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체체파리 클랜이 인천에 숨겨두었다는 게이트는 차이나타운의 폐허에 자리하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과 빛바랜 간판들이 엉망으로 널브러진 폐허엔 때아닌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려, 폐허 특유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욱 음울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어라? 산군님 어디서 이상한 냄새 안납니까?”
대격변 당시의 끔찍한 참사들이 우울하게 퇴적된 폐허를 지나, 무너진 사당으로 진입하자.
고개를 갸웃거린 서민혁의 말대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릿한 비린내가 코를 자극해왔다.
곧이어 이전의 다른 게이트 룸을 들렀을 때와는 달리,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렬한 위화감이 엄습해왔다.
“서 기사님! 엎드려요!”
“예? 우, 우와앗!”
위화감을 느낀 순간!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서민혁을 밀쳐 넘어뜨렸다.
그리곤 급히 외골격을 둘러, 어둠 속에서 날아든 공격을 그대로 받아내었다.
-카드드득!
섬뜩하게 뒤틀린 발톱이 황금빛 외골격을 까드득 긁고 지나갔다.
후두둑 튄 불꽃이 어둠이 내려앉은 게이트 룸을 순간적으로 살짝 밝히자.
내게 공격을 감행한 이의 모습이 희미하게 시야에 비쳐 들어왔다.
“모, 몬스터?! 어, 어째서 여기에 몬스터가?!”
《꾸루루루루룩!》
개구리와 인간을 적절히 섞은 듯한 외모에 축축하게 젖은 몸에서 풍겨오는 비릿한 물 내음!두꺼비의 그것과도 같은 둔탁한 울음소리에 성인 남성의 3배는 됨직한 두툼한 허벅지!
놀랍게도 나와 서민혁을 공격한 습격자의 정체는 바로, ‘몬스터’의 일종인 블랙 프로그맨이었다.
회심의 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놈은 나지막하게 불만스러운 울음을 토해내더니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어딜 도망가시려고!”
하지만 이미 화안금정으로 블랙 프로그맨을 제대로 포착해 낸 이상.
놈이 지금 내게서 살아나갈 확률은 제로에 수렴했다.
-화르르륵!
어둠달에 내력을 주입함과 무섭게 염룡등천이 발동되어, 창날에서 검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한층 더 진화한 검은 심장이 붉은 기운을 토해내며 힘차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치지지직!
《꾸와아아악!》
검붉은 불꽃에 휘감긴 창날을 휘둘러 블랙 프로그맨의 몸뚱이를 썽둥 잘라내자.
잘 달궈진 창날에서 발생한 끔찍한 고열이 놈의 촉촉한 피부와 가죽을 삽시간에 지져버렸다.
검은 심장이 울컥울컥 맥동하며, 블랙 프로그맨의 체내에서부터 마력을 살점째로 불태웠다.
겉과 속이 시커멓게 타오른 블랙 프로그맨의 입에서 시커먼 연기가 뭉클뭉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끄, 끝난 겁니까?”
“아뇨! 서 기사님? 제게서 절대 떨어지지 마세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최초로 나와 서민혁을 공격해온 블랙 프로그맨은 숯덩어리가 된 채 죽어 나자빠졌지만.
위험도 3등급에 해당하는 블랙 프로그맨은 기본적으로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족속들이다.
어둠달을 힘껏 쥔 나는 서민혁을 뒤쪽으로 보낸 채, 화안금정을 발동시켜 어둠 속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꾸와아악!》
《꾸르르르르!》
예상했던 대로 어둠 속에선 수없이 많은 숫자의 블랙 프로그맨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은 사당 지하의 게이트 룸은 완전히 놈들의 소굴이 되어 있었다.
꾸르륵 개구리 우는 소리와 함께, 후각을 어찔하게 마비시킬 듯한 악취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촤촤촷!
어둠과 악취가 내려앉은 게이트 룸에서 끈적거리는 분홍색 혓바닥이 내게 엄습해왔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끈끈한 점액에 뒤덮인 혓바닥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속엔 무서운 위력이 숨겨져 있었다.
-콰아앙! 쾅! 쿠와아앙!
블랙 프로그맨의 혓바닥이 복도의 벽을 때릴 때마다.
굉음과 함께 철근 콘크리트제 벽이 갓 만든 두부처럼 허무하게 으스러졌다.굉장한 위력만큼이나 속도 역시, 힘껏 휘두른 채찍의 그것을 연상케 할 만큼 재빨랐다.
-치지지직!
《꾸르르륵!》
하지만 불사조의 핵의 힘으로 진화한 검은 심장 앞에선 그토록 위협적인 공격도 무용지물!
검붉은 어둠달의 창날이 블랙 프로그맨의 혓바닥을 되받아치자.
혓바닥에 실려있던 마력이 화르륵 타오르며, 검은 심장 내부로 흡수되었다.
축축한 혓바닥이 점점 뻣뻣하게 말라붙었다. 마력을 흡수당해 움직임 역시 굼떠졌다.
-썩둑! 썩둑! 우지직!
반면, 블랙 프로그맨들의 마력을 흡수한 검은 심장은 놈들의 마력을 내력으로 전환해.
계속해서 내 몸 곳곳에 충만한 내력을 불어 넣어주었다.
블랙 프로그맨들의 움직임이 둔해지면 둔해질수록 내 움직임은 오히려 재빨라졌다.
창날에 실린 위력 또한, 놈들의 몸을 단번에 베어낼 만큼 흉악해졌다.
《꾸롸아아악!》
혓바닥 공격이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블랙 프로그맨들은 마침내 어둠 속에서 하나둘씩 뛰쳐 나왔다.
-파아아앗!
용수철처럼 잔뜩 부풀어 오른 놈들의 뒷다리가 놀라운 힘을 발휘하자.
블랙 프로그맨들의 신형이 마치 총알처럼 내게 쏘아졌다.
내게 흉맹하게 돌격해오면서 손톱이 번들거리는 양팔을 마구 휘둘러대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쩌저저정!
어둠달을 빙그르르 돌린 나는 창대에 내력을 주입해, 블랙 프로그맨들의 공격을 튕겨냈다.
검붉은 내력이 요사스럽게 번들거리는 창대와 놈들의 손톱이 맞부딪힌 순간 굉음이 터졌다.
검은 심장에서 둔중한 맥동이 들리자, 블랙 프로그맨의 축축한 피부가 모래알처럼 버썩 말랐다.
-꾸르륵!
블랙 프로그맨들의 몸이 땡볕 아래 노출된 지렁이처럼 바싹 말라붙자.
마력을 양껏 포식한 나는 놈들의 마력을 내력으로 바꾸어 거침없이 외골격에 쑤셔 박았다.
황금빛 외골격이 시커멓게 물들며 불길하게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번쩌-억!
격정의 순간 발동된 암룡출동!
몸이 버쩍 말라 동작이 굼떠진 블랙 프로그맨들은 암룡출동에 흉포한 위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조각난 외골격과 내력의 폭풍이 양서류 특유의 연약한 피부를 갈갈이 찢었다.
쿰쿰한 비린내가 가득했던 게이트 룸이 뜨끈한 피비린내로 가득 찼다.
“끄, 끝난 겁니까?”
“뭐…. 대충 마무리는 된 것 같긴 하네요. 일어서시죠.”
암룡출동이 쓸고 지나간 게이트 룸 내부에선 더는 블랙 프로그맨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구석에서 잔뜩 몸을 움츠린 서민혁의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에게 히죽 웃어준 나는 서민혁의 손을 단단히 붙잡아 그의 몸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으그그. 갑자기 몬스터라니. 게이트가 과부하라도 된 걸까요?”
부들거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킨 서민혁은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에 즐비한 블랙 프로그맨들의 파편을 바라보는 그의 눈가는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상태였나 봐요. 보세요.”
위화감의 정체는 비단 블랙 프로그맨들의 존재 때문만이 아니었다.
화안금정을 통해 안력을 돋워, 게이트 룸 내부를 살펴보던 나는 쓰게 웃으며 중앙을 가리켰다.
원래대로라면 게이트 룸 중앙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어야 할 게이트는 온데간데없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그, 그 말씀은 누군가가 게이트를 붕괴시켰단 말입니까?”
“네, 또 그것뿐만 아니라. 온갖 문서들도 싹 쓸어갔네요.”
게다가 이전에 들렀던 논산, 부안의 게이트 룸과는 다르게, 이곳 게이트 룸은 텅 비어있었다.
먼젓번엔 게이트를 관리하던 인원들이 급격히 철수한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있었지만,
이곳은 단순히 텅 비어있는 수준을 뛰어넘어. 부자연스러운 위화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체체파리 클랜 놈들이 눈치챈 걸까요?”
“그랬을 수도 있고, 아무래도 다른 꿍꿍이도 있는 것 같네요.”
“예?”
깔끔하게 정리된 게이트 룸을 바라보는 서민혁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져갔다.
그런 그에게 나는 애석하게도 조금 더 암울한 소식을 전해줄 수 밖에 없었다.
“보세요. 게이트는 붕괴되었지만. 여기…. 우두머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잖습니까.”
이서초 게이트에서 블랙 리자드맨 전쟁 군주와의 일전을 치렀던 것처럼
붕괴된 게이트의 주변엔 아직 결속이 끊어지지 않은 우두머리가 남아있기 마련이다.
허나, 어찌 된 일인지 이곳에선 게이트 우두머리의 흔적을 아예 발견조차 할 수 없었다.
“저, 정말이로군요. 게다가 프로그맨 계통의 몬스터라면, 못해도 마흔 이상은 무리 지어 생활하는 것이 상식인데….”
보통 프로그맨 계통의 몬스터들이 높은 위험등급을 받은 이유는 개개인의 전투력 때문이라기보단, 무리 지어 행동하는 습관 때문이었다.
서민혁의 말처럼 못해도 마흔 이상의 머릿수가 군집 되었을 때, 조직적으로 공격해오는 프로그맨들의 위력은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내 창에 목숨을 잃은 블랙 프로그맨의 머릿수는 다 합쳐 봐야 열 마리 남짓에 불과했다.
“어쩐지 놈들이. 조용하다 싶긴 했어요.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곤 있었는데.”
강다희가 말하길, 이곳 게이트를 포함한 체체파리 클랜의 비밀 게이트들은 하나같이 교단 내부에서도 극비에 부쳐진 게이트라고 했었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체체파리 클랜을 완전히 장악한 김준영이라면 비밀 속에 묻혀있던 게이트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게다가 이곳 인천은 체체파리 클랜의 본단 ‘검은 부화장’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그렇기에 이곳의 몬스터들이 실종된 것은 정황상 김준영을 위시한 체체파리 클랜의 잔당의 소행임이 분명했다.
“블랙 프로그맨과 게이트 우두머리를 갖고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제 먹이를 빼앗았으니 후회하게 해줘야겠죠.”
인벤토리를 소환한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블랙 프로그맨들의 시신을 모조리 인벤토리 내부에 수납시켰다.
허공에 열린 게이트마냥, 탐욕스럽게 쩌억 입을 벌린 인벤토리는 삽시간에 바닥에 가득했던 모든 시신을 빨아들였다.
“자자. 그렇게 아쉬운 표정 지으셔봤자. 뭐가 달라집니까. 강다희가 알려준 게이트도 모조리 순회했으니. 이제 다시 돌아가서 차후의 일을 생각해보자구요.”
그렇게 상황을 모조리 정리한 뒤.
나는 괜시리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서민혁의 등을 툭툭 치며, 그의 주의를 환기했다.
논산과 부안에서 손에 넣었던 ‘문서’들의 내용이 워낙 대단했기 때문인지, 텅 비어버린 게이트 룸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엔 아쉬움만이 가득했다.
“…예. 산군님.”
이곳 인천 게이트를 마지막으로 체체파리 클랜이 관리했던 비밀 게이트 세 곳을 털어먹는 일정을 모조리 마무리되었다.
김준영과 체체파리 클랜의 잔당 놈들에게 이곳의 게이트를 선점당한 것이 조금 아쉽긴 해도.
다른 두 곳의 게이트를 혼자서 독점한 나는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되게 강력해진 상태였다.
“돌아갑시다. 정리할 게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