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0화
-쿠콰콰쾅!
하늘에서 너울거리던 암녹색 장막이 별안간 뚝 떨어져 내렸다.
하늘거리는 장막이 바닥에 내려앉자, 폭음과 함께 콘크리트 바닥이 썩어 문드러졌다.
끔찍한 악취와 요란하게 비산한 먼지가 사방을 정신없이 수놓았다.
-꾸드드득!
바닥을 잠식한 부패의 파동은 순식간에 대지를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회색빛 콘크리트가 시커멓게 썩어들어가며,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썩어들어간 콘크리트가 무너져 내일 때마다. 앙상한 뼛조각 같은 하수관이 툭툭 튀어나와 더러운 물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치잇!”
그렇게 짓쳐들어온 부패의 파동이 뱀 앞에 선 개구리처럼 얼어붙은 인원들을 덮치려고 들자.
속으로 침음성을 삼킨 나는 내력이 듬뿍 주입된 어둠달을 그대로 바닥에 내려 꽂았다.
어둠이 이글거리는 어둠달은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을 단숨에 쑤욱 파고 들어갔다.
-화르르륵!
염룡등천의 신묘한 묘리가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감과 동시에.
내력이 쭈욱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며, 바닥에 주입된 충만한 내력이 불꽃이 되어 솟구쳤다.
화르륵 타오른 내력의 불꽃은 바닥을 잠식해오는 삿된 기운을 살라먹으며 거세게 타올랐다.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을 노렸던 부패의 파동은 그렇게 염룡등천의 불길에 먹혀 사그라들었다.
“큽. 크읍!”
부패의 파동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것 까진 좋았지만. 상황은 그렇게까지 좋지 않았다.
바닥을 타고 흐르는 부패의 기운을 막아내는데, 나는 상당한 내력을 소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개미형 몬스터들을 상대하며 막대한 양의 마력을 흡수했긴 하나. 너무 많은 내력을 소모한 탓에 순간적인 내력의 공백이 발생되었다.
《푸흐흐흐. 가엾고 어리석은 필멸자…. 그 부질없는 오지랖이 불완전한 존재의 상징이거늘.》
내 몸에서 휘몰아치던 내력이 깃든 시커먼 와류의 크기가 줄어든 것을 눈치챈 베타라는 흉측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다른 이들을 보호할지.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난 여흥이 되겠구나!》
순간적으로 베타라의 눈에서 녹색 안광이 번뜩였다.
놈의 두 개의 입이 동시에 벌어지며, 뭉글뭉글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사방으로 퍼져나간 음험한 기운은 곳곳에 널브러진 개미형 몬스터들의 시신을 감쌌다.
《끼르르륵!》
음험한 기운에 잠식당한 시신들은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싸늘한 죽음의 세계에서 일시적으로 돌아온 놈들의 눈에 베타라의 그것과 같은 녹광이 노릿하게 번쩍였다.
《물어 뜯어라. 나의 종복들아. 필멸자들의 여린 살점으로 내게 바칠 공물을 빚어내라!》
베타라의 고함이 천둥처럼 울려퍼지자.
죽음의 세계에서 생환한 개미형 몬스터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끼이이익!》
-콰득! 콰드득!
나는 공포로 인해 굳어버린 공격대원들을 보호하며, 어둠달을 번개처럼 휘둘렀다.
어둠달의 창날이 되살아난 몬스터들의 육신을 순식간에 꿰뚫으며, 놈들을 다시 망자들의 세계로 다시 돌려 보내줬지만….
“빌어먹을!”
되살아난 몬스터들의 숫자는 많아도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어둠달의 창날이 정면의 몬스터들을 휩쓸고 있는 사이.
측면을 노리고 숨어 들어온 놈들이 얼어붙어 있는 공격대원들에게 아래턱을 휘둘렀다.
“큭!”
급작스러운 습격에 이를 까득 깨문 나는 재빨리 오른손의 외골격에 내력을 주입하여, 측면으로 파고 들어온 몬스터들에게 약식 암룡출동을 날렸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몬스터들의 시신이 썩은 수박처럼 파사삭 부서졌다.
검은 심장이 음울하게 맥동하며, 놈들의 육신을 불태우고 마력을 앗아오고 있었지만.
막대한 양의 내력을 연속으로 소모한 덕에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 들어갔다.
[쯧. 언제까지 놈의 여흥에 맞춰줄 생각인게냐.]
‘…하지만. 방법이 없잖습니까. 저 양반들은 이미 공포에 잠식되어 이성을 잃어버린 상태인데.’
공격대원들과 희생자들을 보호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내 모습이 갑갑해 보였는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잔뜩 표정을 일그러뜨린 위철용의 일갈이 귓가를 강타해왔다.
[방법이 없기는! 염룡등천의 양기는 삿된 기운을 태워버리는 양기의 정수! 본존이 몇 번이나 일러줬거늘! 그 간단한 이치를 깨우치지 못해!]
“그 정도는 저도 잘 안다구요! 하지만. 이놈들을 상대하는 동안 어떻게 저 사람들의 머리를 일일이 어루만져 줍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사방에서 짓쳐들어오는 몬스터들의 공격은 더욱 더 거세어졌다.
내가 사람들을 지키며 분투하는 모습이 퍽 재밌어 보이는지, 여유롭게 팔짱을 낀채로 이쪽을 바라보는 베타라의 입가에 깃든 미소도 더욱 짙어져 갔다.
독룡아로 후방을 노린 몬스터들을 쭉 꿰뚫은 나는 위철용에게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멍청한 놈! 굳이 그들의 몸에 접촉해야할 필요가 있느냐? 멀리서 한방에 내력을 이용해 태워버리면 그만인 것을!]
갑갑하다는 듯 자신의 반투명한 비췻빛 가슴을 탕탕 두드린 위철용은 내게 해법을 일러줬다.
그에게서 해법을 들은 순간, 꽉 막혔던 머릿속이 번쩍 트이는 듯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그러네…? 이걸 왜 진즉 생각하지 못했던거지?
해법을 알아냈으면, 그것을 속히 실행에 옮겨야하는 법!
방법을 떠올린 나는 즉시 거세게 들끓는 내력을 사방으로 퍼뜨리기 시작했다.
내 의지에 따라, 거미줄처럼 퍼진 내력이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의 머리를 감싼 순간!
-화르르륵!
“끄와아앗!”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의 풍성한 머리털이 일제히 화르륵 타오르며, 판에 맞춘 듯한 비명소리가 동시에 울려퍼졌다.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공포에 질려 죽은 동태눈처럼 변했던 그들의 눈빛이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크으읏! 다들 정신챙겨! 산군님께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이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돌격조장은 홀라당 타들어간 머리털을 호쾌하게 털어버리곤 다른 공격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약간의 마력이 깃든 그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공격대원들의 귓가에 파고들자. 불타버린 머리털을 움켜쥔 채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던 공격대원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산군님! 저희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모두! 공수해온 ‘그것’을 장비햇!”
“옙!”
돌격조장이 지시를 받은 공격대원들은 일사분란한 움직임으로 가져온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잘 훈련된 헌터들답게 ‘무언가를’ 꺼내 장비한 그들은 순식간에 몬스터들에게 맞서 진형을 갖추었다.
-철컥!
기계장치 특유의 쇳소리, 코끝을 간질이는 기름냄새.
농후하게 퍼져나가는 진한 마력의 향기!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이 꺼낸 ‘장비’는 일반적인 화염 방사기와 상당히 흡사해 보였다.
농후한 마력의 향기를 풍겨대는 연료통까지 등에 짊어진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향해 화염 방사기의 분출구를 들이밀었다.
-빠지지직!
화염 방사기의 분출구에서 스파크가 튐과 동시에.
새하얀 벼락이 새빨간 불꽃을 타고 몬스터들을 향해 분사되었다.
몬스터들을 향해 분사된 번개가 깃든 불꽃은 삽시간에 놈들의 썩어버린 육신을 까맣게 불태워버렸다.
…일회용 카트리지에 블랙 샐러맨더의 화염샘과 썬더버드의 정수를 섞어넣다니.
오닉스 길드 놈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장비에 쳐바른거지?
[그래. 이제야 좀 도움이 되는 것 같군.]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이는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의 모습에 위철용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돌격조장이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자랑할만 하네.
…장비빨이 좀 지나친 것 같긴 하지만.
-빠지지직!
《끼르르륵!》
화염 방사기의 분출구가 몬스터들에게 향할 때마다.
순식간에 발사된 전하가 놈들의 죽어버린 육신을 뻣뻣하게 마비시켰다.
썬더버드의 정수에서 비롯된 고압의 전하 앞에선 단단한 갑피따윈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화르르륵!
그렇게 굳어버린 몬스터들의 육신엔 곧이어 새빨간 화염이 끼얹어졌다.
고열의 화염을 내뿜는 블랙 샐러맨더의 화염샘에서 비롯된 불꽃이 놈들의 육신을 삽시간에 새까맣게 불태워버렸다.
“1조는 무력화된 민간인들을 보호하고, 2조는 산군님을 엄호해라! 마지막으로 3조는 계속해서 이 벌레 놈들을 태워버렷!”
아직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호기롭게 사나운 이를 드러낸 돌격조장은 휘하 공격대원들에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어느새 3개조로 편성된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은 그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빠지지직!
《끼르르르륵!》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은 얼마지나지 않아, 되살아난 몬스터들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
화염 방사기 뿐만 아니라, 각종 무기들을 챙긴 그들은 슬금슬금 내 쪽으로 모여들어 새로운 진형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방패에…. 원거리 견제는 이만하면 됐고. 돌격조! 플랜 H다! 인간형 몬스터와의 전투를 준비햇!”
-처적! 척! 척!
돌격조장의 외침에 따라, 장비를 바꿔 든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을 나를 에워싼 채.
앞으로 있을 전투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벌레 같은 놈들이 제법 재밌는 장난감을 쓰는구나.》
단단한 방패를 치켜든 채로, 자신을 노려보는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의 모습에
이쪽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살펴보던 베타라의 얼굴에 살짝 불쾌한 감정이 내비쳐졌다.
《쓸만한 재료가 없어서 그런지. 종복들의 상태도 영 별로로군. 뭐, 됐다. 때로는 직접 나설때도 있는 법이지.》
혼자서 변명아닌 변명을 주억거린 베타라는 히죽, 불쾌한 웃음을 입가에 떠올렸다.
여유롭게 끼고 있던 팔짱을 푼 채로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에게 다가서는 놈에게서 마족 특유의 혐오스러운 기운이 농밀하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가련한 필멸자들이여. 어디 한 번 바둥거려봐라. 허나. 죽음은 피하지 못할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