깃들어 있었다.
“게이트에 휩쓸린 이들을 구하는 것 또한 헌터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 아니겠습니까.”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에게 히죽 웃어준 왜곡형 게이트의 더욱 깊숙한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왜곡되고 뒤틀어진 어둠이 넘실거리며, 등골을 오싹하게 간질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