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두 개의 머리에서 터져 나온 비명이 조금씩 사그라들자.
잠시 위층 계단으로 피신했던 최상호가 다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끄, 끝난 겁니까? 산군님?”
그렇게 최상호는 고개만을 내밀어 공방 내부를 조심스레 살펴보더니.
가마 속에서 새까맣게 불타버린 김우경을 발견하자, 그는 허둥지둥 내 쪽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나는 벌거벗은 몸으로 헐레벌떡 내게 달려오는 최상호에게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이건 또 뭐야.”
김우경이 두 개의 얼굴에서 최후의 단말마를 토해낸 바로 그때.
시스템 메시지 창에 괴악한 문자열들의 나열이 후두둑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위업 [게이트 – #@#의 늪$대] 달성!」
「칭호 [뇨Å끼※ (오류 : 검수 요청)]가 수여됩니다.」
「칭호 보상 – 보너스 개●리 [+5 ★리]」
김우경은 분명, 게이트 우두머리와는 상관없는 존재임에도 불구.
어째선지 시스템 메시지는 놈을 게이트 우두머리로의 일종으로 인식해버린 것 같았다.
「게이트 우두머리, 블◇ 프◆그★ #쟁 ※주의 전리품 상자가 출현합니다.」
「특성 『야바위꾼의 악운』의 효과로 추가 선택지가 출현합니다.」
「세 개의 전리품 상자 중 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해 주세요!」
위업 메시지부터, 특성 『야바위꾼의 악운』이 적용되었다는 전리품 획득 메시지까지.
메시지의 전체적인 틀은 게이트 우두머리를 쓰러뜨렸을 때 출력되는 메시지와 똑 닮아있었으나.
대괄호 안이 모든 문자열은 엉망으로 망가져 있는 것이, 내게 이루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괴이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뭐지? 이 주변에 과부하되어 붕괴된 게이트라도 있었던 건가?
갑자기 출력된 시스템 메시지에 머릿속이 엉망으로 헝클어졌다.
복잡해진 머리를 휘휘 내저은 나는 김우경의 시체 쪽으로 다가갔다.
-파사삭!
김우경의 시체를 확인해보기 위해, 여전히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가마에 가까이 다가가자.
잘 구워진 참숯처럼 까맣게 타버린 김우경의 시신이 이글거리는 불길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전신을 뒤덮었던 금속 촉수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자, 그 속에서 무언가 새까만 것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헛걸음을 쳤던 인천의 게이트 룸에서 상대했던 몬스터 블랙 프로그맨.
금속 촉수가 무너진 김우경의 가슴팍엔 어째선지 블랙 프로그맨과 굉장히 흡사해 보이는 몬스터의 머리가 박혀있었다.
-화르르륵!
얼핏 보였던 블랙 프로그맨(?)의 머리는 금세 가마 속의 불길 속에서 완전히 불타버렸다.
금속 촉수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김우경의 시신 또한 가마의 불길을 이기지 못하고 재가되어 사라져 버렸다.
“사, 산군님? 괜찮으십니까요. 어째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는 겁니까! 뭐 잘못된 일이라도 있으신지…. 아하! 이 상자들이 문제입니까? 이런 건 제가 그냥…!”
새빨간 불꽃이 탐욕스럽게 혀를 날름거리는 가마를 심각한 표정으로 말없이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내 표정을 살피던 최상호가 호들갑을 떨어대며, 주워든 망치로 상자를 내리치려 들었다.
“아뇨. 아닙니다. 상자는 내버려 두세요. 그것보다 우선 이 난장판을 좀 같이 수색해보시겠습니까?”
“예? 예에. 그리하지요. 김우경 장인님이 어쩌다가 저렇게 변해버렸는지. 저도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최상호의 호들갑스러운 모습에 잠시 한숨을 내쉰 나는 막 보상 상자를 파괴하려던 그의 손을 붙잡아 멈췄다.
그리곤 최상호에게 전투의 여파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공방에서 쓸만한 정보를 찾아달라 부탁했다.
[애송아. 조금 전 그 김우경의 가슴팍에 박힌 것은 분명 먼젓번의 그 개구리 놈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신중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핀 최상호가 공방 내부를 탐색하기 시작하자.
가마 속을 들여다보던 위철용이 김우경의 가슴팍에 달려있던 몬스터의 정체를 지적해왔다.
“예. 블랙 프로그맨이랑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강인해 보이는 몬스터의 얼굴이었죠.”
김우경에게 이식되어 있던 몬스터는 블랙 프로그맨과 상당히 흡사한 생김새를 지녔지만.
묘하게 각진 얼굴과 곳곳에 돌출된 보랏빛 뿔들이 평범한 블랙 프로그맨과는 뭔가 격이 다르다는 느낌을 주는 모습이었다.
…가만? 어쩌면 놈이 그 인천 게이트의 우두머리였을지도 모르겠군.
지난번에 들렸던 체체파리 클랜의 인천 게이트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붕괴 당한 상태였다.
과부하되어 붕괴해버린 게이트 근처엔 마땅히 게이트의 우두머리였던 몬스터가 배회하고 있는 것이 상식이지만.
인천의 게이트 룸에서 게이트 우두머리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차원 관리자를 필멸자의 육신에 이식하는 술법이라니. 그 사교도 놈이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게냐! 이따위 개 짓거린 금기 중의 금기이거늘!]
김우경에게 있었던 일을 유추한 위철용은 별안간 폭풍과도 같은 분노를 터뜨렸다.
자그마한 비췻빛 배후령의 육신에서 비롯된 살기가 희생양을 노리는 독사처럼 꿈틀거리며 사방을 잠식해나갔다.
“에취! 여, 역시 옷을 입을 걸 그랬나?”
배후령으로 영락한 몸이었지만, 기억을 어느 정도 되찾았기 때문인지.
위철용이 뿜어내는 살기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었다.
그의 살기에 노출된 최상호가 요란한 재채기를 해대더니, 몸을 부르르 떨며 자신의 몸을 슥슥 비볐다.
“어르신. 인간의 몸에 이계의 존재, 그러니까 몬스터를 집어넣는 것은 사교도들도 자주 하는 짓 아니었습니까?”
사교도 놈들, 특히 그 중에서도 체체파리 클랜의 주특기는 바로 저주받은 존재인 ‘침식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인간의 몸에 몬스터의 육신을 이식한다든지, 아니면 인간의 몸에 이계의 존재를 소환시켜 뒤틀어버린다든지.
김우경의 사례처럼 게이트 우두머리와 인간이 융합된 경우는 보지 못했지만, 인간과 몬스터가 융합된 존재인 ‘침식체’는 질릴 정도로 상대해봤기에.
나는 위철용이 새삼스레 인간과 몬스터를 융합시킨 행위에 격분하는 이유를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마물들과는 달리, 네놈들이 게이트 ‘우두머리’라고 칭하는 이들, 그러니까 차원 관리자들은 일반적인 마물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을 빚어내는 데는 고귀한 이의 영혼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지.]
“…고귀한 이의 영혼을 게이트 우두머리로 빚어낸다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그것은 필멸자들의 영혼을 ‘유용하게’ 쓰도록 ※#율이 만#어…. 빌어먹을!]
위철용의 입에서 충격적인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나는 그에게 부연설명을 요구했으나.
이번에도 그 되먹지 못한 ‘인과율’이라는 놈의 개입 때문인지, 그의 말엔 상당한 양의 잡음이 끼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크윽! 자세한 이야기는 심상 세계에서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아무튼! 그 사교도놈이 저지른 짓은 성좌들 사이에서도 금지된 금기였느니라!]
무언가 숨겨진 사연이 있는 모양이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으로선 위철용의 말을 이해할 길이 없었다.
자세한 것은 그의 말대로 인과율의 간섭을 받지 않는 심상 세계에서 묻기로 해둔 뒤.
나는 눈앞에 나타난 세 개의 전리품 상자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원혼 무쇠 상자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얄궂게도 김우경을 쓰러뜨린 뒤 나온 보물상자 중엔.
그에게 부와 명성을 제공한 제련법 『원념 제련』의 핵심 소재로 만들어진 상자가 섞여 있었다.
그것에 어쩐지 정체 모를 이끌림을 느낀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을 선택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획득한 상자는 아니지만. 보상은 그래도 괜찮은 것이 들어있겠죠?”
원혼 무쇠 상자는 특유의 녹색 광채를 요사스럽게 뿜어내고 있었다.
잠시 복잡한 것은 잊고, 보상을 취할 기쁨에 손을 슥슥 비빈 나는 굳게 잠긴 상자를 힘껏 열어젖혔다.
“으엉? 이건 또 뭐야.”
제법 큼직한 크기를 자랑하던 원혼 무쇠 상자 속엔 자그마한 푸른빛 구슬이 놓여 있었다.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 시린 한기를 뿜어내는 푸른빛 구슬에 손을 가져다 대자.
시스템 메시지 창 한 귀퉁이에 그것의 정보가 주르륵 출력되기 시작했다.
『영혼 수확 낫』
등급 : 영웅
설명 : 강령술의 비밀이 담긴 낫입니다.
사용 시 특성 『혼령 수확』을 획득합니다.
시스템 창에 획득한 아이템의 설명이 출력된 순간.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혼령 수확』이라니. 어째서 이 저주받은 특성이 여기서 튀어나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