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166화 (166/309)

제166화

“…알?”

어린아이 상반신만 한 알은 반투명한 우윳빛 색을 띠고 있었다.

흐물흐물해 보이는 반투명한 껍질 아래에선 시커먼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흐억…! 이, 이건 도대체!”

끔찍한 광경을 목도한 김정현의 얼굴빛이 허옇게 탈색되었다.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지만. 그는 곧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사방에 널브러진 알들과 반쯤 액체에 절여져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서민혁? 이 양반도 재수 없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 역시 휘말린 모양인지. 서민혁 또한 축축한 액체 속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그의 손엔 액정이 완전히 박살 난 스마트폰이 꼭 쥐어져 있었다.

[다행히 목숨엔 지장이 없어 보인다만.]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액체에 잠겨 있는 서민혁은 겉으로 보기엔 찰과상만을 입은 상태였다.

곤히 잠든 듯 조용히 몸을 들썩이는 그의 표정은 평온하게만 보였다.

‘중요한 건 이 액체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는 거겠죠.’

알 옆에 몸을 뉘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갈색 점액에 장조림 속 달걀처럼 푹 잠겨 있었다.

오랫동안 삭힌 간장 같은 빛깔을 자랑하는 갈색 액체에선 이루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역겨운 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자, 잠시만요! 산군님! 함부로 건들지 마십쇼!”

서민혁의 불운에 헛웃음을 지으며, 그를 역겨운 액체 속에서 빼내려던 찰나.

사람들의 상태를 살펴보던 김정현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만류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예. 섣불리 사람들을 이 액체 속에서 빼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가까이 다가와 허리를 굽힌 김정현은 손가락을 들어 서민혁의 허리 부분을 가리켰다.

“보십쇼. 여기 있는 이들의 허리 부분엔 이상한 관 같은 것이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관 이라구요?”

김정현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 보자.

과연. 아주 가느다란 빨대 같은 관들이 서민혁의 허리에 빽빽이 꽂혀있는 것이 보였다.

어찌나 가느다란 놈인지, 초인적인 시력을 지닌 나조차 자세히 들여다 봐야 겨우 그것이 존재를 인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굳이 알을 사람들의 옆에 배치해 둔 이유가 이거였군요.”

서민혁의 허리에 연결된 관은 그의 옆에 널브러진 알과 연결되어 있었다.

안력을 돋워 자세히 살펴보자. 알이 조금씩 맥동할 때마다.

서민혁의 육신에서 무언가가 쭈욱 빨려 나와 알 쪽으로 조금씩 주입되는 모습이 보였다.

[생식행위라…. 보통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이 왜곡된 미궁에서 정신조차 차리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거늘. 우선 상태를 한번 보자꾸나. 서민혁에게 내공을 불어넣어 보거라.]

위철용의 말대로 서민혁의 손목을 잡고 몸 안에 내공을 주입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눈이 몽롱하게 떠졌다.

흐릿하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본 서민혁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명을 터뜨렸다.

“…어으어? 으어어어!”

휘둥그레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서민혁은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했다.

한 마리 좀비처럼 ‘으어어’ 소리만이 그의 뻣뻣하게 굳은 입에서 흘러나올 뿐이었다.

‘독에 중독된 것 같네요.’

[그래. 독이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거로 봐서 마비 계통의 독인 듯하구나.]

갈색 액체에 마비 성분의 독이 섞여있는 모양이었지만. 다행히 목숨을 잃게하는 성질은 아닌 듯 했다.

나는 그의 가련한 모습에 쯧쯧 혀를 찬 뒤, 염룡등천의 구결을 응용하여 서민혁의 몸 안에 있는 독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끄홧! 뜨거워! 어, 어라? 목소리가….”

서민혁은 몸속을 침범해온 열기에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펄쩍 날뛰었다.

격렬하게 움직인 통에 허리에 꽂힌 관이 출렁거리자. 나는 그의 몸을 힘껏 붙들어 제압했다.

“가만히 있어요. 지금은 움직여 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사, 산군님? 그, 그게 대체 무슨 소리 십니까?”

내 목소리에 담긴 심상치 않은 기운을 읽어서일까?

내 말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날뛰던 서민혁의 몸은 순식간에 뱀 앞이 쥐처럼 뻣뻣하게 얼어붙었다.

“허리 쪽에…. 아. 만져보진 마세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저도 잘 모르니까.”

“그, 그건 또 무슨….”

허리춤에 이물감을 느낀 서민혁이 무의식적으로 허리에 손을 가져가자.

나는 즉시 그의 손을 붙잡고 나직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우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시는게 있습니까?”

공포에 질린 서민혁의 표정에 한도치를 뛰어넘은 혼란이 감지되자.

그의 관심을 돌리기에 위해, 나는 우선 질문을 던졌다.

“그, 그것이….”

패닉으로 뻣뻣하게 굳어버린 서민혁의 입에서 그동안의 기억이 줄줄 흘러나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생 처음보는 미궁 속에 있었고.

주변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 뒤였다.

그렇기에 우선 나와 합류해야 할 것 같아서 조심스레 이동했고.

맞닥트린 거대한 변종 개미에게 습격을 당했다.

“개미라….”

나는 사방에 널브러진 알들을 힐끗 바라보았다.

과연 알들의 생김새는 전체적으로 개미형 몬스터의 그것과 상당히 닮아있었다.

물론. 개미 놈들의 알이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흡수하는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긴 했지만.

“조사 끝났습니다. 산군님. 애석하게도 저희 대원들은 이 녀석이 전부로군요.”

처음 게이트를 진압하려고 들 때만 해도 오닉스 측의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원들의 수는 서른명이 훌쩍 넘는 숫자였다.

거기에 게이트를 안정시키겠답시고 달려온 인원이 총 열 명.

도합 마흔 명에 달했던 인원들은 왜곡된 게이트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버린 채. 지금 내 눈앞엔 두명 밖에 없는 상태였다.

…다른 인원들은 이 왜곡된 미궁 속을 떠돌고 있는 것일까.

서민혁을 잠시 내버려둔 나는 김정현의 인도에 따라, 공격대원의 상태를 살폈다.

푸른빛의 갑옷을 입은 그 역시, 허리춤에 가느다란 관이 연결된 상태였다.

“…저 혹시. 실례가 되지 않으신다면. 이 녀석도 정신을 좀 차리게 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서민혁을 깨운 광경을 눈 여겨 본 탓인지. 김정현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부탁했다.

다른 공격대원들의 행방을 찾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나는 축 늘어진 공격대원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쿠우웅!

바로 그 순간!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쿵쿵 흔들렸다.

동시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숨을 헐떡거리며 이쪽으로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돌격조장님?”

공포에 질린 인원들의 선두엔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의 돌격조장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창백하게 질린 그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몸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체액으로 축축하게 얼룩이 져 있었다.

“너, 너는? 무사했구나! 우리 귀염둥이!”

돌격조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의 김정현을 와락 껴안았다.

“뭐, 뭡니까? 귀염둥이라니!”

졸지에 꼭 껴안긴 곰돌이 같은 모습이 된 김정현은 얼굴이 시뻘개진 채. 따지듯 물었다.

돌격조장 역시,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은 모양인지. 살짝 떨어진 채. 김정현의 얼굴을 확인한 돌격조장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혜수 씨가 아니었어? 뭐야! 니놈이 왜 내 품에 안겨있는 거냐!”

눈앞에서 촌극이 벌어지는 사이.

쿵쿵거리는 진동이 강해졌다. 돌격조장의 표정이 창백해지자.

나는 고개를 틀어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쿠웅! 쿠웅! 쿠웅!

소리의 진원지는 단순히 한 곳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쿵쿵거리는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노, 놈들이다!”

공포에 질린 돌격조장의 비명소리와 함께.

동공과 이어지는 길에서 수십 마리의 거대 개미가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사방에서 들이닥친 놈들은 번들거리는 겹눈을 뒤룩거리며 순식간에 주변을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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