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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138화 (138/309)

제138화

“전부 똑같다니. 유행이라는 게 무섭긴 무섭네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으로 퍼졌던 인사팀 직원들은 조사한 자료를 들고 내게 돌아왔다.

그들이 건네준 공방별 거래 명세서를 꼼꼼히 훑어봤지만, 수상쩍은 사항을 발견할 수 없었다.

김우경이 개발해낸 『원념 제련』이 크게 유행하고 있는 시기라서 그런지, 이곳에 널려있는 모든 공방에선 엄청난 양의 『원혼 무쇠』를 사들이고 있었다.

“말씀하신 대로, 최근 외지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던 공방을 찾아내려 했습니다만…. 이들이 순순히 조사에 응해주진 않더군요. 죄송합니다. 산군님.”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무기 장인들을 상대하고 와서일까?

한숨을 푸욱 내쉬는 서민혁은 그 사이 10년은 늙어버린 것처럼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부탁했던 정보를 캐오지 못한 것이 그리도 송구스러운 듯 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떨구었다.

“괘념치 마세요. 이 동네 장인 양반들 보통이 아닌 건 저도 실컷 겪었으니까요.”

나는 서민혁의 의기소침하게 구부려진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공감한다는 쓰게 웃었다.

서민혁과 인사팀 직원들이 발 빠르게 뛰는 동안, 나라고 가만히 앉아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나름대로도 주변의 무기 장인들과 접촉하려고 시도해 봤다만….

애석하게도 나 역시 그들에게서 이렇다 할 답변을 얻어내진 못한 상태였거든.

누구에게나 호감을 선사해줄 법한 잘생긴 외모도, 태백 내부에선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산군이라는 지위도 이곳의 무기 장인들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내가 뭔가를 물어보려 할 때마다. 그들은 대답조차 하지 않으며,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가락으로 ‘작업중 잡담 엄금’이라 적힌 표지판만은 가리켰다.

“예에? 산군님에게까지 그들이 그렇게 나왔단 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태백의 소속원들이 산군님에게 그런 무례를 저지르다니!”

내 말에 숨은 뜻을 파악한 서민혁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통 경악한 게 아닌 듯, 단숨에 쩍 벌어진 입에선 은은한 분노에 찬 노성이 터져 나왔다.

“애초에 제가 산군인 걸 못 알아보는 눈치던데요. 아니, 그들에게 눈치가 있던가?”

“당장 팀장님께 알려서 공방 조합에 정식으로 항의를…. 예? 그들이 산군님을 알아보지 못했다고요?”

내 입에서 의외의 말이 흘러나오자,

잔뜩 흥분한 채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던 서민혁의 움직임이 한순간 뚝 멎었다.

그러더니 그는 얼빠진 목소리로 멍하니 내게 되물었다.

“사, 산군님의 옷에 산군의 인장이 이렇게나 선명하게 박혀 있는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상한 것 못 느끼셨어요? 무기 장인들 하나 같이 앞을, 거의 못 보는 것 같던데요.”

무기 장인의 마력으로 피워낸 불꽃은 특수하게 처리된 가마 속에서 통상의 불꽃보다 몇 배는 더 뜨겁게 타오르며, 가히 섬광탄에 필적할 듯 어마어마한 섬광을 뿜어낸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베테랑 무기 장인들은 대부분 시력이 그리 좋지 않기 마련이지만….

이곳의 무기 장인들처럼 아예 눈이 멀어버렸다시피 하는 경우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시간이 흐른 뒤였던 회귀 전 시점에서도 그리 흔치 않았다.

“누, 눈이 멀었다니요. 그 사람들 멀쩡하게 작업하고 있던 것 같던데….”

“형태 정도는 구분이 가능할 테니까요. 거 참. 유행 따라서 『원념 제련』만 해댄 탓인가.”

『원혼 무쇠』는 마력이 불꽃과 반응할 때, 다른 금속과 비교하여 특히나 밝은 빛을 내뿜는 성질을 지녔다.

최근 들어 일련의 사건으로 무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서인지, 이곳의 무기 장인들은 회귀 전보다 엄청난 양의 무기를 『원혼 무쇠』를 사용한 『원념 제련』으로 벼려낸 모양이었다.

“들리는 풍문으로 본사 장비 창고가 불탄 여파로 공방 조합에 무기를 많이 발주하긴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무기 장인들의 눈이 그렇게 될 정도였다니….”

회귀 전 역사에서 김우경의 『원념 제련』이 빠르게 사장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성능은 확실하지만, 무기 장인의 시력에 치명타를 안겨버리는 제련 기법이기에 김혜연이 창안한 『중첩 회로 공명 시스템』이 널리 알려지자마자, 『원념 제련』은 무기 장인들 사이에서 빠르게 사장 되어버렸다.

“예. 오행 길드 놈들, 아니 그 마족 놈들의 습격으로 인해 본사에 비치된 장비들이 모조리 불타버린 것이 크긴 했죠. 그래서 이렇게 영수증도 두툼…. 어라?”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인사팀 직원들이 전해준 거래 명세서를 꼼꼼히 뒤져보려던 찰나.

수상한 항목이 하나 들어왔다.

“이거…. 본사에서 제공한 재료랑. 무기에 사용되었다는 재료랑 서로 수량이 맞지 않는데요?”

지난 3개월의 거래를 참조해보면, 태백의 본사에서 제공한 『원혼 무쇠』는 제련된 주괴 형태로 전부 합해서 약 2T가량의 분량이었지만.

공방 측에서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한 『원혼 무쇠』는 1.5T에 불과했다.

지난 3개월간 거의 500kg 분량의 주괴가 소실된 것을 지적하며, 나는 답을 요구하듯 서민혁을 바라보았다.

“아, 그거 말입니까? 실은 공방 조합의 조합장 김우경 장인님께서 ‘수수료’ 명목으로 재료를 조금 떼가는 것이 관례 아닌 관례라서….”

태백의 치부를 말하는 것이 부끄러운 듯.

자신의 목덜미를 쓱쓱 주무르며 답하는 서민혁의 표정엔 민망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500kg 분량, 그러니까 현 싯가로 4억 이상을 수수료로 받아먹은 것이 ‘조금’이라고?

물론, 김우경이 수수료랍시고 피 같은 재료를 중간에 대놓고 꿀꺽하는 것은 회귀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긴 했다.

하지만 그때도 그렇고 그가 이런 식으로 재료의 4분의 1을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간 적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김우경이라. 그래, 그렇지 않아도 한번 들쑤실 이유가 필요했는데. 잘 되었군.

“수수료라니. 그거 계약서에 나온 내용인가요?”

“계, 계약서엔 당연히 없는 내용입죠. 그저 태백의 오랜 관례로서….”

당연한 말이겠지만, 김우경이 수수료랍시고 재료를 무단으로 떼어가는 것은 계약서에 미리 언급 되어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저 공방 조합의 장을 맡은 김우경이 자신의 지위를 내세워, 관례랍시고 수년간 행해온 횡령이요 횡포의 일종일 뿐이었다.

“그래요? 그렇다는 건…. 이거 횡령 아닙니까? 이거 감찰팀의 일원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데요.”

여러 가지 혼란한 상황으로 인해, 신지현은 기껏 넘겨준 감찰팀장의 권한을 사용하지도 못하는 상태였지만.

안종훈을 쓰러뜨린 이후, 감찰팀 ‘흑호’는 엄연히 인사팀에 완전히 흡수된 상태였다.

따라서 안종훈을 쓰러뜨린 산군이자, 신지현과 한배를 탄 입장인 나는 자동으로 ‘감찰팀’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몸이라고 할 수 있지.

내 입에서 계속해서 ‘횡령’이니 ‘감찰’이니 하는 살벌한 단어들이 튀어나오자.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서민혁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이 엄청난 횡령 행위를 태백의 산군으로써 감히 두고 볼 수가 없네요. 가죠? 횡령범 잡으러.”

“기, 김우경 장인님을 말입니까?”

*****

서민혁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듀라한을 몰아, 나를 김우경의 자택까지 안내해줬다.

듀라한의 창문 너머로 용산의 구석에 자리 잡은 거대한 저택의 위용이 눈에 들어오자.

그것을 바라본 내 입가엔 비릿하게 뒤틀린 미소가 걸렸다.

“세상에 얼마나 중간에 빼먹은 게 많으면. 이렇게 으리으리한 집을 지을 수 있을까요?”

“사, 산군님 아, 아무리 그렇다지만 김우경 장인님을 이렇게 갑자기 방문하는 것은 조금….”

산군인 나를 수행하면서도, 그간 태백 길드에서 엄청난 권력을 휘두른 김우경이라는 이름 석 자가 그리도 두려운 모양인지.

서민혁은 떨떠름하게 긴장한 표정으로 내 쪽을 힐끔힐끔 돌아보며, 내 눈치를 보았다.

그런 그의 태도에 피식 웃어준 나는 거침없이 듀라한에서 내려, 저택의 문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정지. 누구십니…. 허억! 사, 산군님!”

호화스러운 고급 차량에서 내린 내 모습에 잔뜩 긴장해 있던 경비원은 침을 꿀떡 삼키곤 간신히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내 갑옷에 부착된 산군 고유의 인장을 발견하자. 경비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경기라도 들린 듯 푸들푸들 떨리기 시작했다.

“감찰팀 소속으로서 횡령과 관련해. 김우경 장인님께 볼 일이 있어서요. 조사에 협조해주시겠습니까?”

안종훈이 전임 감찰팀장을 잡아먹고 군림한 이래, 잊혀졌던 사실이긴 하지만.

고위층의 비리를 파헤치는 것 또한 엄연히 감찰팀의 업무 중 하나였다.

비록 안종훈을 쓰러뜨린 이후 팀장이 직위는 신지현에게 넘긴 상태였지만, 지금의 나는 엄연히 감찰팀 소속이었다.

“회, 횡령이요? 히, 히끅! 히끅!”

나의 요구와 마주한 경비원의 얼굴빛이 하얗게 질린 것을 넘어, 시퍼런 색으로 물들었다.

어찌나 놀란 모양인지, 헉 소리를 낸 그의 목구멍에선 연신 딸꾹질이 터져 나왔다.

“이, 이를 어쩐다. 죄송합니다. 자, 장인님께선 지금. 자, 자리를 비우셔서….”

정문의 경비직을 맡을 정도면 제법 지위가 있는 인물인 모양인지.

그렇게 경악이 섞인 딸꾹질을 삼키던 경비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간신히 정신을 수습했다.

그리곤 어딘지 일그러진 미소를 지은 그는 내게 상투적인 변명을 해대기 시작했다.

“아하. 그렇게 나오시겠다? 좋습니다.”

나는 필사적으로 변명을 주워섬기는 경비원의 태도에 피식 웃은 뒤.

갑옷에 매달린 내 고유의 산군 인장을 뚝 떼어, 그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산군의 권한으로 심문권을 요청한다. 당장 김우경 그 새끼 내 앞으로 끌고 와.”

심문권.

태백 길드에 반하는 길드 소속원들을 심문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말이다.

권력의 정점에 이른 산군들이 지닌 여러 가지 권리 중 하나였다.

하위 길드원들이야, 굳이 ‘심문권’을 발동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설설 기는데다

태백의 고위층은 각종 이권 관계로 얽혀있기 마련이기에, 이전까진 그 누구도 행사하지 않았던 권리가 처음으로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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