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금융가를 주름잡던 큰손의 추악한 진실?!」
「유영화 헌터의 비극적인 죽음. 진실은 무엇인가!」
“역시 기자 나으리들이야, 하여간 발빠른 것 하난 알아줘야한다니까.”
특종에 굶주린 하이에나들은 기대 이상으로 활약해주었다.
엊그제 유영화의 장례식에서 있었던 사건은 불과 하루만에 기사화 되어, 포털 사이트 뉴스란을 완전히 점령한 상태였다.
「금융가에 드리운 어둠? 익명의 K씨 드디어 입을 열다.」
「속보] 나태상 헌터 총 일곱 건의 실종 사건에 관여….」
기특하게도 기자들은 마치 피냄새에 꼬인 상어떼처럼 나태상에게 달려들어, 그의 여죄까지 모조리 까발리고 있었다.
뭐, 내 지시를 받은 신지현이 ‘약간’의 미끼를 좀 던져주긴 했지만.
「‘나태상을 처벌해 주세요.’ 헌터협회 청원 등장.」
「나태상에게 분노한 누리꾼들, 규탄 집회 예고.」
덕분에 나태상에 대한 여론은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나태상과 관련된 기사마다 놈을 성토하는 이들의 증오심 어린 댓글이 가득했다.
“…산군 회의에서 나태상에 대한 처분이 결정되었어요.”
즐거운 마음으로 나태상에 대한 기사들을 읽고 있으려니, 어쩐지 시무룩한 표정의 신지현이 내게 다가와 회의 결과를 알렸다.
“길드 내에서 조사위원회가 꾸려질 때까지 근신 처분이래요.”
“역시, 솜방망이 처벌이네요. 여론이 무섭지도 않나 몰라.”
어차피 나태상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을거라곤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산군들 사이엔 이익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기도 하고, 아모스라는 세력이 태백이 심층부에 도사리고 있는 이상. 산군 회의고 뭐고 ‘정상적인’ 결과를 내 놓을 리가 없을테니까.
굳이 신지현을 ‘산군 대리’로 회의에 대신 보냈던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추잡한 놈들이 지들끼리 북치고 장구치는 광경 따윈,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거든.
“…산군 회의 내용은 대외비라서, 외부에선 나태상이 무슨 처벌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걸요.”
지친 기색의 신지현은 터벅터벅 걸어와 사무실 소파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전기장판 위의 고양이처럼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린 그녀는 푸념하듯 내게 입을 삐죽 내밀었다.
“뭐, 그건 그렇죠…. 그나저나 고생했어요. 산군 회의를 두 번이나 대신 참석해주셔서.”
“말로만 고맙다고 하지 말고, 뭔가 성의를 좀 표하지 그래요?”
신지현은 토라진 얼굴로 테이블 위에 놓인 위스키에 손을 내밀었다.
그리곤 특유의 주량을 자랑하듯, 독한 위스키를 단숨에 병째로 들이켰다.
…으으. 봐도봐도 저건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니까. 저게 사람의 주량이야 뭐야?
“크허어. 죽인다아아! 그런데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저희 사무실에서 지내시는 거에요? 사람 불안하게시리.”
단박에 한 병을 비워낸 신지현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소는 바로, 신지현이 그동안 ‘비밀스러운’ 작업을 수행해온 허름한 사무실이었다.
상주하던 인사팀까지 전부 쫓아낸 채, 사무실을 점거하고 있는 꼴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인지. 나를 바라보는 신지현의 눈초리는 그다지 곱지 않았다.
“곧 들이닥칠 손님 맞이하는데, 여기보다 적합한 곳이 없거든요.”
애석하게도 신지현의 ‘불안한 예감’은 기우가 아니었다.
내가 다른 곳 놔두고 굳이 이렇게 음침한 곳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잔뜩 골이 난 채로 찾아올 나태상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뭐…라구요?”
“갑자기 시원하게 따귀 한 대 얻어맞고, 억울하게 욕까지 듣고 있는데. 우리 선배님께선 가만히 있을 위인이 아니잖아요?”
내가 아는 나태상은 가만히 모욕을 견디는 타입이 아니었다.
산군 회의에서 솜방망이 처벌을 받긴 했으나, 누명을 뒤집어 쓴 나태상 입장에선 억울해서 미치고 팔짝 뛸만한 상황이었기에. 그가 언제 이곳에 쳐들어와도 이상할게 하나 없는 상태였다.
아니, 그의 성격을 고려해보면. 지금 당장이라도 쳐들어올걸?
“흐음. 위스키 향 한 번 좋네. 이거 어디서 사셨어요?”
신지현에게 어깨를 한번 으쓱여준 뒤.
나는 여유롭게 위스키를 한 잔 따라 향을 음미했다.
“미, 미쳤어요? 내가 여기 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신지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린다 싶더니, 이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녀의 입에서 꽤 오랜만에 들어보는 특유의 히스테릭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러게요. 어쩜 이렇게 누굴 묻어버리기 좋은 장소를 구해놓으셨는지…. 칭찬해 드릴까요?”
이곳 사무실은 꽤 괜찮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대격변의 여파로 폐허가 되어버린 도심 중앙에 은밀하게 자리잡고 있었기에, 누군가를 묻어버리기엔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인 입지조건을 자랑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태상 입장에서도 부담 없이(?) 쳐들어올 수 있겠지.
“무슨 말을 그따구로 지껄이는 거예욧!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뻔뻔…. 꺄아아악!”
-콰아아앙!
능글맞은 내 말투에 신지현이 본격적으로 히스테리를 부리려던 순간!
무언가가 폭발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지진이라도 난 듯 건물 전체가 우르릉 흔들렸다.
덕분에 샐쭉한 표정으로 삿대질을 하던 신지현은 비명을 내지르며 우당탕 넘어져 버렸다.
“생각보단 빨리 도착하셨네.”
질서정연하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검은 갑옷의 괴한들의 모습에.
나는 사납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
“꺼헉!”
낡은 집기들이 즐비한 사무실에선 꽤 볼만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창 끝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괴한의 입에서 앓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크게 확장된 그의 눈이 빠른 속도로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아으으. 진짜…. 최악이야.”
얼굴 끝까지 알뜰하게 시커먼 복면으로 싸맨 괴한이 나가 떨어진 것을 본, 신지현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털끝 하나 다친 곳도 없으시면서, 엄살은.”
-후우웅!
넘어진 소파에서 빼꼼 얼굴을 내민 신지현의 모습에 피식 웃은 나는 계속해서 어둠달을 휘둘렀다.
어둠달의 시커먼 창날이 번뜩일 때마다, 괴한들은 제대로 반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픽픽 나가떨어졌다.
-빠아아악!
검은 심장으로 증폭된 내력과 한계까지 성장한 능력치 덕에, 바로 눈앞에서 어둠달의 창날이 날아다녔음에도 그들은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나태상은 어디가고 이런 잔챙이들만 기어오는지 원.”
역수로 쥔 단검 두 자루를 제법 쓸 만하게 휘두르던 이를 마지막으로,
사무실에 난입한 괴한들은 모조리 차디찬 땅바닥에 몸을 뉘었다.
물론, 적절히 힘 조절을 한 덕에 그들 중 목숨을 잃은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자요.”
대충 난입한 괴한들이 정리되자,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신지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밀어진 손을 잠시 쏘아보던 그녀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내 손을 붙잡았다.
“아으으. 내가 왜 이 인간이랑 계약을 맺었나 몰라.”
“언제는 눈물까지 흘리면서 기뻐하셨으면서, 벌써 애정이 식어버린 거예요?”
진절머리가 나는 듯, 고개를 흔드는 신지현에게 장난스레 너스레를 떨자.
“애, 애정이라니!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에욧!”
분노인지 부끄러움인지, 신지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릴 심산인지, 한바탕 빼액 고함을 내지른 그녀는 붙잡았던 내 손을 뿌리치곤 쓰러진 괴한들에게 다가갔다.
“…분명히 나태상 쪽 사람들일 텐데. 이 사람들 우리 태백길드 소속이 아닌가 본데요? 처음 보는 얼굴이에요.”
딴청 피우듯 붉게 물든 얼굴로 괴한들의 몸을 뒤지던 신지현의 표정이 별안간 심각해졌다.
태백의 인선을 책임지는 인사팀의 팀장답게, 그녀는 어지간한 길드원들의 얼굴을 거의 다 외워놨을 터였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처음 봤다는 소리가 나왔다는 것은….
뭐지? 설마, 나태상은 오행 쪽 인원들을 끌고 온 건가?
“게다가, 아무리 우리 헌터님께서 햇병아리 산군이라지만. 명색이 산군을 치러 온 병력이 이렇게 약할 리가 없을 텐데…. 조심해요!”
-쨍그랑!
신지현이 새로운 의문점을 발견하려던 찰나.
다시 한 번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무실 창문을 통해 시커먼 괴한들이 휙휙 날아들었다.
가볍게 착지한 그들은 다짜고짜 신지현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흥!”
창백하게 질린 신지현을 가볍게 끌어안은 나는 외골격을 몸 위에 둘렀다.
-카가가강!
황금빛 외골격 위에 시퍼런 칼날들이 부딪히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괴한들의 얼굴에 당황의 빛이 어리기도 전에, 내 손에 들린 어둠달이 시커먼 빛을 흩뿌렸다.
-피슛! 피슛! 피슛!
살갗을 파고드는 섬찟한 파육음이 연속적으로 들렸다.
파천 복룡창이 일식, 연포의 묘리에 따라 여섯 개로 갈라진 창날이 마치 거대한 바늘처럼 내게 덤벼든 괴한들을 꿰뚫었다.
팔, 다리, 허벅지 등등 다양한 신체부위가 꿰뚫린 괴한들은 괴로운 표정으로 비명을 삼키며 바닥에 털썩 털썩 쓰러졌다.
“휘유. 큰일 날 뻔했네. 괜찮으세요?”
“괘, 괜찮아요.”
말은 괜찮다고 해도, 신지현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제법 배짱이 있는 줄 알았더니, 이런 모습은 또 의외로군.
“…그래, 저게 좋겠네.”
신지현의 처우를 두고 잠깐 고민하던 내 눈에 커다란 청소도구함이 하나 들어왔다.
단단한 철제 재질의 청소도구함은 사람 두어 명쯤은 너끈히 집어넣을 수 있을 법한 사이즈를 자랑하고 있었다.
“들어가세요.”
“드, 들어가다니. 여기를요? 으갹!”
청소도구함을 번쩍 들어 내부를 대충 비운 뒤,
머뭇거리는 신지현을 번쩍 들어 청소도구함 속에 집어넣었다.
-촤르르륵
정신을 집중하자, 신지현이 들어있는 청소도구함에도 황금빛 외골격이 둘러졌다.
큼지막한 황금빛 외골격이 번쩍번쩍 빛나는 것이 시선을 확 잡아 끌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내려줘엇!”
청소도구함을 번쩍 들자, 내부에서 신지현이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흔들릴 수는 있겠지만, 혹덩이를 달고 싸우기엔 이것만 한 것이 없었다.
내부에서 신지현이 욕을 내뱉든 말든, 나는 청소도구함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
“이것봐 라.”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 복도엔 어느새 시커먼 복면을 뒤집어 쓴 괴한들이 가득했다.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복면 괴한들의 인파를 바라보며, 나는 사납게 웃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인력을 끌어 모았는지. 시커먼 갑옷을 차려입은 인원들의 머릿수는 어림잡아 공격대 하나는 너끈히 꾸리고도 남을 정도였다.
-파츠츠츠.
꾸역꾸역 몰려드는 검은 물결을 바라보는 시야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어둠달에 틀어박힌 검은 심장이 힘차게 맥동하게 시커먼 기운을 줄기줄기 내뿜었다
“어디 한 번 놀아보자고!”
이죽거리던 비웃음을 담고 있던 혼잣말은 곧 포효가 되었다.
한 손에는 황금빛이 번쩍이는 거대한 청소도구함을, 한 손에는 시커먼 어둠이 넘실거리는 어둠달을 휘두르며 나는 괴한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읏!”
좁은 복도를 꽉 메운, 거대한 황금빛 청소도구함의 위용과 시커먼 창날에서 넘실거리는 흉악한 기운에 질려버린 괴한들은 침음성을 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차갑게 빛나는 화안금정의 서늘한 기운에 헌터들의 몸이 뱀 앞의 개구리처럼 바짝 얼어붙었다. 서늘한 한기가 복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빠아아앙!
“꺄아아아악!”
황금빛이 번쩍이는 청소도구함이 벼락처럼 휘둘러졌다.
청소도구함의 내부에선 신지현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본능적으로 힘껏 휘두른 탓에,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미 청소도구함은 휘둘러진 뒤였다.
…뭐. 조금(?) 어지럽긴 하겠지만. 외골격으로 보호하고 있는 중이니. 다치지는 않겠지.
-까앙!
“께흑!”
휘둘러진 청소도구함이 불운한 괴한들의 몸뚱이에 작렬하자, 청량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대형 둔기나 다름없는 그것에 얻어맞은 괴한들의 몸이 만화처럼 부웅 떠올랐다.
그들의 입에선 우스꽝스러운 비명소리가 터졌다.
“흐어어엉. 죽일 거야. 죽여 버릴 거야아아.”
“아, 아하하. 미안해요. 본능적으로 휘둘러 버렸네…. 다치진 않았죠?”
나는 청소도구함 속에서 들려온 신지현의 울음소리에 멋쩍게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리곤 그녀가 들어있는 청소도구함을 얌전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시 시작해보자구. 이쪽도 일이 좀 생겨서 바쁘니까. 금방 끝내 드릴게.”
“죽여!”
벽에 박혀버린 채로 개구리처럼 뻗어버린 동료들의 모습에 긴장한 탓일까?
침묵을 유지하던 괴한들은 단말마에 가까운 고함을 내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그들의 몸에서 섬찟한 광기가 뿜어졌다.
긴장으로 인해 쿵쿵 뛰는 심장들의 화음이 마치 전쟁의 북소리처럼 그들의 광기를 부채질했다.
-쾌래래래랙!
나를 향해 쇄도하는 섬뜩한 칼날의 파도! 그 속에 담긴 진득한 광기!
시야를 가득 메워버린 칼날의 파도 속에서, 나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괴한들을 향해 그저 빙그레 미소만을 지었다.
-쩌적. 쩌저적!
외골격 위에 괴한들의 공격이 퍽퍽 틀어박히자.
마치 잔뜩 달궈진 금속에 금이 가는 듯한 소리가 쩌저적 울려 퍼졌다.
그 요란한 소리에 공포와 광기에 잠식된 괴한들의 얼굴에 희열이 감돌기 시작했다.
“돼, 됐다! 역시 모두가 한꺼번에 덤비면 외골격 따윈….”
허나, 바로 그 순간! 무기가 틀어박힌 금빛 외골격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외골격에서 비롯된 불길한 기운이 연기처럼 사방으로 조금씩 조금씩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
-꾸과아아앙!
폭음! 굉음! 모든 것이 우르릉 흔들리는 듯한 괴성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파천복룡창의 제삼식 암룡출동이 펼쳐진 것!
“꺼어어….”
암룡출동의 폭발에 정면으로 노출된 이들의 입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들이 입고 있던 검은 갑옷은 이미 재로 변해 흩어진지 오래였다.
적절하게 위력을 조절한 덕에, 즉사는 면했지만. 암룡출동의 무식한 위력은 그들의 내장을 적절하게 진탕시켰다.
시커멓게 그슬린 괴한들의 신형이 허무하게 허물어졌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내게 달려들었던 인원들이 모조리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주저앉자, 좁은 통로를 가득 메웠던 괴한들 사이에서도 동요가 일어났다.
가슴 속에 차오른 공포가 과묵한 컨셉질을 잡아먹은 모양인지, 그들의 입에선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쿠르륵!
하지만, 내게는 굳이 괴한들의 의문을 해결해줄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어둠달의 창날이 허공을 가르자, 대기가 날카롭게 갈라지며 파공음이 복도 안을 웅웅 울렸다.
창날에 휘감긴 시커먼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흉흉한 어둠을 흩뿌렸다.
-콰드드드득!
시커먼 기운 속에서 방출된 여섯 마리의 용이 괴한들 사이를 광폭하게 누볐다.
어둠달의 창날이 계속해서 어둠을 뿌릴 때마다.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나의 비명소리가 들릴 때마다, 한 명의 헌터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머릿수는 제법이지만, 실력들은 하나 같이 영 맹탕이잖아? 이따위 놈들로 나를 치려들다니…. 우리 선배님께서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계시는 걸까나.”
“우웨에에엑! 케헥!”
복도 전체를 가득 메웠던 괴한들을 모조리 제압하고,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청소도구함의 문이 쾅 하니 열리며, 그 속에서 신지현이 후다닥 튀어나왔다.
잠시 비틀거리던 그녀는 근처의 벽을 부여잡고는 자신이 먹었던 점심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으음. 조금(?) 심하게 휘둘렀나?
“흐어어어. 죽일 거야아. 반드시 죽여버 릴 거야아….”
“…미안해요.”
눈물로 범벅이 된 채, 계속해서 무언가를 토해내는 신지현의 모습에 나는 씁쓸히 웃으며 그녀의 등을 두드려줬다.
“저, 절대로. 절대로 저 망할 관짝 안엔 들어가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아세욧!”
오늘 하루,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전부 확인한 신지현은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청소도구함을 쾅 하니 걷어찼다.
그런 그녀에게 뭐라 위로의 말을 건네려던 그 순간!
“…!”
복도 저편에서 섬찟한 기운이 느껴졌다.
저벅저벅 느릿한 발걸음 소리에 맞춰, 음울하면서 꿉꿉한 살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찾았다. 크흐흐흐. 찾았어.”
복도를 가득 채운 살기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낯익은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누구야.”
나는 모습을 드러낸 인물, 나태상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존경하는 선배님 아니야?”