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맙소사….”
검은 로브 아래에서 드러난 이중환의 육신은 다른 오행 길드원들보다 더 심각하게 뒤틀려 있는 상태였다.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이중환의 얼굴은 엉망으로 찌그러진 채, 가슴께로 밀려나 있었고.
이전까지 ‘머리’라고 짐작했던 부위엔, 새롭게 돋아난 머리가 흉측한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중환이…. 자네가 이런 끔찍한 꼴을 당할 줄이야.”
말없이 이중환의 흉측한 모습을 바라보던 강태백의 얼굴에 이내 비장한 표정이 떠올랐다.
동시에 사방을 뒤덮은 냉기에 사그라들었던 그의 불꽃이 주인의 의지에 감응해 다시 격렬하게 타올랐다.
《ㄲㅡ…ㅌㄴㅐ…ㅈ》
“알겠네. 자네의 고통을 내가. 이 손으로 끝내주겠네.”
이중환의 상태를 확인한 강태백은 그를 구해내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린 것 같았다.
외골격을 격렬하게 불태우며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그는 오랜 친구의 목숨을 자신의 손으로 끝내기 위한 전투를 준비했다.
“모두! 내게서 물러서게!”
강태백이 경고 섞인 고함소리와 함께, 그의 특성트리 『금속과 불꽃의 노래』의 외골격 『염왕의 갑주』가 진정한 위력을 드러내었다.
-쿠르르륵!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광채와 함께 강태백의 몸이 하얗게 백열되었다.
하얗게 백열된 그의 몸 위에 마력으로 이뤄진 뼈와 힘줄이 자라났다.
쉴새없이 새하얀 불꽃을 토해내며 자라난 뼈와 힘줄은 거대한 형체를 빚어내기 시작했다.
[호오? 벌써 『외골격 실체화』라니, 과연 한 세력의 수장다운 실력이로고.]
『외골격 실체화』
특성 트리가 간직한 고유의 외골격의 진정한 형태를 구현해 현실에 강림시키는 것으로
60레벨을 달성해, 새로운 특이점에 다다른 헌터들이 습득하는 비기였다.
위철용의 감탄사가 말해주듯, 놀랍게도 진정한 힘을 드러낸 강태백은 지금 시기에 벌써 『외골격 실체화』를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른 인물이었다.
-화르르륵!
강태백의 몸 위에 실체화된 외골격 『염왕의 갑주』는 굉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전신이 불꽃으로 이뤄진 불의 거인이 온몸에 이글거리는 화염을 구름처럼 휘감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치지지직!
《ㄱㅏ…ㅇㅌㅐ…ㅂ…ㅐㄱ!》
『염왕의 갑주』가 실체화되는 동안 이중환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지 않았다.
실체화 되어가는 거인의 모습에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낀 그는 계속해서 거대한 얼음 덩어리들을 소환해 공격했지만, 얼음 덩어리들은 모조리 하얗게 백열된 불꽃에 막혀 순식간에 증발되어버렸다.
-콰아아앙!
『염왕의 갑주』가 실체화를 끝내기 무섭게, 강태백은 집채만한 주먹을 벼락처럼 휘둘렀다.
불꽃이 휘감긴 집채만 한 주먹이 이중환의 육신을 강타하자, 귀가 먹먹해질만큼 강렬한 폭음이 터졌다.
지진이라도 난 듯, 대지가 우르릉 비명을 토해냈다.
-콰앙! 콰아앙! 콰앙!
강태백의 주먹질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화염이 이글거리는 거대한 눈에서 살기어린 안광을 피워낸 그는 계속해서 연속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폭음이 연달아 터지며, 아스팔트에 뒤덮인 땅이 움푹움푹 파였다.
-쿠오오오오!
이중환의 육신을 지반 째로 바닥에 짓이겨버린 것으론 성이 차지 않는 모양인지.
공기가 빨려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포효하듯 입을 벌린 거대한 불꽃 거인의 입가에 엄청난 크기의 불꽃 구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잘가게 친구여!”
-콰콰콰콰콰쾅!
벗에게 작별을 알리는 강태백의 쩌렁쩌렁한 사자후와 함께, 불꽃 구체가 움푹 꺼진 지반을 향해 운석처럼 내려 꽂혔다.
-번쩍!
불꽃 구체가 지반을 강타한 순간!
망막을 통째로 태워버릴 듯 강렬한 열기를 띤 섬광이 동시에 터졌다.
새카만 아스팔트가 흐물흐물하게 녹는가 싶더니, 이내 기화되어 푸스스 증발해버렸다.
박살 난 지반 아래에서 혈관처럼 모습을 드러냈던 수도관이 통째로 탄화되어 사라져 버렸다.
“허억…. 허억.”
거친 호흡소리와 함께, 강태백의 몸이 다시 원래 크기대로 쪼그라들었다.
마력을 막대하게 잡아먹는 『외골격 실체화』를 사용했기 때문인지. 거칠게 호흡을 가다듬는 강태백은 몹시 지친 듯한 모습이었다.
강태백은 그렇게 지친 기색이 역력한 상태에서도, 경계하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중환의 몸이 파묻힌 구덩이를 노려 보았다.
《…아파. 너무 아파.》
“…!”
놀랍게도 참혹하게 녹아내린 구덩이에선 끔찍하게 뒤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조금 전보다 훨씬 더 흉측하게 뒤틀린 손이 구덩이 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아파…. 나 많이 아파.》
구덩이 속에서 기어나온 이중환의 모습은 더욱 기이하게 변이되어 있었다.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던 본래의 얼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고 그래도 인간형의 형태를 유지하던 몸은 마치 부정형 생명체마냥 계속해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길드장님의 진심을 다한 공격조차 소용이 없다니.”
강태백이 혼신을 다한 일격으로도 이중환이 멀쩡하게 움직이자, 친위대원들의 얼굴에 공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강태백의 실체화된 외골격이 선사해준, 수천도에 이르는 고온에도 수십톤을 훌쩍 뛰어넘는 충격에도 이중환은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뭐지? 회귀 전에 온갖 놈들을 다 겪어봤지만. 이렇게까지 무식하게 튼튼한 놈은 본 적이 없는데….
《나! 아프다고오!》
흐느적 흐느적 다가오며, 아이처럼 흐느끼던 이중환은 별안간 빼액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자 고함소리와 함께, 그의 온몸에서 녹색과 보랏빛이 뒤섞인 얼음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쩌정! 쩌저정!
돋아난 얼음은 마치 뿌리를 뻗어대는 식물처럼 순식간에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렇게 퍼져나간 얼음은 내 손에 쓰러진 오행 길드원들의 박살 난 육신을 뒤덮기 시작했다.
-콰득! 콰드득!
끔찍한 소리가 고요가 내려앉은 전장에 섬뜩하게 울려퍼졌다.
뼈가 짜부라지는 소리, 살점이 짓이겨지는 소리와 함께 뻗어나간 얼음은 오행 길드원들의 시신을 포식하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이제 아프지 않아!》
오행 길드원들의 시신을 포식하자 이중환의 몸에도 변화가 생겼다.
온몸을 뒤덮은 거대한 얼음 속에서, 새로운 뼈와 살점이 자라나 그의 몸에 엉겨붙었다.
정해진 형체가 없이 끊임없이 꿈틀거리던 이중환의 몸이 점점 새로운 형태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크으르르르!》
변이를 끝마친 이중환은 마치 거대한 변종 원숭이를 연상케하는 흉측한 형태로 변해있었다.
거대한 근육질 몸엔 녹색과 보랏빛이 교대로 번들거리는 털이 수북하게 돋아있었고.
강태백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는 얼굴은 엉망으로 뒤틀리고 짓이겨진 원숭이의 얼굴과 비슷하게 변이되어 있었다.
《크아아아악!》
변이를 끝낸 이중환은 강태백을 향해 짐승 같은 목소리로 광포하게 울부짖었다.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이성이 완전히 증발해버린 모양인지, 이중환의 번들거리는 흉측한 눈엔 흉폭한 살기만이 가득했다.
“위험합니다!”
-투확!
이중환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동요한 순간. 지친 탓인지 강태백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위협을 인지한 내가 강태백과 이중환의 사이에 난입하자, 아슬아슬하게 보랏빛 광선이 강태백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빠드드득!
보랏빛 광선을 피해낸 뒤, 반사적으로 휘두른 창날이 얼음에 가로막혔다.
모든 것들을 얼려, 사용자를 보호하는 이중환의 외골격이 어느새 발동된 것이었다.
“젠장, 외골격까지 사용하다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중환이 다시 한번 변이한 형태는 생전 처음 보는 타입이었다.
침식당했다고 보기엔 그는 변이 전의 능력을 너무나 능숙하게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몬스터로 변이시킬 경우,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긴 했으나. 이처럼 생전의 능력을 그대로 보유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변이된 주제에 외골격을 가지고 있다니 이건 또 무슨!
-쩌저적!
이중환에게 일어난 현상을 유추하며 잠시 상념에 잠긴 사이, 다시 한번 허공에 얼음이 꽝꽝 얼어붙기 시작했다. 짐승 특유의 노릿한 시선이 느껴졌다.
《크르륵!》
-투확!
다시 한번 광포한 울음소리와 함께, 보랏빛 광선이 날아들었다.
운룡보를 활용해 이중환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낸 나는, 그의 몸에서 이상한 것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단검?”
괴이하게도 이중환의 심장 어림엔 음산한 기운을 흩뿌리는 단검이 하나 박혀있었다.
잘 세공된 보석들이 박혀있는 화려한 단검엔 아모스의 그것과 같은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