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꽈지직!
금속이 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분신들의 형체가 밀가루 반죽처럼 뒤틀렸다.
인간의 형태를 잃어가며 뒤틀리던 분신들은 이내, 거대한 금속 건틀릿의 형상이 되어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우흐흐흑. 도와줘. 제발 도와줘.》
《신이시여 어찌하여 제게 이러한 시련을 내리시나이까.》
분신들이 변이한 건틀릿의 여섯 개의 손등 부분엔 울부짖는 사람의 얼굴이 박혀있었다.
기묘한 흐느낌을 토해내는 건틀릿들은 유령처럼 공중을 날아, 김준영의 등 뒤로 향했다.
《후후후. 어떻습니까? 아름답지 않습니까? 멋지지 않습니까?》
자신의 등 뒤에 분신들이 변이된 건틀릿을 배치한 김준영은 나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보랏빛 금속 갑각으로 뒤덮인 놈의 양손이 유려하게 움직이자. 김준영의 등 뒤에 떠오른 건틀릿들이 놈의 손동작을 그대로 모방했다.
-후와아앙!
김준영이 마족들이 내려준 새로운 권능에 황홀하게 심취해 있는 사이.
나는 불과 어둠이 휘감겨 있는 어둠달을 휘둘러, 독룡아로 놈의 숨통 노렸다.
어둠달의 창날이 어두운 화염으로 이뤄진 용의 형상이 되어 김준영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역시, 필멸자치곤 실로 굉장한 실력입니다만. 제 상대는 아니지요.》
어둠달로 펼쳐진 독룡아는 파천 복룡창의 신묘한 무리를 담고 완벽한 형태로 펼쳐졌지만.
김준영은 너무도 간단하게 자신의 사각을 파고든 공격을 막아내었다.
-끼기기긱!
김준영이 마치 파리를 쫓듯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등 뒤에 유령처럼 떠 올라있던 건틀릿이 일제히 날아올라 그의 손동작을 모방했다.
금속이 비통하게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금속 건틀릿은 날아든 어둠달의 창날을 후려쳐 공격 궤도를 바꿔버렸다.
“크으읏!”
금속 건틀릿에 실린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건틀릿이 어둠달의 창날을 후려치자, 그 충격이 고스란히 창대를 쥔 손으로 전달되었다.
어찔하니 아득한 기분이 들면서, 순간적으로 내 몸의 균형이 무너져 내렸다.
-쐐애애액!
교활한 김준영답게, 놈은 그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어느새 쇄도해온 금속 건틀릿들이 마치 미사일처럼 날아들어 내 외골격을 연속으로 때렸다.
어찌나 김준영의 공격이 절묘한 타이밍에 나를 덮쳐왔는지, 『깔맞춤』 스킬의 힘으로 강화된 인지력으로조차 감지해낼 수 없을 정도였다.
-쩌적! 쩌저적!
강력한 폭탄 수십 개가 한꺼번에 터진 듯한 충격이 전신을 감싼 외골격을 웅웅 진동시켰다.
단단한 금속 외골격이 움푹 찌그러들며, 거미줄 모양으로 쩌저적 잔금이 퍼졌다.
“젠장!”
-콰앙!
나는 혀를 콰득 깨물어, 고통 속에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았다.
그리곤 후들거리는 다리를 바닥에 강하게 콰앙 내려찍어, 무너진 중심을 바로 잡았다.
-쐐액! 쐐애애액!
자세를 바로잡기 무섭게, 김준영의 공격이 다시 한번 날아들었다.
유령처럼 둥둥 허공을 유영하던 금속 건틀릿들이 매서운 기운을 흩뿌리며, 내게 쇄도해왔다.
당장이라도 나를 완전히 짓이겨 놓을 듯, 매섭게 날아드는 금속 주먹의 공세에 바람이 소름 끼치는 비명을 내질렀다.
-푸쾅! 콰쾅! 투쾅!
안력을 돋워, 날아든 금속 건틀릿들의 공세를 모조리 파악한 나는 재빨리 어둠달을 휘둘렀다.
번개처럼 휘둘러진 어둠달의 창날이 날아든 금속 건틀릿들의 정 중앙을 비스듬하게 찌르자.
폭음과 굉음이 동시에 터지며, 그것들의 공격 궤도가 완전히 뒤틀렸다.
《…그러니까. 제 상대는 아니라니까요.》
“…!”
금속 건틀릿들의 공격을 모조리 쳐냄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김준영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바로 내 뒤쪽에서 들려왔다.
재빨리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의 진원을 파악하자.
새하얗게 웃고 있는 김준영의 얼굴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꽈지지직!
눈앞에 김준영의 얼굴이 들어온 순간.
폭음과 함께, 복부의 외골격이 봄날의 창문에 낀 늦서리처럼 와장창 깨져나갔다.
내장이 산채로 짓이겨지는 듯한 화끈한 통증이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큽!”
머릿속을 완전히 새하얀 백지처럼 바꿔버릴 만큼 강력한 충격이었지만.
나는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해, 순간 암전되었던 정신을 또다시 붙들었다.
이가 부서져라. 꽉 다문 잇새 사이로 비릿한 핏물이 왈칵 비어져 나왔다.
《제 장난감들의 움직임에 현혹되시다니. 흐응…. 역시 필멸의 존재에겐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는 걸까요?》
김준영은 금속 건틀릿들을 자신의 주변에 후광처럼 두른 채로 나를 오만하게 굽어보았다.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진 그의 눈빛엔 죽어가는 사냥감을 가지고 노는 포식자와도 같은 잔혹한 장난기가 깃들어 있었다.
《그분들께선 당신을 ‘생포’하라고 명하셨습니다만, 팔다리 성하게 데려오라는 말씀 따윈 없으셨으니….》
-후오오오옹!
순간, 김준영의 눈에서 잔혹한 광기가 내비쳤다.
그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보랏빛 기운이 음울하게 흘러나왔다.
김준영의 손동작을 따라 빙글빙글 회전하던 금속 건틀릿들이 섬뜩한 귀곡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
『깔맞춤』 스킬이 강화해준 인지력이 경고를 보내오자.
나는 망설이지 않고 즉시 몸을 옆으로 날렸다.
-쿠콰콰쾅!
김준영의 이번 공격은 먼젓번과는 조금 달랐다.
대기를 찢어발기면 날아든 금속 건틀릿엔 섬뜩한 보랏빛 기운이 잔뜩 어려있었다.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간 금속 건틀릿이 굉음과 함께 바닥을 때리자, 눈을 따갑게 만들 만큼 지독한 독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나지막이 욕설을 뱉은 나는 이를 악물곤 다시 한번 외골격을 두르기 시작했다.
정통으로 얻어맞은 부위는 아직 재생되지 못한 상태였지만, 최소한 호흡기만은 독기로부터 보호해야만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피슛! 피슛! 피슛! 피슛!
로비 전체를 자욱하게 뒤덮은 독기 속에서 김준영의 공격이 이어졌다.
나를 조롱할 심산인지, 놈은 금속 건틀릿의 손가락을 꼿꼿하게 세워.
마치 창을 찌르는 것처럼 내 몸을 노리기 시작했다.
“장난치긴!”
김준영의 장난질에 이를 부드득 간 나는 어둠달에 내력을 주입했다.
검은 심장이 정신없이 맥동하며, 그동안 흡수한 마력을 내력으로 바꿔 내 몸속으로 퍼뜨렸다.
계속된 전투로 지쳐버린 몸이 내력을 머금자, 폭발할 것 같은 활력이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투쾅! 투쾅! 투쾅!
공격을 받아낸 다음은 반격이 시작될 차례!
창처럼 날아든 김준영의 공격을 절묘하게 몸을 살짝 비트는 것으로 피해낸 뒤.
나는 어둠달을 까드득 움켜쥐곤 김준영을 향해, 약식 암룡출동을 세 번 발동시켰다.
손가락 세 개 분의 외골격이 굉음과 함께 폭발하며, 부서진 외골격의 파편들이 놈의 목숨을 노렸다.
《시시하군요.》
암룡출동의 묘리에 따라, 외골격의 파편들은 엄청난 속도로 김준영을 향해 날아들었으나.
놈은 하반신에 달린 여덟 개의 다리를 가볍게 놀려, 순식간에 공격 범위에서 벗어나버렸다.
시커먼 기운이 일렁이는 외골격의 파편들이 바닥에 콱콱 틀어박히자, 김준영은 오만한 표정으로 내게 이죽거렸다.
하지만…!
-번-쩌억!
기세등등한 김준영의 다리 아래에서 폭음이 연달아 세 번 터졌다.
놈이 미처 대응할 새도 없이, 여덟 개의 다리 중 두 개가 폭발에 휩쓸려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덕분에 김준영의 거대한 몸이 일순 균형을 잃고 기우뚱 넘어졌다.
지금이다!
이를 까득 깨문 채로 김준영에게 달려든 나는, 놈에게 딱 달라붙어 다시 한번 암룡출동을 발동시켰다.
-콰콰콰쾅!
눈이 멀 듯한 광채와 함께 김준영의 몸이 폭발에 휩쓸렸다.
조각난 외골격이 계속해서 김준영의 육신 위로 쏟아졌다.
좋아,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 타격을 입힐 수 있겠….
“…!”
암룡출동이 빚어낸 폭발의 여파가 사라지자.
폭발에 휩쓸렸던 김준영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놈의 보랏빛 육신은 어느새 금속 건틀릿들로 뒤덮여 있었다.
《시간차 폭발이라…. 흥미로운 잔재주로군요.》
피식 웃은 김준영은 휘청 넘어졌던 몸을 다시 일으켰다.
그 짧은 사이, 먼젓번의 약식 암룡출동에 당했던 다리들이 모두 재생되어 있었다.
몸을 뒤덮었던 금속 건틀릿을 내린 그의 몸엔 상처조차 하나도 없었다.
《시간차 폭발이라…. 흥미로운 잔재주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