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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 잘생겼다!-108화 (108/309)

제108화

[크흠! 그동안 본존을 계속 괴롭혀 왔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위철용은 근엄한 표정으로 거만하게 목을 가다듬었다.

허공에 둥실 떠올라 거만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마치 난생처음 화장실을 가리는 데 성공한 새끼 불도그와 똑 닮아 보였다.

덕분에 그 기묘하게 귀여우면서도 억울하게 못생긴 표정에 갑작스레 피폭된 나는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켜야만 했다.

“크, 크흡! 큽! 크흠! 그, 글쎄요? 못생긴 외모?”

…망할.

간신히 터져 나온 웃음을 강제로 억누르는 데는 성공했지만, 혼미해진 정신은 엉뚱한 대답을 입 밖으로 토해내 버렸다.

[…네놈이 정녕. 그래, 애송아. 우리 요즘 대화가 서로 없어도 너무 없긴 했지? 오늘 밤 그동안 쌓아둔 회포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을 해보자꾸나.]

위철용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나 싶더니, 괴이쩍은 미소가 그의 얼굴에 깃들어 버렸다.

표정은 평온했으나,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엔 진득한 광기와 섬뜩한 살기가 서려 있었다.

…오늘 밤에 편히 자긴 글러 먹었군.

[크흠! 아무튼! 그간 본존을 무던히도 괴롭혀오던 괴롭힘의 근원은 바로! 빌어먹을 인과율이었지. 기억하느냐?]

목소리를 가다듬은 위철용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인과율이라…. 그러고 보면 그가 무언가에 대해 내게 알려주려 할 때마다, 인과율이니 뭐시깽이니의 간섭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잡음이 중간에 끼어들긴 했지.

“예. 그 인과율인가 하는 것 때문에 화도 많이 내셨었죠.”

[그래! 바로 그거다. 그 빌어먹을 인과율 때문에 네놈에게 쓸 만한 대답조차 해주지 못했었지. 하지만…. 으하하하! 경외하라! 본존은 그 망해 처먹을 놈의 간섭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니!]

별안간 광소를 터뜨린 위철용의 입에서 믿지 못할 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 성좌였던 시절에도 그 인과율인가 뭔가에 얽매여 고통받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배후령으로 영락한 지금, 그걸 극복해버렸다고? 이게 무슨 소리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립니까? 성좌로 군림하던 시절에도 인과율의 속박에선 벗어나지 못하셨다면서요?”

[으하하하. 본존이 누구더냐! 다 답을 찾아냈느니라! 자! 들어 보아라! ### 개X끼!]

광소를 터뜨린 위철용의 입에서 별안간 누군가를 욕하는 걸쭉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인과율을 극복했다는 그의 발언이 무색하게도 욕설 속엔 여전히 인과율이 간섭했을 때 특유의 불협화음이 잔뜩 끼어있었다.

“…똑같은데요?”

먼젓번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현상에 미심쩍은 표정으로 위철용을 바라보았다.

내 불신 어린 눈빛과 마주한 위철용은 희미하게 미소를 짓더니, 내 가슴팍 속으로 뛰어들어왔다.

순식간에 그의 비췻빛 신형이 내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띠릭!

위철용이 몸속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별안간 시스템 창의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무엇인가 싶어, 시스템 창을 조작한 순간!

『조율자 이 빌어먹을 개X끼!』

놀랍게도 시스템 창의 메시지란에 위철용으로 짐작되는 걸쭉한 욕설이 올라와 있었다.

…뭐여 이건?

『으하하하. 시원하다. 시원해! 그 오라질 놈을 마음껏 욕할 수 있으니!』

그 뒤로도 시스템 창의 메시지란 엔 계속해서 위철용의 욕설이 올라왔다.

뭔가 ‘조율자’라는 존재에 쌓인 것이 많은 모양인지, 시스템 창의 메시지란은 차마 묘사할 수 없는 수위의 욕설들로 가득 차 버렸다.

[후우. 개운하다.]

한참을 메시지창에 엄청난 욕설들을 흘려보낸 위철용은 굉장히 개운해진 표정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건 또 뭐랍니까?”

[말했지 않았더냐? 인과율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말이다. 먼젓번 네놈이 성좌들과 소통하는 창구와 본존의 심상 세계가 불안전하게 연결되었던 경험을 살려낸 결과물이니라.]

하긴, 위철용이 심상 세계를 처음 만들어냈을 때.

알 수 없는 부작용으로 인해 채널 창이 통째로 심상 세계와 연결되어버린 적이 있긴 했다.

원리는 잘 모르겠다만, 아무래도 위철용은 그때의 경험을 살려 심상 세계와 시스템 메시지창을 연결해버린 것 같았다.

…잠깐만. 그럼 이번엔 시스템 창을 못 쓴단 소린가?

“아, 아니, 잠깐만요. 그럼 이번엔 시스템 창을 확인하지 못하는 겁니까?”

불안한 예감이 스친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위철용에게 질문을 던졌다.

채널 창의 성좌들이야, 워낙 내게 호감을 표하는 치들이라, 잠깐의 그 단절이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다가올 수 있었지만.

시스템 창의 편의성을 생각해보자면, 그것을 확인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일이었다.

[당연히 아니지! 그때의 ‘사고’와 본존이 그동안 노력한 것을 동일 선상에 놓으면 되겠느냐? 본존이 원할 때만 잠시, 그곳을 이용하는 것뿐이니라. 뭣하면 지금 당장 확인해보지 그러느냐?]

위철용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말대로 시스템 창을 조작하자, 신기하게도 시스템 메시지 창은 조금 전에 떠올랐던 욕설들이 전부 사라진 채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잠깐만요. 그렇다는 것은 그동안 답변을 해주지 못하셨던 질문들도 모두….”

[그렇지! 심상 세계를 통해 인과율의 주박에서 우회하는 것이기에 어떤 그곳에서나마 네놈의 질문에 대답해줄 수 있게 된 것이니라!]

과연, 위철용이 호언장담한 대로 그가 맺어낸 결실은 대단한 것이었다.

인과율의 주박이 뭔지 아직까진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오롯이 위철용의 조언을 날것 그대로 들을 수 있다니!

명색이 성좌였던 치의 온전한 조언이다. 그것만으로도 난 엄청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한 일이네요? 여윽시 성좌셔서 그런지. 아주 범상치 않은 재주를 갖고 있으셔.”

[으하하하. 그럼! 그럼! 하지만 아무리 아부해봤자. 오늘 밤 만남은 화끈할 것이니라.]

“크윽….”

위철용의 똑 부러진 대답에 나는 은근슬쩍 그에게 아부하려고 시도했지만.

애석하게도 그러한 불측한 시도는 위철용의 담백한 손짓에 막혀버렸다.

…빌어먹을.

*****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크흠. 아까운 장면들을 너무 많이 놓쳤군. 특히 유영화 그것의 최후를 보지 못했다니. 듣던 중 가장 안타까운 일이로고….]

오랜만에 위철용과 만났기 때문일까?

그에게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주니, 제법 시간이 많이 흘러간 상태였다.

그렇게 아쉬운 표정을 짓는 위철용을 뒤로한 채 슬슬 현장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나태상의 거대한 두개골을 잘 갈무리해, 그것을 부서진 복도에서 찾아낸 쇠사슬에 묶었다.

[나태상도 처리했겠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할 계획인 게냐?]

“우선은 잊어버렸던 짐짝부터 찾으러 가야죠.”

[짐짝이라니? 참. 신지현 그 아이를 탈출시켰다고 했지.]

말이 탈출이지, 사실은 청소도구함째로 사출시킨 것에 가깝긴 하지만.

위철용의 말에 어쩐지 양심이 욱신거렸다.

뭐. 외골격을 둘러놨으니, 다치지는 않았겠지만….

“…….”

말없이 벽에 난 구멍을 훑어본 나는, 그곳을 통해 아래로 뛰어내렸다.

-착!

가볍게 다리를 굽혀 바닥에 착지하니, 부서진 돌무더기 위에 다소곳이 놓인 청소도구함의 자태가 눈에 들어왔다.

청소도구함을 발견한 나는 지체할 것 없이, 그것에게 다가가 문을 열어젖혔다.

[…아무래도 죽은 것 같다만.]

둘러놓은 외골격 덕분에 청소도구함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날아오느라 정신없이 흔들렸기 때문인지, 내부는 엉망진창이었다.

기묘한 자세로 기절한 신지현의 입가엔 허연 게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와 있었다.

…정말 죽은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요. 매니저님? 매니저님?”

위철용의 말에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 나는 창끝으로 뻗어버린 신지현을 쿡쿡 찔렀다.

-번쩍!

“갸아아아악!”

아씨 깜짝이야.

차가운 창끝이 신지현의 볼에 닿은 순간, 그녀의 눈이 번쩍 불을 뿜었다.

그리곤 신지현은 마치 갓 부활한 한 마리 좀비와도 같은 괴성을 질러댔다.

“매니저님 무사하세…. 크헉!”

괴이쩍은 비명을 내지른 신지현은 비호처럼 몸을 날려 내 품에 파고들었다.

그리곤 입을 크게 쩌억 벌리더니, 만만해 보이는 부위들을 콱콱 물어대기 시작했다.

…물론, 불측한 살기를 감지한 순간부터 몸 전체에 외골격을 둘러놨기에, 그녀의 애달픈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지만. 말이지.

“캬아아악! 죽어엇! 죽어어엇!”

단단한 외골격을 와드득 깨문 신지현은 뾰족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곤 단단히 성이 난 목소리로 울부짖더니,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러댔다.

[…죽어서 망자로 부활해버린 게냐?]

‘아뇨. 보다시피…. 정신적인 충격을 좀 크게 받은 것뿐이에요.’

외골격으로 보호받았다곤 하나, 평범한(?) 인물에겐 벽을 네 개쯤 부순 뒤. 8층 건물에서 자유 낙하하는 경험은 그다지 유쾌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신지현이 증오에 가득 찬 햄스터처럼 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테지….

“쭉일 거야아앗!”

나는 신지현의 울분이 풀리도록, 잠깐 그녀의 공격을 외골격으로 받아내 주었다.

그리곤 그녀의 몸놀림이 둔해진 틈을 타, 딱따구리처럼 내 외골격에 착 달라붙어 있던 그녀를 조심스레 떼어냈다.

“…나태상을 처리했어요.”

“쭉일! 엣? 예?! 뭐, 뭐라구요?”

양팔이 붙잡힌 채로 대롱대롱 매달린 신지현에게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나태상의 최후를 알렸다.

덕분에 바동거리던 신지현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나태상이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은 살짝 맛이 가버린 그녀의 정신을 되돌리기에 충분한 충격을 선사해주었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다, 다시 말해주세요. 그, 그 빌어먹을 자식이 죽었다고요?”

“네.”

정신을 퍼뜩 차린 신지현의 표정이 빠른 속도로 탈색되어갔다.

“무, 무슨 짓을 저질러버리신 거에요? 유, 유영화를 죽인 지 얼마나 됐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헌터님이랑 엮인 산군들이 연달아 줄초상 나는 상황인데. 이러면 누가 봐도 수상하잖아요!”

나태상에게 유영화를 살해한 죄를 뒤집어씌울 때부터, 그와의 충돌은 예정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예 나태상을 죽여버리는 것은 상정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신지현의 표정엔 충격과 공포가 가득했다.

확실히, 그녀가 말한 대로 나와 얽힌 산군들이 죄다 하나둘 씩 목숨을 잃고 있으니. 누가 봐도 수상하게 여기긴 하겠다만….

“어쩔 수 없었어요. 놈이 마족 놈과의 거래를 통해, 괴물로 변해버렸거든요.”

어깨를 한번 으쓱인 나는 신지현에게 나태상의 두개골을 내밀었다.

그리곤 나는 나태상에게 있었던 일을 그녀에게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살짝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거대한 두개골을 만져본 신지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토록 선량했던 사람이, 어쩌다가 갑자기 그런 무뢰배로 변해버렸나 싶었는데. 그런 뒷사정이 있었네요.”

신지현의 씁쓸한 발언으로 미뤄보건대. 그녀는 나태상이 마족에게 몸을 빼앗기기 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지난번에 나태상의 손에 목숨을 잃을 뻔했을 텐데도,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나태상의 두개골을 어루만졌다.

“정말 상종 못할 놈들이에요. 마족이란 것들은….”

벌떡 몸을 일으킨 신지현의 눈엔 적의를 담은 증오의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 양반의 사연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의 죽음을 이용하면, 제법 거대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네요.”

독오른 여우 같은 표정을 지은 신지현은 섬뜩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저 멀리, 태백 길드 본사 건물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심상치 않은 열기를 머금었다.

“기대할게요.”

나는 말없이 신지현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나태상을 헤러틱 리치로 변이시킨다는 강수를 뒀으니만큼 마족 측에서도 나름의 승부수를 던진 셈이지만.

그 헤러틱 리치를 쓰러뜨린 지금, 돌아가는 정황들은 하나같이 우리에게 너무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호오. 회귀한 뒤로 저 아이가 저토록 진지해진 모습은 또 처음 보는구나.]

나태상이 수하들을 이끌고 나를 습격한 것, 스스로 수하들을 죽여 그 영혼을 취한 것, 몬스터로 변이하여 최후를 맞은 것까지.

그렇지 않아도 유리하게 돌아가는 정황이 협잡의 달인, 신지현과 만난다면 어떨까?

-할짝.

신지현이 보여줄 활약에 나는 살짝 입맛을 다셨다.

뭐, ‘진짜’ 나태상의 사연이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유용한 건 유용하게 써먹어야 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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