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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127화 (127/309)

제127화

나는 실연(?)의 충격으로 바위에 머리를 들이받아 내 눈앞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크림슨 웨어베어의 싸늘한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살다 보니 별 해괴한 꼴을 다 겪어보네.”

그동안 특성 『외모지상주의』 효과로 몬스터 놈들이 내게 홀딱 빠진 적은 있었지만.

설마하니, 내게 밉보였다는 이유로 자살을 선택하는 놈까지 나올 줄은 차마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경우도 내가 쓰러뜨린 것으로 쳐주는 건가?”

크림슨 웨어베어가 한 많은 생을 스스로 끊어 낸 순간, 어째선지 레벨이 한 단계 성장하였다.

아무래도 옆에서 자살을 부추긴(?) 것조차, 일종의 공격으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외모지상주의 특성의 효과를 제대로 보긴 봤는데….

이 묘하게 찝찝하면서도 불쾌한 기분은 대체 뭘까?

-부우욱!

어쩐지 불편한 감정이 엄습해오자, 나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그리고 크림슨 웨어베어의 시신에서 전리품들을 대충 갈무리해 챙긴 뒤, 적당히 안전해 보이는 곳에 몸을 숨겼다.

“상태창 오픈.”

그리곤 께름칙한 기분을 환기할 심산으로, 오랜만에 레벨업을 기념하여 상태창을 열었다.

Lv.31 설용호

근력 585 민첩 585

재주 585 체력 585

행운 25 인지 25

내력 585 매력 605

-외모지상주의

-파천 복룡창

-일기당천

-화안금정

-낙오자들의 진혼곡

-깔맞춤

-미의 화신

-위치사수

허허. 이게 레벨 31의 능력치라니….

이 정도 능력치 합계면 거의 레벨 50? 아니지, 어쩌면 레벨 60하고도 맞먹는 수치인데?

오랜만에 확인한 상태창엔 역시나, 정신이 아득해지는 수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른 헛웃음과 입가에서 새어 나온 웃음을 꾹 억누른 뒤.

나는 풍족하게 쌓여있는 존재력 포인트를 아낌없이 탈탈 털어, 능력치에 투자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특성 포인트를 투자한 적이 없었지?”

조금 전, 레벨 업을 하기도 했고, 김혜옥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다시 돌입한 튜토리얼 타워에서 위업을 세 개씩이나 얻은 상황.

현재 내가 보유한 특성 포인트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는 상태였다.

그동안 경황이 없어, 특성 포인트를 투자할 여유를 갖지 못했긴 했다만….

-스윽

슬슬 파천 복룡창의 새로운 초식을 하나쯤 배울 시기가 되었긴 하지.

암룡출동이 쓸 만한 초식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자주 남발할 수 있는 초식은 아니니까.

나는 시선을 돌려, 금이 간 바위 옆에 축 늘어진 크림슨 웨어베어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위험도 2등급임을 온몸으로 증명하기라도 하듯, 놈은 독룡아를 맞고도 너무도 멀쩡했다.

그 때문에 새로운 초식의 필요성을 느낀 나는 망설임 없이 특성 트리를 열었다.

“특성 트리 오픈.”

내 입에서 특유의 명령어가 나직하게 흘러나오자.

순식간에 시야가 시커멓게 물들며, 눈앞에 시커먼 밤하늘이 펼쳐졌다.

곧이어 시커먼 밤하늘엔 알록달록한 별들이 하나둘씩 떠올라, 『끝없는 고행의 길』 특성 트리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특성 포인트가 이렇게나 많으니…. 너끈히 다음 초식을 찍을 수 있겠군.”

『끝없는 고행의 길』을 상징하는 별자리를 유심히 훑어본 뒤.

나는 보랏빛 선으로 오밀조밀하게 연결된 별들 저 멀리, 유난히 환하게 빛나는 별에 주목했다.

그리곤 그것을 향해, 보유한 특성 포인트를 거침없이 투자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이게,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목표 지점을 향해, 그동안 보상으로 얻었던 특성 포인트를 주르륵 찍어가기 시작한 순간.

뾰족한 비명과 함께, 내 가슴께에서 위철용의 잔뜩 일그러진 비췻빛 얼굴이 쑤욱 솟아올랐다.

…아. 맞다.

이거 특성 하나씩 찍을 때마다. 이 어르신의 기억이 하나씩 돌아왔었지.

[크으으. 머리야』. 한동안 잠잠하더니 무, 무슨 특성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연달아 찍고 난리인 게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위철용은 관자놀이 인근을 꾹꾹 누르며, 푸념 섞인 신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그의 기억과 관련된 특성에 포인트를 주르륵 연달아 할당해 버렸기 때문인지.

쓰나미처럼 밀려온 과거의 기억들이 그에게 지독한 두통을 선사해준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오랜만입니다. 어르신? 어째 요즘 통 보이지 않으시더니.”

위철용과 재회한 것은 정확히 사흘만의 일이었다.

튜토리얼 타워에서의 일이 끝난 뒤, 위철용은 또다시 그놈의 ‘명상’을 하겠다고 선언하며 지난 사흘간 심상세계의 깊고 어두운 곳에 콕 틀어박혀 있었다.

[크. 크흠. 그, 그야. 생각해볼 것이 좀 있다고 본존이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더냐.]

내 목소리에 묘하게 섭섭한 기운이 담겨있다는 것을 눈치 챈 모양인지.

위철용은 민망한 헛기침을 하며. 슬그머니 눈길을 돌려 내 시선을 회피했다.

먼 곳을 바라보는 위철용의 눈빛은 어째선지 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또 무슨 사고라도 친 건가?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래?

-띠릭.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좌들과 연결된 채널창을 열어봤지만.

채널창의 모습은 다행히 먼젓번과는 달리, 여느 때처럼 평화롭기만 했다.

「축하합니다! 열대 섬의 불꽃 도마뱀이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설용호 님께서 야수의 마음을 아주 찢어 놓으셨다! 설용호! 설용호!』

「축하합니다! 메마른 사막의 방랑자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우오옷! 이 넘쳐나는 예술적 영감이란! 급하게 조금 전의 전투를 대리석에 새겨봤습니다!』

「축하합니다! 백합을 손에 쥔 처녀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메마른 사막의 방랑자님! 그 대리석 조각 얼마에 파시겠어요? 제 신전에 장식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이네요!』

…민망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진 성좌들의 후원 메시지가 정신없이 주르륵 올라오고 있다는 것만 빼면 말이지.

아무튼, 채널창에 별 이상이 없는 걸 보면, 지난번과 비슷한 사고를 친 것 같지는 않은데.

평소의 위철용답지 않게, 이렇게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것마냥 행동하는지 모르겠군.

[후우…. 실은 애송이 네놈에게 할 말이 있다.]

위철용의 부자연스러운 반응에, 조용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계속해서 그를 바라보고 있자.

길게 한숨을 토해낸 위철용은 그답지 않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을 꺼냈다.

“하실 말씀이라뇨?”

[본존의 심상세계가 네놈과 연결된 뒤, 그 속에서 본존도 수련에 열중하다 보니….]

순간, 위철용의 비췻빛 신형이 풀썩 쓰러진다 싶더니, 입 근처가 뻣뻣하게 마비되는 듯 기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이질적인 감각에 의문을 표하려고 했으나, 마치 마취라도 당한 것처럼 나는 내 입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이 가능해져서 말이다.”

…뭐여?

그렇게 마비되어 통제를 벗어난 내 입에서 갑자기 위철용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비된 입가를 꽈악 꼬집어 봤지만,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얏! 알았다. 알았어! 돌려줄 테니 그만 좀 꼬집어! 이눔아.”

제어를 벗어난 입가가 히죽 미소를 짓는다 싶더니, 마치 꿈에서 깨어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삽시간에 잃어버렸던 감각이 다시 돌아왔다.

동시에 쓰러졌던 위철용의 비췻빛 몸뚱이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대충 이런 식으로 의식을 집중하면, 네놈의 신체 부위 중, 한 곳에 빙의할 수 있게 되었거든. 그래서 이걸 어찌 써먹어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제 몸에 빙의할 수 있게 되었다고요?”

[그래…. 허나. 조금 전 네놈이 겪어봤듯 이게 네놈에겐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닐 것이 분명해서 말이다.]

…그래.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지.

어째서 위철용이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멀쩡한 신체 부위가 내 제어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움직이는 모습은 그의 말대로 절대로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으니까.

“확실히. 별로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거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겠는데요?”

하지만 불쾌한 것과는 별개로 위철용이 새로 발견해 낸 ‘빙의’는 굉장히 쓸 만한 능력이었다

[…그렇지? 으하하하! 그래! 네놈이라면 그렇게 말을 할 줄 알고 있었느니라!]

*****

위철용과 그렇게 해후를 끝마친 뒤.

나는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계속해서 특성 트리에 포인트를 투자했다.

그동안 쌓아둔 잔여 포인트를 전부 털어 넣은 결과.

나는 파천 복룡창의 새로운 초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퍼천 복룡창 제4식 염룡등천」

등급 : 희귀

효과 : 하늘을 부수고 용을 굴복시키는 창술의 네 번째 초식을 습득합니다.

『“와! 사부님! 사부님의 창에서 불꽃이 타올랐어요!”

“껄껄껄! 요놈아! 이제야 사부님의 진정한 실력을 알겠느냐?”

스승은 모처럼 자신의 어린 제자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자가 멍하니 불꽃이 깃든 자신의 창을 바라보며, 잠들 생각을 하지 않자.

스승은 서서히 초조해져만 갔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내공이 소진되어가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거든요.』

파천 복룡창의 제 사식 염룡등천에 특성 포인트를 투자한 순간!

무의식의 심연 속에서 새로운 지식이 연어처럼 망각의 강을 거슬러와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허으으윽! 그, 그래. 사부님! 사부님께선 고작 반각을 버티는 게 한계셨지.]

밀려들어 오는 기억의 향연에 벅찬 전율을 느낀 모양인지, 위철용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멍한 눈빛으로 불길이 피어오른 창날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아득한 과거를 더듬었다.

[흣! 아니야! 지금은 한가하게 과거의 기억을 더듬을 때가 아니지! 애송이!]

기억을 되찾은 위철용의 태도는 지난번까지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짜악 찰진 소리가 날 정도로 자신의 뺨을 세게 때린 뒤, 스스로 아련한 환상 속에서 벗어났다.

그리곤 어둠달의 창날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뾰족한 목소리로 경고를 내질렀다.

“알고 있어요!”

《쿠워어어엉!》

새로 습득한 초식을 시험해보기 위해, 안전지대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광폭한 포효 소리와 함께, 멀리서 크림슨 웨어베어 한 마리가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네발로 맹렬하게 달려오는 놈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어둠달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화르르륵!

파천복룡창의 제 사식 염룡등천은 이름 그대로 내력을 극양의 기운으로 바꾸는 초식!

머릿속에 떠오른 새로운 구결에 맞춰, 내력을 움직이며 몸을 빙그르르 돌리자.

어둠달의 시커먼 창날을 휘감은 내력이 새빨간 불꽃이 되어, 화르륵 타올랐다.

《쿠오오옹?》

황금빛 외골격이 내 몸을 휘감기 시작하자.

외골격 『미의 화신』의 효과로 인해, 『외모지상주의』의 특성이 더욱 증폭되었다.

덕분에 흉포한 기세로 내게 달려들던 크림슨 웨어베어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커다란 입을 딱 벌린 채, 놈은 멍하니 멈춰서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꾸워옹….》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크림슨 웨어베어는 새로운 초식을 시험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허수아비가 되어줬다.

-후와앙! 후와아앙

불길이 이글거리는 어둠달의 창날이 허공을 붉게 수놓고 있음에도.

크림슨 웨어베어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어둠달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창날에서 이글거리는 불길이 더욱 강해졌다.

-화르르륵!

마침내, 불길이 이글거리는 창날이 크림슨 웨어베어의 몸에 틀어박힌 순간! 삽시간에 어둠달의 창날에 걸려있던 불꽃이 놈의 전신을 덮고 있던 겹갈기털에 옮겨 붙었다.

크림슨 웨어베어의 거대한 몸이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쿠오오오옷!》

고통 덕분에 내 외모의 현혹에서 벗어난 걸까?

온몸이 불길에 휩싸인 크림슨 웨어베어는 분노에 찬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불길에 휩싸인 놈의 손톱이 내 머리를 노리고 쇄도해왔다.

-치이이익!

하지만 크림슨 웨어베어의 손톱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불길이 이글거리는 창날이었다.

피륙으로 이뤄진 손톱과 화염의 열기로 새빨갛게 달궈진 창날이 맞붙자.

매캐한 연기와 함께, 살점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렸다.

《쿠와오오옷!》

크림슨 웨어베어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른 바로 그 순간!

나는 화염이 이글거리는 어둠달을 이용해, 연포 육룡격을 펼쳤다.

-화륵! 화르르륵!

염룡등천의 진정한 위력은 다른 초식과 연계되었을 때 드러나는 법!

연포 육룡격이 염룡등천과 연계되어 펼쳐졌다.

활활 타오르는 여섯 마리의 용이 아가리를 쫙 벌린 채. 크림슨 웨어베어의 숨통을 노렸다.

-치직! 치지지직!

여섯 마리의 용이 크림슨 웨어베어의 화상으로 약해진 가죽을 꿰뚫고 들어가자 몸속까지 침투한 양기가 놈의 내장을 태웠다. 피를 증발시켰다.

《크오오오….》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입을 쩍 벌린 크림슨 웨어베어의 입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윽고 온몸이 불길에 휩싸인 채 발광하던 놈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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