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신지현의 첨부한 자료엔 박정욱을 담당했던 의사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지만.
그를 처음으로 담당했던 이가 누군지는 나와있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이곳의 원장, 김효중의 입을 통해 박정욱을 최초로 담당했던 의사가 누군지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임영성이라. 어째선지 익숙한 이름인걸.”
잃을게 많은 이들의 특기는 바로 꼬리자르기.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김효중은 곧바로 의사 한명의 이름을 내게 고했다.
그리곤 필사적인 표정으로 그의 진료실이 위치한 장소며, 시키지도 않은 그의 신변잡기를 좌르륵 읊어주었다.
…더불어 자신들은 그 임영성이라는 작자와 관련된 책임이 없노라,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변론한 것은 덤이었고 말이지.
아무튼 박정욱을 최초로 담당했던 의사는 바로 임영성이란 이름의 의사였다.
원래는 게이트 관리소의 의무실에서 명성을 떨치던 인물로, 이서초 게이트 사건 이후. 발생한 병원 내부의 인력난으로 인해 급히 영입된 인물이라고 했다.
[헌데, 갑자기 박정욱을 처음으로 담당한 의원은 왜 찾는 게냐?]
“그야, 그가 박정욱의 상태를 악화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죠.”
일전에 신지현이 내게 전해줬던 박정욱에 관련된 보고서는 처음 그를 담당했던 의사, 임영성이 작성한 것이었다.
프로 의식이 투철한 인물이였는지, 그가 작성한 보고서엔 박정욱의 상태가 소상하게 작성되어있었지만.
…내가 박정욱의 독에서 습득한 지식에 의하면, 가장 결정적인 거짓이 음험하게 숨어있었다.
바로, 박정욱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웨어울프의 피』를 지속적으로 투약하라 지시한 것!
『웨어울프의 피』는 재생과 해독을 돕는 소재이기에, 독에 중독된 헌터들에게 기본적으로 투약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박정욱을 중독시킨 독 『울부짖는 심연』은 체체파리 클랜의 권능으로 웨어울프의 피를 오염시켜 만들어낸 것이기에, 약이 아니라 상태를 악화시키는 독에 불과했다.
[고작 그 정도로 그를 의심하는 게야? 그 늑대 놈들의 피는 필멸자 의원들이 흔히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었더냐?]
위철용의 말처럼 독에 중독된 헌터들에게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웨어울프의 피』 성분이 포함된 약을 처방하곤 했다.
따라서, 얼핏 보기엔 박정욱에게 『웨어울프의 피』를 처방한 임영성 또한 별다른 잘못이 없어 보였다.
“임영성 그 작자는 정상적으로 정제시킨 『웨어울프의 피』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조합한 레시피대로 정제한 『웨어울프의 피』를 사용했어요.”
박정욱에게서 흡수한 독은 오브와 감응해, 내게 많은 지식을 알려주었다.
임영성이 투약한 『웨어울프의 피』는 일반적인 병원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물건이었다.
『울부짖는 심연』을 더욱 악화시키도록 특별히 정제된 특제품이었다.
“뭐, 아무튼. 놈의 면상을 직접 확인하면 모든 걸 확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복잡한 복도를 지나, 어느새 『해독 전문의 임영성』이란 명패가 붙어있는 문에 도착하자.
위철용에게 히죽 미소를 보낸 나는 거침없이 진료실의 문고리를 붙잡았다.
*****
“어엇? 당신은…! 이야! 오랜만입니다. 헌터님. 아니 이젠 산군님이라 불러드려야 할까요?”
진료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낯익은 얼굴이 나를 반겼다.
‘임영성’이란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봤다 했더니, 그는 바로 강남역 게이트 관리소에서 나를 진료했었던 의무실 실장이였다.
누군가 했는데. 백운 병원에 숨어든 쥐새끼가 댁이었나?
김효중에게 미리 당부해둔 대로, 임영성은 진료실에서 대기하라는 지시 외엔 어떠한 지시도 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겉으로는 나와의 재회를 크게 기뻐하는 척,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크게 치켜뜬 눈이 불안하게 떨리는 것이, 내 갑작스러운 방문에 크게 놀란 듯한 기색이었다.
“산군님께선 어떻게 잘 지내셨던 모양입니다. 하하. 게이트에서 무리하셨던 모습이 바로 어제 같은데 세월이 참 빠르군요. 그동안 저는 이곳에서 해독 전문의로서 충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답니다.”
『거짓』
임영성은 얼굴 가득 환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의사 특유의 사람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머리 위엔 계속해서 『거짓』이란 두 글자가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형식적인 인사말 뒤로도 임영성은 자신의 근황에 대해 몇마디를 더 지껄였지만, 그의 머리 위에 떠오른 『거짓』이란 두 글자는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철컥.
애석하게도 내겐 계속해서 임영성의 거짓말을 들어줄 생각도 시간도 없었다.
그의 거짓부렁에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 문을 걸어 잠궜다.
침묵 속에서 차가운 금속음이 울려퍼지자, 임영성의 시선이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산군님? 갑자기 문은 왜….”
“쥐새끼를 잡을 땐, 쥐구멍은 미리 막아두는 것이 기본 아니겠습니까?”
“치잇!”
내 입에서 ‘쥐새끼’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바로 그 순간!
궁지에 몰린 쥐처럼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던 임영성은 즉시 진료실의 창가로 몸을 날렸다.
놈의 몸놀림은 평범한 의사같지 않게 굉장히 재빨랐지만, 내 손에서 달아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쿠당탕!
순식간에 임영성을 제압해 바닥에 넘어뜨린 나는 손가락에 내력을 듬뿍 주입해, 놈의 튼실한 허벅지를 푸욱 찔렀다.
“!”
주입된 내력이 순식간에 임영성의 몸 전신에 퍼져나가자.
광포하게 날뛰는 내력의 여파로 인해, 놈의 근육이 저절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고통 때문인지, 임영성의 얼굴이 비명을 갈구하며 잔뜩 일그러졌지만.
미리 혈도를 제압해둔 탓에 놈의 입에선 비명은커녕 어떠한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물어볼 것이 아주 많아. 사교도 나으리.”
제압당한 임영성의 몸엔 역시나 체체파리 클랜원 특유의 문신이 새겨져있었다.
쇄골에 은밀하게 숨겨진 문신을 확인한 나는 안광을 노릿하게 빛내며 입꼬리를 섬뜩하게 뒤틀었다.
*****
심문을 빙자한 고문의 시간은 약 한 시간동안 이어졌다.
고문의 여파로 축 늘어진 임영성이 불안하게 눈알을 데굴데굴 굴려대자.
만족스러운 정보를 캐낸 나는 인사팀 직원들에게 연락해, 놈의 뒤처리를 맡겼다.
“데려가세요.”
인사팀 직원들은 병원에서 일하는 청소부로 변장한 채, 진료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익숙한 몸놀림으로 제압된 임영성을 빨래감이 켜켜히 쌓여있는 빨래 바구니에 구겨넣었다.
[박정욱 고놈은 대관절 무슨 업을 지었길래, 그때도 지금도 이런 수난을 겪는지 모르겠구나.]
인사팀 직원들이 진료실 문을 빠져나가자, 그들을 지켜보던 위철용은 안타까운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박정욱에게 닥친 수난을 애도했다.
“그러게요. 박정욱을 리빙아머로 만들겠다니. 무슨 그런 정신나간 짓을….”
임영성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처음엔 나름대로 체체파리 클랜의 일원답게 강단이 있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광폭하게 날뛰는 내력이 그의 몸을 얼마간 헤집자, 임영성의 입에선 물어보지 않았던 정보까지 술술 흘러나왔다.
[마물로 영락하는 것이 인과율이 정해준 그의 운명인 것인가…. 실로 안타까운 일이로고.]
체체파리 클랜의 사교도들이 집요하게 박정욱과 설악공격대를 노린 이유는 바로, 그들의 영혼을 끔찍하기 짝이없는 몬스터 ‘리빙아머’로 빚어내기 위함이었다.
끝없이 고통받은 육신에서 추출해낸 영혼이야말로, 리빙아머의 일등급 소재였기에.
놈들은 박정욱과 설악공격대를 끔찍한 독에 중독시켜, 영겁의 고통에 빠뜨린 것이었다.
김혜옥의 정성어린 치료에도 불구, 박정욱이 끝내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이미, 그의 영혼은 산채로 뽑혀나간 상태였으니까.
“사람에게 ‘정해진’ 운명 따위가 어딨습니까? 더 늦기 전에 그들의 영혼을 되찾아와야죠!”
박정욱과 설악공격대의 고통받은 영혼은 영혼석에 담긴 채로 모종의 장소로 이동한 상태였다.
체체파리 클랜원들이 그들의 육신에서 영혼을 뽑아낸 것은 정확히 어제 벌어진 일.
사악한 의식에 따라, 리빙아머의 저주받은 갑옷을 제련하려면 약 일주일의 시간이 걸리기에 아직 그들을 구할 시간은 충분히 남아있는 상태였다.
[허나, 임영성을 그렇게 고문해도 그들의 영혼을 탈취해간 이들의 행방을 끝내 알아내지는 못하지 않았더냐.]
“임영성은 끄나풀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래도, 이곳에 숨어든 사교도 놈들의 신원을 일부나마 확보했으니. 놈들부터 족쳐 봐야죠.”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긴 했으나, 애석하게도 임영성은 일단 체체파리 클랜의 말단 클랜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이 사교도로 거듭난 이유가 개인의 추악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함이었기에, 클랜에 대한 충성심이 그다지 대단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임영성의 증언에 따라, 이 백운병원에 숨어든 쥐새끼들의 신원을 어느정도 확보해둔 상태였다.
“우선 놈의 말대로, 그 중 한놈이랑 접선을 시도해 보자구요.”
걱정스러운 표정의 위철용에게 히죽 웃어준 뒤.
나는 오랜만에 『낙오자들의 진혼곡』 스킬을 발동시켰다.
꾸물럭 거리는 압박감이 얼굴에 찾아온다, 싶더니.
이내 내 잘생긴 외모는 임영성의 푸짐하면서도 푸근한 얼굴로 변해버렸다.
-삑.
나는 임영성의 진료실 의자에 몸을 기댄 채로, 의자 밑에 숨겨진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진료실 밖 복도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선생님? 선생님?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환자분 말인데요.”
“환자요? 어떤 환자를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는데…. 31번 환자인가요?”
임영성의 외모로 변신한 내 입에선 그와 완벽하게 동일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임영성이 실토한대로, 천연덕스럽게 놈들 사이의 암호문을 읊어대자.
진료실 문이 벌컥 열리며, 중년의 여성 간호사 한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컥
“…보고할 시간은 지났을 텐데. 형제여.”
웃는 낯으로 들어온 간호사는 즉시 문을 걸어잠그더니, 서늘한 눈길로 나를 노려보았다.
태도가 일순 돌변한 간호사의 입에선 그에 걸맞게 카랑카랑한 쉰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인간이 아니라 한 마리 까마귀를 연상케하는 목소리에 강렬한 거부감이 느껴졌다.
“문을 잠궈줘서 고맙네. 자매여. 수고를 덜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