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화
‘…‘어지간히’ 강한 개체가 아니고서야 정신줄을 놓는 것이 정상이라면서요? 저놈들은 뭔데요?’
[그, 그러게 말이다.]
위철용이 호언했던 것과는 달리.
명백한 적의를 드러낸 채, 한 걸음씩 다가오는 개미형 몬스터들의 겹눈에선 사냥감을 눈앞에 둔 포식자와도 같은 살기가 희미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도, 도망쳐야 해! 놈들은 먼젓번에 상대했던 것들과는 차원이 달라!”
반쯤 패닉에 빠진 돌격조장의 얼굴빛은 아예 시퍼렇게 질려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선두에 서서 용맹하게 몬스터들을 거꾸러뜨리던 그조차 지금은 어린아이처럼 겁을 잔뜩 집어 먹어버린 듯한 모양새였다.
…다르긴 하네.
그래도 위철용의 말이 완전히 엇나간 것은 아니었다.
주변을 가득 메운 개미형 몬스터들의 몸에선 어지간한 3등급 게이트 우두머리와도 같은 흉흉한 기운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어느새 주변을 가득 메워버린 거대한 개미들의 향연에, 나는 어둠달을 까드득 움켜쥐었다.
…일단 생각은 나중에.
어둠달을 움켜쥔 나는 뒤쪽을 힐끗 뒤돌아보았다.
돌격조장을 포함해서 이곳에 난입해온 공격대원들은 도저히 전력으로 써먹을 수 없는 상태.
정신도 온전해 보이지 않았거니와, 하나같이 지치고 겁에 잔뜩 질린 모양새였다.
《따닥! 따닥!》
다 잡은 사냥감이라 여겨서일까?
사방에서 곤충 특유의 단단한 아래턱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이쪽을 바라보는 놈들의 눈빛엔 어디선지 거만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끼기긱! 끽!》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의 거구. 철갑보다 더 단단해 보이는 키틴질 갑각.
인간의 몸통 따윈 순식간에 썽둥 잘라버릴 듯한 강인한 아래턱.
개미형 몬스터들의 생김새는 흉측하기 짝이 없었다.
“시건방진 미물 놈들이.”
흉측한 외형에서 뿜어지는 기운도 범상치 않았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놈들에게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지금 내 눈에 비친 개미 놈들은 그저, 그간의 지루함을 날려줄 활력소에 불과했다.
《키기기기긱!》
내 몸에서 심상치 않은 살기가 아지랑이처럼 음험하게 피어오르자.
선두에 선 개미형 몬스터의 구부러진 더듬이가 움찔 흔들렸다.
곧이어 놈은 턱을 딱딱거리며 뾰족한 괴성을 뿜어냈다. 그것을 신호로 나머지 놈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수십 마리의 개미들이 내 쪽으로 몰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꾸꽈아앙!
아래턱을 휘두르며 달려든 개미 놈들을 반겨준 것은 외골격의 폭풍이었다.
시커먼 어둠을 품은 외골격이 산산이 조각나며 전면을 흉폭하게 휩쓸었다.
휘몰아치는 외골격의 폭풍 속에 듬뿍 주입된 내력이 염룡등천에 묘리에 따라 불꽃이 되어 타올랐다.
《키르르륵!》
갑옷과도 같은 키틴질 갑각에 외골격의 파편이 퍽퍽 틀어박혔다.
그 사이로 드러난 연한 크림빛 속살을 이글거리는 화염이 지글지글 익혀버렸다.
그렇게 외골격과 화염의 폭풍에 휩쓸린 개미형 몬스터의 거대한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생각보다 터프한데?”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긴 하나.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킨 놈들다웠다.
만신창이가 되긴 했지만, 개미형 몬스터들은 여전히 바들거리는 다리로 땅을 굳건히 디딘 채.
위협적으로 턱을 딱딱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비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비웃듯 말려 올려진 입꼬리를 신호로 파괴본능이 용암처럼 들끓기 시작했다.
어둠달에서 미친 듯이 맥동하는 검은 심장이 시커먼 내력을 울컥울컥 내뿜었다.
《키르르륵!》
바로 그 순간. 가까스로 내쪽으로 다가온 개미형 몬스터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날카로운 아래턱들의 향연이 내 몸을 물어뜯기 위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꽈득!
하지만 개미형 몬스터들의 흉험한 턱은 텅 빈 허공을 허무하게 물어뜯을 뿐이었다.
운룡보의 신묘한 묘리에 따라, 놈들의 시야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진 나는 하얗게 웃으며 어둠달을 휘둘렀다.
-피슛! 피슈슛! 피슛!
소용돌이치는 어둠과 타오르는 불꽃에 휘감긴 창날이 개미형 몬스터들의 몸을 유린했다.
섬뜩하게 맥동하는 검은 심장이 놈들의 마력을 게걸스럽게 탐닉했다.
단단한 갑각이 과자처럼 와자작 부서졌다. 연약한 살점과 비릿한 내장이 사방으로 후드득 튀었다.
“마, 말도 안 돼. 저, 저 흉악한 놈들이 저리도 간단히.”
등 뒤에서 돌격조장의 얼떨떨하니 경악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굳이 그쪽을 바라보지 않고 사방에서 밀려드는 개미 놈들을 향해 어둠달을 휘둘렀다.
날카롭게 휘몰아치는 창날 폭풍이 순식간에 놈들을 찢어발겼다.
*****
“너, 너는. 아, 아니. 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주변을 둘러싼 개미형 몬스터들은 순식간에 잘 짓이겨진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더듬더듬 내 정체를 물어오는 돌격조장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경외의 감정이 어려있었다.
역시, 제정신이 아닌 모양인지 그는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다.
“벌써 잊어버리신 겁니까. 조장님? 그분은….”
당황한 김정현이 돌격조장에게 내 신분을 알려주려던 찰나.
장난스레 히죽 웃은 나는 화염이 이글거리는 두 손으로 돌격조장의 양쪽 관자놀이를 콰악 붙잡았다.
-치지직!
“으, 으아아악! 뜨것! 갑자기 이게 뭐 하는 짓…! 어, 어라?”
관자놀이를 통해 머릿속에 침투한 뜨거운 내력이 돌격조장의 머릿속에 깃든 혼란의 장막을 깔끔하게 거두자.
홀라방 불타버린 옆머리를 붙잡으며 비명을 내지른 그의 눈에 점점 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여긴…. 이게 대체 어떻게 된거지?”
정신을 차린 돌격조장은 어리둥절하니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변해버린 그의 태도에 그를 지켜보던 김정현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떠올랐다.
“사, 산군님? 조, 조장님께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
“별거 아닙니다. 정현 씨에게 해드린 것처럼 혼탁하게 왜곡되어버린 정신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드렸을 뿐이죠.”
“정신을 원래대로 돌려주셨다니. 조장님은 분명….”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돌격조장을 바라보던 김정현의 얼굴에 뒤늦게 뭔가를 알아차린 듯한 표정이 떠 올랐다.
“…어쩐지 이상한 소리를 하시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예. 이곳은 ‘정상적인’ 곳과는 거리가 먼 곳이니까요.”
고개를 주억거리는 김정현에게 푸근하게 웃어준 뒤.
나는 혼란에 빠진 모습으로 각양각색의 기행을 저질러 대는 나머지 인원들에게 다가가.
화염에 휘감긴 두 손으로 그들의 옆머리를 아낌없이 홀라당 불태워 줬다.
-끄아아악!
-머, 머리가! 내 소중한 머리털!
내가 머릿속에 주입해준 내력으로 인해, 혼란의 장막이 걷히자.
정신을 차린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의 입에서 각양각색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
“몸은 좀 어떠십니까?”
김정현이 정신을 차린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에게 자초지종 사정을 말하는 사이.
나는 잠시 잊혀져 있던 서민혁에게 다가가 안부를 물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뭔가 기운이 쭉쭉 빠져나가는 게. 자꾸 졸음이….”
내력으로 체내의 독을 제거하기는 했지만, 옆에 있는 알에게 계속해서 무언가를 빼앗기고 있어선지. 서민혁의 창백한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목소리에선 혀를 꽈득 꽈득 깨물며, 졸음을 억지로 참아내는 듯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흐음…. 알을 한번 파괴해보는 건. 어찌 생각하느냐?]
‘글쎼요. 보통 이런 타입은 잘못하면 숙주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치는데.’
서민혁이 걱정된 모양인지. 위철용은 넌지시 알을 파괴해볼 것을 제안했지만.
오랜 경험에 미뤄보자면, 보통 이러한 유형의 기생형 알은 숙주와 긴밀히 연결되어있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정확한 이것의 정확한 정체를 알지 못하는 지금.
서민혁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신중히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피곤하시다면. 잠시 눈을 좀 붙이고 계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