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까드드득!
뼈와 살을 가르는 파육음 대신, 정적을 갈라 찢는 금속의 비명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음흉한 빛을 흩뿌리던 김준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던 그의 입가가 처음으로 씰룩거리며 일그러졌다.
《정말이지…. 귀찮을 만큼 잔재주가 많으신 분이로군요.》
어느새 내 옆엔 외골격으로 이뤄진 황금색 팔 두 개가 둥둥 떠 있었다.
찬란한 금빛을 흩뿌리는 황금빛 팔엔 음울한 보랏빛의 금속 건틀릿이 단단히 붙잡혀 있었다.
“글쎄? ‘잔재주’ 치곤 제법 쓸만해 보이지 않아?”
김준영의 얼굴이 불쾌한 감정을 담고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하자.
나는 놈에게 입꼬리를 묘하게 비튼 비웃음으로 히죽 화답을 해 주었다.
《크으윽! 불완전한 필멸자 따위가 감힛!》
내 입가에 깃든 비웃음과 마주한 김준영의 얼굴이 평정심을 잃고 와락 일그러졌다.
눈에서 보랏빛 안광을 뿜어낸 놈의 양팔에서 우드득 쇠심줄과도 같은 굵은 힘줄이 튀어나왔다.
《끼야아아악!》
힘줄이 튀어나온 김준영의 양팔이 무서운 괴력을 발휘하자.
황금빛 팔에 붙잡힌 금속 건틀릿이 끔찍한 귀곡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끼긱! 끼기긱!
귀곡성을 토해낸 금속 건틀릿은 힘껏 발버둥 치며, 처연한 금속의 비명을 질러댔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 곁에 둥둥 떠 있는 두 개의 황금빛 팔은 마치 먹잇감을 으스러뜨리는 아나콘다처럼 굳건하게 김준영의 금속 건틀릿을 붙들고 있었다.
-쩌저적!
곧이어 두 개의 황금빛 팔에서 신비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단단한 금속이 꽈직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붙잡힌 금속 건틀릿이 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가, 감히! 그분의 은총과 권능이 담긴 귀염둥이를…!》
부서져버린 금속 건틀릿은 먼젓번처럼 쉽게 재생하지 못했다.
신비한 기운에 노출된 금속 건틀릿들은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 채, 회색빛으로 변해버렸다.
두 개의 건틀릿이 그렇게 무력화되자. 조금씩 동요하던 김준영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이라는 감정이 깃들었다.
[본존의 능력을 이런 방식으로 써먹을 줄이야…. 애송이, 네놈의 잔머리는 참으로 여간내기가 아니로구나.]
내 곁에 유령처럼 둥둥 떠 있는 황금빛 팔의 정체는 바로, 위철용이 빙의된 외골격!
얼마 전, 위철용이 개화해 낸 능력이었던 『빙의』를 즉흥적으로 응용해 낸 결과물이었다.
위철용의 『빙의』는 같은 심상 세계를 공유하는 내 몸의 신체 부위에 위철용 본인이 일시적으로 깃들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외골격이란 것은 본디, 특성 트리에 각인된 혼의 기억으로 빚어낸 것!
혼의 기억에 따라, 숙련된 헌터들은 외골격은 일종의 신체 부위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나는 위철용을 내 양팔 모양을 본뜬 외골격에 빙의시켰다.
그 결과는 보시다시피.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했고 말이지.
“어라? 부서져 버렸네? 귀염둥이라더니 조금 비싼 재질로 만들지 그랬어?”
무의 정점인 ‘천마’의 자리를 마작으로 딴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위철용은 외골격에 깃든 약간의 내력만을 이용해, 단단한 금속 건틀릿을 내부에서부터 완전히 파괴시켜버렸다.
아연한 표정으로 부서진 금속 건틀릿을 바라보는 김준영에게 나는 도발하듯 히죽 웃어주었다.
《감히, 감히! 필멸자 따위가 내게 이를 드러내!》
김준영의 입에서 폭풍과도 같은 고함이 터져 나오자, 지독한 살기가 사방에 쫙 퍼졌다.
보랏빛 금속 건틀릿들이 놈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심상치 않은 기운을 흩뿌렸다.
김준영의 거미 모양 하반신을 지탱 중인 여덟 개의 다리가 지반을 꽈드득 파고 들어갔다.
-투둑! 투두둑!
《크르르르. 좋다! 이제 이따위 유치한 장난질은 그만두도록 하지!》
허공을 유영하던 금속 건틀릿이 김준영의 몸을 파고들었다.
그러자 돌조각이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김준영의 전신에 거미줄과도 같은 금이 퍼져나가더니. 놈의 육신이 또다시 변이하기 시작했다.
《네놈의 혀를 뽑아, 시건방지게 지껄였던 망언들을 후회하도록 만들어주마.》
김준영의 보랏빛 거미형 육체가 부서져 나간 곳에서 기묘한 형태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먼젓번 장현태처럼 마치 가면이라도 쓴 양, 눈을 제외한 이목구비가 없는 매끈한 얼굴!
인간의 상반신에 거미의 하반신을 적절하게 뒤섞은 외형은 이제 완연한 인간형이 되어있었다.
불교 신화에 나오는 아수라처럼 여덟 개의 팔을 휘두른 김준영은 눈에서 보랏빛 귀화를 흩뿌리며 내게 으르렁거렸다.
-콰앙!
온몸을 덮쳐오는 독기의 폭풍에 나는 발에 내력을 집중해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내력이 집중된 발이 바닥을 힘껏 박차자, 박살난 대리석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쿠르르륵!
공중에 떠오른 나는 어둠달에 내력을 집중했다.
어둠달의 창날이 시커먼 내력과 시뻘건 화염을 머금었다.
내 옆에 둥실 떠오른 황금빛 팔이 황금빛 기운을 머금고 눈부신 금빛 섬광을 흩뿌렸다.
《고작 그따위 하찮은 잔재주로 필멸의 탈을 집어던진 이 몸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더냐!》
비웃음을 흘러낸 김준영은 여덟 개의 팔을 휘둘러, 내 공격에 대비했다.
보랏빛 기운이 어른거리는 여덟 개의 창백한 팔이 마치 보호막처럼 그의 상반신을 방어했다.
하지만….
-꾸꽈아아앙!
김준영에게 작렬한 나와 위철용의 합동 공격은 놈이 생각한 것 이상의 위력을 품고 있었다.
단 일격으로 김준영의 상반신을 감싼 여덟 개의 팔 중 네 개가 도자기처럼 부서져 버렸다.
《···? 크아아악!》
허무하게 파사삭 부서져 내린 팔에 당황한 김준영은 신음을 흘리며, 자신의 팔을 재생하려 들었지만.
애석하게도 놈의 몸속에 침투한 위철용의 기운은 놈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대단했다.
꾸물럭거리며 재생을 시작한 팔들이 오히려 유리조각처럼 뻣뻣하게 굳어지더니, 이내 와장창 부서져버렸다.
《도, 도대체 뭐냐! 네놈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다니!》
-쩌저적!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다른 분에게 ‘그런’ 능력이 있지만.
김준영의 몸속에 침투한 위철용의 내력은 계속해서 놈의 몸을 유린하며 파괴해 나갔다.
네 개의 팔을 분쇄헀던 충격이 내부까지 파고들어오자. 김준영은 결연한 눈빛을 흘리더니.
스스로 자신의 팔 두 개를 썽둥 잘라냈다.
《크으읏 젠장!》
김준영이 욕지기를 내뱉으며, 내게 다시 살의를 보내오려던 찰나!
-투확!
김준영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충전이 완료된 약식 암룡출동이었다.
팔꿈치 부분의 외골격이 시커멓게 물들며, 화염과 내력을 머금고 놈에게 날아들었다.
《쯧!》
빈틈을 노려, 절묘한 타이밍에 발사했지만.
욕설을 내뱉은 김준영은 기이한 각도로 몸을 숙여, 가까스로 내 공격을 회피해렸다.
약식 암룡출동을 피해낸 놈이 반격을 준비하려는 그 순간!
-투화학!
내 옆에 둥둥 떠 있는 황금빛 외골격에서도 약식 암룡출동이 발사되었다.
양쪽 검지 부분만을 희생한 만큼, 위력적인 측면에선 내가 발사한 것에 비해 약했지만.
그것을 쏘아낸 자는 다름아닌 위철용이었다.
-콰콰콰쾅!
위철용의 공격이 김준영의 몸을 꿰뚫고 지나가자 굉음이 터졌다.
손가락 모양으로 뻐끔 뚫렸던 구멍이 점점 커져가며, 세력을 넓혔다.
-쩌적 쩌저적
뻐끔 뚫린 구멍에서 시뻘건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발악하던 김준영의 움직임이 돌연, 뚝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