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크으읏.”
어찌나 살벌하게 얻어맞았는지, 강다희의 한쪽 볼은 보기 흉하게 부어오른 상태였지만.
두 명의 배신자를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은 잔뜩 독이 올라, 여전히 표독스럽기만 했다.
장현태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멱살이 붙잡힌 강다희는 원한에 가득 찬 눈으로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 파리 새끼의 은총을 받았다며 거들먹거리던 네년도 이젠 흔해빠진 일반인 나부랭이에 불과하군. 그렇지 않나? ‘교주’ 나으리?”
“그, 그분의 은총이 사라졌다고 해도. 이 몸이 너희 배교자 놈들 따위에게 당할 것 같으냐?”
장현태는 강다희의 원한서린 눈빛에 입꼬리를 비죽 뒤틀었다.
그의 입에서 이죽거리는 비웃음이 튀어나오자, 강다희는 몸부림을 치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보랏빛으로 희미하게 물든 손이 연신 장현태의 손을 할퀴었다.
“흐흐흐. 표독스럽기는. 이봐. 주인님께서 어떻게든 ‘살려서’ 데려오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지?”
“그렇죠. 어찌되었건 목숨만 붙어있으면 그만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녀를 어떤 상태로 데려올지는 저희 재량 아니겠습니까.”
“그렇군. 새로운 주인님께선 역시, 아주 관대하시다니까. 그 파리 새끼랑은 다르게 말이지.”
-꽈드드득!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린 장현태는 강다희의 멱살을 쥔 손의 반대쪽 손으로 그녀의 가느다란 다리를 우직 비틀었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강다희의 양다리가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였다.
“…!”
양쪽 다리가 엉망으로 짓이겨졌음에도 불구하고, 강다희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더욱 날이 선 눈으로 원한을 가득 담아 장현태를 표독스럽게 노려보았다.
“크흐흐. 비명 따윈 지르지 않겠다는 건가? 좋은 태도야. 이렇게 고고하게 나와야, 이쪽도 괴롭히는 맛이 있지.”
…이건 또 무슨 갑작스러운 내분인지 모르겠군.
대충 돌아가는 상황으로 미뤄보건대, 박광수와 다른 사교도들이 부르짖던 ‘배교자’들의 정체가 바로 저 두 명을 뜻하는 것 같았다.
체체파리 클랜이 내분으로 붕괴되었다라….
놈들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생각을 좀 해봐야겠는걸.
-꾸드드득!
“흐흐흐. 일반인으로 전락한 몸으로 어디까지 버티는지 한번 실험이나 해보자고 우리 교주님.”
화안금정을 발동시킨 나는 장현태가 강다희를 고문하는 장면을 잠시 바라보았다.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모양인지, 장현태는 일말의 자비조차 보이지 않은채로 자신이 전에 섬겼던 교주의 몸뚱이를 무자비하게 짓이기고 있었다.
지금의 내 수준으론 완전체 사도 한 명까진 어떻게 해보겠지만.
아무래도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좀…. 무리겠지?
“흐음…. 교주를 처리하는 쪽은 심문관님. 아니, 장 실장님께 맡기겠습니다. 저는 박광수에게서 신물을 회수하러 가보지요.”
“크흐흐. 실장이라는 칭호는 언제 들어도 낯 간지럽군. 헌데…. 교주와 항상 붙어 다니던 그놈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건지 모르겠군.”
“박광수가 마지막 신물을 지녔으니, 우리의 ‘전’ 교주님께서 그것이라도 보호하라고 지시를 내렸겠죠. 저는 놈의 흔적을 찾아 이만 떠나보겠습니다.”
그렇게 두 명의 사도를 상대로 모의 전투를 시행해보려던 찰나.
기분 나쁜 눈웃음을 지으며 고문 현장을 지켜보던 김준영이 자리를 떠났다.
아무래도 놈은 박광수가 이미 내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듯 했다.
…타이밍 한번 죽이는군.
김준영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살짝 마른침을 삼킨 나는 창을 뽑아들곤, 슬금슬금 발소리를 죽여 장현태의 뒤편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장현태의 손에 처참한 몰골이 되어버린 강다희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표독스럽게 빛나던 그녀의 눈이 의문을 품고 커다랗게 변했다.
“…크흐흐. 역시 생각했던 대로 교주를 고문하니, 바로 나타나시는군 그래.”
…뭐?
강다희의 눈빛에서 이상을 감지하자, 장현태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와류가 들끓기 시작했다.
서서히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의 눈빛엔 소름끼치는 녹색 안광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크하하하! 교주의 명보다는 사랑을 택한 거냐? 박광수! 오늘이 네 제삿날….”
광소를 터뜨린 장현태는 녹색 광기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잘생긴 내 얼굴에 그의 시선이 닿은 순간, 광기는 의문으로 변했다.
“박광수가 갑자기 그렇게 잘생겨 졌을 리는 없고, 네놈은 또 뭐냐? 어디서 본 것도 같기도 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단 말이지.”
내가 박광수가 아님을 확인한 장현태의 얼굴엔 맥이 탁 풀린 듯, 시큰둥한 표정이 떠올랐다.
놈은 자신의 손아귀에 붙잡혀 있었던 강다희를 옆으로 집어던지더니, 양쪽 주먹을 까드득 움켜쥐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이래서야 기습은 물 건너가 버렸군.
“….”
이미 기습이 들킨 마당이니, 더 이상 기운을 억누를 필요가 없어졌다.
어둠달을 비스듬하게 세워 들어 자세를 잡은 나는, 몸 안의 내력을 검은 심장에 밀어 넣었다.
내력이 주입된 검은 심장이 세차게 맥동하며, 내 몸 곳곳에 거대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촤르륵 비늘 돋아나는 소리와 함께, 금빛으로 번쩍이는 외골격이 내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흐응. 외골격이라…. 보통 놈은 아니겠군.”
건들건들하게 자세를 잡은 장현태는 솥뚜껑 같은 두 주먹을 맞부딪혔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주먹이 충돌한 바로 그 순간!
폭음이 터지면서 장현태의 몸에 녹색 외골격이 촤르륵 돋아났다.
놈의 몸에서 돋아난 외골격의 형상은 마치 거대한 거북이의 등껍질 같은 모양이었다.
“…?”
…뭐지? 장현태의 외골격이 원래 저렇게 생겼던가?
회귀 전의 기억에 의하면 장현태 또한 체체파리 클랜 소속이었기에, 다른 클랜원들처럼 파리의 갑각을 닮은 보랏빛 외골격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몸 위에 덧씌워진 외골격의 모양은 내가 기억하는 것과 전혀 다른 모양을 띄고 있었다.
“크하하하! 좋다! 네놈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 주인님께서 내게 내려주신 새로운 힘을 시험할 대상이면 누구든지 좋지!”
-후와아앙! 후와아앙!
장현태는 희열에 찬 목소리로 영문 모를 소리를 지껄이며, 주먹을 휘둘렀다.
녹색 외골격에 둘러싸인 거대한 주먹이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내게 쇄도해왔다.
거북이와도 같은 생김새였지만, 놈의 움직임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몹시 재빨랐다.
-콰앙! 쾅!
장현태의 우악스러운 주먹이 바닥을 가격하자.
마치 커다란 운석이 떨어진 듯, 폭음과 함께 바닥이 폭발했다.
놈의 주먹에 실린 녹색 마력에 오염된 흙이 시커멓게 썩어 들어갔다.
“흐하하하! 역시! 엄청난 힘이다! 주인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어!”
화안금정이 읽어낸 장현태의 공격 궤도는 기상천외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에 주먹이 휘둘러지는 속도마저 상식을 초월한 수준이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내력을 다리에 집중해 아슬아슬하게 놈의 주먹을 피하는 것이 전부였다.
-푸스스슥.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놈이 녹색 빛에 휘감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독기가 퍼져나갔다.
독기에 노출된 호흡기가 매콤하게 따끔거렸다. 독기에 맞닿은 외골격이 조금씩 갉아 먹혔다.
“흐하하하! 좋구나! 그럼 이건 어떠냐!”
운룡보를 부지런히 운용하며, 장현태의 빈틈을 노리려던 그 순간!
싸늘한 살기가 느껴진다. 싶더니, 놈의 입이 쩌억 벌어지며 시커먼 무언가가 쏟아져 나왔다.
-왜애애앵!
장현태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바로, 엄청난 숫자의 곤충 떼였다.
마치 말벌의 그것과 닮은 형태의 곤충 떼는 그의 입에서 풀려나옴과 동시에 내게 달려들었다.
-카가각! 카가각!
장현태의 입에서 뿜어진 곤충 떼는 내 외골격에 들러붙어, 탐욕스럽게 갉아대기 시작했다.
독기와 곤충 떼에 수난을 당한 외골격의 색이 조금씩 옅어져갔다.
“크으으읏!”
침음성을 삼킨 나는 외골격 위에 장식용 외골격을 추가로 두른 뒤.
장식용 외골격의 가슴 부위에 내력을 주입해, 약식 암룡 출동을 발동시켰다.
-번쩌-억!
약식이라곤 하나, 가슴 부위를 통째로 희생한 만큼 그 위력은 절륜했다.
내력의 폭풍에 노출된 벌레 떼가 파사삭 부서졌다. 시커먼 재가 요란하게 흩날렸다.
“흐흐흐! 이 고통! 이 아픔! 꽤나 신기한 기술을 쓰는군!”
약식 암룡 출동에 고스란히 노출된 장현태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광소를 터뜨린 장현태의 목소리엔 피에 굶주린 야수와도 같은 광기가 짙게 풍겨 나오고 있었다.
“어디 제대로 놀아보자꾸나…! 크아악!”
-콰앙! 콰아앙! 콰아앙!
장현태는 광기에 찬 목소리로 호기롭게 외쳤지만.
애석하게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미리 준비해뒀던 세 발의 약식 암룡 출동이었다.
오른손 손가락의 외골격을 세 개나 희생한 약식 암룡 출동이 놈의 얼굴에서 연달아 폭발했다.
-쩌저적!
장현태의 얼굴에 둘러진 외골격이 쪼개지며, 선혈이 사방에 튀었다.
태산처럼 버티고 서 있던 놈의 신형이 힘을 잃고, 바닥에 풀썩 한쪽 무릎을 꿇었다.
새로운 주인님인가 뭔가에게 힘을 받았다고 자만하기는, 약점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만.
슬쩍 입고리를 뒤튼 나는 마무리를 하기 위해 무릎을 꿇은 장현태에게 접근했다.
그렇게 어둠달에 내력을 주입해, 마무리를 하려던 찰나!
-투둑. 투두두둑!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사방에 흩뿌려진 시뻘건 피가 녹색으로 물들며 ‘얼어붙기’ 시작했다.
《크흐흐흐. 》
광기 어린 웃음소리와 함께 엄청난 한기가 사방에 쫙 퍼졌다.
녹색으로 물든 얼음이 장현태의 몸 곳곳에서 꽝꽝 얼어붙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은 놈의 신형이 순식간에 거대한 녹색 얼음으로 뒤덮였다.
-투둑! 투두둑!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겠다만, 생각보다는 강한 놈이로군! 좋다 아주 만족스러워! 주인님께서 내려주신 힘을 시험해보긴 딱 좋은 실험대상이야!》
장현태의 몸에 얼어붙었던 녹색 얼음들이 후두둑 떨어져나가자.
녹색 얼음 아래에서 기묘한 형태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가면이라도 쓴 것처럼 눈을 제외한 이목구비가 없는 매끈한 얼굴!
상고머리였던 장현태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쑥쑥 자라나, 허리까지 내려오는 장발이 되었다.
몸에 두르고 있던 갑옷이 폭발하듯 터져나가며, 기괴한 문신이 새겨진 호리호리한 옥빛 상반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두두둑!
《크하하하! 주인님께서 내려주신 힘이 내 몸에 흐른다! 좋구나! 아주 좋아!》
장현태가 사도로 변한 모습은 오래전에 몇 번 본 적이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형태는 아니었다.
-콰앙!
온몸을 덮쳐오는 한기와 독기의 폭풍에 나는 발에 내력을 집중해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내력이 집중된 발이 바닥을 힘껏 박차자, 흙먼지가 요란하게 사방으로 비산했다.
《크으읏! 한참 재밌어지려는 판국에 도망이라니! 이 쥐새끼 같은 놈!》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 몸을 숨긴 나는 전력으로 발을 놀려 장현태의 공격 반경에서 벗어났다.
그리곤 쓰레기장에 가득한 쓰레기 더미 뒤에 몸을 숨겨, 놈의 모습을 찬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네놈이 내게서 도망갈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주인님의 은총이 내게 내렸을진대. 그분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너는 내 눈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니!》
-투확!
“···?”
쓰레기 더미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으려던 찰나, 녹색 광선이 왼손 외골격에 적중되었다.
분명히 쓰레기 더미 사이에 숨어있었지만, 장현태는 내가 숨어있는 장소를 정확히 짚어 공격했다.
“칫!”
순식간에 파사삭 부서져 내린 외골격에 기함한 나는, 빠르게 몸을 굴려 다른 쓰레기 더미 뒤로 몸을 숨겼다.
대체 뭐지? 놈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나?
-쩌저적!
의문도 잠시, 관통된 왼손에서 화끈한 통증이 찾아오나 싶더니,
곧이어 불에 델 듯한 고통과 함께 상처 부위가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다.
“크으읏 젠장!”
욕지기를 내뱉으며 왼손바닥에 돋아난 얼음을 도려내려는 찰나.
《흐흐흐. 거기 있었구나!》
-투확!
광기어린 웃음소리와 함께 장현태의 공격이 또다시 날아들었다.
“쯧!”
공격하기 전 소리를 질러준 덕에, 이번엔 가까스로 공격을 회피할 수 있었다.
나는 내 머리 위에 날아든 녹색 광선을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피해냈다.
-탓!
다리에 내력을 집중해, 다시 무너진 쓰레기 더미 잔해 사이로 몸을 숨겼다.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렇게 원거리에서 적을 감지해 요격하는 능력은 장현태의 능력이 아니었다.
놈이 갖고 있었던 능력은 분명히 모든 것을 썩게 만드는 부패에 관련된 능력이었다.
장거리에서 적의 위치를 감지하는 능력도, 녹색 얼음을 다루는 능력도 모두 생소하기 짝이 없는 능력이었다.
도대체 누굴 섬기는 거지? 얼음과 추적에 관련된 능력이라니 도대체 누구의 힘을….
장현태의 능력을 유추하며 잠시 상념에 잠긴 사이, 다시 한 번 장현태의 시선이 느껴졌다.
《쥐새끼 같은 놈! 거기구나!》
-투확!
다시 한 번 고함과 함께, 녹색 광선이 날아들었다.
장현태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내며, 내가 있던 곳을 자세히 살펴보자.
장현태의 시선이 느껴진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얼음?”
그랬다.
숨어있던 쓰레기 더미에 꽝꽝 얼어붙어 있는 녹색 얼음에서 장현태의 시선이 느껴졌다.
공격이 날아온 각도로 유추해보건대, 공격 역시 그 얼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 능력이었나.”
머릿속으로 퍼즐이 끼워 맞춰졌다.
어렴풋이 장현태의 능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장현태는 자신의 마력을 사방에 퍼뜨려, 얼어있는 녹색 얼음들을 모조리 자신의 눈이자, 무기로 만들었다.
이건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능력인데···.
“…상급 마족 만누하.”
회귀 전, 보고서에서 본 적이 있었던 공격방식이었다.
마족들 중 제법 강했던 개체였던 만누하가 써먹던 수법!
하지만 내가 보고서에서 읽었던 만누하의 권능과 장현태가 보여주는 위력은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다.
마족이 필멸자에게 자신의 권능 그 자체를 이렇게 부여해 줄 수 있다고?
그게 말이 되는….
“거기구나!”
-투확!
상념에 잠긴 사이, 장현태의 공격이 내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녹색 광선이 어깨를 뚫고 지나가자, 그 자리에 자그마한 구멍이 뻥 뚫렸다.
-쩌적 쩌저적
뻐끔 뚫린 구멍에서 녹색 얼음이 얼어붙었다.
머리를 하얗게 불태우는 듯한 고통이 머릿속을 잠식해오기 시작했다.
-콰앙!
순간, 굉음과 함께 내가 숨어있던 쓰레기 더미가 완전히 박살났다.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너머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장현태가 보였다.
《주인님의 권능이 나와 함께 하는 한, 뛰어봤자 벼룩이니라!》
장현태의 자신만만한 얼굴과 마주한 순간!
희미해지는 의식 사이로, 한 가지 계책이 번뜩 떠올랐다.
만누하를 어떻게 잡았는지, 비장한 어투로 적혀있던 보고서의 내용이 머릿속을 번개처럼 훑고 지나갔다.
그래! 그거라면···.
-콰직!
이를 꽈악 물고 창날로 얼어붙은 상처를 잘라내자,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밀려드는 고통에 하얗게 물든 시야 너머로, 여유롭게 걸어오는 장현태의 모습이 보였다.
-푸화하학
장현태가 사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혈관에 압력을 가해 놈에게 피를 분출했다.
그렇게 솟구친 피는, 놈의 얼굴에 들러붙었다가 놈이 두른 얼음 위로 꽝꽝 얼어붙었다.
극저온을 유지하던 놈의 얼음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으읏! 쓸데없는 짓을!》
새빨간 피가 얼굴을 완전히 뒤덮자 장현태는 침음성을 삼키며 움찔했다.
《잔꾀는 가상하나. 내겐 아직 주인님이 권능이 함께 하신다! 나는 아직 네놈이 똑똑히 보인다!》
그래, 아직 똑똑히 잘 보이겠지···. 하지만, 이러면 어떨까?
장현태가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하자, 나는 나를 향해 ‘거꾸로’ 약식 암룡출동을 발동시켰다.
가슴팍에 화끈하게 번쩍이는 섬광과 고통이 느껴진다. 싶더니, 이내 으슬으슬한 추위가 찾아왔다.
-푸화학!
내부에서 폭발시킨 통에 폭음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약식 암룡출동에 노출된 가슴팍이 걸레처럼 완전히 갈기갈기 찢어졌다.
펑 터져나간 파편과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끅. 끄으윽.”
이를 악물어 흐릿해지는 의식을 다잡고,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 남은 내력을 쥐어짜, 미리 구입했던 포션을 꼴깍꼴깍 삼켰다.
-쩌적, 쩌저적!
사방에 그득했던 얼음 위로 새빨간 피가 끼얹어졌다.
차가운 얼음과 만난 뜨끈한 피는 얼음의 냉기를 이기지 못하고 모두 꽝꽝 얼어붙었다.
이것으로 장현태가 자랑하는 전능한 시야도 차단되었겠지···.
또한, 얼음에 피가 뒤덮인 탓에 놈이 사방으로 퍼뜨린 마력도 회수할 수 없게 되었다.
《크으윽! 이놈이 잔재주를!》
이렇게 두 눈이 멀어버린 이상, 장현태의 거대한 몸은 그저 훌륭한 과녁에 불과헀다.
회귀 전 만누하를 잡은 공격대가 어디였더라….
그들이 희생을 통해, 이런 방식으로 만누하를 잡았다고 상세히 기록해두었으니….
이 순간만큼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해야겠군.
-콰아아앙!
《어, 어디냐! 주인님! 주인님께서 주신 힘만 있다면.》
있다면 뭐?
어느 정도 부상을 회복한 나는 어둠달에 내력을 주입해, 장현태의 몸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놈은 갑자기 찾아온 암흑에 당황했는지, 아니면 얼음에 집어넣었던 마력을 회수하지 못해 당황한 건지. 사방을 더듬으며 나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이노오옴!》
-쾅!
남은 내력을 모조리 짜내어 양손에 불어넣고, 나는 계속해서 창을 찔러갔다.
장현태의 몸을 뒤덮은 얼음에 창이 닿을 때마다 폭음이 터졌다. 굉음이 귀를 울렸다.
-쾅! 쾅! 쾅!
나는 다른 건 생각하지 않고, 집요하게 오로지 장현태의 몸을 찌르는 것에만 집중했다.
-쩌저적! 쩌적!
내력이 넘실거리는 창으로 끊임없이 장현태의 전신을 유린하자.
마침내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놈의 몸을 감싸고 있었던 녹색 얼음들이 조금씩 부서져 나가기 시작한 것!
-푸화하학!!
얼음 보호막을 부수고 내려간 창날이 장현태의 변이된 심장을 결딴냈다.
추가로 무언가 축축하고 물컹한 것이 창날에 꿰뚫린 느낌이 든 순간!
필사적으로 발악하던 장현태의 움직임이 돌연, 뚝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