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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162화 (162/309)

제162화

이제 얼음밖에 남지 않은 커피를 쪼로록 빨아들였다.

점심시간이 끝나서 그런지, 로비에서 카페로 이어지는 통로는 인적 하나 없이 한가로이 평온한 기운만이 느껴졌다.

“끄으응…. 것보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네.”

생각만큼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아서인지.

다짜고짜 오닉스 길드장과의 독대를 청한 강태백은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리 달갑지 않은 지루한 평온 속에서 나는 길게 기지개를 켰다.

-우우웅!

그렇게 기지개를 켜고 있으려던 찰나. 주머니에 집어넣었던 스마트폰이 다시 진동했다.

혹시 강태백이 연락한 건가 싶어 급하게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지만.

스마트폰에 떠오른 이의 이름은 바로, 서민혁이었다.

“서 기사님? 무슨 일입니까?”

-크, 큰일입니다! 산군님! 게, 게이…! 크읏!

서민혁의 목소리엔 지루한 평온을 박살 낼만큼 다급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씁이십니까?”

-바, 밖을 보십쇼! 으윽!

서민혁이 누군가에게 부딪혀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버렸는지.

요란한 소음과 함께, 스마트폰 너머로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귓가를 따갑게 파고 들어오는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는 나는 전화를 끊고 서민혁의 마지막 말대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창밖의 풍경이 내 눈에 들어온 순간.

나는 서민혁이 내게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즉시 깨달았다.

평온하기만 했던 푸르른 하늘엔 어느새 보랏빛 균열이 쩌저적 갈라져 있었다.

-왜애애앵!

바깥의 상태를 확인하자, 건물 내부에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사람들의 다급한 발소리, 불안과 패닉에 휩싸인 비명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왔다.

“자! 자! 당황하지 말고! 훈련받은 대로 하세요!”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 혼란 속에서 유난히 화려한 푸른색 갑옷을 입은 헌터들이 등장해.

혼란에 빠진 사람들을 인솔하며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상으로 대한민국의 공격대 중 저렇게 요란한 갑옷을 입고 다니는 공격대는 오닉스 길드의 주력 공격대 중 하나인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가 유일했다.

“사원들 대피가 끝나는 대로. 플랜 A에 돌입한다. 준비해!”

“옛!”

푸른 갑옷을 입은 헌터들 사이에 유독 눈에 띄는 거구의 남자.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의 공격대장 황윤형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지휘를 시작하자.

우렁찬 대답 소리와 함께, 사원들의 대피를 끝마친 공격대원들이 우르르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소문의 ‘황태자’ 황윤형을 이곳에서 볼 줄이야….

회귀 전의 기억에 의하면.

황윤형은 앞으로 1년 후 시점에 ‘불우한’ 사고로 게이트 내부에서 실종되는 인물이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휘하의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를 이끌고 게이트 내부에서 실종되어버렸기에, 그의 실력을 감상할 틈은 없었지만….

[흐응. 한때 성좌들 사이에서 뜨거웠던 놈답게. 확실히 느껴지는 기세가 보통이 아니로구나.]

위철용의 말대로 황윤형과 팬텀 사파이어 공격대에게서 느껴지는 기도가 범상치 않았다.

얼핏 보기엔 국내 최강의 공격대라는 태백 공격대 그 이상이었다.

‘그러게요. 이만한 실력자들이 게이트 내부에서 실종처리 되었다니….’

[그때는 그저 욕심이 과했다고 생각했다만…. 요즘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아하니. 이들의 ‘실종’도 뭔가 숨겨진 사연이 있지 않겠느냐.]

“외부인이십니까? 죄송합니다만. 본사 방침에 따라. 긴급상황시 사내의 모든 인원들은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대피소에 대피해 계셔야 합니다.”

혼란을 틈타 밖으로 나가려고 한 순간.

앞에서 휘하 공격대원들을 지휘하던 황윤형이 내쪽으로 다가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뭐 규정상 그리하여야 합니다만. 그쪽은 ‘평범한’ 방문객이 아니시군요.”

역시 헌터는 헌터를 알아보는 법일까?

내 앞을 막아선 황윤형의 암석같은 얼굴에 순간적으로 이채가 감돌았다.

그의 시선이 묘하게 호전적으로 변해가기 시작하자. 피식 웃은 나는 푹 눌러쓴 후드를 벗었다.

“…당신은 태백의 그 얼굴천….”

“예. 설용호입니다. 모종의 일이 있어 잠시 들렀습니다만. 일이 소란스러워진 모양이군요.”

황윤형의 입에서 민망한 별명이 튀어나오려고하자.

재빨리 중간에 그의 말을 끊은 나는 그에게 정식으로 인사하며, 악수를 청했다.

“흐음…. 조금 전 찾아온 ‘불편한’ 방문객 분을 수행하고 계셨던 모양이로군요. 이해합니다.”

대충 눈치를 챈 모양인지, 황윤형은 빙긋 웃으며 내 손을 맞잡았다.

붙잡은 손에서 호승심에 불타는 헌터 특유의 강인한 악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해해주셨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나 역시,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마주잡은 손에 악력을 가하기 시작하자, 황윤형의 얼굴에 깃든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하하하. 역시. 태백의 산군으로 군림하는 분답게. 보통이 아니신 모양입니다. 그럼. 사원들의 대피가 끝났다니. 저는 사태를 수습하러 가보겠습니다.”

황윤형의 목소리는 호탕하니 호의적이었지만.

그 속엔 자신의 먹잇감을 가로채지 말라는 경고가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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