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허, 헌터님께서요?”
김혜연은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커다랗고 초롱초롱한 그녀의 눈망울엔 감동의 빛이 가득했다.
“지난번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혜옥이는 제가 책임지고 헌터로 키워내겠다고.”
[아암. 그렇게 말하긴 했지. 이번엔 사욕이 좀 앞선 것 같다만.]
크윽.
얼굴에 철판을 깐 채, 김혜옥의 보호자가 되어주겠노라 선언했지만.
생각보다 내 얼굴은 그렇게 두껍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김혜연의 습기 찬 눈망울과 위철용의 이죽거림이 내 양심을 아프게 후벼 파왔다.
“그, 그러시긴 하셨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헌터님?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이래 봬도, 제가 혜옥이 스승 되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내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죠.”
조심스레 물어오는 김혜연에게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대범하게 답하자.
그녀는 주머니에서 커다란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눈가를 살짝 훔쳤다.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헌터님. 저희 자매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대해 주시다니.”
감동에 젖은 목소리로 손수건에 패앵 코를 푼 김혜연은 내게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 뒤.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김혜옥에게 다가가, 뭐라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스승? 허이구. 참스승 납셨네. 바쁘다는 핑계로 그동안 제대로 봐주지도 않았던 놈이.]
‘워, 원래 튜토리얼 타워 개방은 내년이었잖습니까. 아모스 건만 해결하면 정말로 성심성의껏 봐주려고 했다구요.’
계속해서 양심을 찔러대며, 이죽거리는 위철용 덕분에 가슴이 쿡쿡 쑤셔왔다.
끄응….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혜옥이를 좀 더 잘 봐줄 걸 그랬나.
“뭐엇? 내가! 싸부랑 같이! 튜토리얼 타워에 들어간다고?”
그간 김혜옥에게 무관심했던 것을 뉘우치려고 하던 찰나.
잔뜩 흥분한 김혜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 들어왔다.
나와 같이 튜토리얼에 입장한다는 것이 그리도 기쁜지, 그녀의 목소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으랏차!”
-쿠와아앙!
내 쪽을 흘끗 바라본 김혜옥은 등에 짊어지고 있었던 소형차를 가볍게 던져버렸다.
그리곤 내 쪽을 향해 한달음에 뛰어왔다.
“정말이에요? 싸부님? 정말 싸부님이랑 제가 튜토리얼 타워에 같이 입장 하는 거 맞아요?”
김혜옥의 덩치는 어지간한 몬스터마저 절로 무릎을 꿇도록 만들 만큼 웅장했지만.
기대에 부푼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또래 아이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래. 그렇단다. 혜연 씨에게 말해서 내가 네 보호자가….”
“이야아아아! 싸부님 만세!”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혜옥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리곤 나의 허리를 두 손으로 와락 붙잡아 들고는 마치 헹가래 치듯 나를 집어던졌다.
뭔가 중력과 잠시 결별하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순식간에 하늘과 구름이 가까이 다가왔다.
“만세! 만세!”
“고마워요. 헌터님!”
잔뜩 흥분한 김혜옥이 계속해서 하늘을 향해 내 몸을 쏘아 올려대자,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흥분한 김혜연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덕분에 내 몸은 좀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었다.
“…….”
입장 문제는 해결된 것 같긴 한데….
내가 과연 쟤를 감당할 수 있을까?
*****
시간은 쏘아진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잔뜩 흥분한 김혜옥을 진정시켜 서울로 데려온 뒤, 튜토리얼의 기초적인 사항에 대해 알려주고 있으려니. 어느새 튜토리얼 타워의 문이 열리는 날이 찾아와버렸다.
“와아! 싸부님! 사람들이 대박 대~애박 많아요!”
서울 종로 한복판에 솟은 튜토리얼 타워는 매년 그래왔듯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듀라한에서 내린 김혜옥은 몰려든 인파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2m가 훌쩍 넘는 거구의 여자애가 꺅꺅거리며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인산인해를 이뤘던 이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세상에 저거 몬스터 아냐? 저게 인간이라고?
-보호자 자격으로 온 헌터인가? 롤스로이스를 탈 정도라면 보통 인물이 아닐 텐데….
-우와아앗! 저게 누구야? 설용호 아니야!
-태, 태백에서 작정한 모양이군. 산군급 고수를 보호자로 동반시키다니!
-자, 잠깐만 그럼 저 덩치로 일반인이라고?
김혜옥의 목소리에 이끌렸던 시선들이 모조리 내게 집중되었다.
워낙 내 외모가 튀는 탓에, 몰려든 이들 중 내 얼굴을 모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덕분에 김혜옥에게 쏠렸던 흥미 위주의 관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고스란히 내게 쏠리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찰칵!
급기야는 특종을 노리는 하이에나들이 마구마구 플래시를 터뜨려대기 시작했다.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김혜옥까지 찍어대자.
눈앞을 어지러이 수놓는 백색의 불빛에 질려버린 나는, 김혜옥의 손을 단단히 붙잡곤 서둘러 접수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와. 유명한 사람들이다!”
김혜옥은 내게 손을 붙잡힌 채, 끌려가면서도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다.
아무래도 전례가 없었던 보호자 동반 튜토리얼이기에, 5대 길드의 유명인들 역시 상당수 출석한 상태였다.
덕분에, 김혜옥은 유명한 이들을 발견할 때마다. 호들갑스러운 탄성을 내질렀다.
[호오. 다른 놈들도 뭔가 냄새를 맡고 온 게로군. 강자들이 이리도 많을 줄이야.]
‘그러게요. 확실히…. 평소와는 다른 ’보호자‘ 동반 튜토리얼이라서 그런지. 높으신 분들도 많이들 몰려들었네요.’
아무래도 그들도 본능적으로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이 숨어있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평소라면 일정이니 뭐니를 핑계로, 얼굴조차 비치질 않던 은거 기인들도 지금 이곳에 와 있는 상태였다.
“싸부님! 저기요! 저기 좀 보세요. 싸부님만큼은 아니지만 진짜 잘생기지 않았어요? 저 사람도 튜토리얼 타워 수험생일까요?”
모여든 인물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있으려니.
잔뜩 상기한 얼굴의 김혜옥이 어쩐지 흥분한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그녀의 큼지막한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순간….
“…?!”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차갑게 꽁꽁 얼어붙었다.
사람 좋은 듯 서글서글한 웃음을 짓고 있는 선량하니 잘생긴 얼굴.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와 같은 순박함과 노회한 노인의 능글맞음을 간직한 커다란 눈.
그 커다란 눈 속에서 음울하게 불타고 있는 시커먼 야망까지!
김혜옥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꿈에서도 잊지 못할 저주받은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 저 자식은…!]
‘한세훈…. 어쩐지 코빼기도 비치질 않더니. 이런 곳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네요.’
내 외모에 비하면 어느 정도 손색이 있긴 하지만, 한세훈은 여전히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잘생긴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회귀 전의 역사에서 그랬듯, 놈은 이미 자신의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언변을 이용해 수많은 추종자를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그때 한세훈은 추종자들을 이용해 튜토리얼에서 많은 특전과 높은 랭크를 획득할 수 있었지….
“푸흐흐흐.”
한세훈의 재수 없는 얼굴을 발견한 순간부터 내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참으려고 해도, 묵은 빚을 청산할 생각에 자꾸만 툴툴거리는 웃음소리가 입에서 새어나갔다.
원래대로라면 이번에도 놈은 추종자들을 부려, 많은 이득을 손에 넣겠지만.
이걸 어쩌나? 하필이면 나를 만나버렸네?
“…싸부님?”
내 입에서 툴툴거리듯 새어 나온 음험한 미소가 불길하게 여겨져서일까?
한세훈을 바라보며 묵은 원한을 청산할 흉흉한 음모를 꾸미고 있으려니. 김혜옥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크흠. 크흐흠! 미안하구나. 저쪽을 보고 있으려니. 지난번 튜토리얼 때가 생각나서 말이다.”
“와아. 싸부님까지 그렇게 생각할 정도세요? 진짜 잘생기긴 했다아.”
김혜옥은 멍한 눈으로 한세훈을 바라보았다.
내 외모에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 김혜옥마저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니, 한세훈 저놈이 확실히 잘생기긴 잘생겼나 보군.
뭐, 그 잘생긴 외모를 어디까지 유지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여기 온 목적이 잘생긴 남자 탐색이라면 말리진 않겠다만, 더 중요한 게 있지 않니?”
“…핫! 맞아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접수처가 어디라고 하셨죠?”
마지막으로 한세훈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신 나는, 고개를 돌려 김혜옥의 주의를 환기했다.
그리곤 한세훈의 주변에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접수처를 향해 걸어갔다.
얼마간 인파의 홍수를 헤치고 나가자, 우리는 튜토리얼 타워 구석에 마련된 접수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옛다. 수험표. 잃어버린 큰일 나니까. 잘 보관해둬.”
그리곤 간단한 등록 작업을 거친 뒤. 나는 받아든 수험표를 김혜옥에게 건네주었다.
「B-0001 김혜옥 (보호자 : 설용호)」
가볍게 마력이 코팅된 플라스틱 수험표의 생김새는 평소와 같았지만.
이번엔 수험자의 본명 옆에 보호자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었다.
개수도 보호자와 수험생 각각 한 개씩 두 개가 제공되었다.
“어라? 수험번호가 1번이에요. 싸부님! 그렇다는 건 제가 여기서 제일 세다는 소리겠죠?”
자신의 수험표를 확인한 김혜옥은 1이라는 숫자가 그리도 흡족한 모양이었다.
왜인지 잔뜩 흥분한 기색의 김혜옥은 기대 어린 표정으로 자신의 근육을 불끈거렸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단순히 입장 순서야. B조에서 첫 번째로 들어간다는 소리지.”
“치잇…. 아깝네요. 제 수련의 성과를 사람들이 알아봐 줬나 싶었는데.”
[곧 알아봐 줄 테니 기대하거라. 모름지기 노력이란 놈은 결코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법이니.]
위철용은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김혜옥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실체가 있는 몸이 아니었기에, 그의 손길은 김혜옥의 머리를 덧없이 통과해버렸지만.
위철용의 얼굴엔 진지하면서도 자상한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첫 번째 과제가 무기 쟁탈전이라고 하셨었죠?”
“그래, 하지만 이번엔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보호자 동반이니. 뭔가 조건이 더 붙겠지.”
“상관없어요. 저는 어떻게든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반드시 헌터가 돼서 언니를 행복하게 해줄 테야….”
씩씩하게 대답한 김혜옥은 커다란 주먹을 불끈 틀어쥐었다.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선 평소답지 않게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
-쿠구구궁!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지난번 튜토리얼이 끝난 뒤로 굳게 닫혀있었던 튜토리얼 타워의 문이 다시 저절로 열렸다.
요란한 진동 소리와 함께 활짝 열린 문의 내부는 시커먼 어둠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자.”
A조 입장이 끝나고 B조가 입장할 차례가 되자.
새삼 긴장한 모양인지, 잔뜩 얼어있는 김혜옥의 어깨를 두드려준 뒤.
나는 다시 열린 튜토리얼 타워의 내부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축하합니다! 고통을 모르는 병사가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흐흐. 역시 들어왔군. 기대해라. 우리 늙은이들이 제법 재밌는 걸 많이 준비해 놨거든.』
「축하합니다! 가시나무를 짊어진 노인이 당신에게 존재력 포인트를 1 후원하셨습니다.」
『허허허. 역시 그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군. 이 또한 새로운 인연을 낳을지니….』
튜토리얼 타워 내부에 들어서자,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성좌들이 채널 창에 후원 메시지를 보내왔다.
언제나 그렇듯 대부분 나를 맹목적으로 희롱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일부 성좌들은 내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싸, 싸부님 여긴….”
“지난번에 말했던 1층이야. 그런데…. 무기들이 미리 진열돼 있다는 게 좀 다르긴 하네.”
튜토리얼 타워 1층이 구조는 먼젓번과는 비슷하면서도 살짝 달라져 있었다.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진 대리석들이 바닥에 깔린 것까진 똑같았으나.
무기들이 진열되어있는 피라미드가 시험 개시 전에 미리 나와 있었다.
-띠릭.
무기가 진열된 피라미드의 위용을 감상하고 있으려니,
시스템 창 특유의 비프음과 함께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환영합니다. 보호자 여러분」
「부디 자신이 맡은 수험생들을 잘 이끌어주시길 바랍니다.」
“시, 신기해요. 싸부님! 눈앞에 뭐가 막 생겨났어요!”
“그게 내가 말했던 시스템 창이다. 앞으로 익숙해져야 하니까. 지금 적응해두도록 해.”
갑자기 시스템 창이 눈앞에 생성되자 김혜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잔뜩 흥분한 상태로 방방 뛰는 김혜옥에게 나는 시스템 창을 조작하는 방법에 대해 간략하게 알려줬다.
“싸부님? 뭔가 완료되었다고 떴어요.”
-쿠우웅.
김헤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축을 우르릉 울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곧이어 활짝 열려있던 튜토리얼 타워의 거대한 문이 다시 닫혀버렸다.
「지금부터 튜토리얼 1단계 시험을 개시합니다.」
「수험생 여러분들께선 무기를 손에 넣으십시오.」
「보호자 여러분들께선 위험으로부터 자신의 파트너를 보호하십시오.」
‘변형’ 규칙이 적용된다더니, 첫 번째 단계의 시험 내용은 먼젓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작하기 전부터 피라미드 모양의 무기 진열대가 튀어나와 있다는 것과 보호자와 같이 시험에 임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지난번과 다를 바가 전혀 없어 보였다.
-뭐야? 지난번이랑 다를 것도 없네!
-휴우. 보호자까지 요구하길래 뭔가 엄청난 걸 시키나 했더니….
-헌터님만 믿겠습니다. 헌터님께서 도와주시면 무기 하나쯤 얻는 건 일도 아니겠죠!
기존과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규칙에 곳곳에서 안도 섞인 한숨이 터져 나왔다.
보호자 자격으로 따라온 헌터들을 바라보는 수험생들의 눈빛엔 신뢰의 빛이 살짝 감돌았다.
-특전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에 애송이들 따라 왔더니. 이래서야 별 것 없겠군….
-누가 아니래? 길드장 놈이 지X만 안 했어도….
반대로, 주변을 긴장된 눈초리로 매섭게 노려보던 헌터들의 눈에선 실망의 빛이 어렸다.
그들은 지루한 표정으로 입을 쩍쩍 벌려가며, 하품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반된 표정의 헌터들과 수험생들이 피라미드로 향하려던 순간!
「수험생이 다른 보호자를 쓰러뜨려, 수험표를 탈취할 때마다. 가산점이 추가로 적용됩니다.」
시스템 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