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누님! 안 돼에엣!
어두운 미로 속을 내달리면 내달릴수록 양소룡의 다급한 비명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곧이어 공포에 질린 이들이 아우성치는 소리, 허겁지겁 도망치는 발걸음 소리가 복도를 웅웅 울렸다.
“이, 이쪽인가 봐요! 싸부님!”
양소룡의 비명이 가까워지자, 김혜옥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어렸다.
그녀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그녀가 바닥에 발을 디딜 때마다 돌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튜, 튜토리얼에 저런 게 있다곤 듣지 못했는데….”
“이, 이봐! 다치기 싫으면 어서 도망쳐! 이건 미친 짓이라고!”
비명의 진원지에 가까워지자, 한 무리의 수험생들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둠 속에서도 낯빛을 확실히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그들의 얼굴은 허옇게 질려있었다.
네발로 엉금엉금 기다시피 허둥지둥 도망치는 그들의 뒷모습에선 공포의 냄새가 진동했다.
“여기에요! 싸부님! 용아아!”
마침내 도착한 비명의 진원지는 다음 층으로 통하는 구슬이 안치된 광장이었다.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김혜옥은 다급한 목소리로 양소룡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렇게 그녀가 정신없이 광장 깊숙이 들어선 순간….
-부와아아앙!
채찍처럼 휘둘러진 무언가가 김혜옥의 등에 날아들었다.
“위험했!”
공격을 감지한 나는 급한 대로 온몸에 외골격을 두른 채, 김혜옥의 거대한 몸을 밀쳐냈다.
그 덕분에 그녀에게 날아들었던 공격이 내게 작렬했다.
-우지지직!
“크흡!”
실로 화끈한 충격이었다.
어찌나 무식한 위력이었는지, 단단한 외골격에 우지직 금이 갔다.
목구멍에서 비릿한 핏물과 뜨끈한 욕지기가 동시에 올라왔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공격이 날아온 쪽을 바라보니….
《부오오오오옹!》
구석에 놓인 제단 바로 앞에 처음 보는 형태의 괴물이 거칠게 포효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형태는 코끼리와 인간을 적당히 섞어 대충 찌그러뜨린 것만 같았고
광장을 꽉 메우시다시피 한 거구를 뒤덮고 있는 회백색 피부엔 고름이 흉측하게 흐르고 있었다.
놈의 생김새는 회귀 전, 수없이 많은 몬스터를 상대해본 나로서도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수험생들을 시험하기 위해 튀어나온 놈치곤 살벌하게 생겼군. 이것도 성좌들의 장난질인가?
[마, 말도 안 돼. 시, 신성한 시작의 탑에 어찌 낙오자 놈이….]
‘예?’
괴물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려던 찰나, 위철용의 경악에 찬 혼잣말이 귓가를 간질였다.
위철용의 비취빛 얼굴은 분노와 당황으로 인해, 백옥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이 구역질나는 기운으로 미뤄보건대. 놈은 낙오자가 분명하니라. 그것도 아모스인가 뭔가 하는 잡것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지닌!]
’낙오자…. 마족이라구요?‘
이어진 위철용의 설명에 나 역시 그와 똑같은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성좌들이 직접 관리한다는 튜토리얼 타워에 마족이 튀어나왔다고?
설마, 놈을 상대하는 것도 시험의 일종인가?
「축하합니다! 고통을 모르는 병사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낙오자? 어떻게 천박한 낙오자 놈이 감히 신성한 시작의 탑에 숨어들 수가 있지? 시작의 탑 담당자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축하합니다! 가시나무를 짊어진 노인이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엄중히 항의해야겠군. 낙오자 놈을 들이다니, 이건 신성모독일세.』
혹시나 했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성좌들마저도 갑작스런 마족의 등장에, 위철용과 똑같은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배자급 마족이라고 도대체 어떻게 된….
《흐으하하하. 제법인거얼? 시작의 탑에 빌붙은 햇병아리 주제에 내 공격을 막아내다니이.》
갑자기 나른하게 죽죽 늘어지는 목소리가 뇌리를 파고 들려왔다.
포효를 끝마친 마족 놈은 어느새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튜토리얼 타워에 무단침입한 마족이라니, 그쪽이야말로 마족 주제에 제법이야.”
《어라아? 우리의 정체가 누군지 알고 있어어? 아하아! 그럼 네가 바로오 아모스가아 말한 그 귀염둥이로구나아. 반가워어 난 샤네가라고 해애애》
…게다가 아모스랑 관련이 있는 놈이었어?
자신을 샤네가라고 밝힌 놈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쩐지 한동안 조용하다 싶었더니, 튜토리얼 타워에 수작질을 해둔 건가?!
《으응. 예쁘긴 예쁘네에. 아모스가아 그렇게 자랑할 만해애. 그럼 이건 필요 없지이.》
-퉤엣!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샤네가는 별안간 입을 크게 벌렸다.
고름이 줄줄 흘러내리는 거대한 입이 크게 쩌억 벌어지더니, 무언가를 연이어 퉤퉤 뱉어냈다.
끈적한 점액에 휘감긴 세 개의 덩어리가 바닥에 철퍽 들러붙었다.
”어, 언니? 요, 용아아아!“
마족 놈의 입에서 뱉어진 ’무언가‘의 정체는 바로, 양소혜와 양소룡이었다.
악취 나는 점액 속에 갇혀있는 낯빛은 혈색 하나 없이 파리했다.
둘의 처참한 몰골을 발견한 김혜옥은 황급히 그들에게 다가가 점액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다른 장난감들은 필요 없어어. 귀염둥이 한 명만 있으면 돼애애.》
‘장난감’들을 뱉어낸 샤네가의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휘어진 눈에선 추악한 탐욕의 빛이 번들거렸다.
샤네가는 육중한 몸을 움직여 내 쪽으로 엉금엉금 천천히 네발로 기어오기 시작했다.
“혜옥아!”
“네, 네 싸, 싸부님?”
샤네가의 거대한 몸이 내 쪽으로 향하자, 나는 김혜옥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그러자 패닉에 빠진 채로 멍하니 점액을 걷어내던 그녀의 눈에 약간의 총기가 돌아왔다.
“그 점액 덩어리들 데리고 피해 있어!”
“하, 하지만 저도 도, 도와야…. 으…. 으으 알았어요.”
내 입에서 튀어나온 축객령에 김혜옥은 뭐라 우물거리며 항변하려고 들었지만.
이내 이를 까득 갈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점액 덩어리들을 짊어진 김혜옥이 광장을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나는, 샤네가의 흉측한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전의를 불태웠다.
-파츠츠츠츠
화안금정이 발동되며 시야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혈도를 타고 도도하게 흐르는 내력이 전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다시 한 번 촤르륵 돋아난 외골격이 빈틈없이 내 몸을 감쌌다.
쿵쿵거리는 심장이 강렬한 투쟁심을 끌어냈다. 울컥울컥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이 투지를 불태웠다.
-부와아아앙!
싸울 준비를 끝마친 바로 그 순간!가까이 다가온 샤네가는 히죽 웃으며 자신의 기다란 코를 휘둘렀다.
거대한 코끼리 코가 대기를 찢어발기며, 채찍처럼 쇄도해왔다.
-파팟!
샤네가의 코를 흘리듯 피해낸 나는, 오히려 놈에게 가까이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오른손 손가락 두 개의 외골격에 시커먼 내력을 밀어 넣었다.
-투화확! 투화확!
그렇게 샤네가의 턱 바로 밑까지 파고든 나는 약식 암룡출동을 발동시켰다.
시커멓게 물든 손가락의 외골격이 폭발하며 내력이 담긴 파편들을 쏘아냈다.
공격에 제대로 직격당한 샤네가의 주름진 피부가 엉망으로 찢어졌다.
좋아. 제대로 들어갔어! 이제 계속해서 저곳을 노리면…!
《흐으흐흐 재밌네에?》
다시 한 번 약식 암룡출동을 준비하려던 그 순간!
느물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화안금정에 갑작스러운 공격이 하나 감지되었다.
“…?!”
샤네가의 오른팔이 흐릿해진다 싶더니, 흉측하게 짓물러진 손톱이 바닥을 긁으며 내게 짓쳐들어왔다.
어마어마한 마찰열로 인해, 손톱에 줄줄 흘러내리는 고름에 화르륵 불이 붙었다.
-카가가각!
“크으윽!”
샤네가의 공격을 감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완전히 피해내지 못했다.
화염이 이글거리는 손톱이 외골격을 카드득 스치고 지나갔다.
단단한 외골격에 쩌쩍 균열이 생겼다. 그렇게 생긴 균열 사이로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실로 엄청난 속도와 무식한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따끔했다구우우. 역시이이 화려한 동물에겐 독이 있는 건가아아?》
샤네가의 주름진 눈이 장난스럽게 휘어졌다.
약식 암룡출룡에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던 모양인지, 놈의 태도는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직격당한 피부는 엉망으로 찢어졌지만, 주르륵 흘러내린 고름이 찢어진 부위를 메워버렸다.
…암룡출동을 얻어맞고도 타격이 없다고? 도대체 저건 무슨 무식한 방어력이지?
“치이잇!”
까드득 이를 악문 나는 주먹을 까드득 말아 쥐었다.
시커먼 내력이 주먹에 깃들어 새까만 어둠을 흩뿌렸다.
-탓! 탓! 탓!
주먹에 내력을 집중시킨 나는 재빨리 샤네가의 몸을 타고 올라가,
재생 중인 놈의 턱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꿀럭!
“뭣?”
파천 복룡창의 독룡아를 응용한 내 공격은 완벽하게 들어갔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샤네가에게 어떠한 타격조차 주지 못했다.
놈의 주름진 피부 위에 미끌거리는 고름은 내 주먹을 허무하게 주르륵 흘려 내버렸다.
《소용없어어어. 나는 튼튼하거드으은》
-푹!
미끌거리는 고름 탓에 주먹이 빗나가자, 몸의 균형이 무너졌다.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샤네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을 박아 넣었다.
고름이 번들거리는 손톱이 외골격을 거칠게 파고 들어왔다.
-우지지직
그렇지 않아도 금이 쩌적 가 있던 외골격의 일부가 과자처럼 부서졌다.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싶더니, 이내 온몸이 저릿해졌다.
《내 고름엔 필멸자들의 몸을 마비시키는 독이 들어 있거드으은?》
…빌어먹을. 독이라니.
손상된 외골격 사이로 독기가 침투해오자, 온몸이 조금씩 마비되기 시작했다.
곧이어 참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졸음이 밀려왔다.
-콰직!
나는 혀를 깨물어 졸음을 쫓아냈다.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며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자, 나는 내력을 이용해 독을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했다.
《저항이 거세네에. 귀찮게에.》
하지만 그런 나를 가만히 두고 볼 샤네가가 아니었다.
가물거리는 시야 속으로 샤네가의 흉험한 공격이 포착되었다.
-부왕! 부와아아앙!
금방이라도 나를 찢어발길 듯 날아드는 흉측한 손톱!
당장이라도 나를 벌레처럼 짜부라트릴 듯 쇄도해오는 거대한 코!
몸조차 가누기 힘든 지금, 내가 놈의 공격을 피할 방법 따윈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아니.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젠장!! 이걸 여기서 써야 한다니!
-와드득!
샤네가의 공격이 내 몸에 작렬하기 바로 직전!
나는 품속에서 기적의 파편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영롱한 선홍빛이 번들거리는 그것을 입에 넣고 힘껏 씹었다.
「기적의 파편을 사용하셨습니다.」
「사용자님의 소원에 따라 앞으로 [5분]간 사용자님의 시간이 고정됩니다.」
-빠아아악!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샤네가의 공격이 내 몸에 작렬했다.
거대한 근육질 코가 내 등판을 사정없이 짜악 후려갈겼다.
날카로운 발톱이 나의 팔다리를 거칠게 훑고 지나갔다.
《에엥? 감촉이 이상해애애.》
하지만, 샤네가의 그렇게 흉맹한 공격 속에서도 나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다.
놈의 공격에 적중당한 곳들도 상처하나 없이 말끔했다. 고통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뭐, 뭐야아? 이거어언.》
샤네가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의 빛이 어렸다.
놈의 얼굴에 드디어 떠오른 당황 어린 표정에 나는 히죽 웃었다.
“혹시 무적 치트키라고 알아?”
내가 기적의 파편에 빈 소원은 간단했다.
육신의 시간을 소원을 빌었던 시간대에 고정해 버리는 것!
회귀 전, 기적의 파편에 소원을 잘못 빌었던 경험을 응용한 활용법이었다.
「남은 시간 4:58」
육신에 흐르는 시간이 소원을 빌었던 시간대에 고정되어있는 상태이기에, 소원이 적용된 5분이란 시간 동안 나는 말 그대로 무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파츠츠츠츠
모든 것을 쏟아부을 요량으로, 나는 조용히 깔맞춤을 발동시켰다.
필멸의 영역을 뛰어넘은 인지능력이 내게 수많은 정보를 제공해줬다.
《거언방진 필멸자 놈이이잇!》
장난감이라 생각했던 대상에게 비웃음을 받아서일까?
어느새 샤네가의 주름진 얼굴엔 분노라는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놈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재빨리 손톱을 휘둘렀다.
“무적 치트키라니까? 무적이 무슨 말인지 몰라?”
하지만 필멸의 영역을 벗어난 인지능력은 샤네가의 움직임을 훤히 꿰뚫어 보았다.
놈이 휘두른 손톱은, 내 몸에 닿기도 전에 내 주먹에 연속으로 가로막혔다.
원래대로라면 내 주먹이 형편없이 으깨져야겠지만. 시간이 고정되어 면역상태인 육신은 샤네가의 공격을 맨몸으로도 거뜬히 받아내었다.
-푸화하학!
번개처럼 파바밧 휘둘러진 주먹은 정확하게 놈의 손톱 끝만을 후려쳐, 충격을 집중시켰다.
외골격을 찢을 만큼 단단했던 손톱이 썩은 호박처럼 퍼석 터져나갔다.
《이, 이 건방지이인! 이따위 상처는 재생하면 그만이야아아!》
신경질적인 고함을 내지른 샤네가는 터져나간 자신의 손톱을 재생시키려 들었다.
-카가가가각!
샤네가의 손끝에서 꿀렁거리는 고름이 새어 나온 그 순간!나는 부러진 샤네가의 손톱 파편을 꽉 틀어쥔 채 놈에게 재빨리 달려들었다.
거의 단검만 한 손톱 파편이 바닥에 거칠게 갈리자, 피와 고름을 머금은 손톱에 화염이 솟구쳤다.
-치이이익!
《끄아아아아아악!》
화염이 이글거리는 손톱 파편이 샤네가의 손끝을 스치고 지나가자,
고름이 울컥 솟아올랐던 부위에 불꽃이 옮겨 붙었다.
고름이 타들어 가는 노릿한 악취와 매캐한 연기가 광장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에에!》
샤네가의 주름진 얼굴이 처음으로 고통이 번져나갔다.
향상된 인지능력은 샤네가가 자랑하던 고름이 어떤 성분으로 이뤄졌는지 알려줬다.
기름과 독으로 이뤄진 놈의 고름은 놀라울 정도로 불에 잘 타는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손톱 파편에 솟구친 화염이 내 손을 살라 먹으려 들었지만, 시간이 고정된 육체는 어떠한 고통도 손상도 입지 않았다.
-화르륵! 화르르륵!
화염이 이글거리는 손톱 파편이 샤네가의 몸을 베어낼 때마다. 불꽃이 솟구쳤다.
고름 낀 피부가 지글지글 익어갔다. 살타는 냄새가 매캐하게 진동했다.
고통에 전 샤네가가 몸을 꿈틀거릴 때마다, 고름이 주르륵 흘러내려 불길을 더욱 키워댔다.
《피, 필멸자 놈이이이!》
온몸이 불길에 휘감긴 샤네가는 발악하듯 몸을 꿈틀거렸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시커먼 연기가 뭉클뭉클 피어오르는 육신은 이미 놈의 제어를 벗어난 상태였다.
놈은 거대한 눈을 뒤룩뒤룩 굴리며 나를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필멸자, 필멸자. 그쪽 같은 족속들은 그놈의 필멸자 타령이 그렇게 좋나봐?”
나는 그렇게 벌레처럼 몸을 꿈틀거리는 샤네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놈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전신을 감싼 황금빛 외골격이 조금씩 까맣게 물들어갔다.
“…그런데 말이야. 이제 누가 ‘필멸’자일까?”
샤네가의 투실투실한 볼을 장난스레 붙잡은 나는 속삭이듯 놈에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그렇게 놈의 얼굴을 붙잡은 상태에서…. 암룡출동을 발동시켰다.
-꾸과가가아아앙!
약식과는 격을 달리하는 위력이 샤네가의 까맣게 타버린 육신을 난도질했다.
우박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외골격의 파편들에 의해 놈의 거대한 육신이 믹서기에 들어간 고기처럼 바드득 갈려 나갔다.
-쿠웅
기력의 폭풍이 지나간 뒤, 샤네가(였던 것)의 파편들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광장 전체를 검붉게 수놓은 파편들에선 생명의 징후가 느껴지지 않았다
「위업을 달성하였습니다!」
「위업 [코끼리 사냥꾼] 달성!」
「칭호 [시작의 탑의 수호자]가 수여됩니다.」
「특성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20]」
「숨겨진 조건을 충족하여 가산점을 지급합니다. [+1000]」
샤네가가 최후를 맞았음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낯익은 소리와 함께, 시스템 메시지 창이 정신없이 알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시간 고정이 종료됩니다.」
보상을 확인할 새도 없이, 5분의 시간이 끝났다.
잠시 유예되었던 샤네가의 독이 다시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눈앞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