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 영혼을 뒤틀어 저주받은 갑주에 박아 넣으려면, 이레는 걸려야 정상이거늘!]
위철용의 말대로였다.
아무리 고문 받았다고 할지언정, 강제로 뽑혀나온 영혼은 따뜻한 피와 살로 구성된 본래의 육체로 돌아가는 것을 강렬하게 갈망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차가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갑옷에 영혼을 안착시키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이상은 영혼을 뒤틀어 이지를 상실시키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쳐야만 했다.
임영성이 털어놓은 대로라면, 설악 공격대원들의 영혼이 뽑혀나온 것은 사흘 전!
아무리 사악한 사교도들의 비법이라고 할지언정, 영혼을 뒤틀어 놓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으흐흑. 원통해애….》
하지만 설악 공격대원들의 모습은 다소 이질적이긴 하나, 리빙 아머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희미하게 금속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신을 감싼 검정색 가죽 갑옷 아래엔 『원혼 무쇠』 특유의 녹색빛을 번뜩이는 차가운 금속 재질의 육신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뭐, 자세한건 그들의 육신을 해체해보면 알 수 있겠죠.”
리빙 아머로 제련된 영혼을 구해 내는 방법은 실로 간단했다.
그들의 금속 육신 어딘가에 박혀있는 『영혼석』을 찾아, 그곳에 갇힌 영혼을 정화하여 원래의 육신에 돌려 놓으면 끝.
지금으로선 기이한 존재로 변이한 설악 공격대원들의 정체에 대해 더 고민해봤자. 시간낭비일 뿐이었다.
지금 당장 내가 해야할 일은 저주받은 금속 육신으로부터 그들의 영혼을 해방하는 것 뿐!
-두-근!
전의를 다지며 화안금정을 발동시키자.
어둠달에 박혀있는 검은 심장이 들끓어오른 투지와 공명하며 묵직하게 맥동했다.
염룡등천의 오묘한 이치에 따라 뜨겁게 달아오른 내력의 영향으로 어둠달의 창날이 화염을 머금었다.
-빠아아앙!
어둠달의 창날에 화염이 피어오른 것을 신호삼아, 설악 공격대원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온몸에 성벽처럼 단단한 외골격을 두른 그들은 마치 발사된 대포알처럼 내게 돌진해왔다.
단숨에 음속을 뛰어넘은 그들의 육신이 내 쪽으로 쏜살같이 짓쳐들어오자, 그들의 공격에 갈기갈기 찢겨나간 대기가 비명을 질러댔다.
-콰앙!
설악 공격대원들의 공격이 내 몸을 유린하려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다리를 번쩍 들어, 내력을 주입해 힘껏 바닥을 내려찍었다.
콘크리트제 바닥이 물결치며 쩌저적 갈라지더니, 이내 지반이 동그라미 모양을 그리며 움푹 가라앉았다.
-쾅! 콰앙! 콰아앙!
순식간에 내 신형이 움푹 가라앉은 땅 속으로 쑥 가라앉자.
사방에서 돌진해오던 설악 공격대원들은 엄청난 속도를 이기지 못한채, 서로 충돌해버렸다.
머리 위쪽에서 마치 고속도로 위의 추돌사고를 연상케하는 굉음이 연속으로 터졌다.
지진이라도 난 듯 바닥이 우르릉 울리며, 물씬 피어오른 돌가루가 부스스 사방으로 흩날렸다.
-파아앗!
땅 전체를 쾅쾅 울렸던 진동이 사그라들자.
나는 불길에 휩싸인 어둠달을 콰악 움켜쥔 채, 그대로 공중으로 도약했다.
-피슛! 피슛! 피슈슛!
곧이어 칠룡격의 경지에 오른 파천복룡창의 제 일식, 연포가 가장 치명적인 형태로 펼쳐졌다.
시뻘건 화염이 일렁이는 시커먼 창날이 일곱 마리 용의 형상으로 변화하며, 바닥을 향해 벼락치듯 무서운 기세로 내리꽂혔다.
-카가가각!
일곱 마리 용이 설악 공격대원들의 외골격을 물어 뜯은 순간.
암석과 금속이 충돌하는 듯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흩날리는 불꽃이 사방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화륵! 화르륵!
곧이어 일곱 마리 용에게 외골격을 물어뜯긴 설악 공격대원들의 외골격에서 불꽃이 솟구쳐 올랐다.
검은 심장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 격렬하게 맥동하며, 설악 공격대원들의 외골격에서 흘러나온 마력을 탐욕스럽게 갈취했다.
《흐어어어. 원통해애》
전신을 감싼 성벽 모양 외골격이 화재라도 난 것마냥 화르륵 타오르자.
흐느끼는 듯한 비명을 토해낸 설악 공격대원들은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원한에 가득 찬 눈으로 내쪽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콰앙! 콰아앙!
하지만 몸을 일으킨 설악 공격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어둠달의 매서운 창날이었다.
검은 심장이 그들로부터 막대한 양의 마력을 내력으로 치환해 흡수해오자, 마치 마그마가 혈도를 타고 흐르는 듯 폭발적인 활력이 내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어둠달의 창날이 설악 공격대원들이 육신을 강타 할 때마다, 마치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터졌다. 성벽 모양의 단단한 외골격이 창날 모양으로 움푹움푹 깎여나갔다.
《크흐흑! 설용호! 어째서 우리를…》
설악 공격대원들은 흐느끼듯 비통한 비명을 내지르며, 반격을 하려고 들었지만.
애석하게도 이미 주도권을 잃어버린 그들의 공격은 내 털끝조차 건들지 못했다.
-뿌각!
《으흐흑!》
몇몇 설악 공격대원들은 『저돌맹진』의 기수식을 취하며, 다시 한번 내게 돌격하려 들었다.
하지만 미처 스킬이 발동되기도 전에, 어둠달의 시커먼 창날이 그들의 다리에 적중되자.
균형을 잃어버린 그들의 다리가 마치 수수깡 부러지듯 우지직 꺾였다.
고통스럽게 흐느끼는 설악 공격대원들의 입에선 시커먼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콰콰콰쾅!
설악 공격대원들의 마력을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한층 업그레이드된 검은 심장의 권능에 의해, 내 공격은 한층 더 매섭고 강력해졌다.
시커먼 와류가 들끓는 어둠달의 창날이 설악 공격대원들의 몸을 스칠 때마다. 보랏빛 성벽 모양의 외골격이 마치 과자처럼 부서져나갔다.
폭발할 듯 펄떡거리는 검은 심장이 부서진 외골격으로부터 새어나온 마력을 게걸스럽게 탐닉했다.
-와장창!
얼마나 어둠달의 창날을 휘둘렀을까?
마침내 설악 공격대원 중 한 명의 몸을 휘감은 외골격이 완전히 깨져나갔다.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단단하게 그의 몸을 보호하던 외골격이 산산히 조각나자,
설악 공격대원의 몸은 내 공격에 완전히 무방비하게 노출되어버렸다.
-썩둑!
어둠달의 창날이 외골격이 사라진 설악 공격대원을 노리고 쇄도한 순간.
소름끼치는 절삭음과 함께 그의 몸이 가슴께부터 사선으로 잘려나갔다.
원한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설악 공격대원의 몸이 비스듬하게 잘려, 쓰러졌다.
[…!]
“역시, 리빙 아머의 일종이었네요.”
사선으로 잘려나간 설악 공격대원의 단면은 텅 빈 갑옷처럼 공허하게 비어있었다.
『원혼 무쇠』로 제련되어 특유의 음울한 녹색빛이 단면으로부터 새어나오는 것으로 미뤄보건대, 그들은 리빙 아머의 일종임이 확실했다.
[헌데…. 저렇게 네놈을 매섭게 노려보는 머리통은 어찌 된게냐?]
일반적인 리빙 아머는 말 그대로 움직이는 갑옷과 같은 존재였지만.
어째선지 리빙 아머로 제련된 설악 공격대원의 머리는 얼핏 보기엔 인간과 다를바가 없었다.
원한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엔 인간의 그것처럼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졌고.
뻘겋게 충혈된 눈알을 뒤룩거리는 모습은 소름끼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투콰쾅!
“그건 나머지도 다 쓰러뜨린 다음에 차차 알아보도록 하죠!”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공격이 잠시 중단되자, 설악 공격대원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내게 쇄도해오는 그들의 움직임은 내게 지독한 원한을 품기라도 한 듯, 정체를 알 수 없는 원독에 가득 차 있었다.
-카앙! 카아앙! 카앙!
설악 공격대원들은 생전의 움직임을 그대로 모방하며, 매섭게 짓쳐들어왔지만.
이미 막대한 양의 마력을 흡수한 검은 심장은 그들의 공격을 모조리 깨부술만큼 강력한 힘을 내게 불어넣어줬다.
-부와아악!
사선으로 휘둘러진 어둠달에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커먼 와류와 시뻘건 불꽃에 뒤덮여 진동하는 어둠달의 창날이 무서운 위력을 발휘했다.
공간을 통째로 베어버리기라도 하듯, 설악 공격대원들의 외골격이 허무하게 반으로 갈라졌다.
그들의 금속질 육신이 뎅겅뎅겅 잘려 바닥에 널브러졌다.
-화륵! 화르륵!
인간보다 수십배는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리빙 아머!
이미 설악 공격대원들 대다수는 몸이 반으로 잘린 상태였지만, 나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무섭게 진동하는 어둠달의 창끝에서 피어오른 화염이 허옇게 백열 되며 새로운 공격을 준비했다.
-푸콰콰콰쾅!
새하얀 불꽃에 휘감긴 창날이 널브러진 설악 공격대원들에게 짓쳐들자.
금속제 육신이 통째로 녹아 들어가며, 그들의 육신이 바닥에 껌딱지처럼 늘어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주변을 둘러쌌던 설악 공격대원들은 마치 머리달린 슬라임과 같은 형상이 되어 무력화 되어버렸다.
《원통하다아. 왜 이제야….》
“뭐 때문에 내게 그렇게 원한을 품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제대로 뜯어볼 수 있겠네.”
설악 공격대원들은 완전히 무력화 된 상태에서도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살벌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떤 곡절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괴이쩍게도 그들이 내게 품은 감정은 지독한 원망이었다.
-짝. 짝. 짝.
막 설악 공격대원들에게 다가가려던 순간.
다시 한번 찾아온 고요한 정적 사이로 규칙적인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제법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장난감이었는데…. 역시 그분들께서 주목하는 분 답군요.”
어느새 로비 한 귀퉁이엔 낯익은 얼굴의 남성이 내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밝은 조명 아래 드러난 남성의 얼굴엔 교활하면서도 이지적인 미소가 서려 있었다.
“…김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