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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124화 (124/309)

제124화

《주인님께서 나를 거둬 주셨는데. 이상…하군.》

신음과도 같은 중얼거림을 끝으로 장현태의 목숨이 끊어졌다.

놈의 죽음을 끝으로 쓰레기장에 가득했던 녹색 얼음들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녹색 광채가 번쩍이던 장현태의 눈에서 생명의 빛이 조금씩 사라져 갔다.

“어찌어찌 이기기는 했지만, 영 개운치는 않네.”

장현태의 시신을 내려보며, 나는 입맛을 쓰게 다셨다.

만누하를 쓰러뜨린 방법을 응용하여 놈을 어떻게든 쓰러뜨리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내가 장현태를 이긴 것은 천운에 가까웠다.

새로운 힘을 손에 넣은 탓인지, 놈은 자신의 힘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였고.

나를 일종의 유희거리로 판단했는지. 놈의 태도 또한, 경솔해도 너무 경솔했으니까.

장현태가 방심해준 덕분에 놈과의 전투에서야, 가까스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만.

상급마족 만누하의 권능을 그대로 사용했던 장현태의 모습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내가 알기론 자신을 추종하는 추종자에게 자신이 지닌 권능을 그대로 부여해줄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성좌 뿐이었다.

“…잠, 잠깐만.”

회귀 전과는 아예 다른 권능을 선보인 장현태의 시신을 조사하기 위해 접근하려던 찰나.

어디선가 숨이 막 넘어갈 듯 헉헉거리는 신음이 들려왔다.

“살아있었나?”

장현태의 시신으로부터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니.

전투의 여파로 무너져 내린 쓰레기 더미에 깔린 강다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장현태에게 계속해서 고문을 당한 탓인지, 그녀는 말 그대로 ‘숨만 붙어있는’ 상태였다.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었길래, 저렇게까지 심한 짓을 했는지 모르겠군.

“으으윽…. 쿨룩! 그래요. 앞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요.”

신음을 내뱉으며 간신히 대답한 강다희의 입에선 연신 시커멓게 죽은 핏물이 올라왔다.

그렇지 않아도 장현태에게 모진 고문을 당한 데다, 전투의 여파에 휩쓸린 탓인지.

그녀의 상태는 척 보기에도 위중해 보였다.

“당신은 누구…? 빌어먹을! 눈이 보이지 않네요. 쿨룩!”

게다가 쓰레기장 전체가 뒤흔들렸던 전투의 여파는 강다희의 시력을 앗아간 상태였다.

눈언저리에 큰 부상을 입은 강다희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욕설을 중얼거렸다.

연신 기침을 해대는 그녀의 입가엔 지독한 회한이 담긴 쓴웃음이 비릿하게 걸려있었다.

“그분의 가르침을 따른 대가가, 더러운 쓰레기장에서의 비참한 죽음이라니….”

“내가 누군지는 굳이 알 것 없고. 나 역시 그쪽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는 굳이 궁금하지 않아.”

강다희는 씁쓸하게 웃으며 회한에 가득 찬 목소리로 지나간 삶의 응어리를 토해내려고 했다.

그렇게 그녀가 유언 삼아, 내게 자신의 인생사를 쏟아내려고 들자,

사정을 별로 듣고 싶었지 않았던 나는 냉담한 목소리로 강다희의 말을 중간에 툭 끊었다.

“그렇죠. 쿨룩! 쿨룩! 어차피 남의 일인데, 제게 닥친 비극 따윈 당신에겐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넋두리에 불과하겠죠.”

계속해서 피 섞인 기침을 토해내는 강다희의 얼굴엔 죽음의 그림자가 점점 더 짙어졌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음을 직감한 나는,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곤 화안금정을 발동시킨 채, 강다희에게 체체파리 클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래서. 너희 클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걸 제가 말할 것 같나요?”

무심하게 용건만을 묻는 내 질문이 야속해서일까?

순간, 강다희는 내 질문에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입꼬리를 뒤틀었지만….

“…아니죠. 당신이 그 가증스러운 배교자 놈을 처단해줬으니. 그 정도는 대답해줘도 될지도요.”

이내 강다희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곧이어 그녀는 지독히도 허무한 감정이 깃든 목소리로 내 질문에 대해 답변하기 시작했다.

“간단해요. 세상을 정화하겠다는 대업보단 자신의 이득을 위해, 교를 배신한 배교자 두 명과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이 외부 세력과 결탁해서 내부에서부터 쿠데타를 일으켰어요.”

…대업이라.

사교도들이 섬기는 성좌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인류의 절멸을 통한 세상의 정화였다.

그중에서도 체체파리 클랜이 말하는 ‘대업’이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평등한 죽음을 내리는 끔찍한 행위를 뜻했다.

역병과 부패로 세상을 씻어내려야, 이 썩어빠진 세상이 정화된다나 뭐라나.

솔직히,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놈이라면 그런 정신 나간 사상에 동조할 리가 없잖아.

“사교도의 광신자들이 고작 자신의 이득을 위해, 외부 세력과 결탁했다는 말인가?”

“부끄럽지만 그렇게 되었네요. 아니면…. 그분께서 ‘낙오자’라고 명명한, 불온하기 짝이 없는 족속들의 꼬임에 넘어갔을지도요.”

강다희의 입에선 대충 예상했던 답변이 흘러나왔다.

짐작했던 대로 체체파리 클랜을 배신한 자들이 손을 잡은 세력은 ‘낙오자’ 즉, 마족들이었다.

…그런데. 마족들이 체체파리 클랜을 공격할 만한 이유가 있는 건가?

“그 낙오자라는 족속들이 너희 교단을 노린 이유가 뭔지는 알고 있나?”

“…후후후. 호기심이 보통이 아닌 분이시네요. 쿨룩! 쿨룩!”

순간, 강다희의 입에서 찐득하게 굳은 핏덩이가 왈칵 토해졌다.

호흡이 가빠진 모양인지, 계속해서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얼굴에서 점점 핏기가 사라져 갔다.

그렇지 않아도 핏기가 없이 허옇게 창백했던 얼굴이 점점 푸르죽죽하게 변해갔다.

-퐁!

강다희의 목숨을 굳이 살려주고 싶진 않았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에게서 캐내야 하는 정보가 아직 남아있었다.

품속을 뒤져, 조금 전에 구입한 포션을 꺼내 든 나는 그녀의 얼굴에 포션을 주르륵 흘렸다.

“케흑! 커흑! 하아…. 포션인가요? 다른 이교도 신의 권능으로 목숨을 붙잡고 싶진 않았는데.”

제법 비싼 값을 주고 구입했던 포인트 숍제 포션답게 효과는 탁월했다.

그리 많지 않은 양을 부었음에도, 강다희의 얼굴에 가득했던 상처가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각혈과 마른기침을 동반하며 쉭쉭 거리던 숨소리가 금세 안정되었다.

“다시 한 번 묻지, 놈들에게 너희 교단이 노려진 이유를 혹시 알고 있나?”

“글쎄요. 배교자 한 명을 치워준 값치곤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 허윽!”

얼굴에 가득했던 상처가 사라지자, 강다희의 시력 역시 회복되었다.

내 질문에 싸늘한 비웃음으로 답하려던 그녀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한 그 순간!

“어? 어? 어으어.”

시종일관 표독스러운 빛을 띠고 있던 강다희의 눈이 똥그랗게 커졌다.

서늘한 비웃음을 머금었던 그녀의 입가가 바보처럼 헤 벌어지며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시체의 그것과도 같았던 창백한 얼굴이 점점 복숭앗빛으로 불그스름하게 물들어갔다.

“핫? 다, 당신은?! 설용호! 어째서 당신이 이곳에 나타난 거죠?”

멍청한 표정으로 한참 내 얼굴을 감상하던 강다희는 뒤늦게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눈을 다친 상태였다지만. 보아하니, 그녀는 그동안 내가 누군지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게 중요한가?”

“으. 으으…. 그분께서 내려주신 계시에선 이, 이렇게까지 잘생기진 않았는데….”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강다희는 대단히 당황한 표정으로 횡설수설해대기 시작했다.

사교도라곤 하나, 거대 단체를 이끌었던 인물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나사 빠진 모습이었다.

“….”

강다희가 보여준 반응은 내 얼굴을 바라본 이들이 질리도록 보여줬던 반응이었다.

우습게도 그녀 역시, 내 잘생긴 외모에 피폭되어 어찌할 줄 몰라하는 것 같았다.

…뭐여. 그 파리 놈의 그릇이니 뭐니 하면서 나를 생포해오라 한 것이 댁 아니었나?

그따위 지시를 내린 장본인이 인제 와서 내 얼굴에 반해버렸다니….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누군가 내게 호감을 표하는 것은 흐뭇한 일이긴 하지만.

체체파리 교단을 이끌며, 수많은 무고한 이를 학살해온 강다희가 내게 그런 호감을 표한다는 사실에 그다지 달가운 기분이 들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몸 전체에 파리가 기어가는 듯, 혐오스럽고 불쾌한 기분이었다.

“…이봐.”

강다희가 계속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나는 서늘한 목소리로 그녀의 주의를 환기했다.

그리곤 위협하듯 외골격을 발동시키며, 으스스한 살기를 일으켰다.

“꺄악! 너무 잘생….”

…아, 맞다. 외골격의 부연효과를 깜빡했군.

강다희의 주의를 환기하고자, 외골겨을 두른 것이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 버렸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외골격 『미의 화신』의 부연 효과로 인해, 외모가 더욱더 잘생겨지자.

그녀는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고 아이돌 가수를 추종하는 열성 팬처럼 비명을 질렀다.

“헷! 헛! 으흠! 으흐흠! 죄송해요. 계시로 접했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생기셔서, 그만 다, 당황해버렸네요.”

강다희의 반응에 슬그머니 외골격을 해제하자.

제정신이 돌아온 모양인지, 그녀는 멋쩍은 표정으로 사과하며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얼굴에선 조금 전 보여줬던 경계 어린 태도는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래서 그쪽이 노려진 이유가 뭔지 알고 있나?”

“으, 으으으…. 예. 원하신다면 대답해 드릴게요.”

내 외모에 호감을 느껴서일까?

길고양이처럼 표독스러웠던 강다희의 목소리는 잘 길들여진 집고양이처럼 얌전해져 있었다.

신음을 삼킨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이내 순순히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놈들은 저희 교단의 신물을 노렸어요.”

“신물?”

“그분께서 당신의 권능을 담아, 추종자들에게 하사하신 세 개의 신물이야말로, 그분과 연결된 예속의 징표이니까요.”

신물이 성좌와 연결된 예속의 징표라고?

처음 듣는 소리였다.

회귀 전에만 해도, 사교도들의 ‘신물’이란 그저, 굉장한 성능을 지닌 전리품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박광수에게서 『부패와 타락의 오브』를 추출해 냈을 때도, 나는 별 다른 생각 없이.

그저, 땡잡았다는 마음가짐으로 놈의 두개골에서 신물을 뽑아냈었다.

그런데 그 『부패와 타락의 오브』가 파리놈과 연결된 물건이라니….

음험하기 짝이 없는 파리놈의 모습을 떠올리자. 께름칙한 기분이 엄습해왔다.

서늘한 한기와 함께,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가증스러운 배교자 놈들은 자신들의 몸속에 박아넣은 신물을 스스로 뽑아내어 새로운 주인에게 바쳤죠.”

…그렇다면 장현태의 몸속엔 이미 신물이 없는 상태라는 건가?

강다희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장현태의 시신을 흘끔 바라보았다.

장현태는 체체파리 클랜의 세 가지 신물 중 하나인 『원한과 증오의 전쟁 검』의 소유자였다.

내 기억에 의하면, 놈은 하사받은 신물을 자신의 오른팔에 이식해 두었지만.

지금 내 앞에 죽어 나자빠진 장현태의 오른팔은 짓이겨진 채, 공허하게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배교자 놈들이 신물을 바친 이후로 저희 교단에선 그분의 성스러운 날갯짓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죠.”

“과연. 그쪽이 그렇게 무력하게 당하기만 했던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나?”

원래대로라면 사교도 단체를 이끌었던 교주답게 강다희는 어마어마한 수준의 강자였다.

하지만 배교자들의 배신과 마족들의 개입으로 인해, 자신이 섬기는 성좌와의 연결이 끊어져.

그녀는 자신이 지닌 모든 힘과 권능을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렇죠…. 저 또한 그분의 날갯짓 소리를 듣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떨군 강다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어째선지 낙오자 놈들이 그분의 신성한 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거에요.”

강다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내가 예상하지도 못했던 내용을 품고 있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머릿속에 벼락이 콰르릉 내려치는 느낌이었다.

충격으로 인해, 순간적으로 이성이 허옇게 백열 되며 의식이 멀어질 뻔했다.

“다, 다시 말해봐. 지금 뭐라고 한거지?”

“그분의 뜻을 거스른 배교자들, 그리고 놈들을 거둬들인 ‘낙오자’ 놈들이 그분의 신성한 권능인 부패와 타락의 힘을 사용하고 있어요.”

혹시나 잘못 들었나 싶어, 강다희에게 다시 물어보았지만.

그녀의 답변은 처음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정말로. 마족들이 성좌의 힘을 사용한다고?

성좌들에게 ‘낙오자’ 소리를 들으며 멸시를 받았던 마족들이 성좌의 힘을 빼앗다니.

회귀 전에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었다.

“자세히 이야기해봐. 놈들이 어째서, 어떻게 성좌의 힘을 다루는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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