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당연한 말이겠지만, 일개 경비원이 김우경을 붙잡아 내 앞에 대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가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어딘가에 급히 연락을 취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경호팀장’이라 소개한 이가 헐레벌떡 뛰어나오더니.
단단하게 잠긴 문을 열고 나를 저택 내부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자,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김우경 장인님껜 제가 기별을 넣겠습니다.”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김우경의 취향이 듬뿍 가미된 정원을 지나, 저택 내부로 들어서니.
잔뜩 긴장한 낯빛의 경호팀장은 나를 곧장 화려하게 장식된 응접실로 안내해주었다.
그의 말에 따라, 내가 싱글싱글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급스러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자.
경호팀장은 당황한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몸놀림으로 즉시 내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허헛. 거 참. 이걸 이런 식으로 과시해놓다니. 봐라. 애송아, 여기 재밌는 게 놓여있구나.]
가볍게 혀를 찬 위철용은 비췻빛 몸을 움직여, 응접실의 구석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곳엔, 전신이 뱀에 휘감긴 반라의 남성이 조각된 조각상이 놓여 있었다.
자수정을 통짜로 조각한 듯 보랏빛을 띠고 있는 조각상엔 놀랍게도 체체파리 클랜의 음울한 마력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상에. 체체파리 클랜의 액막이 조각상이라니.”
안력을 돋워 조각상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내 입에선 허탈하니 허무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조각상의 정체는 바로, 체체파리 클랜에서 닥쳐올 재액을 막아준답시고 고위 협력자들에게 우호의 상징으로 제공하곤 했던 액막이 조각상이었다.
“이거 생각지도 못했던 소득이긴 한데 말이죠…. 김우경 그 작자가 이렇게 허술한 성격이었나?”
제작하기 굉장히 까다롭기에, 액막이 조각상은 체체파리 클랜에서도 흔치 않은 물건이다.
따라서 이 액막이 조각상을 받았다는 말은 즉, 김우경이 체체파리 클랜에서도 중요한 협력자라는 소리였다.
놈들에게서 이것을 상납받은 김우경 역시, 이것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을 텐데….
하지만 어째선지 김우경은 자신이 사교도와 손을 잡았다는 증거를 떡하니 손님들을 맞이하는 응접실에 방치해놓은 상태였다.
아무리 그가 남에게 무언가를 과시하기 좋아하는 성격이라지만, 사교도와 협력한 사실마저 남들에게 과시할 만큼 멍청한 지능의 소유자는 절대 아니었다.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는 게냐? 그렇지 않아도 네놈과 악연만이 가득했던 놈이, 사교도와 붙어먹은 증거까지 있는 것을! 그런 사소한 의문은 놈을 박살 내고 가져도 늦지 않는 게야!]
불길한 마력을 뿜어내는 조각상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김우경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으려니.
위철용이 토해낸 불만스러운 일갈이 내 귓가에 파고 들어왔다.
“하지만. 어르신. 이거 명백히 이상하잖습니까. 체체파리 클랜 놈들과 붙어먹은 증거를 이렇게 떡하니….”
위철용에게 머릿속을 스친 의문에 대해 말하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내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덜컹!
갑자기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응접실의 고풍스럽게 장식된 문이 벌컥 열렸기 때문이었다.
“흐응…. 건방지게 어떤 놈이 내게 ‘심문권’을 사용했나 했더니, 역시 설용호 산군님이였군.”
활짝 열린 문엔 언짢아 보이는 표정의 김우경이 수행원을 잔뜩 대동한 채로 서 있었다.
존댓말과 반말이 독특한 비율로 뒤섞인 그의 목소리엔 가소롭다는 감정이 물씬 풍겨왔다.
응접실로 들어온 김우경은 무엇이 그리도 우스운지 피식피식 웃어대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시는 분이라, 내게 이렇게 나오는 건가? 아니면 미천한 무기 장인 놈에게 자신의 권위를 확인해보고 싶어서?”
자리에 앉은 채로 고개만을 쭈욱 내밀어 나를 노려보는 김우경의 모습은 마치 탐욕스러운 대머리독수리의 그것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나를 횡령범으로 심문하겠다니. 괜찮겠어? 우리 산군님 덕에 말이야. 내일까지 납품하기로 한 무기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겠는…. 커억!”
-쿠당탕!
김우경의 말에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주억거리던 나는 놈의 머리카락을 번개처럼 날쌔게 끌어당겼다.
덕분에 김우경은 고개를 쭈욱 빼고 있던 자세 그대로, 균형을 잃곤 추하게 바닥을 구르며 내 쪽으로 쭈욱 끌려왔다.
“자, 장인님!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김우경이 그렇게 추하게 바닥을 뒹구르르 구르며 내게 딸려오자.
김우경의 뒤에 시립한 채로 그를 수행하던 수행원들이 뒤늦게 반응했다.
창백하게 질린 낯빛의 수행원들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며, 내게 항의하려 들었지만….
“말했을 텐데? ‘심문권’을 발동하겠다고. 네놈들은 지금, 산군의 행사를 방해하려 드는 건가?”
“그, 그게 아니라….”
내 입에서 ‘산군’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 것 같았던 그들의 움직임이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뚝 멎었다.
수행원들이 그렇게 움직임을 멈추자, 서늘한 미소를 지은 나는 김우경의 머리를 번쩍 들어, 놈과 시선을 마주했다.
“너, 너 이러고도….”
“감히 횡령범 새끼가. 쥐새끼처럼 대역을 내보내?”
김우경에게 거침없이 나선 이유는 바로, 내 눈앞의 김우경이 진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원본 김우경과 쌍둥이처럼 똑같이 닮았긴 했으나, 회귀 전 김우경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는 나를 속일 순 없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화안금정의 황금빛 시야에 비친 김우경(?)의 머리 위엔 시종일관 『거짓』이란 두 글자가 떠올라 있고 말이지.
“대, 대역이라니. 내, 내가 진짜 김우경….”
“어디서 감히 장인님을! 그 더러운 손을 놔랏!”
대역의 멱살을 콰드득 틀어쥔 채, 살기를 흩뿌리기 시작하자.
얼음처럼 얼어붙어 있던 수행원들 중 일부의 눈빛이 스산하게 변했다.
어느새 짤막한 단검을 빼든 그들은 요란한 고함을 질러대며 내게 쇄도해왔다.
-카가가각!
수행원의 단검이 내 팔뚝을 스친 바로 그 순간!
어느새 돋아난 황금색 외골격이 내 몸을 보호했다.
단단한 쇳덩이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보랏빛 불꽃이 요란하게 튀었다.
“대역을 내세우는 대범함에, 냄새나는 사교도 새끼들까지…. 이거 심문할 게 많겠어.”
하얗게 질린 수행원들을 제치고 나타난 이들의 무기엔 하나같이 보랏빛 기운이 너울거리고 있었다.
내 입에서 ‘사교도’라는 말이 나오자, 놈들의 입가엔 섬뜩한 미소가 걸렸다.
“역시 그분께서 말씀하셨듯. 보통내기가 아니로군. 산군 나으리.”
백운 병원에서 겪었던 사교도 놈들과는 다르게,
수행원으로 위장하고 있었던 사교도들은 제법 대단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지금은 네놈이 자랑하는 그 괴상한 무기도 없는 상태지. 형재들이여! 새로운 교단을 위하여!”
김우경을 가볍게(?) 제압하기 위해서 나는 어둠달을 듀라한의 뒷좌석에 두고 온 상태였다.
그것을 파악한 째진 눈이 인상적인 사교도의 고함과 함께 사교도들이 한꺼번에 짓쳐 들어왔다.
보랏빛 기운이 너울거리던 무기엔 어느새 너울거리는 녹색 기운이 아스라이 더해져 있었다.
녹색 기운이라….
먼젓번 놈들과는 다르게, 변절자 김준영의 휘하에 있는 놈들인가 보군.▒
“새로운 교단을 위하여!”
사방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세에, 나는 전신에 외골격을 둘렀다.
그리곤 운룡보를 이용, 화안금정에 읽힌 놈들의 공격 궤적에 반응하여 놈들의 공격을 피해냈다.
-화르륵!
이가 없으면 잇몸!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라 놈들의 공격을 피한 뒤,
나는 응접실 구석의 커튼 봉을 뜯어내, 무기로 삼았다.
봉에 내력을 집중하자, 봉에서 시커먼 내력이 치솟았다.
-빠아아아악!
그리곤 무서운 힘으로 불꽃이 이글거리는 봉을 휘둘러 사교도들의 공격을 모조리 튕겨냈다.
-뻐억! 뻐억! 뻐억!
“큽!”
“크헉!”
내력이 주입된 봉은, 적중할 때마다 사교도들의 뼈마디를 부숴놓았다.
짧은 호흡으로 번개처럼 여러 번 찌르는 파천 복룡창 특유의 매서운 창술이 봉을 통해 놈들에게 짓쳐 들어갔다.
-빠각!
“꺼억!”
아무리 어둠달이 없다지만, 사교도 놈들 따위에게 당할 내가 아니었다.
게다가 응접실이란 좁은 공간에서 쓸데없이 길쭉한 봉은 그다지 유리한 무기가 아니었지만.
나와 사교도들의 격차는 그러한 한계조차 뛰어넘었다.
-따앙!
봉을 세로로 세워, 보랏빛과 녹색 마력이 덧씌워진 무기를 막아냄과 동시에,
손아귀에 힘을 풀어 일부러 봉이 튕겨 나가도록 유도했다.
-빠악!
튕겨 나간 봉을 발로 차올려, 그 반동으로 짓쳐 들어온 두 사교도 놈의 얼굴을 가격했다.
다시 손에 잡힌 봉이 검게 물들며, 흉험한 공격을 토해냈다.
-빠악! 빡! 빡!
좁은 뱀굴에 도사린 독사들이 한꺼번에 풀려나오는 것처럼!
좁은 방안에서 휘몰아치는 봉은 매서운 위력을 발휘하였다.
“새, 새로운 교를 위하여!”
-빠각!
“꺽!”
나는 오히려, 긴 리치를 십분 활용하여 놈들의 공격을 전부 무위로 돌리며, 그들을 일방적으로 유린하고 있었다.
좁은 집안에서 커튼 봉을 이용한 불리한 전투였지만,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쿠웅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에 문신을 생긴 얄상한 놈을 마지막으로.
방 안에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는 놈은 한 명도 없게 되었다.
기세 좋게 달려들었던 놈들은, 모두 고통스러운 신음성을 토해내며 바닥을 벅벅 긁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