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김준영을 위시한 체체파리 클랜의 흔적이 인천의 비밀 게이트에서 발견되었기에,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서민혁과 그동안 수집했던 자료 중 쓸만한 것들만을 추려내어, 곧장 신지현의 사무실로 향했다.
-끼이익!
사무실의 차가운 철제 문고리를 돌리자.
기름칠이 덜 된 금속 특유의 마찰음이 복도 전체에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열린 문의 내부에선 시큼하면서도 꿉꿉한 냄새가 화악 풍겨와, 내 코에 원투 펀치를 날렸다.
이 냄새는 또 뭐지? 내가 헬스장을 잘못 찾아오기라도 한 건가?
안에서 풍겨오는 낯선 냄새에 고개를 갸웃하며 들어서니.
좁다란 사무실 내부의 풍경은 더욱 가관이었다.
“여러분, 건강한! 하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어욧! 스쿼트!”
“으. 으아아아! 스쿼트!”
몸에 착 달라붙는 언더아머를 착용한 채로 근육을 불뚝거리는 김혜옥의 상큼한 미소.
그리고 그녀의 앞에 서서 오만상을 쓰며 역기와 씨름 중인 인사팀 직원들.
신지현의 사무실엔 새로운 기법으로 그려진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그 많던 잡다한 집기를 모조리 구석으로 치워버린 사무실에선 김혜옥과 인사팀 직원들이 괴이쩍은 소리를 내지르며 열심히 신체 단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내 코를 자극한 냄새의 근원은 조명을 받아, 그들의 몸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땀방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스쿼트으으! 카학!”
순간, 역기를 짊어지곤 괴성을 질러대던 인사팀 직원 중 한 명의 입에서 각혈이 터졌다.
곧이어 그의 눈이 허옇게 까뒤집어지며, 역기를 짊어진 몸이 휘청 균형을 잃었다.
“위, 위험!”
위험해 보이는 상황이 벌어져서일까?
덕분에 멍하니 넋을 잃고 눈 앞에 펼쳐진 근육 지옥도를 감상하던 내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소리를 지르며 쓰러진 직원에게 막 다가가려던 찰나, 김혜옥이 먼저 그에게 몸을 날렸다.
“홋호! 회복촉진 펀치!”
번개처럼 균형을 잃은 직원에게 달려간 그녀는 기합과 함께 그의 명치에 주먹을 날렸다.
직원의 온몸이 녹색으로 번쩍인다. 싶더니, 까뒤집어진 눈이 다시 총기를 되찾았다.
“감사합니다! 김혜옥 치유사님! 이것으로 열 세트는 더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감사는요! 이게 제 일인걸요! 무리는 하지 마시구, 우선 이거 쭉 들이키고 조금 쉬세요.”
자애로운 표정의 김혜옥은 총기를 되찾은 직원에게 뭔가 걸쭉한 것이 든 쉐이커를 내밀었다.
무언가를 쭉 들이킨 직원은 잠시 호흡을 고르더니, 다시 역기를 짊어지고 스쿼트를 시작했다.
마치 마약에 중독된 듯 황홀하게 헤실헤실한 광기가 그의 얼굴에 번져나갔다.
…뭐지 진짜?
“바로 그거에요! 그렇게 열심히 단련을 해둬야, 사흘간 야근에도 너끈히 버틸 수 있죠!”
단백질과 땀방울, 그리고 근육으로 범벅된 광기의 현장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악마와도 같은 사악한 소리를 내뱉으며, 신지현이 광기로 가득 찬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 역시, 운동이란 이름이 광기에 동참했던 모양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운동복 차림이었다.
“…매니저님? 이건 또 무슨 소란이죠?”
“김혜옥 치유사님! 김 대리님이 또 잔꾀를…. 어머? 헌터님? 언제 오셨어요?”
신지현의 등장에 다시 정신을 차린 나는, 광기의 현장 속에서 조심스레 그녀를 불러세웠다.
그러자 도끼눈을 한 채, 광기에 절은 눈빛으로 직원들을 살펴보던 신지현의 몸이 흠칫 굳더니, 그녀의 고개가 내 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연락도 없이…. 허윽!”
나와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헛바람을 호들갑스레 집어삼킨 신지현은 두 손으로 자신의 심장 어림을 부여잡았다.
“오, 오늘 뭐 화장이라도 하고 오신 건가요? 펴,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두 개의 게이트를 독식하며, 짧은 시간 동안 레벨이 많이 오른 탓인지.
신지현은 그동안 확 올라버린 나의 매력 능력치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마치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녀는 나의 시선을 슬슬 피하며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새삼스럽게 화장이라뇨. 평소와 다른 건 매니저님 쪽인 것 같은데요. 그새 며칠 안 봤다고 제가 그렇게 그리우셨던 겁니까?”
오랜만에 보여준 신지현의 반응에 실실 미소를 흘리며, 그녀에게 농담을 건네자.
고개를 푹 떨군 채로 시선을 회피하던 신지현의 얼굴이 다른 의미로 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리워한다고요? 개뿔이! 누구 때문에 우리 인사팀이 어울리지도 않은 운동을 시작했는데!”
고개를 번쩍 든 신지현의 눈가엔 정체를 알 수 없는 히스테리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갑작스레 고스란히 나를 향한 히스테리의 불길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신지현은 한숨을 내쉬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아…. 그렇게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모른척하기 있기에요? 일거리를 잔뜩 던져주고 가셨잖아요.”
“뭐. 마족들의 위협도 위협이거니와, 체체파리 클랜의 일도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만…. 그거랑 운동이랑은 또 무슨 관련이 있는데요?”
그동안 본의 아니게(?) 신지현과 인사 팀원들에게 일거리를 계속 물어다 주긴 했지만,
인사팀 직원들을 운동의 광기 속에 밀어 넣은 책임만큼은 억울하게 느껴졌다.
아니, 도대체 이 사람들이 근육의 광기 속에 빠져버린 게 그거랑 무슨 상관인데?
“야근에 시달리던 직원들이 김혜옥 치유사님께 치료를 의뢰했거든요. 처음엔 선뜻 치료를 해주셨던 김혜옥 치유사님이 이제는 근본적인 문제를 고쳐야겠다며….”
그래서 치료 대신, 인사 팀원들의 근본적인 체력 부족을 해결해 주겠다고 나선 건가?
김혜옥답긴 하지만 도대체 왜! 그게 내 잘못이야!
게다가 아까는 야근하기 좋은 몸으로 거듭난다며, 좋아하던 사람은 또 누군데!
“아, 아니. 정 힘들면 혜옥이에게 그냥, 힘들다고 말씀하시면 그만 아닙니까? 그리고 아까 저분들을 열심히 독려하셨던 분이 매니저님 아니셨어요?”
“으읏! 그, 그게요….”
김혜옥이 아무리 위압적으로 생겼다곤 하나, 이제 막 입사한 신입 직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냥 운동으로 혹사당하는 것이 싫으면, 싫다고 항의하면 그만일 것을.
신지현을 포함한 인사팀 직원 전체가 김혜옥 한 명에게 휘둘린다는 소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
“으아아! 못 해 먹겠다! 못 해 먹겠다고! 야근하는 것도 서러운데!”
-쿠왕!
막 신지현이 변명 아닌 변명을 꺼내려던 찰나.
땀 냄새를 풍기던 직원 중 한 명이 짊어진 역기를 내던지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정수리까지 깊숙하게 파인 M자 탈모형 머리가 분노에 젖어 붉게 달아오른 것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유망주면 다야? 희귀한 치유사면다냐고! 이건 폭거야 폭거!”
묵직한 역기가 바닥에 내던져지자, 심상치 않은 소리가 사무실 내부에 울려 퍼졌다.
사무실 바닥에 급히 덧댄 매트가 충격을 흡수하지 못한 모양인지, 바닥이 움푹 꺼졌다.
엄청난 임팩트에 순간, 운동에 매진하던 인사 팀원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홱 돌아갔다.
“….”
김혜옥은 그렇게 흥분한 직원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솥뚜껑보다 더 크고 상어 가죽보다 더 거친 손이 직원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자.
그의 몸이 마치 풍이라도 맞은 듯 와들와들 떨렸다.
“박성태 과장님께선 운동이 맞지 않으신가 봐요? 그만두게 해드릴까요?”
하회탈 같은 미소에 묘한 음영이 깃든 표정을 지은 김혜옥은 직원, 박성태에게 얼굴을 불쑥 가까이 들이밀어 속삭이듯 그의 귀에 귓속말을 남겼다.
“히, 히이익! 아, 아닙니다. 치유사님! 저, 저는 사실 운동이 체질입니다.”
운동을 그만두겠냐는 말을 ‘네놈이 숨 쉬는 것을 그만두게 만들어 주마!’로 받아들여서일까?
김혜옥의 속삭임을 들은 박성태의 얼굴이 잘 말려진 북어처럼 싯누렇게 질렸다.
사시나무처럼 파들파들 떨리는 몸을 애써 추스른 그는 내던진 역기를 다시 짊어지곤 운동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보셨죠? 김혜옥 치유사님이 워낙 대단하셔야죠. 이번엔 그래도 관대하게 넘어가셨는데. 지난번엔 누군가 집어던진 역기를 저렇게 예쁜 리본 모양으로 꼬아놓으셨답니다.”
신지현은 떨리는 눈빛으로 구석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의 시선이 멎은 곳엔 굵직한 철제 역기봉이 엿가락처럼 독창적인 형태로 뒤틀려 있었다.
“또, 일부 직원들은 저기에 중독이 되어버리기까지 했으니, 팀장 입장으로선 옆에서 격려라도 해줄 수 밖에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신지현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김혜옥과 그녀의 앞에서 반쯤 맛이 간 얼굴로 운동에 열중하고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카하학!”
도대체 어떤 끔찍한 광기가 그들을 움직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부 직원들은 계속해서 피를 토하면서도 역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김혜옥의 ‘회복촉진 펀치’라는 해괴한 주먹질에 두들겨 맞는 그들의 얼굴은 알 수 없는 환희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뭐야. 저거 무서워.
“그, 그렇네요. 나중에 혜옥이에게 뭐라 말을 좀 해보든지 할게요.”
“예…. 것보다. 말씀하셨던 게이트는 다 들르신 모양이죠?”
씁쓸한 미소를 지은 신지현은 어찔거리는 기분을 전환할 요량인지, 내게 본론을 꺼냈다.
그녀가 화제를 다른 곳으로 전환해준 덕분에, 나 역시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게 말이죠. 돌긴 돌았는데…. 우선 자리를 좀 옮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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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다니. 이게 그 게이트에서 입수한 서류인가요?”
사무실 내의 탕비실로 자리를 옮긴 나는 신지현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녀의 고운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살짝 눈살을 찡그린 그녀는 내게서 받아든 서류를 꺼내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흐응…. 정부와 체체파리 클랜 사이에 밀약이 있었다곤 들었는데. 이렇게나 구체적으로 남겨뒀을 줄을 몰랐네요.”
서류를 훑어본 신지현의 눈빛이 점점 이채를 띄어가기 시작했다.
서류를 넘기는 그녀의 손길이 점점 빨라졌다.
“이건…? 강다희를 심문해 낸 내용과 일치하는데요?”
신지현은 부안에서 손에 넣었던 서류를 내게 건네주었다.
그녀가 짚어준 내용은 예상했던 대로, 태백 내부의 ‘세력’에 관한 부분이었다.
“아무리 우리 태백의 규모가 크다지만, 정말 내부에 별의 별놈들이 다 있네요. 범죄자에 마족과 붙어먹은 변절자 놈들이며, 사교도까지…. 우리 길드장님의 인망이 이렇게 없나.”
신지현은 씁쓸한 표정으로 강태백의 인망(?)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았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진정한 적은 내부에 있다고. 그래서 그때 그 정보를 알려드렸었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많을 줄은 몰랐다니까요. 에휴…. 우선은 헌터님께서 주신 데이터가 있기도 하고, 그거랑 이 서류랑 대조해서 수상한 놈들을 좀 뽑아 봐야겠어요.”
예전에 난, 신지현에게 태백 내부의 ‘높으신 분’들의 치부에 관한 데이터를 넘겨준 적이 있었다.
덕분에 야근에 시달리긴 한 모양이지만, 미리 ‘수상한’ 놈들을 뽑아둔 만큼. 체체파리 클랜과 내통한 이들을 찾아내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 같았다.
“다시 쥐새끼 사냥을 해보자구요.”
약삭빠른 김준영이라면 이미 체체파리 클랜의 본단, 검은 부화장을 떠났을 것이다.
놈을 추적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김준영이 태백에 뻗쳐둔 뿌리부터 뒤져보는 것.
김준영의 얼굴을 떠올린 나는 황금빛 안광을 불태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