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화
“오닉스 길드와의 협력이라니··.”
오닉스 길드
현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대형 길드 중 하나이자.
각종 이권 문제로 얽혀있는 대형 길드 중에서도 유일하게 태백 길드와 접점이 별로 없었던 길드였다.
[오닉스 길드라…. 강태백이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정도라면, 상당히 상황이 좋지 않나 보군.]
내 혼잣말을 들은 위철용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역시 한때 내 눈을 통해, 이쪽 세계를 지켜봤기 때문인지.
강태백과 오닉스 길드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 대충 알고 있는 눈치였다.
“강태백이 한때 가장 혐오하던 사람이 바로 오닉스 길드의 길드장. 이용재이긴 했죠. 자기는 맨손으로 노력해서 길드를 일구었는데. 그쪽은 헝그리 정신이 없다나 뭐라나.”
강태백이 오닉스 길드를 불편하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길드들이 길드장 개인의 무력을 바탕으로 맨손으로 일궈낸 곳이라면.
오닉스 길드는 대한민국을 제패했던 거대기업 ‘오닉스’에서 막대한 자본을 쏟아내어 ‘만들어낸’ 길드였으니까.
[흐음. 그런 속사정이 있었다면야. 충분히 고까울만 하지.]
“…예?”
위철용은 강태백의 불만이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곧이어 이제껏 그가 ‘강태백’이란 남자를 지칭했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호의적인 목소리가 위철용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보다. 이곳에 그렇게 꼴같잖은 복장을 하고 앉아있는 이유가 그것 때문인 게냐?]
“뭐…. 그렇죠.”
멋쩍은 목소리로 화제를 돌린 위철용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오닉스 길드와의 동맹을 선언한 강태백이 다짜고짜 오닉스 길드의 본사 건물로 향해버렸기에.
신지현의 제안에 따라 호위 역으로 따라붙은 나는, 지금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채로 오닉스 길드 본사 건물 1층의 카페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오닉스 길드와 이렇게 갑자기 엮일 줄은 몰랐군.
괜히 트집을 잡으려드는 위철용에게 어색한 미소롤 답한 뒤.
나는 눈앞에 놓인 커피를 빨대로 휘휘 저으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로비 쪽을 바라보았다.
오닉스 길드….
회귀 전까지만 해도 나와 그렇게 큰 연관이 없었던 곳이었기에, 내가 이곳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그야말로 단편적인 것들뿐이었다.
한때, 세계 굴지의 대기업이었던 ‘오닉스’ 그중에서도 가장 노른자였던 ‘오닉스 전자’가 모체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엄청난 지원을 받았던 후계자, 황태용이 튜토리얼을 통과해 오닉스 기업의 모든 것을 이어받고 ‘기업’ 오닉스를 ‘길드’로 변화시켰다는 것.
마지막으로 굳이 하나 더 덧붙이자면, 먼 훗날 헌터 랭킹 4위의 ‘집행자’ 황지아라는 걸출한 인재를 배출했다는 것 정도?
내가 알고 있는 오닉스 길드에 대한 정보는 이 정도가 전부였다.
회귀 전의 정보를 아무리 쥐어 짜봐도, 강태백이 굳이 오닉스 길드에 쳐들어간 이유를 지금의 나로썬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지만, 강태백은 어째서 오닉스 길드와의 연합을 노리는 걸까요?”
[그걸 내가 어찌 알겠느냐. 본존 역시, 당시엔 다른 성좌 놈들처럼 필멸의 존재들의 삶에 관심조차 두질 않았거늘.]
“…뭐 그렇긴 합니다만. 이것 참.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강태백은 그 실력만큼이나 자존심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불같은 성격이었다.
그랬던 그가, 아무리 수세에 몰렸다지만 평소에 공공연하게 욕을 하고 다니던 길드를 굳이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이유를 지금의 나로선 알 수가 없었다.
-쪼르륵
계속해서 흘러가는 시간 사이에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자.
나는 애꿎은 빨대만을 질겅거리며, 얼음만 남아버린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우우웅! 우우웅!
그렇게 시간을 죽이고 있으려니.
품속 깊은 곳에 넣어둔 스마트폰이 웅웅 진동하기 시작했다.
“…신지현?”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화면을 확인해보자.
큼지막한 화면엔 신지현의 연락처가 자신의 존재감을 강렬히 어필하고 있었다.
나는 눌러 쓴 후드가 벗겨질세라 조심스레 스마트폰을 귓가에 가져갔다.
“신 팀장님?”
-여보세요. 호위 업무는 잘 수행하고 있으신가요?
“호위랄게 있겠습니까. 길드장님께선 이미 막무가내로 오닉스 길드장실로 쳐들어가신 상태입니다. 독대를 요청하셨기에 저는 지금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구요.”
-그래요? 마침 잘됐네요. 길드장님 몰래 전해드릴 내용이 있는데….
내게서 강태백의 행방을 전해 들은 신지현은 돌연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변하자. 나 역시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예. 말씀하셔도 될 겁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거든요.”
-길드장님께서 오닉스 길드에 찾아가신대서 조사를 좀 해봤거든요? 오닉스 길드에 대해 조사하다가 어찌어찌 오닉스 길드의 길드장 황태용의 개인정보를 좀 열람해봤는데….
…여기서 갑자기 황태용의 개인정보가 튀어나온다고?
설마 강태백이 황태용의 숨겨진 동생이라던가 하는 막장 드라마급 전개는 아니겠지?
-황태용의 이복형이자, 오닉스 기업의 황씨 일가 중 오닉스 중공업을 맡던 인물의 이름이 ‘황태백’이더라구요.
…어째 불길한 예감은 빗나간 적이 없니.
어라? 잠깐만. 오닉스 중공업이라고? 거긴 분명히….
“오닉스 중공업이라면, 대격변 당시 몬스터의 습격에 참변을 당했던 곳 아닙니까? 그리고 황태백이라는 인물은 분명히 그때 사망했다고 들었는데요.”
-…예. 세간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었지만. 아무래도 오닉스 기업의 후계 관련해서 복잡한 뒷사정이 얽혀있었나 봐요.
******
신지현과의 통화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길게 이어졌다.
강태백과 황태용의 관계부터, 오닉스 길드에 얽힌 비사를 듣고 있으려니.
어느새 스마트폰 배터리가 다 되어 전원이 나가버렸다.
“망할. 충전을 좀 하고 올 걸 그랬어.”
전원이 나간 스마트폰의 전원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눌러봤지만.
새까만 화면에 제조사의 로고가 출력된 뒤, 금방 꺼질 뿐. 스마트폰은 다시 켜지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얽혀있을 줄은 몰랐군.”
신지현이 조사한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오닉스 중공업의 사장 황태백은 오닉스 그룹의 권력 암투에 휘말려, 그를 추종하는 세력째로 숙청당해 버렸다.
하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살아난 ‘황태백’ 아니, 강태백은 헌터로 각성해 자신만의 세력을 새로이 키워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