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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125화 (125/309)

제125화

“…그래서 저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죠.”

강다희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그야말로 경악의 연속이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마족 놈들은 배교자들에게 건네받은 신물을 이용해.

성좌 ‘쇠락한 고성의 파리 군주’의 힘과 권능을 갈취해 버린 것 같았다.

…어쩐지 조용하다 싶더니. 뒤에서 이렇게 대담한 짓을 벌이고 있었단 말이지.

빌어먹을 족속들 같으니!

“이제 저를 어떻게 하실 건가요?”

마족들에 대해 적의를 불태우며, 속으로 욕을 삼키고 있으려니.

이야기를 끝마친 강다희는 다소곳이 무릎을 꿇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보여줬던 나사 빠진 모습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그녀의 모습에선 뒤늦게나마 한 단체의 수장다운 기품이 느껴졌다.

“글쎄…. 내가 그쪽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신에 대한 처우를 물어오는 강다희의 질문에, 나는 입꼬리를 뒤틀며 살기를 흘려보냈다.

비록 사정이 딱하긴 했으나, 강다희 역시 절대로 ‘선한’ 인물은 아니었기에, 그녀를 대하는 내 태도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냉정하기만 했다.

“그쪽이 양심이 있으면, 설마 내게 목숨을 구걸하진 않겠지?”

강다희가 체체파리 클랜을 이끄는 교주이니만큼.

그동안 체체파리 클랜이 저질러온 수많은 악행들은 모두 그녀의 지시하에 일어난 일이었다.

게다가 나 역시 그들에게 ‘그릇’으로 노려졌던 몸이기에, 내가 체체파리 클랜에게 가진 감정 또한 그리 유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살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요.”

어둠달에서부터 아지랑이와도 같은 시커먼 살기가 흘러나오자.

강다희는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겠노라 선언했다.

다소곳이 손을 모은 그녀는 어둠달의 서늘한 창날 앞에 목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가기 전에 부탁 하나쯤은 괜찮지 않겠어요?”

-투둑!

희미한 미소를 지은 강다희는 자신의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를 뜯어, 내게 내밀었다.

그녀가 내민 목걸이는 무슨 사연이 있는 물건인지, 군데군데 피가 얼룩져 있었다.

“이건…?”

서글플 정도로 어슴푸레한 새벽 별빛 아래, 목걸이의 전체적인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순금으로 만들어졌는지, 금빛이 번들거리는 목걸이의 중앙엔 보랏빛 보석이 박혀있었다. .

음울한 보랏빛을 토해내는 보석엔 체체파리 클랜 특유의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맨입으로 부탁하긴 좀 그렇잖아요? 약소하긴 하지만. 보상이라고 생각하세요.”

서글프게 웃은 강다희는 ‘약소한’ 보상이라 겸양을 떨었지만.

그녀가 제시한 보상은 절대 ‘약소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니. 이거 절대 약소한 물건이 아닌 것 같은데?

무엇보다, 나는 그녀가 건네준 목걸이의 정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체체파리 클랜의 교주를 상징하는 징표와도 같은 물건이자,

체체파리 클랜에서 비밀리에 관리 중인 고등급 게이트에 출입할 수 있는 열쇠였지.

이걸 지금 내게 보상이랍시고 쥐여주겠다고?

“하. 확실히 교주라서 그런지, 꾀가 보통이 아니군. 내가 그따위 알량한 잔꾀에 속아 넘어 갈 것 같나?”

다른 단체에서 흔히 그렇듯.

체체파리 클랜에서 비밀리에 관리 중인 고등급 게이트는 철통 같은 보안을 자랑했다.

고등급 게이트를 독차지하겠답시고, 웃으면서 찾아갔다간.

아마 그곳을 경비하고 있는 체체파리 클랜의 정예 요원들과 짜릿한 데이트를 즐겨야 할걸?

“내가 보상에 눈이 멀어 그쪽의 정예 요원들이 대기하는 곳에 생각 없이 기어들어갈 줄 알았나 보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알겠지만, 걱정 마세요. 그곳엔 이젠 아무도 없으니까…. 그곳을 관리하던 인원들은 호위팀 소속이었거든요. 모두…. 김준영 그 배교자 놈에게 죽임을 당했죠.”

다시 한 번 원한이 치밀어 올라서일까?

자신을 배신한 배교자의 이름을 언급한 순간, 그녀 낯빛이 다시금 창백해졌다.

콰드득 깨문 그녀의 창백한 입술에선 새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원하신다면, 그분의 날갯짓에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제 마지막 부탁만 들어주신다면, 아무런 뒤탈이 없을 거예요.”

입술을 깨물어, 격해진 감정을 수습한 강다희는 내게 거래를 제안해왔다.

“부탁이라더니, 이젠 숫제 거래로군 그래. 어디 한번 들어나 보지.”

“그 징표로 출입할 수 있는 게이트의 위치와 그곳의 잠금장치를 해금하는 암호를 알려드릴 테니. 부디…. 그 배교자 김준영을 ‘처리’해주세요.”

예상했던 대로, 강다희의 마지막 부탁은 바로, 배교자 김준영을 ‘처리’해달라는 것이었다.

마족과 손잡은 김준영을 살려둘 마음이 애초부터 없었던 나로서는 손해 볼 것조차 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흔쾌히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래, 그거 괜찮군. 어차피 놈을 살려둘 마음은 없었으니 말이야.”

강다희의 제안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곤 그녀는 반쯤 달관한 목소리로 게이트의 위치와 그곳의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암호를 내게 알려주었다.

“논산, 인천, 그리고 부안이라…. 곳곳에 마수를 뻗쳐두셨군그래.”

“네…. 이제 거래는 다 끝났네요.”

강다희가 알려준 체체파리 교단 소속의 ‘고등급’ 게이트는 총 세 곳이었다.

말을 모조리 끝마친 그녀는 순순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얌전히 무릎을 꿇고 자신의 두 손을 모은 채, 두 눈을 감았다.

-쪼르륵

하지만 강다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서늘한 창날이 아니었다.

나는 남아있던 포션을 모두 털어, 마치 세례를 내리듯 그녀의 머리 위에 포션을 쏟아 부었다.

포션의 마력이 그녀의 몸을 휘감자, 그녀의 몸에 가득했던 상처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무슨 의미죠? 이건? 값싼 동정심인가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치유된 자신의 몸을 내려보던 강다희는 이내 표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적, 그것도 이교도에게 목숨을 동정받았다는 사실이 못내 수치스러운 듯.

그녀의 얼굴엔 치욕스러운 굴욕감이 가득했다.

“동정? 내가 그쪽을 동정해줄 이유가 있나?”

당연히 내가 강다희의 목숨을 빼앗지 않은 이유는 싸구려 동정 때문이 아니었다.

한때 체체파리 클랜을 이끌었던 교주이기에,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정보는 어마어마한 값어치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우드득!

“…!”

순식간에 강다희의 목을 졸라, 그녀를 기절시킨 뒤.

나는 품속에서 밧줄을 꺼내, 의식을 잃어버린 강다희를 밧줄로 꽁꽁 묶었다.

“착각하지 마셔. 아직 그쪽이 쓸모가 많아서 살려주는 거니까.”

*****

새벽을 처연하게 밝히던 달빛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헤치고 하늘에 둥실 떠오른 태양이 시린 빛을 발하자, 아침이 찾아왔다.

-째잭. 짹짹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쓰레기장엔.

강마병들의 괴성 대신, 이름 모를 산새의 새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미 무력화된 교주에게 인력을 낭비하는 것보단, 도주한 이를 추적하는 것을 택한 모양인지.

쓰레기장에 가득했던 강마병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좋아…. 아무도 없는 모양이야.”

잠시 동태를 살핀 나는, 포획한 강다희를 전리품처럼 들쳐 메고 사무실로 복귀하였다.

“홋호! 프론트 더블 바이셉스!”

…뭐여 이건 또.

신지현의 사무실로 복귀한 순간, 내 시야에 해괴한 풍경이 들어왔다.

어째선지 아침 햇빛이 찬란하게 내리쬐는 사무실의 창가에선,

굵은 팔뚝과 새하얀 이를 드러낸 김혜옥이 자신의 우람한 전면 이두근을 양껏 자랑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좋아요! 혜옥 씨! 다음엔 이 포즈로 해보자구요!”

“넵! 매니저님! 프론트 랫 스프리드!”

-찰칵!

차돌같이 튼실한 근육을 자랑하며,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김혜옥도 김혜옥이지만.

옆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신지현 역시,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어쩐지 들뜬 표정이 신지현은 김혜옥에게 자꾸 괴이쩍은 포즈를 요구하며, 그녀의 우람한 근육을 촬영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아침부터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크흠. 매니저님?”

아침 댓바람부터 눈 앞에 펼쳐진 땀내 가득한 풍경에, 순간적으로 의식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간신히 고개를 휘휘 휘둘러 서서히 놓이던 정신줄을 붙잡은 나는 헛기침과 함께 신지현의 주의를 내 쪽으로 돌렸다.

“어머나? 이게 누구실까요? 설마. 어제 말씀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셨던 우리 헌터님?”

말도 없이 사라지긴요. 댁이 보드카 원샷하고 뻗으신 건데.

아무래도 신지현을 사무실에 버려둔 채, 말없이 사교도 지부에 찾아간 탓인지.

내 부름에 답하는 신지현의 목소리는 비꼼과 불만이 가득 차 있었다.

흘깃 보이는 그녀의 입술 또한, 부루퉁하게 툭 튀어나온 것이 보통 삐진 게 아닌 듯했다.

“급한 일이에요. 지금 장난칠 시간 없습니다.”

“…네?”

내 입에서 튀어나온 ‘급한 일’이라는 말에 신지현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얼굴 가득 의문부호를 띄운 채, 고개를 돌리던 그녀의 낯빛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허, 헌터님? 그, 그 사람은 도대체 뭐, 뭔가요? 이, 이젠 납치까지?”

갈 곳 없이 바르르 떨리는 신지현의 두 눈은 바닥에 널브러진 강다희에게 고정되어있었다.

입에 재갈이 물린 채, 꽁꽁 묶여있는 강다희의 모습에 신지현의 눈빛이 불안하게 떨렸다.

“납치라면 납치겠네요. 이 사람. 체체파리 클랜의 교주입니다.”

“네에엣? 뭐라구요?! 체, 체체파리 클랜이라면 그 사교도…!”

내게서 강다희의 정체를 들은 신지현의 입이 대번에 떡하니 벌어졌다.

의문과 불안이 가득했던 얼굴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점점 허옇게 질려갔다.

번데기처럼 꽁꽁 묶인 강다희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지진이라도 난 듯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매니저님과 긴히 할 말이 있으니까. 혜옥이는 잠시 나가 주지 않겠니?”

“싸부님의 뜻대로라면…. 홋호!”

-쨍그랑!

신지현과의 대화에 앞서, 김혜옥에게 잠시 축객령을 내리자.

그녀는 특유의 묘한 기합과 함께 창문을 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면…. 그렇게 된 겁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김혜옥의 기합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하자.

나는 강다희를 멍하니 바라보는 신지현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나마 설명했다.

내 설명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그녀의 얼굴빛이 실시간으로 새하얗게 탈색되기 시작했다.

“마족 측이 사교도들을 습격했다니요? 미, 믿을 수가 없네요.”

“예,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놈들이 사교도들이 섬겼던 성좌의 힘을 사용하기까지 한다더군요.”

이어진 설명에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손톱을 툭툭 물어뜯던 신지현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어찌나 안색이 허옇게 질렸는지, 아침 햇살 아래 창백하게 빛나는 신지현의 얼굴색은 이젠 거의 잘 구워진 백자 도자기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서, 성좌의 힘을 사용한다구요?!”

“예, 자세한 건 매니저 님께서, 이 체체파리 클랜의 교주를 심문해서 알아봐 주세요. 많은 걸 알고 있으니 도움이 될 겁니다.”

강다희를 심문해, 정보를 캐내는 골치 아픈 일은 나보단 신지현이 더 제격이었다.

나답지 않게, 진중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강다희를 ‘심문’해 달라고 부탁하자.

신지현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무겁게 끄덕였다.

“예, 말씀하신 대로 심문해두도록 할게요. 그럼 헌터님께서는….”

“그녀와 ‘거래’를 하기로 했으니. 그것에 대한 보상을 좀 찾으려 가볼까 해요.”

강다희에게서 받아든 ‘거래’를 언급한 나는 슬그머니 입술을 뒤틀었다.

남이섬 게이트에서 나온 이래, 내 레벨은 계속 정체된 상태였다.

새로운 힘을 손에 넣은 마족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레벨 업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강다희가 제시한 ‘보상’이 함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체체파리 클랜에서 관리하던 ‘고위급’ 게이트라면 도박해볼 만한 가치가 있겠지.

그녀가 알려준 세 곳의 게이트 중. 두 곳만 제대로 털어먹어도 내 성장엔 큰 힘이 되어줄 테니까.

“알겠어요. 하지만 괜찮으시겠어요?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르는데…”

“요즘 사정이 사정이니만큼. 이 방법 아니면 레벨 업하기도 힘들잖습니까.”

태백과 오행 사이의 전면전이 시작된 이래, 모든 게이트가 ‘접근 금지’ 상태가 되어버린 만큼.

어차피 현재의 내가 레벨업을 할 방법은, 이 방법밖에 없었다.

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신지현에게 히죽 미소를 보냈다.

“혹시 압니까? 체체파리 클랜에서 ‘비밀리에’ 관리하던 곳이니만큼 뭔가 엄청난 것이 숨어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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