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화
“저보고 영혼석을…. 정화해 달라구요?”
내 요청에 따라, 사무실 구석의 테이블로 끌려온 강다희는 못들을 소리를 들었다는 듯.
눈을 크게 뜬 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우리 사이의 ‘거래’는 이미 끝나지 않았었나요?”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지. 그쪽에서 대가로 제공했던 게이트 중 하나는 그쪽 ‘배교자’들 손에 의해 완전히 털려버린 상태였거든.”
김준영과 적대하는 조건으로 강다희가 내게 제시했던 대가는 분명, ‘세 개’의 게이트였다.
하지만 다른 두 곳과는 달리, 인천 차이나타운 쪽의 게이트는 김준영 세력에게 깡그리 털려버린 상태였기에.
나는 뻔뻔한 표정으로 강다희에게 나머지 ‘대가’를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하! 산군이라는 분이 이렇게까지 제멋대로 나오실 줄이야! 죽으려던 저를 멋대로 살려놓고, 멋대로 이렇게 억지를 부리시다니….”
내 요구를 들은 강다희의 표정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고양이처럼 표독스럽게 변했다.
사교도 단체를 이끌었던 시절의 깜냥이 아직은 남아있다고 믿는 모양인지,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엔 악인 집단 우두머리 특유의 오만한 카리스마가 깃들어 있….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시라니까.”
…지 않았다.
카리스마는 개뿔, 어느새 강다희의 얼굴엔 표독스러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녀와도 같은 수줍은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수줍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린 그녀는 복숭앗빛으로 달아오른 얼굴로 내게 뜨뜻한 시선을 보내왔다.
“크흠. 그래서 그쪽 교단의 의식에 당해버린 이들의 영혼을 정화할 방법은 있나?”
나를 바라보는 강다희의 시선이 점점 뜨거워지자.
민망함과 살의가 동시에 치밀어 오른 나는 헛기침과 함께, 본론을 꺼냈다.
그리곤 품속에서 박정욱과 설악 공격대원들의 영혼이 담긴 영혼석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잠시만요. 한번 확인해 볼게요.”
내게서 영혼석을 받아든 강다희는 진중한 표정으로 꼼꼼히 영혼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길쭉한 타원형 모양의 보석을 이리저리 불빛에 비춰보며 면밀히 관찰하던 그녀의 미간이 조금씩 찌푸려졌다.
“기본적으로는 『리빙아머 제작의식』 기법과 비슷하게 오염되어 있긴 한데요. 으음…. 『망령화』에 『영혼 융합』에…. 여러 가지 기법으로 다양하게, 복합적으로 오염되어 있는 것 같네요.”
놀랍게도 강다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엔 제대로된 확신이 서 있지 않았다.
잔뜩 찌푸린 그녀의 입에선 다분히 추측에 가까운 말들만이 툭툭 튀어나오고 있었다.
…체체파리 클랜의 정점이었던 강다희마저 확신하지 못한다고?
도대체 김준영은 어떤 방법을 사용했길래, 그녀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튀어나오는 거지?
“그래도 나머지 영혼석들은 어떻게 어떻게 다시 정화할 방법이 보이지만. 문제는 이거에요.”
영혼석들을 뒤적거린 강다희는 그중에서 유독 어두운 보라색으로 물든 것을 집어 들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녀가 집어든 영혼석은 바로, 박정욱의 영혼이 담겨 있는 영혼석이었다.
“유독 이 영혼석은 저희 교단에서도 금기시하는 『영혼 비틀기』에 『사상개조』까지 더해져 있어요. 게다가….”
“결론만 말해. 그래서 너로서도 그 영혼석만은 정화할 수 없는 건가?”
강다희의 입에서 비관적인 이야기가 암울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이를 부드득 간 나는 그녀의 말을 중간에 뚝 끊곤, 결론만을 캐물었다.
“아뇨? 애초에 ‘문제가 있다.’라고 했지. ‘불가능’ 하다곤 한 적이 없는데요?”
심상치 않은 기세를 내뿜는 내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강다희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뭐?”
“그 배교자 놈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긴 했지만, 뿌리는 엄연히 체체파리 클랜에 두고 있거든요. 적절한 재료만 있다면 이들의 영혼을 즉시 정화하는 게 가능해요.”
…가능하다면, 도대체 왜 문제니 뭐니 하면서 시간을 끌었대?
말을 마친 강다희는 설악 공격대원들의 영혼이 담긴 영혼석들을 한곳에 모았다.
그리곤 그녀는 유난히 어두운색으로 물든 박정욱의 영혼석을 따로 분류해 옆으로 데구르르 굴렸다.
“다만, 문제가 있다고 말씀드렸듯. 이 영혼석만큼은 약간의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약간의 문제라고?”
“내부에 담긴 영혼의 자아가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이기에, 이걸 정화한다고 해서 이 영혼의 기억과 자아가 완전히 돌아올 거란 보장이 없어요.”
강다희는 태연한 표정으로 엄청난 소리를 늘어놓았다.
한 사람의 운명이 잘 못 될 수도 있다는 소리를 태연하게 늘어놓는 그녀의 평온한 표정에서.
나는 정상인과는 상당히 많이 어긋난, 그녀 특유의 비틀린 도덕관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자아가 완전히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게, 고작 ‘약간의’ 문제라고?
“그게 약간의 문제인가?”
“어머나….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으실 정도까진 아니에요. 뭐, 기억이 대략 한 달 가까이 날아간다든지, 아니면 기억이 조금 왜곡되어 성격이 조금 뒤틀린다든지…. 대충 그 정도?”
-쿠우웅!
강다희의 입에서 계속 어딘지 비틀린 소리가 흘러나오자.
별안간 묵직한 무언가가 바닥에 내던져지는, 심상치 않은 소리가 사무실 내부에 울려 퍼졌다.
사무실 바닥에 꼼꼼하게 배치해둔 매트마저 그 엄청난 충격을 전부 흡수하지 못했을 정도로 굉장한 충격음이었다.
엄청난 굉음에 순간, 강다희의 시선이 그쪽으로 홱 돌아갔다.
“강다희 씨! 어떻게 사람이 그러실 수 있어요?”
…지금까지 다 듣고 있었어?
잔뜩 흥분한 김혜옥은 쒸익쒸익 콧바람을 내뿜으며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쇠심줄보다 질긴 힘줄이 툭툭 튀어나온 거대한 손이 강다희의 어깨를 콰악 붙들자.
그녀의 가녀린 몸이 마치 오한이라도 든 듯 와들와들 떨렸다.
“어떻게! 사람의! 운명을! 그렇게 쉽게 말해욧! 다시 ‘특별 면담’ 하실래욧!”
분노로 와락 일그러진 김혜옥의 입에서 이글거리는 불꽃과도 같은 협박이 튀어나왔다.
강다희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나조차 순간적으로 말을 잊을 정도로 강렬한 기세가 김혜옥의 몸에서 활화산처럼 폭발적으로 터져나왔다.
“어, 어머머…. 오, 오해에요. 그, 그래서 제가 그에 대한 해결법을 지금 막 헌터님께 말해드리려던 참이었답니다.”
도대체 그 ‘특별 면담’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천하의 그 강다희마저 얼굴이 순간적으로 공포에 허옇게 질렸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고양이와 같은 표정을 한 그녀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변명아닌 변명을 해대기 시작했다.
“후우…. 지켜보고 있겠어요. 싸부님. 끼어들어서 죄송해요.”
“아, 아니. 뭐…. 괜찮아.”
내게 꾸벅 고개를 숙인 김혜옥은 강다희에게 뭐라 속삭여준 뒤.
다시 원래의 자리에 돌아가 인사 팀원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흐. 흐아아…. 죄, 죄송해요. 트, 특별 면담만은 제발….”
…도대체 뭔 수를 썼길래, 그 악독하고 자존심 강한 사교도 교주를 이 지경으로 완벽하게 조교해놨는지 모르겠군.
김혜옥의 속삭임을 들은 강다희의 얼굴이 마치 막 만들어진 눈사람처럼 허옇게 질렸다.
사시나무처럼 파들파들 떨리는 몸과 정신을 애써 추스른 그녀는 내게 결론부터 말하기 시작했다.
“마, 말씀드렸듯이. 약간의 문제는 있지만. 제, 제가 어떻게든 이분들을 정화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