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화
“여긴…. 어딘가? 나는….”
침상 위에서 정신을 차린 박정욱은 머리를 감싸쥐곤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강다희의 말대로 의식이 성공적으로 끝난 모양인지, 다행히 그의 입에선 정상적으로 ‘철옹성’ 박정욱 특유의 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선배님.”
의식이 끝난 이후, 박정욱의 상태를 살펴보던 나는 정신을 차린 그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다.
“자네는…! 크윽! 그대가 이번에도 날 구했군!”
정신을 차린 박정욱은 나를 보자마자 대뜸, 호쾌한 포옹을 시도해왔다.
비쩍 마른 몸이 나를 덮쳐오며, 동시에 쿰쿰한 체취와 씁쓸한 약 냄새가 내 후각을 공격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태백이! 내가 자네만 믿고 있었지!”
…뭐여?
놀랍게도 박정욱의 입에선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소리가 흘러나왔다.
앙상한 손으로 내 등을 팡팡 두드리는 그는 짓무른 눈에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태백 길드의 길드장. ‘강태백’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태백이라뇨?”
“이사람아! 이 사나이…. 내 이름이 뭐였더라? 그래! 박중환! 이 박중환이 아무리 막돼먹었다지만! 친우의 얼굴마저 잊어먹을 만큼 무식한 놈은 아닐세!”
…아니, 친우의 얼굴 문제가 아니라. 자아 정체성 그 자체를 잃어버리신 것 같은데.
“그래! 설태백이 자네를 내가 어찌 잊겠는가! 비록 내 후배이긴 하나. 나와 수많은 사선을 헤쳐오며 나이를 떠난 친우가 된 자네를 내가 어찌 잊겠는가!”
아뇨. 훌륭하게 잊어먹으신 것 같습니다만.
그보다 설태백이라는 해괴한 이름은 대체 뭔데?
내게서 떨어진 박정욱은 계속해서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짓무른 눈에서 눈물이 주루륵 흘러나오는 모습으로 보아하니, 그가 시답지 않는 농담 따위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 괴물과 융합되서도, 그 사교도놈에게 고문을 당하면서도…. 으응?”
호탕한 목소리로 기이한 소리를 늘어놓던 박정욱의 표정이 갑자기 와락 일그러졌다.
친근한 감정을 담아 나를 바라보던 그의 따뜻한 눈빛이 점점 혼란의 빛으로 물들어갔다.
“나, 나는? 바, 박정욱? 이, 이중환? 크으윽!”
급기야 박정욱의 얼굴에 나무뿌리처럼 흉측한 힘줄이 꾸드득 돋아났다.그의 팔뚝에 연결된 링거 바늘에 새하얀 서리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박정욱의 입에서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크아앙!”
“선배님? 진정하세요! 의료팀! 의료팀!”
“지, 진정하세요! 산군님! 가, 간호사! 진정제!”
박정욱의 몸에서 당장이라도 날뛸 듯 흉폭한 기세가 흘러나오자.
나는 즉시 그의 몸을 붙들곤 대기중인 의료진들을 소리쳐 불렀다.
그러자 멀리서 긴장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던 의료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나와 같이 박정욱의 몸을 콰악 붙잡았다.
“크아아악! 놔라! 이 사악한 사교도 놈들아! 크헉!”
“저한테 맡기세요! 의사 아저씨! 싸부님! 절대안정! 굿 나잇 넥 브레이커!”
박정욱의 눈에 광기가 차오른 그 순간!
쿵쿵거리며 달려온 김혜옥이 비호처럼 달려들어 그의 목을 순식간에 꽈득 꺾어버렸다.
목이 완전히 180도 방향으로 돌아가버린 박정욱은 단말마와 함께, 다시 의식을 잃어버렸다.
*****
“그래서.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김혜옥이 박정욱을 진정시킨 뒤.
나는 다른 설악 공격대원들의 상태를 관찰중이던 강다희를 불러, 그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
“무슨일이죠? 혹시, 뭔가 기억에 문제가 생기신 건가요? 지난번에 말씀 드렸듯. 기억에 ‘약간’의 혼선이 생길 수는….”
강다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평온하게 잠든 박정욱을 살펴보았다.
곧이어 음산한 주문을 읊조리며 박정욱의 상태를 살피던 강다흐의 표정이 점점 창백하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돼! 여, 영혼이 뒤섞였어요!”
“…뭐라고?”
“영혼이 뒤섞였어요! 여기, 영혼석을 박아넣은 부위에 누군가 다른 이의 영혼이 스며 들어갔나봐요!”
강다희는 대단히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지둥 박정욱의 상태를 살폈다.
영혼석을 박아넣었던 심장어림을 살펴보던 그녀의 안색이 완전히 파랗게 질렸다.
“이, 이분에게 영혼석을 박아넣으신 분이…. 헌터님 맞죠? 호, 혹시. 최근에 강한 원념을 지닌 영혼과 조우했던 적이 있나요?”
“강한 원한을 지닌 영혼이라니. 내가 그런 사악한 존재와…. 이런!”
강다희의 말에 기억을 더듬은 순간.
머릿속에 몬스터로 개조당했던 이중환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찌나 원한이 강력했는지, 그는 육신이 소멸한 상태에서도 원혼의 형태로 이 세상에 남아있었다.
…설마. 이중환에게서 내가 사념을 흡수한 것 때문인가?
“있나보군요.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 미리 주의점을 알려드렸어야 하는건데.”
“그렇다는 것은 즉, 이중환의 영혼이 남긴 사념이 선배님에게 빨려들어갔다는 건가?”
“네…. 저로서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
나는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평온하게 잠든 박정욱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강다희의 말처럼, 이중환의 영혼 중 일부가 섞여들어간 탓에 박정욱은 엄청난 혼란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
“그러니까. 내가 누구라고?”
정신을 차린 박정욱은 못 들을 소릴 들었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는 멍한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믿고 안믿고는 선배님 자유입니다만…. 그런 사정이 있었습니다.”
“크윽. 나는 분명 이중환…. 아니 박정욱…. 이럴수가. 머릿속이 엉망이 된 것 같군.”
박정욱은 침음성을 토하며.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