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화
태백 길드가 다수의 무기 장인들을 영입해, 질 좋은 무기를 납품하기로 유명했다면.
태생이 제약회사였던 오행 길드는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는 포션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오행 길드 잠실 지부, 포션 제조 공장.』
그렇기에 태백 길드가 용산 전자상가 인근을 통째로 공방으로 꾸몄듯.
오행 길드는 대격변의 여파로 부서진 잠실 체육관 인근에 대규모 포션 제조 공장을 세웠다.
[여기가 그 사악한 사교도 놈이 숨어든 곳인 게냐? 벌써부터 낙오자 놈들의 역겨운 냄새가 풀풀 풍겨오는구나.]
태백 길드에서의 일을 마무리 지은 뒤. 나는 즉시 잠실로 향했다.
저 멀리 오행 길드 특유의 로고가 새겨진 공장이 시야에 들어오자, 킁킁거리며 잠시 냄새 맡는 시늉을 하던 위철용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마족들의 기운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수상해 보이긴 하네요.”
어느새 하늘에 떠 있는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춰, 서늘한 달빛만이 세상을 비추는 한밤중이 되어버렸지만.
굴뚝에서 시커먼 연기를 토해내는 공장의 창가에선 여전히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인기척 하나 없이 불빛만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공장의 풍경은 마치 공포 영화 속의 한 장면과도 같은 을씨년스러운 이질감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끼이익.
머릿속에 스며들었던 이중환의 기억대로 공장 정문의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나는 조심스레 LED 조명이 밝게 새어 나오는 공장 내부로 진입해 들어갔다.
-저물어가는 태양. 떠오르는 달빛!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깔끔하게 정돈된 로비에선 은은하게 퇴근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천장 구석의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남성의 목소리는 활기차면서도 해맑았지만. 공장 내부에 내려앉은 침묵은 그의 목소리와 소름 끼치는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처벅. 처벅.
어둠달을 꽈악 틀어쥔 채로 로비를 탐색하고 있으려니.
공장 내부에 짙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별안간 웬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구두나 운동화를 즐겨 신는 일반인들과는 완전히 다른 묵직한 군홧발 소리, 단단한 가죽 갑옷이 맞부딪히며 쩔그럭거리는 소리.
헌터 특유의 발걸음 소리가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에서 느릿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
공장 로비의 밝은 조명아래 모습을 드러낸 이는 역시나, 검은 갑옷을 걸친 헌터였다.
무표정하게 굳은 얼굴로 계단을 걸어 올라온 그는,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설용호…. 산군님?》
검은 갑옷을 걸친 헌터의 입에선 이루 형용할 수 없을만큼 기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여러명이 동시에 말하는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가엔 영문 모를 물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어째서, 어째서 이제야 왔습니까. 어째서!》
검은 갑옷의 헌터는 별안간 원망을 가득담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곧이어 그의 창백한 얼굴에선 지독한 원한의 음울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를 노려보는 눈빛은 완전히 원한에 집어삼켜진 살기를 품은 채로 섬뜩하게 번들거렸다.
…설마 설악 공격대의 일원인가?
순간 머릿속에 설악 공격대원들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으나, 나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기괴한 목소리로 울부짖고 있긴 하나, 살벌한 기세를 피어올리고 있는 헌터는 분명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박정욱을 포함한 설악 공격대원들은 육신은 그대로 내버려둔 채로 영혼만 탈취당한 상태였기에, 내 눈앞에 선 헌터처럼 인간의 육신을 입은 상태로 나타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크으아아악!》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나를 응시하던 헌터는 짐승 같은 포효를 내지르더니, 발작하듯 내게 달려들었다.
-카가가각!
“…뭐야?”
어둠달의 창대를 반사적으로 명치에 꽂아, 내게 달려든 헌터를 제압하려 했으나.
놀랍게도 그의 몸에선 무지막지한 반탄력이 느껴졌다.
평범한 가죽 갑옷만을 걸친 몸에선 마치 통짜 쇳덩이를 후려갈긴 듯 단단한 감촉이 느껴졌다.
《우흐흑! 끄으흐흑!》
명치를 가격당한 헌터는 나를 바라보며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몸이 울룩불룩 씰룩이기 시작하더니, 몸에서 보랏빛 외골격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박정욱?”
갑옷이라기엔 굳건한 성벽을 연상케하는 울퉁불퉁하니 투박한 외형.
놀랍게도 헌터의 몸에서 돋아난 외골격은 박정욱의 외골격과 상당히 유사한 형태였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회귀 전까지, 저렇게 개성넘치는 생김새의 외골격을 지닌 이는 박정욱이 유일했다.
[아니. 박정욱의 기운과는 명백히 다른 기운이니라. 하지만…. 기괴한 일이로고. 잡스러운 기운들 사이에 그와 유사한 기운이 ‘섞여’있다니.]
외골격을 드러낸 헌터를 바라본 위철용은 심각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자세히 살펴보니, 위철용의 말대로 헌터의 외골격은 박정욱과 상당히 유사한 형태였지만.
벽돌 모양의 외골격을 뒤덮은 문양의 형태가 박정욱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박정욱의 기운이 ‘섞여’ 있다고?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크으흐흐흐.》
나와 위철용이 박정욱과 상당히 유사한 형태의 외골격에 혼란을 느끼고 있는 사이.
전신에 외골격을 두른 헌터는 나를 노려보며 찐득한 살기가 깃든 웃음을 흘렸다.
몸을 숙여 양 손으로 땅을 짚은 그는 마치 달리기 선수의 준비자세와 유사한 자세를 취했다.
자, 잠깐만 저 기술은?!
-콰아아앙!
묘한 기수식을 취한 헌터는 발사된 총알처럼 내쪽으로 득달같이 쇄도해왔다.
화안금정조차 순간적으로 감지할 수 없을만큼 벼락같이 재빠른 공격이었지만.
준비 동작을 보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미리 눈치챈 덕에 나는 헌터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낼 수 있었다.
“설악 공격대의 부대장 백승후의 『저돌맹진』이라니….”
조금 전 헌터가 사용한 기술은 바로, 설악공격대의 돌격대장이자 부대장인 ‘멧돼지’ 백승후를 상징하는 스킬, 『저돌맹진』이었다.
온몸을 외골격으로 둘러, 적에게 벼락같이 돌진하는 종류의 스킬은 다양했지만, 양 손으로 땅을 짚는 독특한 기수식을 취하는 스킬은 백승후의 『저돌맹진』밖에 없었다.
박정욱과 유사한 외골격에, 이번엔 백승후의 스킬까지 사용한다고?
《크흐으으으.》
《흐흐흑. 설용호 산군니임.》
수수께끼의 헌터에게 의문을 느끼고 있으려는 찰나.
흐느끼는 소리, 웃음소리, 울부짖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철그럭 소리를 내며, 검은 갑옷을 차려입은 헌터들이 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놈들은 도대체….”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에, 전신을 감싼 검은색 가죽 갑옷.
몰려든 헌터들의 외모와 복장은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았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들은 몸에 박정욱의 그것과 같은 보랏빛 외골격을 두르고 있었다.
…뭐지? 김우경의 기억에 따르면, 분명 김준영은 설악 공격대원들을 리빙 아머로 개조한다 해썼는데?
《어째서. 어째서 우릴 버리셨습니까.》
나는 기괴한 표정으로 흐느끼고 있는 헌터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들의 전신을 빈틈없이 감싼 검은 갑옷을 번들번들한 광택이 인상적인 가죽 재질이었다.
시체처럼 창백하게 질린 얼굴의 표정은 다양한 표정을 반복하며, 소름끼치는 이질감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잠깐만.”
헌터들을 관찰한 끝에, 마침내 나는 그들에게서 수상한 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빈틈없이 온몸을 감싼 가죽 갑옷, 그것과 그들의 얼굴이 이어지는 지점엔 기이하게도 금속 특유의 질감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설마. 새로운 방식의 리빙아머로 제련되어버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