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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172화 (172/309)

제172화

“끄, 끝난 겁니까? 산군님.”

“예…. 뭐 어찌어찌 끝맺긴 했네요.”

푸드덕거리던 베타라의 육신이 움직임을 뚝 멈추자.

질린 표정으로 폭력의 현장을 바라보던 돌격조장이 조심스레 내게 다가왔다.

“도, 도대체 이 놈의 정체는 뭡니까. 지, 지금까지 헌터 생활하면서 다양한 몬스터를 상대해봤지만. 이런 놈은 처음입니다.”

돌격조장의 반응은 ‘마족’이라는 존재를 처음 접한 이들이 당연히 보일 반응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를 처음 접한 것에 대한 공포가 그의 눈빛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부, 분석. 분석을 좀 해봐도 되겠습니까?”

그 엄습해오는 공포를 솟구친 학구열로 극복한 모양인지.

주춤주춤 다가온 김정현은 곤죽이 되어버린 베타라의 시신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뭐…. 마음대로 분석해보셔도 되긴 합니다만.”

김정현에게 베타라의 시신을 넘겨주려던 찰나.

갑자기 내 눈앞에 『낙온자들의 진혼곡』 특성의 황금빛 수레바퀴가 나타났다.

오로지 내 시야에만 보이는 그 황금빛 수레바퀴는 오랜만에 등장해 느릿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베타라.

수레바퀴 위에 음각된 낙오자들의 명단에 베타라의 이름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잠깐만. 샤네가 놈을 쓰러뜨렸을 땐. 분명 아무 일도 없었었지?

생각해보니 먼젓번에 샤네가를 쓰러뜨렸을 땐. 수레바퀴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 손으로 놈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놨음에도 불구, 샤네가의 파편은 내게 흡수되지 않았었다.

-스르륵.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현상에 의문을 표하려는 찰나,

수레바퀴 위에 새겨졌던 베타라의 이름이 흐물흐물 녹으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잊혀진 망자들의 군주.

티르리니를 쓰러 뜨린 뒤와 똑같았다.

수레바퀴에 각인된 베타라의 이름은 얼마 지나지않아, 명단 위의 다른 이들과 유사하게 정체에 대한 은유가 담긴 방식으로 수정되었다.

설마. 모든 마족들이 낙오자는 아닌건….

“산군님?”

갑자기 일어난 현상에 골똘히 생각에 잠기려니, 김정현이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지적인 욕구가 이글거리는 그의 눈빛엔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진득하게 늘러붙어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할게 있어서.”

“예…. 죄송합니다. 산군님. 역시 신종 몬스터에 대한 권리를 대뜸 요구하는 것은 실례되는 일이겠죠.”

내 대답을 들은 김정현의 얼굴 빛이 급속도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떨궜다.

“아, 아닙니다. 분석 정도는 해도 됩니다만….”

화두를 돌리는 순간, 내 눈에 사방에 널브러진 반투명한 알들이 들어왔다.

사람들과 연결된 채, 놓여있는 알들의 숫자는 어림잡아 서른 개가 훌쩍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그러고보니. 이 빌어먹을 알을 통해 ‘다른 놈들’이 강림할거라고 그랬지?

“우선, 이 ‘알’들을 어찌 처리할지 의견부터 나눠보죠.”

알에서 튀어나온 베타라가 유독 강한 케이스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빌어먹을 알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 없는 놈들이었다.

깔맞춤 스킬에 정수를 메스꺼울 정도로 흡수하여, 가까스로 베타라를 쓰러뜨리긴 했지만.

놈을 상대하는데 너무 많은 수를 소모해버린 상태였다.

“알이라니…. 마, 맞다. 여기서 아까 그 끔찍한 놈이 튀어나왔었죠?”

“그냥 확 다 태워버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옆에서 이야기를 옅듣고 있던 돌격조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모조리 태워버릴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을 들은 김정현은 즉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의 의견에 반대를 표했다.

“그렇지만…. 이 알들은 지금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리하게 파괴하면 이들의 목숨이 어떻게 될지….”

“끄응….”

자조치종을 들은 돌격조장의 얼굴이 뭐 씹은 듯 와락 일그러졌다.

난감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 김정현은 가까운 알에 다가가, 아주 자세히 그것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헌데. 서민혁은 어찌된게냐? 그와 연결된 알에서 그 낙오자놈이 튀어나오지 않았더냐.]

…맞다. 서민혁! 깜빡 잊고 있었네.

위철용의 지적을 들은 나는 황급히 서민혁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일단 겉보기로는 무사해 보이는데….”

난리통에 엉망으로 널브러진 서민혁은 겉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숨 소리는 잠든 것처럼 규칙적이었고,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 뭔가 꿈을 꾸고 있는 듯 했다.

[깨워보거라.]

-화르르륵!

위철용의 지시에 따라. 나는 슬쩍 서민혁의 몸에 염룡등천의 기운을 불러 일으켰다.

내력의 흐름을 타고 일어난 불꽃이 그의 한쪽 눈썹을 살짝 태웠다.

“으아아악! 자, 잘못했습니다! 팀장님! 이번 달 급여만은 제발…! 어라?”

비명과 함께 튕기듯 일어난 서민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휘휘 돌아보았다.

반사적으로 살짝 타들어간 눈썹을 만지작거리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팔팔해 보였다.

“우, 움직이네? 역시 산군님입니다! 정말 ‘어떻게든’ 해결해 주셨군요!”

뿐만 아니라 서민혁을 옭죄었던 알의 속박마저 어떻게 해결된 모양인지.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신 사납게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댔다.

“뭐…. 일이 잘 해결된 것 같긴 합니다만.”

…알 쪽의 마족이 해방되면, 생기를 빼앗기던 숙주 쪽은 자유로워지는 건가?

아니야. 그 잔혹한 놈들이 이렇게 어설픈 장치를 꾸며 놓았을 리가 없지.

지나칠 정도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버린 서민혁에게 의구심을 느낀 나는 빙긋 웃으며. 그의 손을 악수하듯 붙잡았다.

그리곤 은밀하게 내력을 서민혁의 몸 곳곳에 퍼뜨려, 그의 상태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

내력을 퍼뜨려, 서민혁의 몸 상태를 점검한 순간.

나는 그대로 얼어붙을 수 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서민혁의 몸 상태는 절망적이었다.

[어디보자…. 혈맥이 완전히 상해버렸고. 장기도 정상이 아니로구나. 쯧쯧쯧 멀쩡한 것은 껍데기 뿐이야.]

위철용의 말대로 서민혁은 ‘껍데기’만 정상적인 상태였다.

몸 속의 내장들은 미라처럼 비참하게 쪼그라들어 있었고, 몸 속의 혈액 또한 가뭄이 찾아온 저수지처럼 바짝 말라 붙어 있었다.

[멀쩡해 보이는 이유는…. 그렇군. 마지막 지원지기를 가져다 쓰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진원지기요?’

[쉽게 말해서, 사람이 날 때부터 몸 속에 보유하고 있는 기운이니라. 네놈도 사람에겐 위기의 상황에서 최후로 짜내는 미지의 힘이 있다는 것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테지.]

위철용의 설명대로라면, 서민혁은 지금 언제 죽어도 이상할 바가 없는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활활 불태우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는 상태.

“오오! 산군님! 어째선지 기운이 넘칩니다.”

…마지막 모습치곤 많이 방정맞지만 말이지.

본인에게 들이닥친 최후의 순간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모양인지,

서민혁은 평소보다 훨씬 더 정신 사납게, 더 철없이 해맑게 행동하고 있었다.

물구나무를 선 채, 기묘한 포즈를 취한 그를 바라본 나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위철용에게 물었다.

‘어떻게 살릴 방법은 없는 겁니까?’

[아직 지원지기를 다 소모하진 않은 상태이니. 적절한 치료와 함께라면 목숨이야 건지겠지. 우선…. 진원지기를 다 소모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우선이다.]

-뿌각!

“꺼헉!”

위철용에게서 조언을 받는 것과 동시에 나는 서민혁의 뒷목을 후려갈겼다.

기묘한 포즈를 취한 채, 자신의 유연성을 한계까지 시험하고 있던 서민혁은 기괴한 포즈 그대로 혀를 길게 빼물고 기절해버렸다.

-퐁!

기절한 서민혁의 입에 포인트 숍에서 구입한 포션을 물려둔 뒤.

나는 내력을 퍼뜨려, 알과 연결된 다른 이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살폈다,

‘…이거 포션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하겠는데요.’

도합 서른 여섯 개의 알과 연결된 사람들의 몸 상태는 서민혁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착즙기에 들어간 과일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생명력을 알에게 빼앗기고 있는 상태였다.

[정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알에게 생명력을 빼앗긴 상태로고.]

‘그냥 포션이 좀 들더라도 알을 모조리 파괴한다면….’

[아서라. 포션으로 그들의 육체적인 손상을 치유할 순 있을지언정. 빨려나간 진원지기까진 복구해주지 못하느니라. 뭐…. 서른 여섯 명의 목숨을 취하고 다른 이들의 목숨을 살리겠다면 시도해봐도 괜찮기야 하겠다만.]

언제 알껍질을 찢고 서른 여섯 마리의 마족이 나타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포션을 좀 소모하더라도 알들을 모조리 파괴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으나.

인상을 살짝 찌푸린 위철용의 입에선 그리 유쾌한 소리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어르신의 지식으로도 진원지기인가 뭔가하는 놈을 회복시키지 못하는 겁니까?’

[무식한 놈. 진원지기를 그렇게 쉬이 회복시킬 수 있다면, 개나소나 다들 벽력탄마냥 비장의 수단이랍시고 시도때도없이 자신의 진원지기를 격발시키고 다니겠지.]

…끄응 역시, 희생을 감수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는건가?

위철용의 비꼬는 듯한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린 나는 주변에 널브러진 알들을 노려보았다.

내력을 통해 내부의 상태를 살펴본 바에 따르면, 부화까진 약간의 시간이 남은 상황.

마족들의 강림을 막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잠깐. 그 방법이라면?”

순간. 머릿속에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번뜩 스치고 지나갔다.

알과 연결된 숙주에게서 생명력을 갈취하는 것이 알이 부화하는 것에 대한 트리거라면.

반대로 내가 알에게서 생명력을 빼앗아 버리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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