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쓰러진 사교도들에게 다가가, 일련의 사태에 대해 심문을 시작하려던 찰나. 이변이 일어났다.
김우경의 모습을 취한 채, 나를 속이려 들었던 대역의 낯빛이 새까맣게 물든 것을 시작으로,
내가 휘두른 커튼 봉에 맞아 기절한 사교도들의 입에서도 새까만 거품이 보그륵 솟아올랐다.
-꾸르륵!
대역과 사교도들의 입가에서 끓어오른 거품은 강한 독기를 품고 있었다.
물론, 외골격의 보호를 받는 내게 이 정도 독기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지만.
갑자기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허둥대던 수행원들에겐 무서운 효과를 발휘했다.
“커, 커허헉!”
사교도들의 몸에서 비롯된 치명적인 독기가 삽시간에 널찍한 응접실을 잠식해버리자.
구석에 웅크리며 몸을 피했던 수행원들은 하나둘씩 괴로운 표정으로 목을 부여잡았다.
새하얗게 질렸던 그들의 얼굴이 점점 까맣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사, 살려….”
독기에 침식되어 안쓰럽게 몸을 떨던 수행원들의 눈이 허옇게 까뒤집힌다. 싶더니.
이내 그들의 신형이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쓰러진 수행원들의 입가에서 탄식과도 같은 마지막 숨이 새어 나온 것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어찌 손쓸 새도 없이 모두 목숨을 잃어버렸다.
[이런 사악한! 자신의 부하들까지 거리낌 없이 희생시키다니! 역시 사교도와 손을 잡은 놈답군!]
눈 앞에 펼쳐진 비정한 광경에 위철용은 즉시 분개를 터뜨리며, 김우경에게 저주를 날렸지만.
내 생각은 그와는 조금 달랐다.
“…아무리 봐도 이상해요. 정말 김우경이 사교도와 손을 잡은 것이 맞긴 할까요?”
응접실에서부터 보란 듯이 놓여 있는 체체파리 클랜의 액막이 조각상부터 시작해서.
김우경을 어설프게 닮은 대역을 대신 내보낸 것에, 수행원으로 변장한 얼치기 사교도들까지!
지금까지 김우경의 저택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은 지나치게 작위적인 냄새가 풍겼다.
마치, 누군가가 김우경을 사교도로 몰아가는 게 아닌가 싶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흐음. 네놈의 말을 듣고 보니 또 그렇군. 김우경, 그 늙은 여우 놈이라면 이렇게 모략이라고 부르기에도 어설픈 짓을 꾸미지 않을 텐데 말이다.]
위철용의 말대로 내가 기억하는 김우경은 노회한 너구리요 교활한 여우와도 같은 작자였다.
그동안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그가 꾸몄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어설프게 작위적이었다.
“…우선은 김우경과 직접 만나 봐야겠네요.”
쓰러진 사교도들의 시신으로부터 무기를 회수한 나는 황금빛 안광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부서진 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어둠이 음습하게 너울거리는 복도 안쪽에선 음모의 불온한 기운이 음험하게 꿈틀거리는 듯했다.
*****
응접실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사교도들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청소부, 경비원, 정원사, 요리사 등등 다양한 직종으로 위장한 사교도들은 하나같이 광기에 찬 표정으로 내게 각양각색의 무기를 휘둘러 왔다.
“새,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콰직!
목소리 하나만큼은 광활하게 넓은 복도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대단했으나.
애석하게도 덤벼든 사교도들의 실력은 일반인보다 약간 나은 수준으로, 그리 보잘것없었다,
가볍게 노획한 무기를 휘두른 것만으로도 놈들은 쉽게 무력화되었다.
[조금 전 쓰러진 요리사 놈은 새로운 주인님이라더니, 이번엔 새로운 세상이라…. 사교도 놈들이 원래 이렇게 개성이 넘치는 놈들이었더냐?]
게다가 외치는 구호조차 중구난방인 것이 뭔가 어설프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위철용의 지적에 쓰게 웃은 나는 쓰러진 정원사 복장의 사교도를 내려다보았다.
“개성이 넘친다기엔 이 친구도 눈이 녹색으로 물들어 있네요.”
저택의 사교도들은 모든 것이 중구난방 가지각색이었지만, 한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바로 광기에 잠식되어 정신없이 흔들리는 눈이 녹색으로 물들어 있다는 것.
혀를 빼물고 기절한 정원사 복장이 사교도 또한, 까뒤집힌 눈이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때 그 ‘배교자’인가 뭔가 하는 놈들이 마족들과 손을 잡았다고 했더냐? 그래서 그런지 지금 이놈들의 몸에서도 낙오자들 특유의 사특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느니라.]
“예, 김준영이 마족들과 손을 잡았다고 했으니. 아마 김준영 쪽에 붙은 체체파리 클랜원들도 마족들과 연관이 없지는 않겠죠. 하지만…. 마족들 중 이런 식으로 정신을 조종하는 놈이 있었던가요?”
내가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마족들이 인간의 정신을 조종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영혼을 장악해, 신체의 주도권을 빼앗는 방식의 『빙의』
아예 희생자의 영혼을 먹어치우고 육신을 장악하는 방식의 『침식』
두 가지 방식 모두 영혼과 육신의 연결을 왜곡시키는 방식이기에. 내가 가진 특성 중 『육체와 영혼』의 효과로 어느 정도로 쉽게. 대처가 가능하지만.
저택 내부의 사교도들은 『육체와 영혼』 특성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즉, 다른 방식으로 정신을 조종당하고 있다는 말인데….
[조종당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사에 따라…. 아니, 멀쩡한 정신으로 저따위 행동을 할 리가 없지.]
위철용은 ‘조종당하고 있다’는 내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려 했으나,
계단 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중년인의 엄청난 모습에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끼요오오옷! 주인님께선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
천하의 위철용마저, 자신을 의견을 철회할 정도인 중년인은 엄청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벌거벗은 알몸뚱이는 전형적인 살찐 중년 남성의 그것과 닮아 있었고.
한때 자신의 가발이었던 털뭉치로 아슬아슬하게 하반신만을 가린 모습이 이루 형용할 수 없이 기괴하게만 보였다.
“끼요오오오옷! 주인님의 뜻에 따라 너의 몸에 이 고소한 참기름을 발라주겠다!”
심지어 중년인은 무기마저 범상치 않았다.
한 손에는 요리에 기름을 바를 때 쓰는 요리 솔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엔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참기름병을 들고 있었다.
…정말 이 저택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가만. 어째 낯이 익은데…. 어라? 저 양반 최상호 아니에요?”
혀를 날름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중년인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내 머릿속에 태백 길드 소속의 인물 중 한 명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태백 길드의 보급팀 팀장 ‘아버지’ 최상호.
태백 길드 산하의 공격대원들에게 물자를 보급해주는 주임원사격 인물이자.
태백 길드의 간부답지 않게, 인자하고 정이 많은 성격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어쩐지 회귀 후에 보이지 않더라니….
어째서 저 양반이 저토록 해괴한 몰골로 이곳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거지?
“우오옷! 받아라! 청정지역에서 특별히 공수한 특급 참기름이다! 몸에 아주 좋지!”
옛 지인과의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제외에 쓴웃음을 짓고 있으려니.
기묘한 괴성을 내지른 최상호는 혀를 요사스럽게 날름거리며 내게 요리 솔을 휘둘러왔다.
-빠각!
들고 있는 무기와 차려입은 행색은 독보적으로 기괴했으나.
애석하게도 최상호가 일반인인 만큼 그의 몸놀림은 흔한 중년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가볍게 그의 무기(?)를 피해낸 나는 주먹을 휘둘러 그의 턱을 후려갈겼다.
“어흑. 비, 비싼 물건인데에….”
정통으로 턱을 얻어맞은 최상호는 비명인지 뭔지 모를 탄식을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
[흐음…. 확실해, 머릿 속에 뭔가 요사스러운 기운이 도사리고 있구나.]
바닥에 철푸덕 몸을 누인 최상호를 살펴보던 위철용은 최상호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위철용의 말에 따라, 화안금정을 발동시킨 두 눈에 내력을 집중하자.
최상호의 시원하게 벗겨진 대머리에 녹색의 기운이 요망스럽게 어룽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가 머리를 감싸고 있긴 한데…. 이거 고칠 수는 있을까요?”
최상호는 회귀 전 박정욱과 더불어 태백의 고위 간부 중 유이하게 내가 호감을 품었던 인물이었다.
회귀한 이후 굳이 그를 찾아갈 정도로 아주 친밀한 사이까지는 아니었지만, 제법 그에게 신세를 진 것이 있었기에. 나는 이런 식으로 최상호를 잃고 싶지 않았다.
[물론, 고칠 수 있고말고. 삿된 기운은 양기로 태우는 것이 최고이니라. 따라서, 염룡등천의 양기로 그의 머리를 감싼 삿된 기운을 전부 태워버리면 그만이지!]
최상호를 바라보는 내 안타까운 눈빛에 위철용은 훈훈하게 웃으며, 살벌한 해결법을 내놓았다.
-화르륵!
머리 주변을 불태운다는 살벌한 해결책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지만.
지금으로선 딱히 다른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기에, 나는 즉시 염룡등천의 구결에 따라 내력을 강력한 양기로 바꾸어 최상호의 머리를 화르륵 불태우기 시작했다.
“흐, 흐아아악!”
내 손에서 비롯된 양기가 최상호의 얼마 남지 않은 옆머리를 전부 불태운 그 순간!
폐부를 쥐어짜는 듯, 비통한 비명과 함께 최상호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다시 뜨여진 그의 두 눈에선 어느새 요사스러운 녹색 광망이 사라져 있었다.
“다행히 효과를 발휘한 것 같네요. 어때요? 정신이 좀 드십니까?”
“당신은…? 어엇! 설용호 산군님 아니십니까! 으하핫! 잘생기셨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이렇게 인물이 훤하시다니! 반갑습니다. 태백의 보급팀 팀장 최상호입니다.”
정신을 차린 최상호에게 안부를 묻자.
멍하니 내 얼굴을 바라보던 최상호는 호탕한 웃음과 함께 특유의 너스레를 떨어댔다.
혹시나 회귀 전과는 다른 성격일까, 순간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는 내가 기억하는 성격 그대로였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랍니까? 그리고 저는…. 으허억! 또 왜 이런 몰골로 누워있고요!”
그렇게 너스레가 섞인 인사를 건넨 최상호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의 기억이 완전히 머릿속에서 사라진 모양인지, 벌거벗은 몸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점점 혼란스러운 감정이 깃들기 시작했다.
“김우경 장인의 저택입니다. 조사할 것이 있어 들어왔는데. 사교도들 사이에 팀장님이 섞여 있더군요.”
사교도 사이에 끼어있었다는 소리를 듣자.
이맛살을 찌푸리며, 땅에 떨어진 가발을 주워든 최상호의 안색이 대번에 새하얗게 질렸다.
“사, 사교도 사이에 제가 끼어있었단 말입니까? 아, 아닙니다! 산군님! 저는 맹세코 사교도 놈들과는 아무런 연관이….”
“예, 팀장님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계셨습니다. 다행히 제 부족한 재주로 해결했지만요. 혹시…. 마지막으로 기억하시는 게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누군가에게 조종을 당하고 있었다는 말에 최상호의 얼굴이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되었다.
그렇게 허옇게 질린 얼굴로 머리를 감싸 쥔 그는 곧이어 쓸만한 정보를 하나 기억해 냈다.
“마지막 기억이라…. 그래! 김우경 장인님께 발주 넣었던 무기가 벌써 사흘째 소식이 없어서, 따지기 위해 장인님의 자택으로 향했던 것까지 기억이 납니다. 장인님을 찾아뵙고 식사를 대접받았던 것까진 기억이 나는군요.”
내가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김우경은 수수료로 이것저것 많이 떼먹을지언정 일정 하나만큼은 확실히, 기가 막히게 지키던 인물이었다.
그런 김우경이 거래 일정을 지키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