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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131화 (131/309)

제131화

“아 참.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있었지.”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나는 튜토리얼 타워에 난입한 마족 샤네가를 쓰러뜨렸었다.

위철용과 성좌들이 언급했듯, 내가 놈을 처리함으로써 이뤄낸 공적이 보통이 아니었기에,

샤네가를 쓰러뜨린 것에 대한 보상은 성좌들이 ‘심사’에 들어가기까지 할 정도였다는데….

그동안 보상은커녕, 그것에 대한 일언반구조차 없어서 그만 까맣게 잊고 있었지 뭐야.

[보통 성좌들이 필멸자들에게 내려주는 보상에 대한 심사는 오래 걸려야. 하계 시간으로 사흘 내외거늘. ‘일주일이나 걸렸다.’라…. 놈들이 대관절 네놈에게 어떤 대단한 보상을 주려고 들었는지 모르겠구나.]

“…그런데 그 ‘대단한’ 보상까지 『야바위꾼의 악운』 특성에 영향을 받아 버렸네요.”

보상에 대해 골머리를 깨나 썩였을 성좌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샤네가를 쓰러뜨린 행위는 일종의 게이트 우두머리를 쓰러뜨린 것과 동일하게 간주 되는 모양이었다.

조금 전에 시스템 창에서 언급된 것처럼,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상자는 다해서 총 여섯 개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명색이 성좌들이 ‘심사’까지 해가면서 정해준 보상이라며!

그런데 그런 진귀한 보상까지 무작위 선택지의 지옥 속에 쑤욱 집어넣어 버리는 건 또 뭔데!

[도박꾼 주제에 ‘공정한’ 것을 그리도 중요시했던 도박쟁이 놈이 만든 특성이니만큼. 다른 선택지 중 하나에도 필시 그에 필적하거나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 들어있긴 하겠다만….]

“문제는 운빨이라 이거죠.”

또다시 눈앞에 등장한 선택지의 향연에 나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번엔 정말 운이 좋게도 불사조의 핵이란 초대박 선택지를 뽑아냈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좋은 것을 뽑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애초에 나는 회귀 전부터 헌터들 사이에서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기로 유명했었고 말이지….

-쿠르르릉!

신중한 표정으로 저마다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는 상자들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녹음과 풀 내음이 가득했던 미궁 전체가 심상치 않은 소리를 내며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풀이 우거진 바닥이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넝쿨에 휘감긴 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쓸데없이 시간을 끌고 앉아 있으니, 봐라! 벌써 붕괴가 시작되지 않았느냐! 뭘 그리 궁상을 떨고 있는 게야!]

게이트 우두머리의 죽음으로 게이트의 소멸이 시작되자.

보상을 선택해야 할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옆에서 내 고민을 지켜보던 위철용은 보다못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으으으 운빨이라. 운이라…. 가만?”

‘운’이라는 한 글자 단어가 뇌리를 스친 순간.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가 혼탁해진 머릿속을 환하게 밝혔다.

지난번엔 어째서 유사한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감마저 뒤늦게 몰려올 정도였다.

운이라!

『깔맞춤』 특성의 효과로 인해, 언제든지 행운 능력치를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내가 아니던가!

『깔맞춤』 특성에 생각이 미친 순간, 나는 망설이지 않고 즉시 깔맞춤 스킬을 발동시켰다.

-파츠츳!

깔맞춤 스킬이 발동되어, 특유의 고양감이 온몸을 지배한 순간!

여섯 개의 상자 중 두 개의 상자에서 강렬한 이끌림이 느껴졌다.

「정말로 붉은 강철 상자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예.”

「정말로 허름한 종이 상자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예.”

마치 이게 아니면 뭔가 크게 잘못될 것 같은 강렬한 이끌림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두 개의 상자를 즉시 집어 들었다.

게이트 우두머리 자이언트 만드라고라를 쓰러뜨린 보상 상자는 제법 화려해 보였으나.

샤네가의 보상 상자는 다른 선택지 중에서도 유독 초라해 보이는 종이 상자였다.

-쿠르르르릉!

성좌들이 신경 썼다는 보상, 혹은 그것을 능가하는 보상이 들어있는 상자치곤 너무도 부실해보였지만.

애석하게도 이미 선택을 해버렸거니와, 게이트의 붕괴 또한 상당히 진행된 후였다.

나는 거의 내 몸통만 한 상자 두 개를 옆구리에 끼곤 서둘러 밖으로 향하는 출구에 몸을 던졌다.

*****

-파츠츠츠!

선택한 보상들을 옆구리에 단단하게 끼운 채, 구르듯 몸을 날려 게이트를 빠져나온 순간!

평소보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보랏빛 게이트는 마치 여름날의 불꽃놀이처럼 흩어져버렸다.

“휴우우. 하마터면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차원의 미아가 될 뻔했네.”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늦지 않게 빠져나오긴 했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늦었으면, 지난번에 태백의 상부에 보고된 것처럼 차원의 미아 신세가 되어버릴 뻔 했다.

주르륵 흘러내린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쳐낸 나는, 뒤늦게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평소에 우유부단한 짓을 자주 저지르던 놈이라면 또 모를까. 네놈쯤 되는 애송이가 고작 물욕에 빠져 시간을 그리도 낭비할 줄은 본존도 미처 몰랐느니라. 한심하긴!]

“한심하다뇨. 신중하다고 해주시면 어디 덧납니까.”

나를 노려보는 위철용의 얼굴엔 못마땅함과 걱정이 뒤섞인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위철용이 그렇게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지그시 노려보자. 나는 그런 그에게 넉살 좋은 미소로 화답을 해줬다.

“그보다. 지금은 제가 선택한 것을 확인해 볼 시간이 아니겠습니까!”

지난번엔 그저 어쩔 수 없이 아무거나 들고 나왔지만.

이번엔 『깔맞춤』 특성으로 대폭, 엄청나게 증폭된 행운이 적용된 선택지였다.

아직도 이 두 개의 보상 상자를 집어 들었을 때의 강렬한 이끌림이 잊히지 않을 정도!

그만큼 강렬한 기대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몽글몽글 범람해왔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나는 두 개의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곤 들뜬 표정으로 손을 슥슥 비볐다.

“자! 첫 번째 선택지는 뭘까~요!”

두 개의 상자 중 내가 가장 먼저 손을 가져간 것은 바로.

용맹한 사자가 포효하는 듯한 문양이 정면에 아로새겨진 붉은 강철 상자였다.

처음 집어 들었을 때부터, 기분 좋게 묵직한 그립감을 제공해줬던 놈이었지!

과연 보상도 그만큼 대단한 게 들어있을까!

“그래! 떴…나?”

호들갑스러운 환호성을 지르며 붉은 강철 상자의 뚜껑을 열어젖힌 순간.

내 입에서 터져 나왔던 환호성은 조금씩 의문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의문으로 바뀌었던 환호성은 곧 맥빠진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

등급 ; ???

설명 : 아직 감정이 되지 않은 전리품입니다.

뭐여? 여기서 미감정 전리품이 튀어나온다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미감정 전리품이라니! 이거 너무한 거 아냐?”

미감정 전리품.

말 그대로 아직 ‘감정이 되지 않은’ 전리품을 뜻하는 말이었다.

보통 이런 계통의 미감정 전리품을 감정할 경우, 대개 높은 등급의 전리품이 튀어나오곤 했지만….

문제는 지금 시기엔 ‘감정’ 스킬을 보유한 자가 극히 드물다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감정사만 해도 앞으로 3년 뒤에 활동을 개시하는 인물이었다.

근본이 게이트 우두머리의 전리품인데다, 미감정 전리품이기까지 하는만큼 범상치 않은 보상이 숨겨져 있는 것이 반쯤은 확실하지만….

지금 당장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한다는 현실이 내게 아쉬움만으로 다가왔다.

[푸흡.]

마치 연기하듯 순식간에 변해버린 내 표정이 퍽 재밌게 느껴진 것일까?

시종일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위철용의 입에서 순간적으로 웃음이 터졌다.

“…다음은 두 번째.”

그런 위철용의 반응을 애써 무시한 나는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르곤 두 번째 상자.

딱 봐도 아주 허름하기 짝이 없는 종이 상자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래. 보통 이렇게 겉모습이 형편없어 보이는 곳에서 진짜배기 전리품이 나오더라고!

“이번엔 진짜로 간드앗!”

나는 새된 고함을 지르며 후줄근한 종이 상자를 비틀어 열어젖혔다.

-쫘좌작!

겉으로 보기에도 형편없이 낡아 보이는 종이 상자의 뚜껑은 너무도 힘없이 ‘찢어져’ 버렸다.

순식간에 갈가리 찢겨 나간 뚜껑 아래로 보인 것은 바로….

“계란?”

손바닥보다 훨씬 작은 크기, 아무 특별한 무늬 없이 매끈한 갈색 표면.

종이 상자 속에 들어있는 것은 앙증맞기 짝이 없는 사이즈의 자그마한 알이었다.

마치 찜질방에서 판매하는 맥반석 달걀과 거의 120%의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알 하나가

후줄근한 종이 상자 속에서 수줍게 자신의 초라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달걀이라고? 아, 아냐. 보통 이런 곳에 들어있는 알은 신수의 알이니 뭐니 하는 화려한….”

너무도 초라한 외형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자 속의 알을 집어 들자.

시스템 메시지 창에 그것의 정확한 정체가 출력되었다.

『동대륙의 맛좋은 맥반석 달걀』

등급 : 일반

설명 : 잘 구워진 달걀입니다.

(맛있어 보여요!)

“…진짜. 맥반석 달걀이야?”

문제의 알의 정확한 정체가 시스템 창에 출력되자 내 시야가 삽시간에 깜깜하게 물들었다.

떡 벌어진 입에선 맥없는 탄성이 신음처럼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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