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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119화 (119/309)

제119화

김혜연의 공방에서 조촐한 파티가 끝난 뒤, 나는 김혜옥을 데리고 곧장 신지현에게 향했다.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김혜옥을 태백에 정식으로 영입하는 문제 떄문이었다.

“치유사라구요?”

김혜옥의 우람한 근육과 마주한 신지현은 못들을 소리를 들었다는 듯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다.

“이번 튜토리얼 타워에서 ‘피에 굶주린 폭군’으로 명성이 자자하셨던 분의 선택이 고작 치유사따위라니….”

…혜옥이에게 그런 칭호가 붙었어? 그 살벌한 칭호는 또 누가 붙인 건데?

김혜옥이 튜토리얼 타워에서 보여줬던 무력이 인간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무래도 신지현 역시, 김혜옥의 선택을 굉장히 아까워하는 눈치였다.

아쉬운 표정으로 김혜옥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선 귀중한 인재를 잃었다는 안타까움이 뚝뚝 묻어나왔다.

“그게 말이죠. 실은….”

나는 그렇게 아까운 눈빛을 흘리는 신지현에게 김혜옥이 얻은 특성 트리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늘어놓았다.

김혜옥이 얻은 특성이 ‘통상적인’ 치유사와는 궤를 달리한다는 말에 신지현의 눈에 불신의 빛이 서렸다.

“아무리 헌터님 말씀이라고는 해도. 그런 치유 스킬이 있다는 건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정말이에요? 혜옥 씨?”

“넵! 싸부님이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닷!”

김혜옥은 그녀답지 않게 어쩐지 군기가 잔뜩 든 목소리로 신지현의 질문에 답했다.

난생처음 사회인으로서의 첫걸음을 내딛는다는 사실에 잔뜩 긴장한 모양인지, 신지현을 바라보는 김혜옥의 눈빛은 정신없이 떨리고 있었다.

“하아…. 저희 태백은 원칙적으로 치유사를 채용하진 않지만 우리 산군 나으리 얼굴을 봐서… 시험절차를 새로 만들든지 해야겠어요. 전투 능력이야 검증되셨지만, 치유 능력은 또 모르니까요.”

“네, 네? 치유사를 원래 채용하지 않는다고욧?!”

그렇지 않아도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김혜옥은 당황한 목소리로 빼액 소리를 질렀다.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에 옆에서 가만히 듣던 나 역시 눈을 크게 치켜 뜰 수밖에 없었다.

…그랬어?

생각해보니, 어쩐지 태백에선 길드 소속의 치유사를 만나본 적이 없긴 했다.

어디 길드 소속의 병원에 짱박혀있겠거니 했었는데. 아예 채용하지 않았던 것이었나?

“당연하죠. 포션 쓰면 그만인데 치유사를 뭐하러 고용해요? 전투 스킬도 없어. 레벨 올리는 방법도 이상해서 레벨 올리기도 힘들기에 본체 스펙도 약해….”

“저, 전 약하지 않아요!”

-뿌좌자작!

신지현의 계속된 독설에 흥분한 김혜옥은 벌떡 일어나 테이블을 반으로 쫘악 잡아 찢었다.

질 좋은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이 야들야들한 닭 가슴살 마냥 반으로 쭈욱 찢어졌다.

하늘하늘 흩날리는 나무 파편들과 코끝을 찌르는 톱밥 냄새에 신지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혜, 혜옥 씨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다, 다른 일반적인 치유사들이 그랬다는 소리에요. 크흠! 아무튼, 치유사라는 양반들은 원체 성장 리스크가 큰 것에 비해서 리턴이 적은 직종이라. 저희 쪽에선 굳이 채용할 이유가 없죠.”

어쩐지 안색이 핼쑥해진 신지현은 재빠르게 원론적인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한번 구겨진 김헤옥의 표정은 풀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부루퉁한 표정이 떠오른 그녀의 눈가엔 시뻘건 안광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싸부님. 진짜에요? 진짜 치유사들이 받는 대우가 그래요?”

“아, 아무래도 혜옥이 너랑은 달리 다른 치유사들 신체능력은 일반인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또 너처럼 처음부터 유용한 치료 스킬을 가진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거든.”

“예, 예. 그래서 헌터님께서 말씀하신 ‘유용한’ 스킬 때문에 특.별.히 혜옥 씨에게 기회를 드리는 거예요.”

나와 신지현이 번갈아가면서 변명하듯 김혜옥의 기분을 풀어주자.

비로소 험악하게 굳어진 김혜옥의 표정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 그럼 바로 테스트에 들어가 볼게요. 혜옥 씨. 그 치유 스킬이라는 것, 제게 써 주실 수 있으실까요? 실은 누구 때문에 요즘 목이 좀 결려서요.”

말하는 폼새가 먼젓번에 청소 도구함 속에 갇혀 있었을 때, 약간의 부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잠시 내 쪽을 찌릿 째려본 신지현은 살짝 고개를 기울여 자신의 목을 김혜옥에게 내밀었다.

…후회할 텐데.

“홋호!”

-오도독!

미처 말릴 새도 없이 특유의 괴상한 기합과 함께, 김혜옥의 육중한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곧이어 그녀의 돌려차기가 신지현의 가녀린 목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히 들어갔다.

“…카학!”

신지현의 목이 해괴한 방향으로 꺾인다. 싶더니, 얻어맞은 부위에서 에메랄드빛이 번쩍였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그녀의 몸이 제자리에서 옆으로 한 바퀴를 팽그르르 돌아, 소파 위로 철푸덕 쓰러졌다.

“이, 이게 무슨 짓이에요! 주, 죽을 뻔 했잖…. 어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난 햄스터처럼 항의하려던 신지현의 표정이 순간, 멍하니 풀렸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댄 그녀는 묘한 탄성을 내뱉었다.

“어때요? 효과 확실하죠?”

“네, 네에. 요 며칠간 여기가 쑤셔서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깔끔하게 나았…네요? 세상에. 이런 스킬이 있다니”

신지현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목을 어루만졌다.

“…….”

그렇게 잠시 말없이 자신의 목을 어루만지던 신지현의 눈에 순간, 탐욕의 불길이 피어올랐다.

달려들 듯 김혜옥에게 다가간 신지현은 다짜고짜 그녀의 큼지막한 손을 꽈악 붙들었다.

“계약하죠! 포션을 몇 병이나 써봤는데도. 이놈의 통증은 떨어지질 않아서 고민이었는데!”

*****

“핫하! 만세! 나도 태백의 정식 헌터다아앗!”

-쨍그랑!

계약서에 인장을 묻힌 손가락을 꾹 눌러 찍는 것을 마지막으로 김혜옥의 가입절차가 끝났다.

신지현에게서 임시 사원증을 받아든 그녀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모양이었는지, 쩌렁쩌렁한 고함을 내지르며 창문을 몸으로 부수고 밖으로 뛰쳐 나가버렸다.

…여긴 3층 아니었던가?

-으아아악! 도망쳐! 괴물…. 아니! 그 ‘피에 굶주린 폭군’ 김혜옥이다!

-홋호호호! 걸리적거린다!

-꺄아아악! 어쩜! 박력도 넘치시지!

“크, 크흠. 그래도 말씀하셨던 것보단 간단하게 혜옥이의 가입을 승인해주셨네요?”

김혜옥이 뚫고 나간 창문에선 그녀의 쾌활한 고함과 함께, 다른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뭔가 황홀한 표정으로 3층 높이까지 둥실 떠오른 중년 남성과 눈이 마주친 나는, 애써 바깥에서 시선을 돌리며 신지현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야 승인하지 않았다면, 제가 이 테이블처럼 되지 않았을까요? 쓰읍. 비싸게 주고 산 건데….”

신지현은 처참하게 반으로 갈라진 테이블을 바라보며, 칙칙하니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잠시 울적한 눈빛을 흘린 그녀는 피식 미소를 짓더니, 캐비닛에서 서류를 몇 장 꺼내 내게 내밀었다.

“당연히 농담이고요. …실은 그렇지 않아도 치유사를 몇 명 영입해올까 했어요.”

“예? 아까는 분명히….”

“네, 원칙적으론 태백에서 치유사를 채용하진 않지만. 박정욱 산군님과 설악 공격대원분들을 치료하는데 엄청난 양의 포션이 들어가고 있었거든요.”

신지현이 내게 건네준 서류엔 설악 공격대 쪽에 들어가는 포션의 거래 내역이 적혀있었다.

“…엄청나네요.”

“네…. 특히 박정욱 산군님이랑 조장급 인원들이 특수한 독에 당해서 포션 없인 하루도 버틸 수가 없는 상태에요. 그래서. 치유사들을 좀 영입해 올까 했었는데….”

-벌컥

내 맞은편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신지현은 마치 마술이라도 부리듯 어디선가 위스키를 한 병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어떻게 된 것들이! 하나같이 쓸모없는 쓰레기! 사기꾼들만 몰려와서는!”

신지현은 마치 불을 내뿜듯 독한 술 냄새를 화르륵 토해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꼴을 보아하니, 태백의 간판만을 보고 몰려온 얼치기들에게 상당한 고초를 겪은 모양이었다.

혜옥이가 ‘치유사’가 되었다는 말에 까칠하게 반응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나 보군.

“그래놓고. 요구하는 대우는 어느 정도였는지나 아세요?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다 마신 술병을 머리 위에 톡톡 털어낸 신지현은 어디선가 또 새로운 술을 한 병 꺼냈다.

그리곤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더니, 말릴 새도 없이 새로 꺼낸 술을 꼴꼴꼴 단숨에 비워버렸다.

…잠깐만. 저거 보드카 아냐?

“끄윽. 그래서어. 처음에 혜옥 씨에게 까칠하게 반응했네요. 죄송합니다아.”

아무리 신지현이라고 해도, 러시아 형님들의 얼이 담긴 보드카를 이기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단숨에 그 독한 술을 비워낸 신지현의 목소리가 축축 늘어졌다.

태양을 보지 못해 창백했던 그녀의 얼굴이 가을날 단풍처럼 붉게 물들어갔다.

“아, 아니. 매니저님. 지금은 그게 중요한게 아닌 것 같….”

“흐어어엉. 미안하다니까요오. 그넘의 샤기뀬 뇸두리이.”

-쿵

잔뜩 불콰해진 얼굴로 고개를 꾸벅이는 신지현의 발음이 점점 불분명해졌다.

그렇게 괴이쩍은 옹알이를 종알거린 신지현은 내게 삿대질을 하던 포즈 그대로 소파 위로 풀썩 쓰러져 버렸다.

“드르릉….”

평소 피로에 찌들었던 탓인지, 신지현은 그렇게 뒤로 넘어진 자세 간헐적으로 코를 골아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은 나는 구석에서 모포를 꺼내,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

“그나저나 박정욱 그 터프한 양반마저 회복하지 못하는 독이라….”

신지현을 그렇게 내버려 둔 뒤, 나는 그녀가 건네준 서류를 꼼꼼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건넨 서류 뭉치 속엔 단순히 포션과 관련된 거래 내역 외에도, 박정욱의 상태에 관한 보고서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보아하니 포인트 숍에서 판매하는 해독제도 안 먹히는 모양인데…. 가만? 계속해서 살과 내장을 썩어들어 가게 만드는 독이라고?”

박정욱의 증세에 관련된 보고서를 읽는 순간, 머릿속에 불현듯 잊고 있었던 정보 하나가 떠올랐다.

일반인에 비교해서 수십 배는 강인한 헌터들의 육신마저 썩어들어 가게 만들 만한 독을 제조할 수 있는 곳은, 내가 알기론 오로지 단 한 군데뿐이었다.

“…독에 관련된 것. 특히 부패 독 쪽은 체체파리 놈들의 특기잖아?”

타락한 성좌. 쇠락한 고성에서 음울하게 날갯짓하는 추잡한 파리를 따르는 사교도 집단. 체체파리 클랜.

타락과 부패 쪽에 특화된 놈들이 바로, 체체파리 클랜이었다. 놈들이라면 충분히 박정욱마저 중독시킬 수 있는 독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비록 타락해버렸다곤 하나, 명색이 ‘성좌’의 권능이 가미된 것이었기에 놈들의 독은 포인트 숍에서 판매하는 해독제로도 치료할 수 없었다.

“체체파리 클랜이라…. 설마 사교도 놈들마저 마족들과 손을 잡았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내가 알기로는 회귀 전까지만 해도, 사교도와 마족들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였다.

아무리 타락한 성좌라고 해도, 성좌는 성좌였기에 사교도가 섬기는 성좌들 역시 마족을 ‘낙오자’라고 부르며 멸시하고 적대했기 때문이었다.

“튜토리얼 타워에서 박정욱을 중독시킨 독까지…. 이거 냄새가 나는군.”

튜토리얼 타워에서 샤네가와 연계해, 안종훈의 포인트 숍에 간섭한 정체 모를 성좌.

그리고 박정욱과 설악 공격대원들의 몸에서 발견된 체체파리 클랜 특유의 독까지….

머릿속에서 퍼즐이 하나둘씩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놈들을 오랫동안 내버려두긴 했지?”

그동안 마족 놈들에게 집중하느라, 사교도 놈들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냄새를 풍기는 이상, 놈들을 가만히 놔둘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해독하기 어려운 ‘독’이라면…. 역시 그곳을 가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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