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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118화 (118/309)

제118화

눈앞을 가득 메웠던 새하얀 빛이 잦아들었다.

깜빡이는 시야 사이로 제일 먼저 보이기 시작한 것은….

“어, 어라? 언제 오셨어요? 용호 씨.”

질 좋은 원목이 고급지게 시공된 마룻바닥과 그 위에 놓여있는 값비싼 가구들.

그리고 어째선지 대단히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세영의 모습이었다.

“…뭐여?”

갑작스레 눈 앞에 펼쳐진 괴이쩍은 광경에 내 입에선 괴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한세훈을 심문한 뒤, 분명 우리는 차례차례 다음 단계로 통하는 구슬을 만졌지만….

왜인지 나는 튜토리얼 타워의 4층이 아니라, 내가 머무는 펜트하우스로 이동한 상태였다.

…그리고 뭔지 모를 불청객인 이세영은 덤이고 말이지.

“아, 아앗! 저, 저는 그냥 집이 비어 있길래 취미 생활을 좀….”

멋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이세영의 몰골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내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며 모자를 차려입은 그녀는 거실의 대형 TV에 나의 활약상이 담긴 동영상을 틀어둔 채로 내가 쟁여둔 맥주들을 열심히 축내고 있었다.

이 망측한 행동이 그쪽 취미 생활이라고? 그걸 왜 내 집에서 하는 건데?

“…일단 세영 씨의 취미 생활이야기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지금은 좀…. 나가주시겠어요?”

“에, 에헤헤. 네. 죄송해요. 나쁜 의도는 없었어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축객령을 내리자.

얼굴에 묘한 홍조를 띤 이세영은 잽싼 몸놀림으로 도망치듯 창문을 넘어 도주해버렸다.

“창문에 방범 장치 좀 새로 달던지. 해야지 원.”

길게 한숨을 내쉰 나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캔 꺼내. 소파에 무너지듯 몸을 뉘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맥주가 선사해주는 서늘한 쾌감이 복잡한 머릿속을 달래주었지만.

어째서 갑자기 튜토리얼 타워 바깥으로 사출되었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쩌자고 갑자기 내보냈는지 고통 감이 오질 않….”

[그야 애송이 네놈이 그 낙오자 놈을 처리한 일 때문일 게다.]

깜짝이야.

갑갑한 마음에 혼잣말을 중얼거린 순간, 위철용의 비췻빛 얼굴이 갑자기 가슴께에서 쑤욱 솟아 올라왔다.

“…그 코끼리 놈이랑 마주하고 난 뒤로 심상공간 속에 콕 틀어박히시더니, 갑자기 무슨 일이시래요?”

[실은 그간 심상 공간 속에서 그 낙오자 놈이 어떻게 시작의 탑에 침투했는지를 분석하고 있었다만. 기껏 알아낸 사실을 말해주기도 전에 한세훈 고놈이 먼저 불어버릴 줄은 미처 몰랐지 뭐냐.]

요컨대 타이밍을 놓쳤단 말이로군.

잠시 멋쩍은 표정으로 눈썹을 씰룩거린 위철용은 헛기침과 함꼐 화제를 돌렸다.

[크흠.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앞서 말했듯. 네놈이 시작의 탑에서 갑자기 강제로 귀환한 이유는 바로, 네놈에게 지급할 보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서일 게다.]

“어…. 그러고 보니, 샤네가 놈을 잡은 것치곤 보상이 좀 짜다 싶긴 했어요.”

튜토리얼에 난입한 마족을 잡은 것치곤 내가 얻은 보상은 특성 포인트와 가산점이 전부였다.

어쩐지 보상이 별로 다 했더니, 보상이 아직 지급되지 않았던 것이었나 보네….

[이번 시작의 탑 관리를 담당했던 성좌 놈들에게 양심이 있다면, 네놈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마운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니라. 보상으로 뭘 줄지는 본존도 잘 모르겠다만 기대해도 좋을 게야.]

말을 마친 위철용은 킬킬 웃으며 창밖에 펼쳐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자,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튜토리얼 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예고도 없이 중간에 내보낸 건 너무하잖아. 혜옥이는 잘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네.

「고생하셨습니다. 설용호 보호자님. 동행하셨던 김혜옥 수험생께선 모든 튜토리얼 시험에 훌륭하게 합격하셨습니다.」

혼자 남겨진 김혜옥을 걱정하고 있으려니.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에 답이라도 해주듯, 그녀가 튜토리얼에 최종 합격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도착했다.

…뭐야. 혜옥이가 벌써 튜토리얼을 모두 통과했어?

[갑자기 왜 그리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게냐? 혹시, 그 ‘굉장한’ 보상이 도착하기라도 한 게야?]

“…아뇨. 혜옥이가 벌써 합격했다는데요?”

[그렇지! 혜옥이라면 네놈의 도움 없이도 잘 해낼 줄 믿고 있었느니라! 역시 본존이 사람 보는 눈 하난….]

-띠릭!

잔뜩 흥분한 위철용은 계속해서 뭐라고 떠들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합격 소식에 어안이 벙벙해져, 시스템 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특유의 소리와 함께 채널 창에 성좌들의 후원 메시지가 빗발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축하합니다! 고통을 모르는 병사가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으하하하. 역시 우리 용호가 길러낸 제자답군! 자이언트 오크를 그렇게 결딴을 내놓다니!』

…자이언트 오크를 어쨌다고?

다행히 김혜옥은 내가 없는 상태에서도 멋지게 나머지 단계들을 통과한 모양이었다.

자신들의 대리인들을 통해,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본 모양인지 채널 창의 성좌들은 굉장히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축하합니다! 가면을 쓴 족제비가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그것보다. 어째서 우리 귀염둥이는 강제로 귀환 당한 걸까요? 이거 너무 불공평하잖아요!』

「축하합니다! 가시나무를 짊어진 노인이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시작의 탑에 난입한 낙오자를 그가 처리하지 않았는가. 그가 이뤄낸 공적을 심사하느라 그들도 머리가 아팠던 모양인 게지.』

그리고 이어진 후원 메시지의 내용은 위철용이 언급했던 그대로였다.

…심사라니. 도대체 어떤 대단한 걸 주겠다고 심사까지 하는 걸까?

-우우웅!

호들갑을 떨어대는 성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정신없이 진동하는 스마트폰의 화면엔 김혜연의 강인한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

“싸부니임! 저 합격했어요!”

김혜연의 공방에 도착하자마자 괴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김혜옥이 성난 멧돼지처럼 내게 돌진해왔다.

잔뜩 흥분한 모양인지 내게 달려오는 그녀의 눈에선 묘한 열기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아. 제발. 설마….

-꽈드드드득!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한달음에 내 코앞까지 달려온 김혜옥은 그대로 나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녀의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이 용맹하게 불끈거릴 때마다 시야가 허옇게 물드는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형님도 오셨네요! 저도 당연히! 합격했습니다앗!”

간신히 김혜옥의 손아귀에서 풀려나 비틀거리고 있으려니.

이번엔 흥분한 강아지처럼 달려온 양소룡이 내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달려온 그는 김혜옥처럼 나를 꽉 끌어안는 대신, 내 양쪽 어깨를 요렇게 잡곤 정신없이 흔들었다.

덕분에 허옇게 물들었던 시야가 정신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찍 도착하셨네요. 헌터님? …어머나. 젊은 친구들이 기력도 좋지.”

“안녕. 용호.”

뒤늦게 등장한 김혜연은 나와 두 명의 햇병아리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김혜연의 옆에서 양소혜는 어색함과 반가움이 혼재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자자, 형님!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저쪽으로 가시죠! 아침부터 열심히 준비했어요.”

“그래요. 싸부님! 멧돼지 한 마리 통째로 잡아오느라 정말 힘들었다구요.”

촐랑거리며 들러붙는 두 마리 햇병아리들에게 이끌려 공방의 뒷마당으로 향하니.

큼지막한 테이블 위에 푸짐하게 차려진 고기의 향연이 펼쳐져 있었다.

케이크까지 고기로 되어있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여기가 무슨 발할라도 아니고….

“많이 드세요. 싸부님!”

자리에 앉기 무섭게 김혜옥은 내게 다짜고짜 큼지막한 고깃덩어리를 건네주었다.

어지간한 사람 얼굴만 한 스테이크엔 새빨간 액체로 ‘감사합니다. 싸부님!’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 그래. 고맙다 혜옥아. 그런데…. 고기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않니?”

“에엥? 고기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간신히 정신을 추스른 나는 김혜옥에게 내가 찾아온 본론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큼지막한 고깃덩어리를 집어 든 김혜옥은 못들을 소리를 들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나를 바라보았다.

“튜토리얼 합격했다며, 무슨 특성을 선택했는지부터 말해 줘야 하지 않을까….”

“아하! 그거요? 무슨 『치유사』 계통의 특성 트리 어쩌고라는 데요?”

김혜옥이 해맑은 표정으로 자신이 선택한 특성에 대해 알려준 순간.

둔중한 충격이 내 머릿속을 강타했다.

“…치유사라고?”

“녜. 싸부님. 남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성장하는 특성 트리래요.”

…맙소사. 도대체 뭘 선택한 거야!

다시 한 번 김혜옥이 자신의 선택에 대해 말해주자, 나는 속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뭐라고? 치유사?! 그 엄청난 무골을 지니고도 치유사를 선택해? 만년하수오로 소 여물 쑤는 소리야!]

흐뭇하게 김혜옥을 바라보던 위철용 역시, 경악한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기특함이 가득했던 그의 눈빛은 이제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 아니 혜옥아. 치유사라는 건 말이다. 일반적인 헌터랑은 다른 거…. 알고 있지?”

김혜옥의 언니, 김혜연이 선택한 『무기장인』처럼 『치유사』 역시, 일반적인 헌터들과는 달랐다.

꼭 필요한 직업이긴 하나, 자체적인 전투력이 제로에 가깝기에 사망률이 굉장히 높은 직업으로 유명했다.

떄문에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특성트리 중 가장 기피 받는 계통의 특성 트리가 바로 치유사였는데….

“알아요. 설명란에도 그렇게 나와 있었거든요. 그래도 전 치유사가 좋아요.”

내 경악한 표정과 마주한 김혜옥은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히죽 해맑게 웃었다.

“그래도. 치유사를 선택하면 더 강해질 수가 없는데….”

김혜옥의 표정은 여전히 해맑았지만, 나는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치유사 계통의 특성 트리는 모조리 남을 치유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때문에, 아무리 레벨을 올려봤자. 다른 헌터들에 비해 전투 능력은 굉장히 떨어지는 편이었다.

김혜옥의 피지컬이라면, 어지간한 전투 계열 특성 트리만 타도 엄청나게 강해질 수 있었을 건데….

“괜찮아요. 싸부님 덕분에 전 충분히 강해졌거든요.”

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마주한 김혜옥은 푸근한 미소와 함께, 과시하듯 자신의 근육을 불끈거렸다.

“…그리고. 이제 소중한 사람들이 다칠 때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그야 그렇지만. 치유사는 게임 속 힐러처럼 대단한 특성 트리가 아닌데….”

김혜옥이 지나가듯 밝힌 이유 덕분에, 내겐 그녀의 선택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물론, 높은 레벨의 치유사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게임 속의 ‘힐러’들처럼 상처와 질병을 순식간에 치유해줄 수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그 정도 수준에 이르기까진 상상도 하지 못할 노력과 시간을 소비해야만 했다.

당장 포인트 숍에서 판매하는 포션 만큼의 효율을 보여주려면 최소 30레벨 이상은 되어야 했으니 말이지.

“네? 그래요? 아닌데…. 실험해보니까 효과가 엄청 대단했어요.”

“대단하다고?”

“보세요! 이렇게…. 홋호!”

-뽝!

괴이쩍은 기합을 내지른 김혜옥은 얌전히 고기를 뜯던 양소룡의 머리를 힘껏 후려쳤다.

잘 익은 수박이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양소룡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풀썩 쓰러져버렸다.

“이게 바로 신속한 치유! 줄여서 신치에요?”

신속한 치유라고? 신속한 치명타가 아니라?

좋다는 게 설마 순식간에 목숨을 빼앗기 좋다는 거야?

김혜옥은 이것 좀 보라는 듯 자랑스레 소리쳤지만, 양소룡의 상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양 눈이 서로 다른 쪽을 바라보며 침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말 그대로 두개골에 치명상을 입은 모양새였다.

-스파아앗.

김혜옥을 바라보는 양소혜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변하려던 찰나.

쓰러진 양소룡의 머리에서 갑자기 에메랄드빛 광채가 솟구쳤다.

“커헉!”

그와 동시에 양쪽으로 돌아갔던 양소룡의 눈이 총기를 되찾았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는 입에서 시커멓게 죽은 피를 왈칵 토해냈다.

움푹 들어갔던 두개골이 어느샌가 감쪽같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이,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 짜릿하면서도 상쾌한 것이 참으로….”

반쯤 눈이 풀린 채로 묘한 감탄사를 토하는 양소룡의 얼굴에서 상처가 사라지고 있었다.

에메랄드빛이 그의 얼굴 곳곳으로 퍼져 나가며 남아있던 흉터와 상처들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더! 더! 치료해줘! 혜옥아! 여기! 여기도 상처가 가득해!”

“그래! 용아! 내가 널 말끔히 치료해줄게!”

-철썩! 철썩! 철썩!

김혜옥은 양소룡의 멱살을 붙잡은 채, 그의 가녀린 몸 곳곳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솥뚜껑같이 두툼한 손바닥이 채찍처럼 날아들 때마다,

양소룡의 몸이 정신없이 들썩이며 녹색으로 번쩍번쩍 빛났다.

덕분에 실로…. 이루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기괴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허으응 좋아….”

기묘한 탄식을 토해내며 쓰러진 양소룡의 몸에선 더 이상 상처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양소룡을 치료(?)한 김혜옥은 어떠냐는 듯 씨익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보세요. 싸부님! 다행히 남에게도 잘 듣는 것 같아요! 이만하면 쓸만하지 않아요?”

쓸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김혜옥이 보여준 ‘신속한 치유’라는 스킬은 어지간한 치유사들의 30레벨 치유 스킬과 맞먹는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게 1레벨 스킬이라고? 도대체 얘는 무슨 특성 트리를 손에 넣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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