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 잘생겼다!-130화 (130/309)

제130화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자 속의 붉은 보석을 꺼내 들었다.

잘 익은 석류처럼, 값비싼 루비처럼 아름다운 진홍빛을 흩뿌리는 보석이 내 손에 닿은 순간.

시스템 메시지 창에 그것의 정보가 출력되기 시작했다.

『불사조의 핵』

등급 ; 신화

설명 : 영원히 타오르는 화염의 힘이 깃든 보석입니다.

야바위꾼의 악운 특성으로 손에 넣은 보상은 역시나 짐작했던 대로 불사조의 핵이었다.

시스템 창으로 정보를 확인한 순간, 내 입에선 허탈한 웃음이 흘러 나왔다.

“이걸 여기서 다시 보게 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네요.”

불사조의 핵을 이 손에 쥐어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까드득 움켜준 손 안에서 익숙한 열기가 느껴지자, 기억 속에 화인처럼 새겨진 해묵은 원한이 세월의 강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아직도 그때의 일을 마음에 담아 둔 게냐? 지금 그것이 문제가 아니니라! 불사조의 핵은 ‘파멸의 탑’의 보상으로 약조된 물건이거늘!]

한때 성좌였던 인물답게, 위철용은 나와 다른 이유로 당황한 것 같았지만.

세월의 강을 거슬러 올라, 부글부글 들끓어 오르는 원한은 그에 대한 의구심마저 지워버렸다.

“…잊을 수 있겠습니까? 죽 쒀서 뭐 줬던 뭣 같은 경험인데.”

위철용이 언급한대로 회귀 전. 불사조의 핵은 서울 북부 전체를 집어삼켰던 위험등급 1++의 침식형 게이트 ‘파멸의 탑’의 클리어 보상이었다.

당시 그곳을 공략하는 공격대를 이끌었던 나는, 수많은 공격대원들의 희생 끝에 간신히 게이트를 클리어하여 보상으로 불사조의 핵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일개 공격대장에 불과했던 나는 눈앞에서 그것을 태백의 ‘얼굴마담’ 한세훈에게 ‘양보’해야만 했었지.

당연히 내 의사따윈 상관없이, 태백 상부의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그렇게 한세훈의 손에 들어간 불사조의 핵은 놈의 무기 ‘단죄’를 벼려내는데 사용되었다.

-까드득!

해묵은 원한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한세훈의 얄미운 얼굴이 연달아 떠올라 저절로 이가 갈렸다.

“제대로 써먹기나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돼지 목의 진주나 다름없었잖습니까!”

대한민국의 ‘국민 영웅’이자, ‘인류의 희망’ 소리를 들었던 한세훈의 무기답게,

단죄에는 불사조의 심장 뿐만 아니라, 온갖 호화찬란한 재료들이 모조리 투입되었다.

물론, 알다시피 그렇게 만들어진 단죄는 최후의 게이트 ‘울부짖는 설원’ 공략에서 별다른 활약도 하지 못한 채, 허망하게 주인 한세훈과 함께 몬스터의 뱃속으로 들어가버렸지.

단죄를 벼려내는데 들어갔던 재료들을 떠올린 순간, 다시 열이 확 뻗쳤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한세훈의 잘난 무기에 들어간 재료의 90% 이상이 내가 놈에게 ‘양보’한 물건이었으니까.

[끄응. 네놈의 원한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만…. 그것은 정해진 보상….]

그렇게 내가 잠시 과거의 원한을 곱씹고 있으려니.

심각한 표정의 위철용은 옆에서 ‘정해진’ 미래 중 하나가 바뀐 것에 대한 심각성을 역설했다.

“제가 회귀한 이후, 우리가 기억하던 ‘미래’는 이미 뒤틀려 버렸다는 걸 잘 아시잖습니까?”

그런 위철용에게 그가 내게 예전에 조언해줬던 내용을 그대로 되돌려주자.

잔뜩 흥분한 채로 떠들던 위철용의 호들갑스러운 움직임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뚝 멎었다.

[…그래. 본존이 네놈에게 그런 조언을 해 줬었지. 이거 본존이 추태를 보였군.]

“뭐, 지금은 그런 것보단 다른 것에 신경을 좀 더 써보자구요. 예를들어….”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볼을 긁적이는 위철용에게 히죽 미소를 보냈다.

그리곤 등에 비끄러 멘 어둠달을 꺼내, 열기가 이글거리는 불사조의 핵을 가져다 대었다.

“불사조의 핵으로 새롭게 벼려진 어둠달의 이야기라던지!”

-두근! 두근! 두근!

시커먼 어둠을 뿜어내며 거칠게 맥동하는 검은 심장.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며 빠르게 맥동하는 불사조의 핵.

두 개의 상이한 기운을 지닌 심장이 한곳으로 포개어지자.

제멋대로, 엇박자로 뛰던 맥동 소리가 느릿하게 늘어지며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서로 따로 놀던 두 개의 심장이 박자를 맞추자 불사조의 핵이 검은 시장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

-화르르륵!

《끼야아아아아!》

열기가 이글거리는 창날이 지나가자 귀청을 찢을 듯한 단말마와 함께,

인간을 닮은 얼굴이 인상적인 거대 인삼의 몸뚱이가 활활 타올랐다.

「위업 [게이트 – 신록의 미궁] 달성!」

「칭호 [인간 제초제]가 수여됩니다.」

「칭호 보상 – 보너스 특성 포인트 [+10]」

「레벨이 올랐습니다.」

「새로운 특성 포인트가 제공됩니다. 특성 트리를 확인해 보세요.」

거대 인삼의 정체는 다름아닌, 게이트 우두머리 ‘자이언트 만드라고라.’였다.

위험도 3등급을 자랑하는 게이트의 우두머리임에도 놈은 너무도 허무하게 내 창날 아래 목숨을 잃었다.

[그땐, 설마 한세훈 같은 놈의 손에 들어갈 줄은 몰랐다만. 원래 불사조의 핵은 대단한 위력을 지닌 기물이니라.]

위철용의 말에 나는 멍한 표정으로 홀린듯 어둠달을 바라보았다.

불사조의 핵으로 강화된 어둠달의 위력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대단했다.

“…세상에.”

논산 육군 훈련소를 빠져나와,

부안에 위치한 이곳 ‘신록의 미궁’에 도착한 것은 불과 여섯시간 전의 일이었다.

먼젓번 들렀던 논산의 게이트와 비교하면 한 등급이 낮은 곳이라곤 하나.

명색이 위험도 3등급에 다다르는 게이트를 불과 여섯시간만에 쓸어버린 것!

“막연하게 어둠달이 강화될 줄은 알았는데, 검은 심장의 효과까지 강화될 줄은 몰랐네요.”

불사조의 핵이 융합된 검은 심장의 외형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시커먼 연기가 음울하게 올라오며, 느릿하게 맥동하던 검은 심장은 이제 ‘검은’ 심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불사조의 핵과 같은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화르르륵!

검은 심장의 원래 효과가 ‘마력을 흡수하는 것’이었다면.

불사조의 핵과 융합한 이후의 효과는 ‘마력을 불태워 흡수하는 것’이었다.

상대의 마력을 뭉텅이로 불태워 흡수하는 효과를 지녔기에.

어둠달의 창날에 공격에 노출된 상대는 지속적인 소모전을 강요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특히나 열기에 약한 식물계열 몬스터들에겐 실로 악랄하기 짝이 없는 효과이기에.

이곳 ‘신록의 미궁’ 게이트의 몬스터들을 모조리 쓸어담는 것은 식은 죽먹기보다 쉬웠다.

「게이트 우두머리, 자이언트 만드라고라의 전리품 상자가 출현합니다.」

「특성 『야바위꾼의 악운』의 효과로 추가 선택지가 출현합니다.」

「세 개의 전리품 상자 중 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해 주세요!」

-쿠웅! 쿠웅! 쿠웅

한층 더 강화된 어둠달의 위력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으려니.

이번에도 쿵쿵 거리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상자 세 개가 떨어져 내렸다.

“설마 이번에도 대박이 나오는건 아니겠죠….”

[네놈의 운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두 번째도 대박이 나오겠느냐? 욕심도 유분수지.]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낸 선택지에 위철용과 잠시 만담을 나누고 있으려니….

「시작의 탑을 침범한 마족, 샤네가의 전리품 상자가 출현합니다.」

「특성 『야바위꾼의 악운』의 효과로 추가 선택지가 출현합니다.」

「세 개의 전리품 상자 중 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해 주세요!」

“…뭐야?”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선택지가 하나 더 모습을 드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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