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2화
“아, 아니 진짜? 정말로?”
시스템 창이 확인해 준 ‘알’의 정체는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튜토리얼 타워를 마족의 위협으로부터 구해준 보상이자, 성좌들이 일주일간 심사를 통해 내게 건네준 보상은 단순한 맥반석 달걀로 대체되어 버렸다.
[푸흡! 달걀? 달갸알? 네놈이 그리도 궁상을 떨면서 선택한 결과가 고작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진 달걀이라고? 으하하하핫!]
쓸데없이 먹음직스러운 윤기가 좔좔 흐르는 맥반석 달걀을 손에 쥐고 넋을 놓고 있으려니.
옆에서 그 꼴을 보며 웃음을 참던 위철용의 입에서 폭소가 터졌다.
[으하하핫! 그 도박쟁이 놈 성질이 별난 것은 알았다만. 그 잘난 성좌 놈들이 그렇게 고민하면서까지 지급한 보상을 한낱 맥반석 달걀로 바꿔버리다니!]
폭소를 터뜨린 위철용은 무엇이 그리도 우스운지 배를 부여잡곤,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호흡이 필요 없는 배후령의 육신으로도 아예 숨까지 꺽꺽거리는 모습으로 미뤄보건대.
도박에 완전히 망해버린 내 모습이 그의 웃음 코드를 제대로 건드린 것 같았다.
“아,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게 평범한 구운 달걀이겠어요? 그렇게 운명적인 이끌림이 느껴졌었는데?”
선택의 순간.
『깔맞춤』 스킬의 영향으로 정상인의 행운을 아득히 초월한 나의 직감을 확 잡아끌었던 것은, 분명히 이 낡고 허름한 종이 상자였다.
그때의 그 신묘한 이끌림이 거짓이 아니라면 분명히 이건 평범한 물건이….
-바사삭!
필사적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나는 손에 쥔 달걀(?)에 힘을 주었다.
약간의 힘을 줬음에도, 윤기가 좔좔 흐르는 갈색 껍질은 맥없이 바사삭 부서져 버렸다.
껍질이 부서진 곳에선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맥반석 달걀 특유의 고소한 향이 흘러나왔다.
…맞네. 상태창 메시지대로 아주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진 맥반석 달걀이야.
[으하하하! 운명적인 이끌림은 무슨! 네놈이 시장한 탓에 헷갈린 것이겠지.]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한입 깨물어 보니, 맛 또한 전형적인 구운 달걀 그 자체였다.
‘맛있어 보여요!’라는 부연설명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달걀의 맛은 쓸데없이 맛있었다.
한입 깨물 때마다 고소한 스모키향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도 한줄기 흘러내렸다.
이게…. 튜토리얼 타워에서 마족을 몰아낸 보상의 기막힌 맛인가?
아니, 그것보단 도박에 실패한 패배자의 비참한 맛이겠지….
잘 구워진 흰자와 노른자의 절묘하면서도 고소한 하모니가 입안에서 연속으로 터지자,
달걀을 우적우적 씹어먹는 내 눈에선 계속해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좋은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 먹었다는 자책감과 퍽퍽한 구운 달걀 특유의 식감 탓에 목이 갑갑하게 메여왔다.
[으하하핫! 진정한 사내라면 때론 자신의 실수를 남자답게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니라. 네놈을 그리도 좋아하는 성좌들마저 이번엔 저렇게 당황하는 꼴이라니! 으핫, 으하하핫!]
여러 가지 의미에서 목이 멘 표정으로 입을 오물거리는 내 모습이 위철용에겐 퍽이나 희극적으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계속해서 땅바닥을 팽이처럼 데구르르 굴러대며 폭소를 터뜨리는 그의 웃음소리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언짢은 마음을 푹푹 찔러왔다.
-띠릭
성좌들마저 당황했다는 위철용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채널 창을 연 순간.
엄청난 숫자의 후원 메시지의 향연이 채널 창에 폭격하듯 내려꽂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위철용의 말대로 성좌들은 당황과 분노, 두 가지 감정을 후원 메시지를 통해 격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고통을 모르는 병사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아니! 그 대단한 공적을 세운 우리 용호에게 고작 저따위 보상을 지급해줬다고? 당장 그 꼬장꼬장한 관리자 놈들에게 내 도끼 맛을 보여줘야겠군!』
「축하합니다! 가시나무를 짊어진 노인이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진정하게나. 그가 그 도박 좋아하는 친구가 개발한 특성을 손에 넣은 결과이지 않나. 가슴은 아프네만, 시작의 탑을 관리하는 이들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
「축하합니다! 고통을 모르는 병사가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닥쳐라! 영감쟁이! 다시 한 번 내 앞을 가로막으려 들면, 네놈부터 반으로 쪼개놓겠다! 피와 약탈의 시간이 도래했나니! 이 몸은 지금부터 놈들에게서 우리 용호가 받아야 할 정당한 보상을 되찾아 올 것이야!』
「축하합니다! 백합을 쥔 처녀가 존재력 포인트를 100 후원하셨습니다.」
『그 대업에 저도 참가하겠어요! 같이 정당한 보상을 되찾아 오자구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원래 보상으로 약속되었던 혼돈이론 대신 저따위 하찮은 쓰레기를 선택지로 내놓다니!』
…세상에. 원래 보상이 『혼돈이론』이었어?
성좌들의 후원 메시지를 통해, 원래 내게 지급되기로 했었던 보상이 무엇인지 확인하자.
이제는 목이 메이는 것을 뛰어넘어 속까지 쓰려 오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그 『혼돈이론』 대신 맥반석 달걀이라니. 아깝게 됐구나. 애송아!]
『혼돈이론』은 회귀 전, 인류 최강의 헌터 ‘황제’ 에드워드가 손에 넣은 것으로 유명한 특성이자. 최강의 마력 증폭 특성 중 하나로 손꼽히는 특성이었다.
한층 더 진화된 검은 심장에 『혼돈이론』의 증폭 효과가 더해졌다면 지금보다 곱절은 더 강해졌을 텐데….
“으아아아아!”
잘못된 선택에 대한 실망이 자책으로 이어지자.
쓰라린 상실감과 뒤늦은 후회가 머릿속에 폭풍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짜증이 치밀어오른 나는 맥반석 달걀이 곱게 담겨있던 종이상자를 번쩍 들어, 부우욱 찢었다.
아니, ‘찢으려고’ 했다.
“…뭐야?”
머릿속을 활활 불태운 마이너스 감정 탓에, 양손에 내력까지 아낌없이 주입했건만.
어째선지 허름하기 짝이 없는 종이상자는 갈기갈기 찢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상자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저항력이 내력이 주입된 양손에 느껴졌다.
-찌직 찌지지직!
그렇게 찢어지지 않는 종이상자에 의아함을 느끼고 있던 찰나.
생쥐가 우는 듯한 소리와 함께, 종이상자의 추레한 겉표면이 조금씩 조금씩 찢어지기 시작했다.
[아서라. 애먼 물건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만큼 추한 것도 없느니라. …어라?]
마치, 번데기가 추레한 허물을 벗고 화려한 나비로 거듭나듯.
허름한 종이상자의 후줄그레한 겉표면이 떨어져 나가자, 내부에서 복잡한 문양이 아로새겨진 새로운 상자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건…. 옷? 아니 옷감인가?”
겉표면을 뒤덮고 있던 낡은 종이쪼가리들이 모조리 사라지자.
초라하기 짝이 없었던 상자의 외형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아니, 그것의 모습은 이제 ‘상자’라기보단 길게 풀어진 비단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길게 풀어진 암청색 비단엔 황금빛 수실로 복잡한 문양이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암청색 비단이 하늘하늘 내 손바닥 위로 흘러내리자, 시스템 메시지 창에 상자의 진정한 정체가 표시되었다.
『왕실 연금술사 샬모넬의 휴대용 아공간』
등급 : 영웅
설명 : 쿠르트 왕실의 염원이 담긴, 아공간 연금술 연구의 정수입니다.
[뭐야. 벌써 눈치챈 게야? 재미없게시리.]
계속해서 비웃던 ‘망한’ 선택지에 반전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위철용은 그리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굉장히 아쉽다는 듯, 아깝다는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미리…. 알고 계셨던 겁니까?”
[아암. 본존이 고작 그 도박쟁이 놈의 함정 따위를 눈치채지 못했겠느냐? 놈에게 당한 세월이 세월이거늘.]
그러고 보니, 기대했던 보상 상자에서 괴상한 것이 튀어나온 탓에 경황이 없어,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른 일반적인 보상 상자들은 상자 내부에 들어있는 보상을 꺼냄과 동시에 세상에서 신비하게 모습을 감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허름한 종이상자는 내가 내부에서 맥반석 달걀을 꺼냈음에도 불구, 계속해서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던 상태였다.
“…아공간이라면 설마? 그 아공간?”
뒤늦게 정신을 수습한 나는 시스템 메시지창에 떠오른 ‘아공간’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샤네가를 쓰러뜨린 보상치곤 ‘영웅’에 불과한 등급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만약 내가 짐작한 대로 그 아공간이 맞는다면!
“신규 인벤토리 등록.”
「『왕실 연금술사 샬모넬의 휴대용 아공간』을 이용자 (설용호)님의 인벤토리로 등록하시겠습니까?」
…맞네. 맙소사 내게도 인벤토리가 생기다니….
예상했던 대로, 『왕실 연금술사 샬모넬의 휴대용 아공간』은 인벤토리로 등록할 수 있는 아공간이었다.
나직한 목소리로 조용히 명령어를 외치자, 암청색 비단에 새겨진 황금빛 문양들이 아름답게 번쩍 빛났다.
-사르르륵
명령어에 반응한 암청색 비단은 곧이어 마치 한 마리 우아한 뱀처럼, 내 손에서 저절로 스르륵 미끄러져 내 오른손 전체를 우아하게 휘감았다.
그리곤 신비로운 광채를 내뿜으며, 조금씩 조금씩 내 오른손 내부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축하합니다! 『왕실 연금술사 샬모넬의 휴대용 아공간』이 첫 인벤토리로 등록되었습니다!」
‘인벤토리’란 마치 게임에서처럼 자신만의 아공간에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개념으로.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어려운 입수 난이도로 인해, 회귀 전에도 인벤토리의 소유자는 전 세계를 통틀어봐도 한 손에 꼽힐 만큼 적었다.
[에잉. 도박에서 실패한 네놈의 표정이 너무도 볼만하여, 나중에 따로 알려주려 했더니.]
“…아니, 인벤토리면 충분히 대단한 보상 아닙니까?”
아이템 등급은 비록 ‘영웅’에 불과하지만,
소지품을 아공간에 수납할 수 있다는 장점만 두고 봐도 아공간은 충분히 ‘전설’ 이상의 값어치를 지닌 보상이었다.
위철용이 미리 눈치챌 정도였으면, 다른 성좌들 또한 알고 있었다는 소리일 텐데.
어째서 그들은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반응했던 걸까?
[성좌 놈들에게 아공간이란, 일상적인 수납공간이기 때문이니라. 그 치들 입장에선 네놈에게 보상이랍시고 아공간을 제공한다는 것이 마치 일상적인 가재도구를 지급하는 것처럼 달갑지 않게 여겨지는 게지.]
위철용은 별걸 다 궁금해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성좌들이 그런 반응을 보인 이유를 설명해줬다.
“하지만 저희 필멸자들에겐 이것만큼 유용한 능력도 없는 데 말이죠.”
원래 보상이었던 『혼돈이론』 특성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보상을 손에 넣었기에 근심과 번민이 가득했던 내 기분은 완전히 풀린 상태였다.
“이게 있으면 이제, 굳이 전리품을 선별할 필요가 없겠네요.”
인벤토리를 손에 넣은 이상, 앞으로 굳이 쓰러뜨린 몬스터의 시체를 뒤져 전리품을 갈무리할 필요가 없지, 인벤토리에 놈들의 시체를 통째로 담아가면 그만이니까.
인벤토리가 가져다줄 이득에 완전히 기분을 수습한 나는, 위철용을 바라보며 히죽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남은 게이트도 한 곳만 남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