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화
충만한 내력과 강렬한 양기를 품은 내력의 폭풍은 얼어붙은 대지를 무자비하게 휩쓸었다.
서리가 내려앉았던 아스팔트가 부글부글 증기를 내뿜으며, 껌딱지처럼 늘어 붙었다.
뼛조각처럼 으스스하게 노출된 수도관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녹아 들어갔다.
“후우욱…. 후우욱.”
암룡출동에 변이된 오행 길드원들로부터 흡수한 막대한 내력을 모조리 다 쏟아낸 탓인지.
엄청난 양의 내력을 뿜어낸 여파로 내 온몸이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욱씬거렸다.
정갈했던 호흡이 엉망으로 꼬이며, 숨이 턱턱 막혀왔다.
거칠게 몰아쉬는 호흡 사이로 비릿한 피 냄새가 훅훅 넘어왔다.
《끼, 끄끼이이익….》
강화된 암룡출동의 막강한 위력에 정통으로 적중당한 이중환의 상태는 당연히 좋지 않았다.
전신을 뒤덮은 보랏빛 털가죽은 열기의 폭풍에 노출되어 잘 구워진 닭껍질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렸으며, 외골격의 파편들이 할퀴고 간 육신은 3분의 1 이상이 너덜너덜하게 찢겨져 나간 상태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꽈지직.
이중환의 심장어림에 박힌 채로 요망한 빛을 흩뿌리던 단검이 재로 변해 흩날리기 시작했다.
암룡출동의 모든 위력을 이중환의 가슴팍에 집중시킨 끝에 얻어낸 쾌거였다.
-파스스스.
가슴팍에 박혀있던 고풍스럽게 장식된 단검이 부서지자.
이중환의 변이된 육신 또한, 마치 모래로 이뤄지기라도 한 듯 바람에 흩날리며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주, 중환이!”
《….》
흉측하게 변이된 육신이 전부 재가 되어 흩어지자.
그 자리엔 희끄무레하니 반투명한 모습의 이중환이 변이되기 전의 모습을 간직한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마족들의 음모에 억울하게 희생된 탓인지, 이중환의 영혼은 굉장히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영혼의 모습에, 강태백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벗이 이름을 부르짖었다.
“편히 쉬십쇼.”
그런 이중환의 영혼에게 가만히 다가간 나는 『원혼 제령술』 스킬을 사용했다.
앞으로 쭈욱 뻗은 내 오른손에서 따사로운 빛이 쏟아져나와, 이중환의 영혼을 포근하게 감쌌다.
《…고맙네.》
『원혼 제령술』의 효과 이중환이 세상에 남긴 한과 미련이, ‘업’이 쭈욱 딸려오자.
슬픈 표정을 짓고 있던 이중환의 영혼은 흠칫 놀라더니, 이내 내게 희미한 미소와 마지막 감사 인사를 건넸다.
-스파아아앗!
따스한 빛에 휘감긴 이중환의 영혼은 자신을 붙잡은 한과 미련을 털어내곤 저승으로 향했다.
그의 영혼이 완전히 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중환이 겪었던 수난들이 내 머릿속으로 물밀 듯 범람해오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자네가 이번에 새로운 오망성으로 등극한 김준영인가? 젊은 나이에 대단한 활약을 보였더군. 그래.”」
「“과찬이십니다. 길드장님.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죠.”」
「“허허허. 젊은 친구가 겸손하긴! 앞으로 잘 부탁하네.”」
이중환의 기억은 회귀 전의 나 자신마저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내게 속삭여주었다.
놀랍게도 김준영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오행 길드 내부에 침투해 있었던 상태였다.
뛰어난 처세술과 강력한 사도의 힘을 이용해, 그는 오행 길드를 이끄는 다섯 간부 ‘오망성’의 일원으로 이중환과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주, 준영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계룡 공격대를 공격하다니!”」
이중환의 기억은 계속해서 새로운 사실들을 내게 알려주었다.
전면전의 발단이 되었던 ‘계룡 공격대 몰살 사건’은 놀랍게도 김준영이 저지른 짓이었다.
「“무슨 짓이라고 할 것 까지야. 그저 때가 무르익었다고만 알아 두시죠. 길드장님.”」
「“뭐, 뭐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크아아아악!”」
계룡 공격대를 몰살한 이후, 마족들과 손을 잡은 김준영은 오행 길드를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상당히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사교도들을 오행 길드에 침투시켜두었기에, 이중환을 포함한 다른 간부들은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로 김준영에게 생포 당해, 실험체로 전락해 버렸다.
그렇게 오행 길드는 하루 아침에 김준영의 손아귀에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시시한 피라미인 줄 알았는데. 제법이잖아?”
태백 길드와 오행 길드 사이의 전면전으로부터 시작해서, 김우경과 무기장인들을 포섭한 것, 체체파리 클랜이 섬기는 성좌가 마족들의 손에 생포당한 것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김준영은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었다.
[김준영이라면 분명, 회귀 전엔 평범한 사교도에 불과했던 놈이었거늘. 이렇게까지 잔머리를 잘 굴리던 놈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위철용의 말대로 회귀 전의 김준영은 그저 평범한(?) 사교도 중 한명일 뿐이었다.
그때의 김준영은 지금처럼 강다희와 자신이 섬기는 성좌를 배신하긴 커녕, 최후의 순간까지 강다희의 옆에서 함께 싸우다 토벌대의 손에 최후를 맞았던 인물이었다.
이렇게 음험한 음모를 꾸민 놈이 그때는 그렇게 충성스럽고 우직한 모습을 보였다니….
“자, 자네! 도대체 중환이에게 무슨 짓을 한건가!”
회귀 전과는 너무도 달라진 김준영의 행적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으려니.
경악한 표정의 강태백이 연신 비틀거리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먼젓번에 얻은 스킬로 이중환 길드장님이 이승에 남긴 여한을 달래드렸을 뿐입니다.”
“하, 한이라고? 죽어서 유령이 될 정도의 한을 품고 있었단 말인가?!”
“예, 아무래도 억울하게 음모의 희생양이 되셨으니까요.”
강태백의 입장으로선 아무래도 괴이쩍게 변해버린 벗의 상태에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기에.
나는 강태백에게 이중환이 그동안 무슨 일이 당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이중환이 겪었던 수모를 들을 때마다, 강태백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자네의 말을 정리하자면, 중환이는 그 간악한 사교도놈의 수작질에 놀아난 것이겠군.”
“그렇습니다. 그동안 오행에서 적대적으로 나온 것 또한 놈들의 음모였죠.”
“…아무튼 자네의 그 신묘한 스킬 덕에 중환이가 이승에 남긴 한을 털어버렸다니. 다행이로군. 고맙네. 정말 고마워.”
강태백은 그 짧은 사이에 20년은 더 늙어버린 것 같았다.
그답지 않게, 내게 선선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한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답답스럽게 착하게만 살아왔던 놈이 이런 결말을 맞다니. 성좌님들도 무심하시지.”
그렇게 눈을 감은 강태백은 한줄기 눈물을 흘려내어 친구의 죽음을 애도했다.
천천히 다시 눈을 뜨는 그의 눈빛엔 복수를 갈망하는 증오의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김우경이라고 했나? 그 간악한 사교도 놈을 불태워, 먼저 간 친우의 넋을 달래줘야겠군.”
강태백은 활활 불길이 타오르는 눈길로 저 멀리, 김준영이 숨어있는 잠실 쪽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은 산군 놈들에게 당장 합류하라 연락하게,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경고는 잊지 말고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