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밝은 조명 아래에 드러난 김준영의 얼굴엔 왜인지 모를 오만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내게 꼬리를 밟힌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놈의 두 눈은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져 음험한 빛을 희미하게 내뿜고 있었다.
“그동안 제법 주의를 기울였다. 생각했는데. 용케도 여기까지 찾아오시다니…. 확실히 그분들이 주목하실만한 분이로군요. 이거 외모만 잘생기신 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
오만하게 다리를 꼰 채, 내게 박수를 보낸 김준영은 히죽 웃으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흑막의 모습에 나는 싸늘하게 굳어버린 얼굴로 놈을 말없이 노려보았다.
“워워. 초면부터 이렇게 적대적으로 나올 것까진 없잖습니까. 생긴 것답지 않게 성격도 급하셔라.”
김준영은 그런 나의 표정을 흘끗 바라보곤 실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히죽 입꼬리를 뒤틀었다.
놈의 입에서 이죽거리는 웃음소리가 나올 때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악한 위압감이 사방을 잠식해오기 시작했다.
“그분들께선 그 ‘귀염둥이’들처럼 당신을 생포하라 명하셨습니다만…. 이거 순순히 붙잡혀주진 않을 것 같은 분위기로군요.”
사방을 잠식해오는 사악한 위압감에 맞서, 내력을 전신에 퍼뜨리자.
리빙 아머로 변이한 설악 공격대원들에게 흡수한 마력이 내력의 폭풍이 되어 소용돌이쳤다.
쿠르릉 소리를 내며 소용돌이치는 기운을 바라본 김준영은 흥미롭다는 듯 눈꼬리를 슬쩍 치켜떴다.
“꼬리를 밟힌 쥐새끼에 불과한 주제에 혓바닥 놀리는 솜씨는 아주 수준급이야.”
자신을 과신하는 오만한 악역이 흔히 보여주는 방심 때문일까?
아니면 뭔가 모종의 계획이 있기 때문일까?
정적이 내려앉은 공장 로비엔 눈앞에 서 있는 김준영 외엔 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놈이 어째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홀로 내 눈앞에 나타나 준 이상.
나는 김준영을 살려 보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까드득!
그동안 뒤에서 온갖 더러운 수작질을 해온 원흉을 바라보며, 나는 하얗게 웃었다.
가슴팍에서 빠르게 뛰는 심장이 어둠달의 검은 심장과 호응하며 묵직하게 맥동했다.
전신을 휘감은 시커먼 내력의 와류가 무섭게 들끓으며, 모든 것을 찢어발길 수 있을 듯한 힘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만반의 전투태세를 갖춘 뒤. 나는 김준영을 노려보며 광폭한 살기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꼬리를 밟힌 쥐새끼라니, 흐응…. 흥미로운 개소리로군요. 이거 본의 아니게 얕잡아 보인 모양인데. 마침 저도 심심하던 차였으니, 어디 한번 어울려 드리죠.”
자신에게 쏘아진 살의를 마주한 김준영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오만한 미소가 놈의 얼굴에 떠오르자.
김준영에게 마주 광폭한 웃음을 보낸 나는 벼락같이 창을 내질렀다.
-콰득!
시커먼 내력과 시뻘건 불꽃이 소용돌이치는 창날이 김준영의 머리를 관통했다.
뼈가 분쇄되는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김준영의 머리에 시커먼 구멍이 뻐끔 입을 벌렸다.
공격에 성공한 나는 재빨리 놈의 머리에 박힌 어둠달을 회수하며,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
…뭐지? 분명히 손맛은 있었는데?
분명, 어둠달의 창대를 타고 뼈를 부수고 살점을 끊어내는 묵직한 손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머리에 구멍이 뚫린 김준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여전히 오만한 미소를 띤 채로 느릿하게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제법 훌륭한 창 솜씨입니다만. 단지 그뿐이로군요.”
김준영의 입꼬리가 비웃음을 품고 묘하게 뒤틀어지자, 뒤쪽에서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동시에 화안금정에 기묘한 공격 궤도가 감지되자, 나는 즉시 몸을 뒤틀어 뒤쪽에서 날아든 칼날을 피해냈다.
-카가가각!
뒤쪽에서 날아든 공격은 아슬아슬하게 어둠달의 창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금속과 금속이 충돌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시뻘건 불똥이 봄날의 벚꽃처럼 마구 흩날렸다.
잠깐, 뒤쪽에서 공격이 날아왔다고? 뒤쪽엔 분명….
지금 내 뒤쪽엔 온몸이 녹아들어, 무력화된 설악 공격대원들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둠달을 스친 공격은 틀림없이 뒤쪽에서부터 날아들었다.
그러한 사실에 의문을 느낀 내가 뒤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린 그 순간!
“…!”
그로테스크한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울부짖고 흐느끼는 설악 공격대원들의 머리가 김준영과 똑 닮은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뼈와 살점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변이한 머리들은 나를 바라보며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설악 공격대원들의 잘려나간 신체부위들 중 그나마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들이 저절로 짜맞춰지며, 조립되기 시작했다.
-꾸득! 꾸드드득!
조립을 끝마친 설악 공격대원들의 육신이 누덕누덕 기워맞춰진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흐응 다섯이라…. 준비해둔 스물의 장난감 중 다섯 개만 성하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확실히 실력이 제법이시군요.”
“졸렬하게 ‘장난감’ 따위를 내세우는 건가?
“그분들의 사도로써, 당신과 직접 싸우는건 아무래도 격이 좀 떨어지거든요.”
빌어먹을!
어쩐지. 어둠 속에 숨어 음모나 꾸밀법한 음흉한 놈이 웬일로 당당하게 앞으로 기어나왔다 했더니….
지금 내 앞에 서있는 김준영 또한 본체가 아니라 놈이 조종하는 인형에 불과했다.
머리가 꿰뚫린채 걸어오던 김준영은 여유를 가득담은 목소리로 느릿하게 말했다.
“어쩐지 쥐구멍 밖으로 순순히 기어나왔다고 했다. 비겁한 쥐새끼 같은 놈.”
내가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체체파리 클랜에서 음모와 계략에 능했던 김준영은 ‘쥐새끼’라는 별명을 굉장히 싫어했었다.
그것을 떠올린 나는 김준영에게 이죽거리며, 집요하게 ‘쥐’라는 단어에 집착하며 놈을 도발했다.
“…비겁할게 있습니까? 무식한 그쪽보다 머리가 더 좋다고 봐야겠지요.”
내게 욕설을 들은 김준영의 얼굴엔 미미하게 불쾌한 표정이 떠올랐다.
알 듯 모를 듯 살짝 역팔자로 휘어진 눈썹에, 미간엔 희미하게 옅은 골이 파여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생애에서도 역시, 그는 회귀 전과 동일하게 ‘쥐새끼’라는 말에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스르륵.
쥐새끼라는 말에 살짝 발끈한 듯한 김준영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
나는 사방으로 내력을 거미줄처럼 퍼뜨려, 숨어있는 놈의 본체를 추적했다.
회귀 전, 내가 기억하는 김준영의 특성 트리는 『둥지 짓는 흑거미』로 마력이 깃든 거미줄을 통해, 남의 육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지닌 특성 트리였다.
마족들과 거래하며 새로운 권능을 손에 넣은 모양이지만, 분신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파장은 회귀 전의 김준영과 상당히 유사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때 놈을 상대했던 기억을 되살려, 거미줄 끝에 매달린 본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부르르.
“그쪽이군.”
마침내, 거미줄처럼 퍼뜨린 내력이 내게 답을 알려주었다.
김준영의 분신들에게 연결된 거미줄은 모조리 로비 귀퉁이에 있는 장식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거미가 거미줄에 걸린 희극적인 상황에 섬뜩한 미소를 지은 나는, 주저하지 않고 어둠달을 힘껏 휘둘렀다.
“…이런!”
-카가가각!
어둠과 불꽃이 흉흉하게 소용돌이치는 어둠달의 창날이 장식장으로 휘둘러진 순간.
당황하듯 인상을 찌푸린 김준영의 분신들은 일제히 몸을 날려, 내 공격을 막아냈다.
설악 공격대원들에게 흡수한 마력을 아낌없이 불어넣었기에, 어둠달의 창날은 막아선 김준영의 분신 두체를 가볍게 꿰뚫고 상패가 가득한 장식장을 반으로 조각내버렸다.
《단순무식한 멍청이인줄 알았는데 제법이로군요.》
이름모를 상장과 상패가 가득한 장식장이 무너져 내리자.
먼지 속에서 머릿속을 웅웅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흉측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드러낸 김준영의 모습은 금속으로 만든 보랏빛 거미 위에 인간의 상반신을 얹어 놓은듯한 형태였다.
《본체의 위치를 정확히 유추해내다니. 도대체 어떤 재주를 지니고 있는 겁니까?》
김준영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의문을 토해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게는 놈의 의문을 해소시켜줄 여유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모습을 드러낸 김준영의 본체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쿠르르륵!
대답대신 어둠달의 창날에서 솟구친 시커멓고 시뻘건 기운이 김준영을 향해 쇄도해갔다.
모든 것을 불태우고 조각낼 듯한 파괴적인 기운이 김준영의 몸을 덮쳤다.
《흥!》
콧웃음을 친 김준영은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연결된 양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토막난 채 분쇄되었던 놈의 분신들이 벼락처럼 날아들어 내 공격을 막아내었다.
-카강! 카강! 카가강!
김준영의 분신들이 내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놈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놈의 분신들의 몸에서 마치 거미의 다리와 같은 날카로운 칼날들이 돋아나더니,
쇳소리와 함께, 화안금정으로도 쫓아가지 못할만큼 빠른 공격이 사방에서 날아들기 시작했다.
“쯧!”
-카가가각!
운룡보의 신묘한 움직임을 통해, 분신들의 공격을 대부분 회피했지만.
사방을 완벽하게 포위한 채, 짓쳐들어온 공격이 워낙 매서웠기에 모든 공격을 다 피할 수는 없었다.
분신들이 휘두른 칼날에 내 전신을 감싼 외골격이 비명을 토해내며 까드득 깎여나갔다.
《원래는 그분들의 명대로 최대한 ‘온전하게’ 생포할 생각이었습니다만. 팔다리 한 두개 쯤 끊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싸늘한 미소를 지은 김준영은 으스스하게 음산한 목소리로 소곤거리듯 중얼거렸다.
거미와 인간, 그리고 금속이 적절히 뒤섞인 놈의 육신에서 질식할 듯한 위압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강대한 기운이라니! 이 정도면 어지간한 낙오자들보다 더욱 강력한 기운이거늘!]
놀랍게도 김준영은 먼젓번에 상대한 마족, 샤네가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회귀 전에도 그는 체체파리 클랜의 사도로써 결코 쉽지 않은 상대였지만, 지금의 그는 그때와는 비교조차 하지 못할 만큼 강했다.
-까드득!
하지만 지금의 나 역시, 사교도 토벌전에 참가했을 때보다 훨씬 강력해진 상태였다.
비록 전성기의 기량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이제 막 햇병아리 티를 벗기 시작했던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커다란 갭이 있었다.
다시 전의를 다진 나는 이를 부드득 갈며, 깔맞춤을 발동시켰다.
-콰앙! 콰앙! 콰앙!
인지능력이 필멸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나자, 사방에서 밀려든 분신들의 공격이 훤히 보였다.
눈에 보이지 않을만큼 빠른 속도로 창날을 휘두른 나는 분신들의 몸에 돋아난 칼날을 정확하게 잘라내었다.
《호오…. 필멸자치곤 제법이로군요. 하지만 진짜 재미는 지금부터입니다.》
칼날이 썽둥 잘린 분신들이 무력화되자, 김준영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섬뜩한 미소가 떠오른 순간. 부들부들 떠는 분신들의 모습이 다시 한번 기이한 모습으로 변이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