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화
“밑도 끝도 없이 나타나는군.”
나는 미간을 찡그리면서 투덜거렸다.
서민혁이 잠든 뒤로 개미형 몬스터들은 계속해서 이쪽으로 몰려왔다.
그 덕에 반투명한 알들 사이사이엔 조각난 개미형 몬스터들의 시신이 산처럼 쌓여있는 상태였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흔히들 태백의 산군을 일컬어 헌터들의 정점에 선 이들이라 칭하곤 합니다만. 그 명성이 허언이 아니었나 봅니다.”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의 돌격조장은 질렸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계속된 전투로 인해, 곳곳에 엉망으로 널브러져 가쁜 숨을 고르고 있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전투중에 검은 심장의 권능으로 몬스터들에게서 꼬박꼬박 마력을 흡수한 나는, 적어도 그의 눈엔 말도 안 되는 강철 체력의 소유자라고 밖에 보이지 않을 터였다.
“별말씀을. 그저 다른 이들보다 체력이 ‘조금’ 더 좋을 뿐인데요. 뭘.”
돌격조장의 눈빛에 점점 경외의 감정이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으며, 대화의 화두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보다…. 수색을 떠났던 인원들에게선 아직 소식이 들어오진 않았습니까?”
마음 같아선 내가 직접 수색에 나서고 싶었으나.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의 힘으론 개미형 몬스터들의 무식한 물량을 막아낼 수 없었기에.
조금 전, 나와 의견을 나눈 돌격조장은 공격대원들 몇몇을 뽑아 수색대를 편성했었다.
하지만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서 이렇다 할 연락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면목 없습니다. 스마트폰은 물론, 무전기도 먹통인 상황이라….”
돌격조장은 면목이 없다는 듯,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짧게 깎은 뒷머리를 벅벅 긁어대는 그의 온몸에서 미안한 감정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죽치고 앉아있을 수는 없는 노릇인데 말이죠.”
“죄, 죄송합니다. 산군님. 그들이 ‘그것’이 보관된 장비 상자만 찾아온다면. 안심하고 바로 떠나셔도 될 겁니다.”
부유한 것만 따지자면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운 곳이 바로 오닉스 길드였다.
그렇기에 오닉스 길드는 막대한 자금력을 내세워 휘하의 공격대에게 압도적인 물적 지원을 퍼부어댔고.
각 몬스터의 유형에 따라, 특정 몬스터들을 상대하기에 최적화된 장비들을 종류별로 보유하고 있었다.
조금 전 서둘러 수색을 떠난 이들이 찾으러 간 것은, 다름 아닌 곤충형 몬스터들에게 특화된 전투 장비였다.
“곤충형 몬스터처럼 딱딱한 외피를 지닌 놈들을 상대하는데 특화된 장비인 만큼. 그것만 손에 넣는다면 이 밉살스런 개미 놈들 따윈 저희들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장비이길래. 저렇게까지 자신만만한지 모르겠군. 그래.
“그렇습니다. 산군님. 그 전투 장비가 무엇인고 하면. 특수한 기술로 가공한….”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어느새 끼어든 김정현의 입에서 장황한 설명이 튀어나왔다.
끝없이 이어지는 전문용어의 나열에, 나는 슬며시 손을 들어 귀를 후볐다.
*****
“차, 찾아왔습니다! 조장님!”
수색을 떠났던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이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두 번의 전투가 있고 난 뒤였다.
제법 고초를 겪은 모양인지, 그들의 몸에선 지친 기색이 느껴졌으나.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외치는 그들의 표정 하나만큼은 굉장히 밝아 보였다.
“이게. 바로 그….”
-퍼서석!
밝은 표정의 공격대원들이 자신들이 가져온 묵직한 배낭을 내려놓으려던. 그 순간.
곯아 터진 수박이 저절로 쪼개지는 듯, 불쾌한 소리가 묵직하게 울려퍼졌다.
불쾌한 소리의 진원지는 바로, 서민혁의 옆에 놓여있던 반투명한 알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뭐야?”
기이한 소리를 낸 알은, 그냥 보기에도 굉장히 징그러웠다.
본능적인 혐오감을 자극하는 알의 움직임에 미간을 찌푸리며,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자.
반투명한 알 껍질 내부에서 시뻘겋게 타오르는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크으윽!”
무언가가 우윳빛으로 반투명한 알의 껍데기 안에서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놈과 눈이 마주친 모든 이들이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터져나왔다.
포식자에게 눈을 마주친 먹잇감처럼 본능적인 오한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이건…! 말도 안 돼! 내력을 끌어 올려라! 애송이!]
위철용의 입에서 다급한 고함이 터져나왔다.
그의 목소리엔 의문과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푸흐흐. 생각보다. 재밌게 놀 수 있겠구나.》
알 속의 ‘무언가’가 시뻘건 눈을 가늘게 뜨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꽈지직!
순식간에 질긴 알껍질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알껍질을 뚫고 튀어나온 것은 사마귀의 그것처럼 예리하게 날이 서 있는 낫 형태의 앞다리였다.
-쩌적!
낫 모양 앞다리가 밖으로 튀어나온 순간!
그것에 빼곡하게 돋아있는 송곳 형태의 가시가 사방으로 폭발하듯 발사되었다.
화안금정의 힘으로 공격을 감지한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어 송곳을 피했다.
약간 스친 외골격이 살벌한 소리와 함께, 단숨에 쩌적 갈라져 버렸다.
“…서민혁?”
알을 찢고서 몸을 일으키는 ‘무언가’의 전체적인 형태가 내 눈에 들어오자.
내 입에선 얼빠진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놀랍게도 알을 찢고 튀어나온 ‘무언가’의 전체적인 생김새는 그 옆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서민혁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푸흐흐흐. 서민혁이라…. 괜찮은 이름이로군. 그래. 이 몸이 활동할 이름으로 부족함이 없겠어.》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놈은 상당한 덩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인간과 사마귀를 아무렇게나 짓이겨 이어붙인 것처럼 흉측한 생김새였다.
헐벗은 나신은 번들거리는 갑각으로 덮여 있었고, 양팔은 사람의 팔이 아니라 흉측한 가시가 숭숭 돋아있는 사마귀의 그것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놈은 서민혁과 쏙 빼닮은 얼굴을 흉측하게 일그러뜨리며, 재차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뭐야. 이 몸이 가장 먼저 강림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