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나는 『가면놀이』 스킬의 권능의 힘으로 사교도들의 모습을 차례차례 모사한 뒤.
간호사로 위장한 사교도를 포함, 백운 병원에 숨어든 사교도들을 모조리 잡아내었다.
그렇게 잡아낸 사교도의 숫자만 해도 물경 스물!
필설로 이루 형용할 수 없을만큼 끔찍한 고문들을 동반한 끝에, 겨우 이뤄낸 쾌거였다
“도착했습니다. 산군님.”
그렇게 잠시 백운 병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 있으려니.
서민혁의 공손한 목소리와 함께, 듀라한의 뒷좌석 문이 활짝 열렸다.
활짝 열린 문 사이로 금속 특유의 비릿한 쇠 냄새와 초겨울에 어울리지 않은 화끈한 열기가 후욱 몰려왔다.
“고마워요. 서 기사님. 그럼 부탁드렸던 대로 조사에 착수해 주세요.”
“옙. 산군님!”
내 입에서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서민혁은 인사팀 직원들을 데리고 열기 속으로 사라졌다.
얼굴이 다 화끈하게 얼얼해질 정도의 열기에 나직이 한숨을 토한 나는 그 열기의 현장 속에 발을 디뎠다.
『용산 무기 공방』
사교도들을 심문한 끝에 간신히 찾아낸 단서가 향한 장소이자.
태백의 공방조합에 속한 무기 장인들의 공방이 모여있는 곳이다.
마지막 사교도에게서 단서를 찾아낸 나는 지체할 새 없이. 이곳 용산으로 달려왔다.
[네놈이 이곳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제법 볼만한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지나가는 무기 장인들의 바짓가랑이를 요렇게 붙잡고는, 아주 애걸을 해댔었지.]
“끄응. 그때는 제 나름대로 절박했거든요? 그나저나…. 언제봐도 대단한 풍경이네요.”
대격변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지만, 다른 어떤 곳도 이곳 용산만큼 이질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곳은 없었다.
곳곳에 아무렇게나 세워진 가마에선 무기 장인들이 피워낸 마력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고
상반신을 드러낸 근육질 사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망치를 휘둘러대고 있었다.
마치 너른 길거리 전체에 대장간이 세워진 것 같은 해괴한 풍경이라고나 할까….
[이곳의 ‘어딘가’에 그들이 붙잡혀 있다고 했더냐? 도대체 그놈의 ‘어딘가’의 위치는 어찌 찾아낼 생각인게냐.]
애석하게도 사교도들을 심문한 끝에 간신히 얻어낸 정보는 단순하기만 했다.
용산의 공방 ‘어딘가’에 박정욱과 설악 공격대원들의 영혼이 붙잡혀 있다는 것이 끝.
용산에 자리잡은 태백 산하의 공방만 해도 100여개가 넘어가고 있었기에.
이 넓은 곳에서 사교도를 찾아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게요. 사교성이라곤 뭐 줄 것도 없을 만큼 무뚝뚝한 양반들 사이에서 사교도 찾기라니…. 차라리 서울역 앞에서 김씨찾기가 더 쉽지.”
게다가 이곳을 수색하는데 난관은 한가지가 더 있었다.
바로, 무기 장인들의 성격이 하나같이 불친절하고 무뚝뚝하기 짝이 없다는 것!
‘무기 장인’이란 특성을 선택하면서부터 뭔가 심성에 변화라도 오는 모양인지.
대부분의 무기 장인들은 하나같이 사교성이 심하게 떨어지는 모습만을 보여줬었다.
오죽했으면, 과하게 호탕한 성격을 자랑했던 회귀 전의 김혜연이 그들 사이에서 ‘별종’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
[산군이니 뭐시깽이니 하는 네놈의 지위를 이용해 보는 것은 어떠한 게냐.]
“여기 있는 양반들은 태백 소속이긴 해도, 극도로 베타적이라서요.”
백운 병원에서 병원장 김효중이 내게 깍듯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처럼.
다른 태백 산하의 단체들은 태백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었다.
때문에 다른 곳에선 ‘산군’이란 무소불위의 지위를 이용해 그들을 ‘설득’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자기들끼리만 어울리는 무기장인들의 독특하게 베타적인 관습 속에서, ‘산군’이란 지위는 그렇게까지 큰 무게를 지니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 게냐?]
“일단은 인사팀 인원들을 풀어서 거래내역을 따오라곤 했는데요….”
저주받은 마물, 리빙 아머를 제련하는데는 막대한 양의 자원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특히 리빙 아머의 뼈대를 구성하기 위해선 저주받은 금속 『원혼 무쇠』를 사용하여야만 하기에.
나는 우선 인사팀 직원들을 풀어, 이곳에 위치한 공방들 중 최근 『원혼 무쇠』를 거래한 공방을 찾아낼 것을 지시해두었다.
[흐음. 그 방법대로 『원혼 무쇠』를 거래한 공방을 찾아내면 끝이 아니더냐? 무엇이 문제인게야.]
“문제는 요즘 『원혼 무쇠』를 무기에 섞어 넣는 제련 방식이 유행이거든요.”
애석하게도 지금은 리빙 아머를 제련하는데 핵심적인 재료로 사용되는 『원혼 무쇠』를 무기에 섞어, 베어 넘긴 몬스터들의 원혼과 마력이 깃들게 만드는 『원념 제련』 방식이 유행을 탄 상태였다.
때문에 검은 연기가 몽글몽글 올라오는 공방 어느 곳에서든 『원혼 무쇠』가 제련될 때 특유의 녹색 광채를 발견해 낼 수 있었다.
“하여간 김우경 그 양반, 끝까지 도움이 안된다니까.”
김우경의 염소 같은 면상을 떠올리자, 저절로 이가 부드득 갈렸다.
무기에 『원혼 무쇠』를 섞는 기법을 창시한 인물은 다름 아닌 이곳의 조합장, 김우경이었다.
오랫동안 태백의 공방조합 조합장을 도맡아온 인물이니만큼, 이곳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이 바로 김우경이었기에. 그가 창시해낸 『원념 제련』 방식은 지금 용산 곳곳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중이었다.
[네놈 성격에 그놈을 아직도 냅두고 있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만. 이 기회에 슥삭해버리는 것이 어떠하느냐?]
위철용의 말대로 김우경 역시, 태백의 고위층에 속한 인물이니만큼, 썩어빠진 치부를 자랑하는 쓰레기였다.
공방조합 조합장이란 지위를 내세워, 의뢰를 맡겨온 헌터들의 소재를 횡령하질 않나.
자신에게 위협이 될만큼 재능이 넘치는 무기 장인을 모함해, 나락으로 빠뜨리질 않나….
뭣보다.
김우경은 회귀 전, 내 유일한 이해자요 벗이었던 김혜연을 몰락시킨 장본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놈을 몰락시키기에 충분한 원한을 지니고 있는 상태였지만….
“김우경은 이곳 공방 조합의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에요. 아직 함부로 찍어낼 순 없죠.”
문제는 김우경이 태백의 공방 조합에서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
김우경의 인성은 그리 되바라지지 않았지만, 놈은 무뚝뚝한 무기 장인들을 이끄는 실력 하나만큼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저런 일로 소란스러운 상황에서, 태백의 공격대에 납품될 장비를 총괄하는 김우경을 찍어내리는 일은 아무리 나로서도 심적인 부담이 큰 일이었다.
[그 잘난 조합장 자리는 원래 김혜연에게 돌아갈 것이 아니더냐? 어떠냐? 이 참에 정당한 주인에게 그 자리를 돌려주는 것이.]
회귀 전 역사에서, 김혜연은 『중첩 회로 공명 시스템』을 개발해내어 엄청난 유명세를 누렸다.
따라서 그런 그녀가 태백에 스카웃되어 중책을 맡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오랫동안 김우경이 누려온 ‘조합장’의 자리 또한, 그녀에게 돌아갈 것이 분명한 상태였다.
하지만, 자신 손에서 부와 권력을 놓기 싫었던 김우경 때문에 김혜연은 하루아침에 천국에서 지옥으로, 아니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었지….
“그렇지 않아도 준비 중이긴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김혜연도 이제 슬슬 준비를 해야할 시기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