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단검? 변이된 육신에 뜬금없이 단검이 박혀있다고?
오행 길드원들의 육신을 흡수한 이중환은 자신의 육체를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한 상태였다.
때문에 순간 헛것을 봤나 싶었지만,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해봐도 그의 심장 어림엔 마법진이 새겨진 단검이 분명하게 박혀있었다.
《크워어어어!》
새롭게 나타난 불청객이 상상이상으로 걸리적 거린다는 현실에 분노한 탓일까?
단검에 의문을 품고 자세히 관찰하려는 사이, 나를 노려보는 이중환의 눈에서 광포한 광기가 한층 더 진하게 느껴졌다.
쩌렁쩌렁한 소리를 내며, 포효하는 그의 몸에서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한기가 터져나왔다.
-쩌적!! 쩌저적!
이중환의 몸에서 흘러나온 한기에 주변의 기온이 순간적으로 뚝 떨어졌다.
공기 중의 수분이 꽝꽝 얼어붙더니, 그의 거대한 근육질 육신 위에 공작 새의 날개를 연상케 하는 기묘한 모양대로 엉겨붙었다.
방어력 하나만으론 최고라는 소리를 듣던 이중환의 외골격 『서리발톱 수호자의 날개』가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쮸와아앙!
얼음으로 이뤄진 이중환의 날개모양 외골격이 쫙 펼쳐지더니.
이내 그곳에 새겨진 눈알무늬에서부터 보랏빛 광선이 사방으로 발사되었다.
“…큭!”
폭만 4미터에 이르는 날개에서 빈틈없이 발사된 광선의 난무!
이중환의 공격이 워낙 순식간에 사방을 장악해버린 탓에.
노릿하게 물든 화안금정의 힘으로도, 운룡보의 재빠른 움직임으로도 나는 그 광선들을 피해내지 못했다.
-쩌저적!
“용호!”
“설용호 산군님!”
이중환의 광선에 노출된 순간.
전신의 감각이 느릿하게 둔해지며, 내 몸 위에 순식간에 두터운 얼음이 얼어붙었다.
얼어붙은 얼음 너머로 강태백과 그의 친위대가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으르르르….》
다잡은 먹잇감을 눈앞에 둔 포식자처럼,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넣은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나를 얼리는데 성공한 이중환은 노르스름한 이빨을 드러내며 광포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엔 얼려버린 인간 하나 쯤은 단숨에 짓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어려있었다.
그래. 기습에 성공한 덕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을 순 있겠지.
그런데 어쩌나? 지금의 나를 ‘다 잡은 사냥감’으로 판단한다면, 적지않게 후회할텐데?
-쿠르르르릉!
오행 길드원들에게서 흡수한 내력의 와류가 불길한 소리를 내며 몸속에서 끊임없이 소용돌이쳤다.
내력으로 이뤄진 시커먼 먹장구름이 내 몸에서 뭉클뭉클 흘러나와, 내 몸 위로 얼어붙은 보랏빛 얼음을 휘감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곧이어 염룡등천의 묘리에 따라, 사방을 뒤덮은 시커먼 먹장구름이 화르륵 타올랐다.
시커먼 연기와 시뻘건 불꽃이 순식간에 내 몸을 뒤덮은 얼음을 스르륵 녹여버렸다.
《크으르르?》
녹아내린 얼음 속에서 내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흩뿌리며 등장하자.
기세등등한 표정을 짓던 이중환의 눈빛에 분노 섞인 의문이 떠올랐다.
물론. 나는 그의 의문에 답해줄 생각 따윈, 단 1mg도 없었다.
「위치사수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총 [5] % 증가합니다」
「깔맞춤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가장 높은 능력치에 맞춰 조정됩니다.」
잠깐 동안 얼음 속에 갇혀있던 동안, 『위치사수』가 발동되자.
나는 지체할 새 없이 즉시 『깔맞춤』 스킬을 발동시켰다.
-츠츠츠츠츳.
그동안의 성장으로 인해, 능력치 자체가 대폭 늘어난 탓인지.
『깔맞춤』 스킬로 증폭된 인지력의 효과 또한 먼젓번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이었다.
필멸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해버린 인지력의 효과로 인해, 모든 것이 느릿하게 느껴졌다.
마치, 시간과 공간이 왜곡되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피슈슈슛!
그렇게 시간이 왜곡된 공간 속에서, 나는 이중환의 가슴에 창을 찔러 들어갔다.
화염에 휘감긴 어둠달의 창날이 그의 가슴에 박혀있는 단검을 정확하게 노리며, 이글거리는 불꽃을 사방에 흩뿌렸다.
-콰아앙!
《…크허어엉!》
첫 번째 격돌!
어둠달의 창날과 이중환의 외골격이 요란하게 맞부딪힌 순간.
폭음과 함께 얼음과 불꽃이 후두둑 튀었다. 창대를 움켜쥔 손에 저릿한 충격이 전해졌다.
애석하게도 단검을 노린 공격은 이중환의 외골격에 막혀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콰앙! 콰앙! 콰앙!
하지만 첫 번째 격돌은 그저 시작에 불과한 것!
나는 시커면 연기와 새빨간 불꽃을 망토처럼 휘날리며, 계속해서 어둠달을 휘둘렀다.
어둠달의 창날에서 비롯된 불꽃의 용들의 군무가 이중환의 가슴팍을 집요하게 노렸다.
《크아아앙! 크아아앙!》
이중환은 성난 울음 소리를 토해내며 내게 반격을 날렸지만.
인간을 초월한 인지력 속에서 운룡보의 신묘한 움직임이 극성으로 발휘되자.
내 몸은 마치 허상으로 이뤄진 듯 그가 날린 모든 공격을 피해냈다.
-쮸와앙! 쮸와아앙!
다시 한번 거대한 날개형 외골격에서 보랏빛 광선의 윤무가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냉험한 한기가 사방을 꽉꽉 장악해나갔다.
보랏빛 광선이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보랏빛 얼음이 후두둑 솟아났다.
“…!”
“사, 산군님 위험…. 저, 저럴수가!”
묘기! 신기! 광기!
필멸자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은 내 인지력은 이번엔 보랏빛 광선들을 정확하게 감지해냈다.
아니 단순히 감지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나는 어둠달을 휘둘러, 내게 쇄도해온 광선들을 어둠달의 창날로 정확하게 쳐내는 신기를 발휘했다.
-쿠르륵!
보랏빛 광선이 어둠달의 검은 창날에 닿은 그 순간!
어둠달의 창날에 박힌 검은 심장이 거세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오행 길드원들의 마력을 흡수한 것만으론 성이차지 않는 모양인지, 놈은 게걸스럽게 이중환의 마력을 탐했다.
-키이이잉!
이중환의 마력을 흡수한 검은 심정이 시커멓게 물들더니, 어둠달 전체가 화염에 휘감겼다.
창대에 새겨진 마력 회로가 화르륵 타들어가며, 음울한 핏빛 광채를 번쩍번쩍 토해냈다.
온몸이 터져나갈 듯 막대한 양의 내력이 몸속으로 유입되어 초월적인 괴력이 들끓어 올랐다.
“크허엉!”
나는 사자후를 터뜨리며, 땅을 박찼다.
순간적으로 음속을 뛰어넘은 탓에 공기가 비명을 질렀다. 불꽃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꾸과과광!
두 번째 격돌!
이번에 내가 노린 곳은 이중환의 가슴팍이 아닌, 날개형 외골격에 달린 눈알이었다.
새하얗게 백열된 어둠달의 창날과 보랏빛 외골격이 무섭게 맞부딪히며, 연기를 토해냈다.
격돌로 인해 발생한, 강렬한 충격파에 의해 이중환이 밟고 있던 바닥이 움푹 함몰되었다.
-쩌적! 쩌저적!
얼음으로 이뤄진 단단한 날개형 외골격에 쩌적 금이갔다.
금이 간 외골격에서 새어나온 마력을 검은 심장이 게걸스럽게 탐하자.
날개형 외골격의 곳곳에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크워어엇!》
온몸의 피부가 통째로 지져지는 듯한 고통에 이중환이 고통에 찬 울음소리를 토해내려는 찰나!
-뎅겅!
외골격을 뚫어낸 어둠달의 새하얗게 백열된 창날이 이중환의 가슴팍을 썽둥 베어냈다.
고기타는 냄새와 함께, 꿈틀거리는 살점이 가죽째로 잘려 바닥에 철푸덕 떨어졌다.
《캬아아악!》
실체화된 외골격의 일격마저 버텨낼 정도로 이중환의 살가죽은 질기기 짝이 없었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마력을 검은 심장이 흡수해버리자, 살가죽의 내구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공격이 계속될수록 이중환의 강인한 살가죽이 썽둥썽둥 베였다. 살점을 태우는 연기가 사방에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크키이익!》
그러던 그 순간!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던 이중환의 눈이 광기를 흩뿌리며 노릿하게 빛났다.
그러더니 벼락처럼 움직인 그의 손이 재빠르게 어둠달의 창날을 붙잡았다.
-치지지지직!
내력으로 인해, 새하얗게 백열된 어둠달을 맨손으로 붙잡은 대가는 범상치 않았다.
어둠달을 붙잡은 이중환의 손이 순식간에 새까만 숯덩이가 되어버렸다.
손가락이 뎅겅뎅겅 썰려나가며, 고약한 냄새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크아아악!》
하지만, 한 손을 희생한 덕분에 이중환은 나의 움직임을 잠시나마 봉할 수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 이중환의 반대쪽 손이 꽈드득 주먹을 움켜쥐고 내게 날아들었다.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한기를 품고 거대한 주먹이 내게 쇄도해왔다.
-꽈앙!
“크읏!”
최후의 발악 속에 혼신을 다한 탓일까?
이중환이 발악적으로 날린 일격은 대단한 위력을 품고 있었다.
폭탄이 터진 듯한 굉음과 함께, 내 몸을 뒤덮은 황금빛 외골격이 쩌적 갈라지며 얼어붙었다.
동시에 뼈 전체가 쾅쾅 울리는 듯한 격통이 찾아왔다.
순간적으로 악문 이빨 사이로 핏물이 촤악 넘어왔다. 꽉 깨문 어금니에 우지끈 금이 갔다.
《크아아악! 캬아아악!》
이중환은 야성적인 감으로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주먹 순간적으로 흐릿해진다 싶더니, 마치 소나기가 퍼붓듯 연타가 시작되었다.
-콰쾅! 콰쾅! 콰콰쾅!
세 번째 격돌!
먼젓번과는 달리, 이번엔 내가 방어하는 입장이었다.
냉기에 휘감긴 이중환의 주먹과 불꽃에 휘감긴 어둠달의 창날이 맞부딪혔다.
허공에서 연이어 폭음이 터져 나오며. 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카아아악! 캬아아악!》
완전히 광기에 휩싸인 이중환의 움직임은 오로지 공격 뿐이었다.
향상된 인지능력으로 인해, 그의 주먹을 모조리 막아내는데 성공했지만.
이중환은 주먹이 숯덩이가 되어버린 상태에서도 집요하게 양손으로 주먹을 휘둘러 댔다.
…아니 잠깐만 ‘양손으로’ 라고?
-콰아앙!
“빌어먹을!”
새까맣게 숯덩어리가 되어버린 이중환의 양손은 어느 순간 재생된 상태였다.
전신에 아로새겨졌던 화상자국 또한 실시간으로 스르륵 아물어가고 있었다.
강태백의 공격에서부터 재생했듯, 놈은 이번에도 내 공격으로부터 재생하고 있었다.
"이, 이번에도 재생이라니!"
멀리서 나를 응원하던 친위대원들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파팍!
나는 아랫입술을 으드득 깨물고, 창대에 회전을 먹인 뒤, 이중환의 가슴팍을 걷어차.
어둠달에게서 놈을 떼어냈다.
[김준영이란 놈이 아무래도, 이중환을 재생특화형으로 개조한 것 같구나. 아무래도 한 방에 보내야 할 것 같다.]
“말하지 않으셔도 잘 압니다.”
위철용에게 짓씹듯 으르렁거리며 말한 뒤, 나는 이중환의 가슴팍에 박힌 단검을 노려보았다.
이중환이 몸을 재생할 때마다, 단검에 새겨진 마법진이 요사스러운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한방이라면 어쩔 수 없네.
-화르르륵!
어차피 이제 깔맞춤 스킬의 남은 시간은 고작 30여초!
지체할 시간 따윈 내게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남은 한방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때!
눈을 부라리며, 외골격에 내력을 주입한 나는 최후의 공격을 준비했다.
-쿠오오옹!
쩌저적 얼어붙은 외골격이 시커멓게 물들어가며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평소의 암룡출동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내력이 외골격에 강제로 주입되었다.
검은 심장이 흡수한 막대한 양의 내력이 염룡등천의 묘리에 따라 엄청난 양의 양기로 변화했다.
-번쩌억!
암룡출동을 발동시킨 순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광량의 섬광이 세상을 밝게 물들였다.
마치 태양이 대지에 잠시 몸을 뉘인 듯 강렬한 열기의 폭풍이 세상을 뜨겁게 달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